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사회, 다음 세대를 잇는다(30)Mt. Wellington Family Health Centre 허지윤 간호사

시사인터뷰


 

한인 사회, 다음 세대를 잇는다(30)Mt. Wellington Family Health Centre 허지윤 간호사

일요시사 0 1,971


간호사는 생명의 손길’…환자 마음까지 어루만지겠다


한인 1.5세 간호사 모임 만들어 한인 사회에 힘 실어주고 싶어


 

 직업을 고를 때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무엇보다 적성이 맨 처음 순위에 오르지 않을까 생각한다하기 싫은 일을 평생 하며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그다음은 보람이나 의미에 둘 수 있을 것이다사람이 태어나 밥만 먹고 살다 죽는다면 정말로 동물의 삶과 진배없을 테니까 말이다.

 보람 있는 직업 가운데 앞 순위는 의사나 간호사 같은 의료계 종사자를 꼽을 수 있다한 생명의 생사가 그들 손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평생 가정 주치의(GP, General Practitioner)를 두고 살아야 하는 뉴질랜드 현실에서는 더욱더 어울린다고 믿는다.

 

칼리지 때 코리언 나이트 행사 주최

  3년 차 간호사허지윤을 만났다첫인상부터 시원하게 다가왔다여성 평균 키를 훌쩍 넘는 큰 키(174cm)에다 사슴 눈처럼 맑고 큰 눈그리고 어디에 내놔도 절대 지지 않을 것 같은 박력(?) 있는 목소리오전 근무를 마치고 나온 그와 그린레인(Green Lane) 맥도널드에서 한 시간 넘게 인터뷰를 했다.

 지윤은 한국에서 초등학교 4학년을 마치고 2004 1월 오클랜드로 왔다아빠는 한국에 머물고 엄마와 여동생이 함께 했다쉬운 말로 기러기 가족이었다스리 킹스 스쿨(Three Kings School)과 오클랜드 노멀 인터미디어트(Auckland Normal Intermediate)를 거쳐 엡솜 걸스 그래마 스쿨(Epsom Girls Grammar School)에 들어갔다.

 “칼리지 마지막인 13학년(Year 13) 때 코리언 나이트(Korean Nights) 행사를 처음으로 시작했어요바로 옆에 있는 오클랜드 그래마 스쿨(Auckland Grammar School, 남자 학교)한인 학생들과 함께했어요. 9학년(Year 9) 때부터 학교에서 부채춤을 췄어요한국의 자랑스러운 문화를 키위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었어요.”

 지윤은 자신을 가리켜 지도력이 ’ 있는 여자라고 말했다칼리지 마지막 학년 때 학교에서 베스트 리더십’(Best Leadership)상을 받은 게 그걸 방증한다지윤이가 주축이 되어 시작한 코리언 나이트 행사는 지금까지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이어져 온다오클랜드의 공립 명문인 두 학교의 아시안 문화 행사를 대표한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2012년 유학생 신분으로 오대 간호학과 입학

 2012년 지윤은 오클랜드대학 간호학과(Bachelor of Nursing)에 입학했다영주권자나 시민권자였다면 의대 예비과정(Bio Medical 또는 Health Science)에 당당히 들어가고도 남을 실력이었다.

 “아쉽게도 그때까지 유학생 신분이었어요. NCEA 점수도 좋아 제가 원하는 과에 다 들어갈 수 있었어요결국 체류 자격 때문에 간호학과로 돌렸어요그 당시에는 많이 서운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훌륭한 결정이었다고 믿어요.”

 지윤은 간호학과 지망생(유학생) ‘탑 파이브’(Top 5)에 들었다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입학을 할 수 없다신입생 120명 가운데 유학생은 고작 다섯 명그 중 한 명이 지윤이었다그가 보여준 실력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3년 뒤 졸업할 때 삼 분의 일 정도(40)가 이런저런 이유로 떨어져 나갔지만 지윤은 당당히 간호사 자격증을 얻었다한 과목도 낙오하지 않았다.

 “정말 이를 악물고 버텼어요오클랜드대학 간호학과는 과제가 많기로 유명하거든요현장 실습도 많았고요정신과 육체 모두 힘들었어요지금 와 돌아보면 치열하게 공부한 것 같아요그 덕에 오늘의 제가 있었을 거고요.”

 

간호사는 봉사하는 마음 자세가 중요해

 지윤이가 간호사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주고 싶은 도움말은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봉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해요그 마음이 없으면 간호사가 하는 일은 그저 고되게만 느껴질 뿐이에요또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에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얼음 심장을 가진 사람이 남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 않을 테니까요.”

 지윤은 간호학과를 졸업하자마자 GP 간호사로 취직했다지금 일하고 있는 마운트 웰링턴 패밀리 헬스 센터(Mt. Wellington Family Health Centre). 25년이나 지역 주민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곳이다.

 “대부분 GP 간호사는 경력이 많은 사람이 하죠대학에서도 웬만하면 종합병원 간호사로 갈 것을 추천하기도 하고요그런데 GP간호사가 생각보다 훨씬 매력이 있어요한 사람 나아가 한 가족의 건강을 책임지는 자리라고 믿어요.”

 최근 지윤의 도움으로 후배 GP간호사가 두 명 더 생겼다커뮤니티(지역 사회간호사다.그 말을 쉽게 하면 한인 의료 사회에 두 일꾼이 또 나왔다는 뜻이다몇몇 한인 1.5 GP에 이어 간호사들도 본격적으로 선을 보이는 셈이다.

GP간호사로 근무하면서 맛본 기쁨은 무엇일까?

 “어느 날 단골환자가 제게 전화를 했어요. 70이 넘으신 키위 할머니신데 몸이 좀 이상하다고 하더라고요제가 빨리 병원으로 오시라고 했어요담당 의사의 진단에 앞서 제가 먼저 봤더니 심장에 문제가 있더라고요의사가 곧바로 종합병원으로 보냈지요그리고 치료를 잘 받았고요제 도움이 한 생명을 살릴 수 있어 큰 보람을 느꼈어요.”

 

 


하루 최대 60명까지 환자 돌보기도 해

 지윤이 하루에 돌보는 환자는 최대 60명에 이른다가장 바쁠 때가 그렇고 그렇지 않을 때는 30명 정도다예약받고서류 검토하고주사 놓고간단한 진료 하고온종일 눈코 뜰 새가 없을 정도로 분주한 하루를 보낸다.

GP간호사가 알려주는 ‘GP사용설명서’.

 “먼저 GP는 무조건 집 가까운 곳에서 찾는다너무 멀리 있으면 아플 때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주위 사람에게 GP의 평판을 듣는다그 병원에 아시안 의사가 있는지도 확인한다영어가 원활하지 않을 경우 하루 이틀 전 통역사를 요청한다무료로 부를 수 있다.”

 남의 생명을 다루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간호사가 의사처럼 최종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일 자체가 스트레스에 둘러싸여 있다고 할 정도로 버겁기도 하다지윤은 그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까?

 “혼자 조용한 시간을 자주 가져요책도 많이 읽고요제가 좋아하는 빵 요리도 즐겨 하지요그러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요다른 분들에게도 여유 있는’ 삶을 권하고 싶어요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거든요삶에 있어서 균형이 중요해요잘 먹고적당히 운동하고때에 맞춰 쉬고 그래야 해요.”

 지윤의 꿈은 무엇일까?

 “대학원에서 간호학을 좀 더 공부할 생각이 있어요호주나 캐나다에 가서 경력도 쌓고 싶어요그리고 마흔이 넘어 수간호사(Charge Nurse)로 일했으면 좋겠다는 꿈도 품고 있지요평생 간호사로 살려고 해요.”

 이 대목에서 지윤은 간호사의 장점은 손이 떨리지 않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직업이라며 크게 웃었다그의 호쾌한 웃음에 나도 덩달아 웃고 말았다.


 

2년 넘게 일하며 한 번도 불만 안 들어

 지윤은 주사를 잘 놓는 간호사다. ‘주사를 잘 못 놓는 간호사도 있냐고 물으면 딱히 할 말은 없다당해 보지 않고서는 모르니까 말이다그는 또 2년 넘게 간호사로 일하면서 한 번도 불만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환자 마음까지 생각하며 일을 하는 그의 진정성을 환자들이 이해해 주기 때문일 거다.

 자신의 강점을 당당하게 지도력이라고 말하는 지윤은 한인 1.5세 간호사를 주축으로 한 모임을 만들고 싶어 한다한인 사회에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겠다는 의지다책에서만 읽은 나이팅게일 같은 간호사를 오클랜드에서도 직접 만날 날이 곧 올 거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그가 한 말.

 “한인 사회에 좀 더 많은 GP간호사가 생겼으면 좋겠어요한 사람과 그 가족의 일생을 돌봐줄 수 있는 멋진 직업이라고 믿어요예비 간호사나 간호사에 관심 있는 학생들은 제가 알고 있는 GP 간호사의 장·단점을 다 알려 드릴 테니까 언제든 문의해 주세요.”

 

 간호사허지윤.

 만남은 참으로 유쾌했다한 시간 넘는 인터뷰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내 몸속에 수억 개의 엔도르핀이 새로 생긴 것 같았다간호사가 준 선물일 것이다.

 자리에 일어서기 전 조금은 아쉬워 질문 하나를 더 꺼냈다.

 “간호사는 뭐라고 생각해요?”

 지윤은 또다시 호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생명의 손길 아닐까요의사를 만나기 전 먼저 생명을 다루는 일을 하니까요환자 마음까지 어루만져 주고 싶어요.”

 ‘생명의 손길’.

 멋진 말이었다부디 그의 따듯한 손길이 수많은 생명에게 새 힘을 불어넣어 주길 바라며 나는 맥도널드 문을 나섰다.

글_프리랜서 박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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