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사회, 다음 세대를 잇는다22; Capital Care Health Centre 강애나 의사(GP)

시사인터뷰


 

한인 사회, 다음 세대를 잇는다22; Capital Care Health Centre 강애나 의사(GP)

일요시사 0 1,592


가난한 부모와 어린이의 건강한 삶에 힘 보태고 싶어요


공립병원 의사 생활 3년 거친 뒤 웰링턴에서 GP로 활동해


 

2008년으로 기억한다. 내가 일하던 한 교민 신문사에서 ‘20& 60를 주제로 한 특집 기사를 실은 적이 있다. 앞날이 기대되는 스무 살 젊은이와 삶의 완성도가 깊은 예순 살 사업가를 다룬 기획 기사였다. 그때 내 나름대로 정한 앞날이 기대되는젊은이는 오클랜드대학교 의과대 2학년 학생 강애나(Anna Kang)였다.

2017 1월 초, 새해 휴가를 맞아 부모와 함께하기 위해 웰링턴에서 올라온 애나를 다시 만났다. 그 사이 틈틈이 얼굴도 보고 근황도 듣기는 했지만 긴 얘기를 나누지는 못했다. 그가 너무 바빠서였다. 나는 한인 사회, 다음 세대를 잇는다는 이 연재물의 의사편을 남겨 두었다. 내가 알던 그 애나가 어떻게 변했고, 지금은 무슨 꿈을 꾸며 사는지 궁금했다.

 

인터 때부터 발명가 콜린 머덕과 교류

애나는 1989년 초, 부모를 따라 호주행(시드니) 비행기에 올라탔다. 그의 나이, 0.3. 쉽게 말해 100일이 갓 넘었을 무렵이었다. 애나는 열 살 때 오클랜드로 왔다. 초등학교 Year 6을 마치고 다음 해 블록하우스 베이 인터미디어트(Blockhouse Bay Intermediate)에 들어갔다. 거기서 그는 위대한 만남을 갖게 된다.

학교 과제로 유명 인물(Famous Kiwi)을 써서 내는 게 있었어요. 저는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발명가 콜린 머덕(Colin Murdoch, 1929~2008)을 골랐어요. 기자에게 이메일 주소를 얻어 편지를 보냈어요. 그 뒤 콜린이 돌아가실 때까지 교류했어요. 제게는 멘토나 다를 바 없어요. 제 인생의 앞길을 정할 때 가장 많은 도움을 받은 분이에요.”

애나는 콜린이 사는 남섬 티마루(Timaru)를 대여섯 차례 찾아가기도 했다. 그때마다 콜린은 애나에게 귀중한 도움말을 건넸다. 마치 손녀를 대하듯 애정을 품고 있었다. 약사 출신의 발명가 콜린의 삶은 알게 모르게 애나의 삶을 설계하는데 기초가 되어 주었다.

콜린이 애나에게 얼마나 많은 관심을 지녔는지는 그의 유언장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애나의 몫으로 적지 않은 돈이 남겨졌다. 대학교 학비 대출금을 갚는데 쓰라는 뜻이었다. 애나는 언젠가는 콜린과 나눈 수백 통의 이메일을 정리해 책으로 펴내겠다고 했다.

 

의대 6학년, 탄자니아로 의료 봉사 떠나

애나는 2007년 오클랜드대학 헬스 사이언스(Health Science)과에 입학했다. 그다음 해 의대 본과로 올라갔다. 전체 170명 학생 가운데 한 명이었다.(한국 학생은 7명 안쪽) 지금은 의대 학생 숫자가 많이 늘어나(오대 의과대 약 250) 상대적으로 문이 좀 넓어졌지만, 그 당시만 해도 본과까지 올라가기는 무척 힘들었다. 아시안 학생은 더욱더 그랬다.

4학년 때 과대표를 하는 등 예비 의사로서 한 해 두 해 경력을 쌓아가던 애나는 의대 마지막 학년인 6학년을 그 어느 때보다 뜻깊은 추억으로 채웠다.

친구 세 명과 함께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두 달간 의료 봉사 활동을 갔다 왔어요. 에이즈와 결핵 환자가 많았어요. 의료 혜택을 조금만 더 받았더라면 충분히 살 수 있는 목숨이 사라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의사의 사명을 다시 느낀 소중한 기회이기도 했고요.”

애나는 시내 병원과 시골 병원을 오가며 환자를 돌봤다. 시골 병원에 갈 때는 마땅한 차편이 없어 한 시간이 넘게 황톳길을 걸어야만 했다. 그러면서 자기의 한계를 느꼈다. 한 개인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거대한 벽 같은 것을 체감했다. 사회 제도가 변하지 않는 한, 공중 보건과 삶의 조건이 좋아지지 않는 한, 질병의 문제는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달았다.

 

의사는 팀워크 중요환자 말 잘 들어줘야

애나가 의사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주고 싶은 도움말은 무엇일까?

좀 어색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꼭 똑똑한 사람이 의사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봐요. 2학년(본과)에 올라가면 그 다음은 일정 틀에 따라 움직여요. 무엇보다 팀워크가 무척 중요해요. 또 환자들에게 친절히 대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되고요. 몸과 마음이 약한 사람들이니까 그들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주는 자세가 필요해요.

이미 의대생이 되었다면, 중간에 포기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번아웃(burnout, 정신적 신체적 피로 때문에 무기력해지는 증상)상태에 빠질 수 있는데, 그럴 때는 1년 정도 휴학을 하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졸업 후 애나는 기즈번(Gisborne) 공립병원에 들어가 2년을 근무했다. 그때 느낀 점.

어린이 환자들을 많이 진료했어요. 그때마다 느낀 점은 가정환경이 조금만 더 좋았더라면하는 거였어요. 부모가 담배를 피우거나 마약을 해서 생긴 병이거든요. 직접적인 연관보다 집안 분위기 탓이죠. 무척 마음이 아팠어요. 주위 환경이 바뀌지 않는 한 고칠 수 없는 병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애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료 의사들과 함께 계몽운동에 나섰다. 부모의 도움이 없이는 아이들의 건강한 삶을 지켜나갈 수 없다며 부모들을 설득했다. 이 캠페인은 기즈번 지역 신문에 소개될 정도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기즈번 병원 거쳐 황가레이 공립병원에서 일해

그는 기즈번을 거쳐 황가레이(Whangarei) 공립병원으로 옮겼다. 거기서 1년을 보냈다.

병원 응급실(Emergency Department)에서 6개월, 다른 과에서 6개월을 진료했어요. 응급실 전문의사로 일할 마음도 있었지만, 더러 밤새워 환자를 돌봐야 하는 등 일이 너무 힘들어 노선을 바꿨어요. GP(General Practitioner, 가정의사)가 제 적성에 맞을 것 같았어요.”

조금은 흥미로운 이야기.

애나는 의대 5학년 때부터 마라톤을 즐겼다. 그동안 한 번의 완주(42.195km)와 대여섯 번의 반주(Half Course)를 했다. 지금도 틈만 나면 뛰기를 즐겨 하며, 헬스장(Gym)에서 하루 한 시간 넘게 운동을 한다.

운동과 음식은 건강을 지키는 두 가지 축이에요. 누구보다 먼저 의사인 제가 이것을 잘 지켜야 한다고 믿어요. 많은 질병이 이 두 가지를 소홀히 하는 데서 오거든요. 특히 가공식품은 절대 먹어서는 안 돼요. 건강을 망치는 주범이거든요. 운동도 한 주 두세 차례는 규칙적으로 해야 하고요.”

2015 11, 애나는 웰링턴으로 내려가 GP로 뛰어들었다. 현재는 기독교 재단이 운영하는 캐피털 케어 헬스 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다. 일주일에 나흘을 지역 주민의 건강을 챙기는 일에 몰두 중이다.

가정의사 일이 무척 매력이 있어요. 한 가족 나아가 부모와 자식으로 이어지는 환자들을 진료할 수도 있고요. 저를 믿고 모든 것을 말해 주는 그들이 고마워요. 무엇보다 저를 찾아주는 모든 분에게 사랑받는 의사가 되고 싶어요.”

 

의사로서 사회 기여 방법 늘 고민해

애나의 꿈.

앞서 강조한 것처럼 애나는 어떻게 하면 의사로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을까를 고민 중이다. 뉴질랜드를 너무나 사랑하기에, 국가와 사회 그리고 이웃으로부터 받은 것이 너무나 많다고 생각하기에, 자기가 가진 의학 지식을 활용해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어 한다. 그 가운데 애나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바로 가난한 지역의 부모와 어린이들의 건강한 삶이다.

너무 거창한 얘기인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의사 한 개인이 의료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고 봐요. 앞으로 그 문제를 둘러싼 불편한 환경을 개선하는 데 많은 신경을 쓰려고요. 어쩌면 평생 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니까 차근차근 진행해 나갈 거예요.”

스물 아홉 젊은 의사, 강애나.

그는 의대 졸업식 때 뉴질랜드 GP협회(The Royal College of GP)가 주는 상을 받았다. 뉴질랜드 의학계는 마치 몇 년 뒤 그가 GP가 될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미리 거룩한 부담을 안겨 주었다. 왕관을 쓰려는 자에게 그 무게를 견딜 힘을 준 셈이다.

 

10년 전 많고 많은 젊은이 가운데 애나를 앞날이 기대되는 젊은이로 고른 내 안목이 틀리지 않았듯이, 앞으로 그의 GP 인생이 지역 주민은 물론 뉴질랜드 의학계에 귀하게 쓰임 받기를 바란다.

뉴질랜드가 자랑하는 발명가 콜린 머덕은 일찌감치 애나의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믿었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콜린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애나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그 누구든 인정할 수 있는 인술(仁術)을 펼치는 것이다. 의학계(GP 부문)에서 유명 인물’(Famous Kiwi)이 되어, 우리 한인 모두 자랑스러워 하는 날이 오기를 빌 뿐이다.

_프리랜서 박성기

"참 좋은 세상은 아름다운 꿈을 꾸는 사람이 만듭니다." (64 21) 272 4228(Mobile 손 전화)

Comments

광고 Space available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