한인 사회, 다음 세대를 잇는다20; LG 상사 박혜수 변호사

시사인터뷰


 

한인 사회, 다음 세대를 잇는다20; LG 상사 박혜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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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분야 법무팀장이 꿈한인 변호사 드림 팀 꾸미겠다


한국-뉴질랜드 이중 문화 이해가 장점, 한국말 능숙하게 해야 취직 가능


 

 

한인 1.5세의 장점 가운데 하나가 한국과 뉴질랜드 두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이해한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최소한 초등학교를 마치고 온 1.5세라면 처음에는 현지 적응 속도가 느릴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중 문화의 좋은 점을 유효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다.

뉴질랜드에서 교육받은 1.5세 중 많은 젊은이가 호주나 영국 혹은 미국에 가서 일을 한다. 같은 영어권 나라라는 이점이 그들에게 날개를 활짝 펴게 해준다. 그 밖에도 어머니의 나라’(모국, 母國) 대한민국을 다시 찾아가는 1.5세도 어렵지 않게 만나곤 한다. 인구 500만이 채 안 되는 뉴질랜드에 견주면 분명히 큰물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보다 더 큰 꿈과 뜻을 갖고 정착하는 경우가 많다.

 

연말 휴가 한 주 얻어 오클랜드 방문

성탄절 사흘 뒤, 나는 노스쇼어(North Shore) 한 호텔 커피숍에서 한인 1.5세 출신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한국 LG 상사 법무팀에서 일하고 있는데, 연말 휴가를 한 주 얻어 부모가 사는 오클랜드를 방문했다.

금쪽같은 휴가일 텐데 이렇게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내 인사에 그는 뉴질랜드 칭찬(?)부터 했다.

뉴질랜드는 정말 좋아요. 자연도, 사람도 모두 다요. 내가 참 축복받은 나라에 살았었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하게 돼요.”

박혜수 변호사.

그는 2000년 어느 날, 초등학교를 마치고 홀로 유학을 왔다. 영어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일찍 깨달은 아버지의 권유로 오클랜드에 도착했다. 홈 스테이를 하며 2년을 보냈다. 곧이어 부모가 이민을 와 가족이 합쳤다. 와이라우 인터미디어트(Wairau Intermediate)를 거쳐 웨스트 레이크 걸스 하이 스쿨(Westlake Girls High School)을 마치고 해밀턴에 있는 와이카토대학(University of Waikato)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어렸을 때 꿈은 피아노 연주자였어요. 아쉽게도 Year 11 무렵 그 꿈을 접었어요. 그 뒤 칼리지 고학년 때 의사나 약사 같은 직업이 어떨까 해서 화학, 생물 과목을 공부했는데 점수는 잘 나왔지만 제 적성과는 안 맞더라고요. 대안이 바로 법학이었어요.”

 

서른 살 위 한국 남자와 함께 법학 공부

조금은 색다른 이야기 한 토막.

혜수의 법대 동창생 가운데 서른 살 위인 한국 남자가 있었다. 그는 틈만 나면 혜수에게 도움말을 건넸다. 영어는 좀 딸렸지만 사회 경험이 훨씬 많아 여러모로 도움을 주었다. 바로 혜수의 아버지, 박성진 씨였다. 부녀(父女) 법대생, 그들은 서로 힘이 되어주었다. 몇 년 뒤 부녀는 어려운 법대 과정을 모두 마치고 변호사 자격증을 얻었다.

혜수는 오클랜드로 올라와 오클랜드대학에서 법대 석사 과정(파트 타임)을 밟았다. 그 사이, 그는 지적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을 주로 다루는 법률회사와 홍콩 변호사가 운영하는 법률 회사에서 근무했다. 석사 과정을 마친 뒤에는 오클랜드 지방법원(Auckland District Court)에서 판사를 보조하는 변호사 업무를 보았다.

지방법원에서 일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어요. 제가 한국에 가지 않았더라면 아마 법원 쪽이나 공공 부문 변호사로 일했을 거예요. 그쪽에 제가 관심이 많았거든요.”

혜수는 20145, 뉴질랜드의 좋은 직장을 마다하고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처음 들어간 회사 법무팀에서 넉 달을 일한 뒤 다른 곳으로 옮겼다. 일이 많지 않아 너무 심심했던 게 이유였다.

LG 상사 법무팀.

이름 자체가 주는 무게를 느낄 수 있다. 한국의 대표적 기업 가운데 하나인 ‘LG’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법무팀에는 혜수를 포함 11명의 변호사가 근무하고 있다. 혜수의 주 업무는 영어 계약서를 만드는 일이다. 그의 직함은 과장이다.

 

800억 달러(US) 미얀마 시멘트 사업권 진행

혜수는 미얀마 출장을 서너 차례 다녀왔다. LG 상사가 대규모 시멘트 공장 사업권을 따내는 일의 실무를 맡았기 때문이다. 대략 800억 달러(US)나 되는 큰 사업이다. 국익(國益)을 위한 일에 자기가 한몫을 하고 있다는 점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혜수처럼 한국에 가서 일을 하기 바라는 후배들(변호사)에게 주고 싶은 도움말을 부탁했다.

법률회사(Law Firm)에 들어갈 경우, 주 업무가 통역이나 번역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저같이 회사 변호사라면 보고서를 잘 써야 하고요. 둘 다 한국말이 능통해야 하죠. 교포 변호사라는 점을 양해해 준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한국말에 익숙해야 해요. 그게 바로 무기라고 생각해요.”

혜수는 어떻게 그 어렵다는 한국 대기업에 변호사로 취직할 수 있었던 것일까?

최근 들어 한국 변호사도 직업을 찾지 못해 난리에요. 미국 출신 변호사도 그렇고요. 그들도 마땅한 일거리가 없어 어려워해요. 저는 다행히 인터뷰를 잘한 것 같아요. ‘왜 한국에서 일을 하고 싶냐고 물어 한국 사람으로서 한국 발전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했어요. 임원진이 제 마음을 잘 알아줘 한 번에 붙었어요. 진심이 통했나 봐요.”

혜수의 꿈은 해외 분야 법무팀장이 되는 것이다. 미국, 호주, 영국, 뉴질랜드 등 영어권 나라의 한인 변호사가 모여 드림 팀을 꾸려보고 싶어 한다. 거기의 캡틴(대장)은 뉴질랜드 출신 박혜수 변호사.

한 예로 LG생활건강이 지금 흑자를 많이 내고 있어요. 제가 여자라서 그런지 몰라도 화장품이나 건강 제품에 관심이 많아요. 저만의 팀을 만들어 그런 쪽에 법률 조언을 해주는 일을 하고 싶어요.”

 

회사 변호사는 회사가 손님애사심 있어야

한인 1.5세로서 느낀 고국, 한국의 일 처리가 궁금했다.

한국은 서열이나 직급을 무척 중요시해요. 처음에는 이해가 잘 안 됐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어요. 학력 위주의 사회도 문제예요. 제 또래 동료나 후배들이 저를 부러워해요. 자기네들은 학교-학원-과외로 이어지는 학창 시절을 보내 딱히 추억할 것이 없다고 아쉬워하죠. 그런 점에서 저는 정말로 멋진 나라, 좋은 환경에서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 다녀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인터뷰 끝 무렵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물었다. 혜수는 가장 중요한 얘기를 빼먹었다는 듯이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

회사 변호사는 로펌 변호사와 좀 달라요. 회사가 손님인 셈이죠. 회사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뜻이에요. 그러려면 누구보다 회사를 사랑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어야 해요. 사업가의 정신으로 변호사 일을 하는 게 중요해요.”

이 말이 너무 예쁘게 다가왔다. 나는 회사 대표가 누구예요?”라고 물었다. 기회가 된다면 대표에게 전해주고 싶을 정도로, 그의 말 속에서 진한 애사심을 느낄 수 있었다.

송치호 대표예요.”

제가 전해 드려도 될까요? 좋아하실 것 같아요.”

혜수는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대표님도 좋아하실 거에요.”

혜수는 인터뷰 내내 조금은 헤프게 느껴질 정도로 착한웃음을 자주 보였다. 순수, 그 자체가 말과 표정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뉴질랜드 한인사회가 배출한 1.5세 변호사가 한국에서 맹활약하는 그림이 그려져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삶의 신조는 정직하게 사는 것

삶의 신조는 무엇인가요?”

정직하게 사는 거예요. 거짓이 없어야 믿음이 생기죠. 회사에 잘못된 보고를 하거나, 사람들에게 거짓을 말하면 모든 게 어려워지잖아요. ‘진실이 최선의 정책이다’(Honest is the best policy.)라는 자세로 살고 있어요.”

변호사 박혜수.

그는 뉴질랜드에서 배운 지식과 경험을 활용, 고국(한국) 발전에 보태고 싶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이 말을 할 때 그의 눈이 빛났다. 그 말의 행간(行間)에서 나는 혜수가 코리언 뉴질랜더(Korean New Zealander)로 누구에게나 본이 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자신했다. 그게 바로 이 연재물을 기획한 뜻이기도 해서 더 기분이 좋았다.

 

혜수는 2016년 마지막 날인 12 31() 사랑하는 부모를 뒤로하고 한국으로 떠났다. 일주일 간의 짧은 휴가를 통해 그가 맛본 삶의 여유는 그리 넉넉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뉴질랜드 한인 1.5세로서 그에게 주어진 삶의 가치가 더한층 깊게 다가왔으리라 믿는다.

LG 상사 법무팀 과장 박혜수 변호사는 1 2()부터 2017년 새해 업무에 들어갔다. 미얀마 시멘트 판매 대리점 계약 등 그가 올해 이뤄내야 할 과제가 쌓여 있다. 나는 이 자리를 빌려 혜수에게 미처 못 전해준 연하장을 보낸다.

새해에는 좋은 일들만 일어나길 빕니다.”(Best Wishes for the New Year.)

_프리랜서 박성기니다." (64 21) 272 4228(Mobile 손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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