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사회, 다음 세대를 잇는다23 ; St. Dominic’s College 안창준 과학 교사

시사인터뷰


 

한인 사회, 다음 세대를 잇는다23 ; St. Dominic’s College 안창준 과학 교사

일요시사 0 2,067


과학 공부의 핵심은 호기심, 나는 자극제가 되겠다


한국(한글)학교에서 6년 간 교사로도 활동…‘평생 배운다는 자세로 살고 싶어


 

많고 많은 직업 가운데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직업은 무엇일까?

나는 그 무엇보다 교사라고 생각한다. 지금 세대와 다음 세대를 연결해 주는 가교이기 때문이다. 뉴질랜드를 포함해 잘 사는 나라들의 공교육 기간은 10년이 넘는다. 달리 말하면 이 세상에서 꼭 필요한 한 사람을 만들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뜻이다.

나 역시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또 교회와 여러 단체에서 수많은 선생을 만났다. 기억조차 하기 싫은 선생이 있는가 하면, 평생 내 인생의 멘토 같은 선생님도 계셨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백범 김구의 자서전 《백범일지》를 소개해 내 인생의 나침반을 선물로 주신 국어 선생님이 뒤의 예다.

 

93 2월 이민 와 한 달 동안 NZ 여행만 해

안창준 교사.

그는 겉모습만으로도 교사라는 게 느껴질 정도로 단정하게보였다. 인터뷰 내내 정갈한 말 속에서 어쩌면 그에게는 교사가 천직일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10년 차 교사 창준의 얘기를 들어보자.

창준은 1993 2월 부모와 함께 오클랜드에 도착했다. 뉴질랜드 이민 붐이 한창 불 때였다.

아버지가 1주일 전에야 제게 말해 주었어요. 뉴질랜드로 이민을 간다고요. 깜작 놀랐죠. 그때 저는 예술학교인 선화중학교에 가겠다는 꿈을 꾸고 있었거든요. 오랫동안 해온 바이올린 연주 실력을 잘 살려 전공자로 커 보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창준 부모는 오클랜드 도착 뒤 두 아들(창준에게는 두 살 어린 동생이 있다)과 한 달 동안 뉴질랜드 북섬 여행을 즐겼다. 초등학교를 갓 마친 열두 살 어린이 창준은 새 세상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봤다. 부모가 창준에게 준 선물이었다.

창준은 와이라우 인터미디어트(Wairau Intermediate) 2학년(Year 8)을 끝내고 웨스트 레이크 보이스 하이 스쿨(Westlake Boys High School)로 진학했다. 여느 학생과 다를 바 없이 평범한 학교생활을 하던 그는 Year 11 때 훗날 인생을 결정짓는 한 선생님과 만나게 된다.

“40 안팎의 남자 선생님이셨어요. 평소 제가 과학 과목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 선생님을 통해 흥미를 느끼게 됐어요. 대학 전공을 과학으로 하고, 또 과학 선생이 된 것도 그분 덕분일 거예요. 교사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절감했고, 저 역시 학생들에게 그런 교사로 기억되고 싶어요.”

 

현재 세인트 도미닉스 칼리지에서 5년째 일해

창준은 현재 핸더슨에 있는 세인트 도미닉스 칼리지에서 과학 교사로 근무한다. 그 학교 앞에 와이타케레 칼리지(Waitakere College)가 있는데, 교장이 바로 창준의 칼리지 과학 선생님이었던 마크 샤나한이다. 둘은 우연한 기회에 그 사실을 알게 돼 잠깐 사제(師弟)의 정을 나누기도 했다.

창준의 대학 전공은 과학, 그중에서도 생물이다. 오클랜드대학을 거친 뒤 교대(Auckland College of Education)를 마치고 교사의 길로 들어섰다. 첫 직장은 호익에 있는 매클린스 칼리지(Macleans College). 그는 그곳에서 4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다음 엡솜 걸스 그래마 스쿨(Epsom Girls Grammar School)에서 1년 반을 근무하다 세인트 도미닉스 칼리지로 옮겨 5년째 과학과 생물, 음악을 가르치고 있다.

창준처럼 교사가 되고 싶은 후배들에게 그가 주고 싶은 도움말은 무엇일까?

어느 누구든 한 번도 선생님이 없었던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 가운데 본보기로 삼을 선생님이 한 분이라도 계셨을 거고요. 그 선생님을 생각하며 자기가 원하는 학교(초등학교, 중학교, 칼리지 등)의 수업을 진지하게 참관해 보라고 하고 싶어요.”

교사 경력 10년 차. 길지도 짧지도 않은 그 길에서 얻은 창준의 보람은 어떤 게 있었을까?

몇 해 전 담임 선생(Form Teacher)을 맡을 때였어요. 마약도 하던 문제 학생이 있었어요.(창준은 문제 학생은 없다고 했다. 적절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이 단어를 썼다며 양해를 구했다.) 제 도움으로 학교를 무사히 마칠 수 있어 고맙다고 했을 때 교사의 보람을 느꼈어요. 제가 해준 것이라고는 격려밖에 없었는데 그걸 뜻깊게 받아들인 것 같아요.”

그 밖에 의사가 된 제자나 치과 공부를 하고 있다는 제자를 길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학교 졸업 앨범(Year Book)에다 가장 기억에 남는 멋진 선생님으로 창준을 꼽았을 때 교사로 자부심을 가진다고 했다.

 

NZ 교육 목표는 평생 공부 준비하는 것

뉴질랜드 교육의 목표를 현지 교사인 창준의 입을 통해 들어보자.

“‘프리페어링 포 퓨처 러너스’(Preparing for Future Learners)라는 표어가 있어요. 중등학교(칼리지) 교육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평생 공부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뜻이죠. 그것도 즐겨 가며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목표를 둔다는 거예요. 공부의 끝은 없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창준이 찾아낸 뉴질랜드 공교육의 장단점은 무엇일까?

장점은 학생 하나하나에 많은 신경을 쓴다는 거예요. 한국은 반 단위로 수업이 이루어진다면, 뉴질랜드는 한 학생 혹은 한 그룹의 학생들 단위로 수업을 진행한다고 보면 돼요. 그것이 꼭 학생 숫자를 뜻하는 게 아니라 그런 정신으로 한다는 말이에요.

단점은 한창 예민한 세대인 10대들에게 너무 많은 자유를 준다는 거예요. 저는 약간의 규율(discipline)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자기가 알아서 할 수 있는 10% 정도의 학생을 뺀 나머지 학생은 적당한 규율을 통해 통제해야 한다고 믿어요.”

나는 한국 부모들이나 학생들이 조금은 솔깃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하면…”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창준은 웃음을 띠며 “… 공부를 잘할 수 있는지 얘기해 드릴까요?”하며 선수를 쳤다. 자주 들은 질문이고, 잘할 수 있는 답이라는 뜻 같았다.

 

시험 문제 세 번 반복해 풀면 출제자 뜻 알게 돼

“NCEA를 기준으로 말씀 드릴게요. 무엇보다 기출 문제를 많이 풀어보는 게 중요해요. 같은 문제를 적어도 세 번은 풀어봐야 해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출제자의 의도를 알 수 있고, 어떤 형식으로 답을 써야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돼요. 제가 시험을 채점하면서 파악한 거니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창준은 그러면서 모든 학생, 특히 과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저는 호기심(curiosity)을 무척 중요시해요. 제가 과학 선생이기 때문에 그럴 거예요. 아인슈타인이 이룬 업적은 다 호기심에서 비롯됐다고 믿어요. 호기심을 유발하지 못 하는 과학 공부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저는 누구보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선생이 되고 싶어요. 학생들도 같은 마음으로 공부했으면 좋겠고요.”

교사로서 학생 편이 되어 한국 부모들에게 어떤 도움말을 해주고 싶은지 물었다.

자녀들을 믿어 주시기를 부탁드려요. 한 때 조금은 잘 못 나가더라도 부모님만큼은 믿고 지켜봐 주셨으면 해요. 혈기왕성한 10대라면 누구나 한두 번쯤은 사고를 칠 수도 있고, 조금은 성공의 길을 늦게 갈 수도 있다고 봐요. 오히려 그런 학생들이 대학 가서 더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사회생활을 잘하기도 하니까요. 부끄럽지만 제 경험담이기도 하고, 또 수많은 학생을 지켜본 목격자이기도 해서요.”

 

올해 학년 주임(Dean) 맡아과목 수석 교사도 계획

창준의 꿈.

올해 학년 주임(Dean)을 맡았어요. 전에는 높은 지위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제가 세상을 좀 더 효율적으로 바꾸려면 위치(position)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직접 관여할 자리가 필요한 셈이죠.

인터넷의 발달로 생긴 역효과 가운데 하나가 검증되지 않은 과학 관련 자료가 무분별하게 떠돈다는 거예요. 예를 들면 바나나와 키위를 접붙이면 속은 키위, 겉은 바나나가 된다는 얼토당토않은 내용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어요. 그걸 또 학생들은 믿고 있고요. 과학 선생으로서 가슴 아픈 일이에요.

앞으로 과학과 생물 과목 수석 교사(Head Teacher)에 도전해 보려고요. 제가 가진 과학 지식과 지도법을 최대한 활용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요.”

 

안창준 교사.

그는 한인 2세 교육에도 많은 공을 쏟아 왔다. 10대 말부터 한글학교(오클랜드한인교회 부설)와 오클랜드한국학교에서 각각 3년씩 교사로 봉사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교사가 한 학생을, 이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체감했다.

40대 초에 이민 와 이제는 60대가 넘은 창준의 부모님은 지금도 영어 공부와 사회봉사에 힘을 쏟고 있다. 현지 뉴스를 통해 키위 세상을 알고, 키위와 한인들 사이를 잇는 가교 구실을 아무 조건 없이 한다.

창준은 무엇보다 이 사실을 자랑스럽게 말했다. 뉴질랜드 낯선 땅에서도 평생 공부를 추구하는 삶을 사는 부모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창준 역시 그 정신을 이어 현지 학생은 물론 한인 2세에게도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교사로 자리매김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멋진 교사, 안창준의 얘기를 지면상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쉽다. 말과 행동은 물론 꿈마저 바를 것 같은 그를 보며 뉴질랜드 한인 사회의 앞날은 절대 어둡지 않다는 확신이 들었다. 늦게나마 나 역시 좋은 선생님을 알게 돼 행복했다.

_프리랜서 박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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