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사회, 다음 세대를 잇는다(25) View Motors 진세영 자동차 정비사

시사인터뷰


 

한인 사회, 다음 세대를 잇는다(25) View Motors 진세영 자동차 정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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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유익 위해 손님 기대 저버리는 일은 하지 않겠다

워홀러 대상 자동차 무료 점검 계획한인 사회에도 힘 보태고 싶어


 

 “한평생 사는데 든든한 이 한두 개쯤 있는 게 좋지.” 

 오래전 한국에서 살 때 자주 들은 말 가운데 하나다. 의 대표적인 게 법조인(판검사 혹은 변호사)과 의사였다. 같은 한국 사람이라면 무슨 말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뉴질랜드에서 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나는 법조인과 의사 대신 실생활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믿고 맡길 수 있는 자동차 정비사도 거기에 들어간다. 차의 생명은 정비사 손에 달려 있다. 확대해 말한다면 사람 목숨까지 말이다.

 

글렌필드 뷰 로드(View Road)에 자리해

 자동차 정비사 진세영을 만났다. 솔직히 말해 내 자동차 주치의. 만난 지는 1년이 채 안 됐다. 하지만 연세가 좀 많이 드신내 차가 속을 썩이는 바람에 그를 자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말 그에게 이 연재물에 주인공이 되어 달라고 부탁했다. 한 달이 지나서야 인터뷰가 성사됐다. 바쁜 그의 일과 때문이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자동차 정비소가 가장 바쁜 시기였다.

 오클랜드 글렌필드(Glenfield) 뷰 로드(View Road) 초입에 자리 잡고 있는 뷰 모터스(View Motors) 대표 진세영. 그는 올해로 서른일곱 된 자동차 정비사다. 기름때 묻은 작업복에서 노동의 수고가 느껴진다. 절대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숱한 땀의 결과다.

 세영은 1979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때 가족과 함께 서울로 올라가 10대와 대학 시절을 보냈다. 전공은 무역학과. 딱히 적성에 맞는 것은 아니었지만 특별한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살았다.

 “군대 갔다 와서 제 전공에 회의가 들었어요. 넥타이 매고 일하는 게 저랑 잘 안 어울린다는 생각도 했고요. 그러던 차에 미국에 갈 기회가 생겼어요. 그랜드 캐니언(Grand Canyon, 미국 애리조나 주 콜로라도 강가에 있는 국립공원) 자연봉사활동에 참여했어요. 전 세계 40여 나라에서 온 젊은 친구들과 함께 등산길을 정비하고 계단도 만들면서 꿈을 키웠어요. 자연스럽게 외국에 나가 살겠다는 마음도 들었고요.”


 


무역학과 다니면서 자동차 정비 배워

 세영은 대학 4학년 1학기를 마친 뒤 자동차 정비사 길로 뛰어 들었다. 번듯한 직장을 기대하던 부모님과 친구들은 세영의 돌발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블루칼라(Blue Colour, 육체 노동자) 일을 자원해 시작한 것이다. 정비학교를 여섯 달 다니고 곧바로 정비공장에 취직했다. 하루 열세 시간 일하고 받은 첫 월급은 60만 원. 일종의 열정 페이였다. 다행히 정비소 사장이 마지막 한 학기 남은 대학을 다닐 수 있게 해줘 학사자격증을 땄다.

 정비공장에서 몇 해 일하다가 호주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한국을 떠났다. 정비소에서 잡 오퍼(Job Offer, 고용 제의)까지 얻었지만 5년을 넘게 일해야 한다는 조건(‘노예계약이라고 할 수 있음)에 실망해 농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2년 동안 오렌지, 만다린, 레몬, 체리를 따며 자기 전공을 살릴 방안을 찾았다.

 그 무렵 한국 정비공장에서 함께 일하던 한 동료가 오클랜드로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2011 71년 과정인 유니텍(UNITEC) 오토모티브 엔지니어링(Automotive Engineering, 자동차 정비학과)과에 입학했다. 입학생 스무 명 가운데 마지막까지 버텨낸 숫자는 서너 명에 불과했다. 물론 세영도 생존자에 포함됐다.

 1년 뒤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자동차 정비소에 들어갔다. 두세 군데를 거쳐 지난 2015 9 11일 뷰 모터스 대표가 됐다. 자동차 정비 일에 뛰어든지 약 10년 만에 얻은 월계관이었다. 때마침 세영 무릎 밑에 예쁜 공주님()도 생겼다. 겹경사였다.


 


딸 출산에 사업체 인수 겹경사 맛 봐

 “사실 제 사업을 시작하기에는 여러모로 힘든 상황이었어요. 아는 사람이 전화를 해 목 좋은 곳이 하나 나왔으니 가보라고 했어요. 딸 출산을 앞둔 데다 사업 자금도 여력이 없었는데 주위 사람의 도움으로 제 사업체를 갖게 됐어요. 다 저를 아껴 주시는 분들의 덕이죠.”

 글렌필드를 중심으로 일해온 세영은 지금 홍 반장역할을 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필요할 때마다 나타나는 그 홍 반장같은 사람 말이다. 지역 사회를 중심으로 자동차 수리하면 세영이 떠오를 정도로 차츰차츰 알려지고 있다.

하루에 뷰 모터스로 오가는 차는 대략 20~30. 키위들이 맡긴 차가 70%가 넘고 나머지는 한국 사람을 포함한 아시아 사람의 차다. 차 수리를 대하는 동서양의 차이는 무엇일까?

 “키위들은 전문가(정비사)의 말을 믿고 따라줘요. 수리비도 싸다 비싸다는 말을 일절 안 해요. 아니다 싶으면 안 맡기는 거죠. 반면에 아시아 사람들은 그럴 리가 없는데…’하는 말을 자주 해요. 수리비는 무조건 싸게 해 달라는 경우가 많고요. 저는 차는 생명을 다루는 문제라 타협하지는 않아요. 가장 싸게 해 준다는 말은 할 수 없지만 결코 손님을 속이지 않는다는 말은 자신 있게 할 수 있어요.”

 자동차 정비사 세영이 들려준 자동차 정비 관련 두 가지 팁.

 하나, 운전대 앞에 있는 각종 계기판을 늘 유심히 봐라. 결코 경고 표시를 무시하지 마라. 불이 켜지면 곧바로 정비소를 찾아야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둘, 타이어 공기압을 자주 점검하라. 자동차 사고의 70%는 타이어 문제다. 특히 라운드 어바웃(Round about, 회전 교차로)에서 급하게 운전하다 사고가 나는 경우가 많다.


 


한인 사회에 힘 보태는 정비사 되고 싶어

 세영이 후배들에게 주고 싶은 도움말은 무엇일까?

 “전기차 등 기술이 발달하면서 차 고치는 일이 많이 복잡해졌어요. 앞으로 로봇이 대체할 가능성도 높고요. 하지만 세심한 일은 사람 손이 꼭 필요하다고 믿어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뜻이에요. 젊은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요. 거친 일이기는 하지만 사람 생명과 궤를 같이하는 일인만큼 보람도 커요. 뜻있는 젊은이들이 땀의 보람을 맛보았으면 좋겠어요.”

 세영은 인터뷰에서 수차례 한인 사회 나아가 지역 사회에 힘을 보태는 정비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자기 재능이 돈벌이로만 사용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봉사단체인 로터리 클럽에도 가입했어요. 지역 사회를 위해 뭔가 할 수 있었으면 해서요. 제가 워홀러(워킹 홀리데이) 출신인 만큼 뉴질랜드에 와 있는 그들을 대상으로 무료 차 점검 봉사 같은 것을 구상하고 있어요. 정확한 일정이 잡히면 따로 알려 드릴게요. 비즈니스 차원이 아닌 순수한 봉사 차원에서 하려는 거예요.”

 세영의 꿈이 궁금했다. 그는 숨을 한 번 크게 내쉬었다. 순간, 내가 예상한 답이 안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기대가 크셨겠지만 사실 큰 꿈은 없어요. 제가 기독교인(한우리교회 출석)이니까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고, 또 세상 사람 앞에서도 그렇게 되기만 바라고 있어요. 굳이 꿈이라면 일상의 삶 속에서 늘 남에게 유익한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산다는 거에요.”

 세영은 덩치가 좋다. 180cm에다 몸무게가 세 자리 숫자다. 한 시간이 넘는 인터뷰에서 그는 너털웃음을 서너 차례 터트렸다. 나는 그게 순박하게 아니 솔직하게 느껴졌다. 그가 말한 나 자신의 작은 유익을 위해 결코 손님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손가락 마디마디 삶의 흔적 엿보여

 인터뷰 끝 무렵, 정비소 안을 함께 둘러봤다. 안내대 옆 선반 위에 작은 액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아내와 이제 갓 돌이 지난 딸의 사진이었다. 나는 따님과 아내가 참 예쁘게 생겼네요.”라고 말했다. 등 뒤에서 나를 지켜보던 세영은 전혀 상관없는(?) 답을 했다.

 “딸을 낳은 뒤 한인 사회의 중요성을 느꼈어요. 한인 사회가 원만하지 않으면 제 딸의 삶도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잘 알게 된 거지요. 아내와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어요. 제 사업체인 뷰 모터스도 마찬가지고요.”


 

 

 자동차 정비사 세영의 손은 투박하고 거칠다. 손가락 마디마디에 힘들게 살아온 흔적이 보인다. 조금은 미안한 말이지만 앞으로 그 흔적은 더 진해질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 세상에 노동만큼, 땀만큼 정직한 게 어디 있을까? 이 생각을 하자 갑자기 그가 위대하게 보였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결코 ’(변호사, 의사, 회계사 등)자가 들어간 직업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땀 흘려 일하고, 또 그 정직한 땀이 세상을 훨씬 아름답게 해줄 거라고 믿는다.

 다시 한번 외친다.

 "노동은 정직하다. 땀은 더 그렇다.”

_프리랜서 박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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