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사회, 다음 세대를 잇는다(29) YBA(연세농구아카데미) 이재훈 대표

시사인터뷰


 

한인 사회, 다음 세대를 잇는다(29) YBA(연세농구아카데미) 이재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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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사한 승리보다 정당한 패배가 낫다


2004년 시작해 연인원 3천 명 넘게 지도어른 한인 농구대회도 열어

 

 

 뉴질랜드는 스포츠 천국이다.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클럽 스포츠를 중심으로 한 생활 스포츠가 활기를 띠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농구는 아시아 사람들이 즐겨 하는 운동으로 손꼽힌다. 럭비처럼 과격하지도, 크리켓처럼 생소하지도 않은 운동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중반 한국에서 오빠부대라는 말이 생겨났다. 농구 잘 하고, 멋지게 생긴 선수들이 코트 위를 휘저을 때마다 함성이 잇따랐다. 연세대와 고려대, 중앙대 선수들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얼핏 기억나는 선수들은 문경은, 이상민(연대), 현주엽, 전희철(고대), 김영만, 양경민(중대) . 가히 젊은 오빠들의 전성시대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연세대 농구 선수 출신, 서장훈이 2년 선배

 이번 인터뷰 주인공은 그 화려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연세대 농구 선수 출신 이재훈(95학번) ‘연세농구아카데미’(YBA) 대표다.

 그를 알게 된 것은 10년 전이다. 조금은 남다른 운동 감각이 있었던 둘째 아들 놈을 그에게 맡겼다. 내심 한국 농구의 전설적인 가드라고 하는 박수교나 이충희 같은 농구 선수로 키우고 싶었던 아빠의 욕심이 들어 있었다. 아빠의 유전자 탓으로 키가 많이 자라지 못해 그 꿈은 포기했지만, 그때 만난 코치 이재훈의 열정은 늘 기억하고 있었다.

 재훈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농구를 시작했다. 열두 살 소년의 키가 무려 177cm. 농구 명문으로 잘 알려진 인천 송도중학교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농구 선수의 꿈을 키워 나갔다. 송도고등학교와 연세대 농구부를 거쳐 실업팀 선수로도 뛰었다. 요즘 연예계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서장훈이 대학 2년 선배다. 함께 코트를 누비며 숱한 승리의 영광을 맛보았다.

 “현역 선수로 뛰다가 고등학교 농구팀 코치로 활동했어요. 지도자로서 제 농구 철학을 한국에서는 이룰 수 없을 것 같아 이민을 결심했어요. 2003년 일반 이민으로 뉴질랜드에 들어왔죠. 그다음 해, 연세농구아카데미 문을 열었어요.”

 재훈이 말하는 농구 철학.

 “한국 선수를 포함해 아시아 선수의 장점은 아기자기한농구라고 믿어요. 키나 몸집으로는 서양(키위) 선수들을 당해낼 수 없어요. 빠르고 현란한 몸동작을 통해 경기의 흐름을 주도하는 선수로 키워내고 싶어요. 제가 아카데미를 하면서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기도 하죠.”


 


2004 7월 노스쇼어와 호익에 문 열어

 2004, YBA는 교민들에게 정식으로 선을 보였다. 그때만 해도 한국의 국기(國技)라는 태권도를 빼고는 별다른 스포츠 아카데미가 없을 때였다. 오클랜드 북쪽 한국학교에서 첫 수업을 했다. 시작부터 학생들은 물론 부모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같은 해 7월 노스쇼어(North Shore), 호익(Howick)에 농구교실을 열었다. 곧이어 시내(엡솜, Epsom)와 서쪽(헨더슨, Henderson)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쳤다. ‘농구하면 YBA가 떠오를 정도였다. 두 달 뒤에는(5월 초) 실버데일(Silverdale)에서도 YBA 유니폼을 입은 학생들을 볼 수 있다.

 재훈이 생각하는 농구의 장점은 무엇일까?

 “농구는 전신 운동입니다. 던지고, 달리고, 솟아오르고. 이 세 가지 몸동작을 통해 완벽한 운동을 할 수 있는 거죠. 게다가 단체 운동이라 자연스럽게 협동심과 인내심도 얻을 수 있어요. 십 대 청소년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운동이라 믿습니다.”

 잘 알다시피 뉴질랜드 초·중등학교에서 운동은 어느 과목보다 중요한 과목이다. 특히 남학생의 경우, 운동을 못 하면 은근히 왕따를 당할 정도로 비중 있게 다루어진다. 한 사람의 인격체를 이루는 세 가지 요소, ‘지덕체’(智德體)를 학교생활에서 잘 보여 주고 있다.

 뉴질랜드는 물론 세계적인 명문 학교는 학생회 임원이나 장학생을 뽑을 때 늘 운동 실력을 눈여겨 본다. 아무리 공부를 잘 해도 ’()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학생은 대상에서 빠지곤 한다.

 재훈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13년째 YBA를 운영하면서 자연스럽게 체득하기도 했다.

 “운동 잘하는 학생이 공부도 잘한다고 생각해요. YBA를 거쳐 간 학생들 가운데서도 그런 학생이 숱하게 많아요. 단체 운동은 협동심과 지도력을 불러일으켜 주는 동시에 지구력도 갖게 해 주거든요. 뉴질랜드 초·중등학교가 왜 운동에 그렇게 많은 비중을 두고 있는지 생각해 보시면 답이 나올 거예요.”

 

농구가 공부의 힘’…미국 장학생으로도 가

 YBA 출신 중 미국 유수 대학을 마친 젊은이가 여럿이다. 그것도 전액 장학금을 받아서 갔고, 좋은 직장이 기다리고 있다. 또한 뉴질랜드 주니어 톨 블랙(Junior Tall Black, 뉴질랜드 학생 농구 대표팀) 선수로 뽑힌 친구도 있고, 칼리지 농구팀의 아시안 첫 주장으로 뛴 선수도 있었다. 그 밖에도 중등학교 농구 대표팀(프리미어팀, Premier) 선수로 뛰었거나 뛰고 있는 선수는 부지기수다. 다들 YBA의 소중한 보물들이다.

 재훈의 농구 지도법.

 “엘리트 선수 육성을 지향하고 있어요. 그래서 엄하게 훈련을 시키죠. 그것 때문에 더러 문제(?)가 생기기도 했고요. 아마 제가 그렇게 훈련을 받아서 그랬을 거예요. 하지만 악의는 전혀 없어요. 고비만 넘으면, 인생의 어려운 고비도 넘을 수 있다는 게 운동 지도자로서 갖고 있는 믿음이에요. 요즘은 훈련 방법이 많이 순해졌다는 얘기를 들어요. 초창기에 빡세게훈련받은 학생들은 어리광 섞인 불평도 하지요.”

 YBA의 수업은 주 2회 이루어진다. 한 번에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여섯 살 꼬마부터 수염이 거뭇한 십 대 말 학생까지 예외가 없다. 물론 남학생 여학생도 따지지 않는다.

 “수업을 마친 뒤 마지막 질주순서가 있어요. 대부분 이 순서에서 제일 힘들어하죠. 더는 할 수 없을 것 같을 때, 한 번만 더 뛰도록(질주) 하는 거예요. 그 벽을 넘어서면 스포츠 심장을 가질 수 있어요. 운동선수로서는 물론 훗날 생활인으로서도 귀중한 자산이 되리라 확신해요.”


 


착하고 순진한 학생들 농구 하면 좋아

 재훈은 농구아카데미 대표다. ‘아카데미학원이라는 말로 옮길 수 있지만, ‘학문이나 예술에 관해서 권위 있는 단체로도 쓰인다. 여기서 학문이나 예술이라는 단어를 운동’(농구)으로 바꿔 쓴다면 재훈이 추구하는 철학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농구(운동)는 누가 하면 좋을까?

 “착하고 순진한 학생들이 많이 하길 원해요. 단체 운동은 협동심도 심어줄 수 있어 더 좋아요. 꼭 주전 선수로 뛰지 않더라도 식스맨’(Sixth Man, 농구에서 여섯 번째 선수)으로 활동한다는 마음가짐으로 했으면 해요. 학창 시절 소중한 추억이 될 것도 분명하고요.”

 재훈은 공 다루는 기술만 가르치지 않는다. 어쩌면, ‘인생을 가르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분기별로 돌아가며 주장을 시켜요. 그러면서 그냥 한 선수로 뛸 때와 주장으로 뛸 때의 차이점을 알게 해주죠. 실력이 더 높은 선수(Level 3, 4 정도)가 한두 레벨 아래 팀을 가르치게 하기도 하고요. 그 속에서 인생을 배우기도 하죠. 치사한 승리보다 정당한 패배가 낫다는 것도 강조해요. 그게 바로 스포츠 정신이고, 삶의 옳은 정신이기도 하니까요.”

 YBA에는 몇 해 사이, 아시안 학생들이 많이 늘었다. 중국, 대만, 일본, 필리핀 학생이 70명이 넘는다.(모든 수업은 영어로 진행된다) 한국 학생을 넘어서 아시안 학생들 농구 지도의 새 마당을 열어 가고 있는 셈이다. 재훈은 개인적으로 멀티 내셔널 바스켓볼 커뮤니티(Multi National Basketball Community)라는 비영리단체에서 대표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농구를 좋아하는 한인 어른과 다른 아시아 나라 출신 농구 애호인에게 힘을 실어주려고 만든 단체다. 현재 한 해 두세 차례 농구대회를 여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 나가고 있다.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농구 선수 배출하고 싶어

 엘리트 농구 선수 출신이자 10년 넘게 농구 지도자로서 일해 온 재훈의 꿈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좋은 선수를 발굴해 뉴질랜드 국가대표 농구 선수 같은 뛰어난 선수를 배출하는 게 목표죠. 그다음은 가까운 나라인 호주 클럽 농구팀과 친선 경기를 갖는 거고요. 마지막으로는 YBA 학생들이 운동을 통해 건강한 사회인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는 거예요.”

 재훈은 지금까지 연인원 3천 명이 넘는 학생을 키워냈다. 한 해 평균 150명에서 200명에 이르는 놀라운 숫자다. 그 가운데 더러는 농구가 인생을 바꾼학생들도 있고, ‘공부와 삶의 비타민역할을 맛본 학생들도 있을 것이다. 재훈이 그동안 뉴질랜드에 살면서 제일 기쁜 때는 제자들이 찾아와 주거나 안부 전화나 이메일을 보낼 때라고 한다. 강사가 아닌 스승으로 여겨준다는 기쁨 때문이다.


 

 

 ‘본 투 무브.(Born to Move.)

 사람은 움직이기 위해 태어났다는 뜻이다.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다. ‘동물’(動物)은 움직여야만 산다.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 게 건강(운동)이다. 두말할 이유도 없다. YBA를 책임지고 이끄는 재훈은 그런 점에서 우리 2세들에게 가장 훌륭한 스승임이 분명하다.

 193cm.

 이재훈 감독의 키다. 농구 지도자로서뿐만 아니라 그가 한인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 또한 그만큼 높고 크기를 바란다.

_프리랜서 박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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