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 파고든 마약 풀스토리
과일 아저씨 알고 보니 뽕쟁이
[일요시사 취재1팀] 신상미 기자 = 부산의 재래시장 3곳에서 필로폰을 상습 투약하고 동료들에게 판 혐의로 노점상 4명이 체포, 구속됐다. 과거에 비해 마약을 남용하는 직업군이 다양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거엔 유흥업소 종사자, 조직폭력배, 국내 거주 외국인 등으로 한정됐으나 요즘은 직장인, 의료계 종사자, 주부, 학생 등 다양한 직업군이 마약에 노출돼 있는 실정이다.
이번에 구속 및 입건된 피의자들은 재래시장 안에 과일, 채소, 고구마 등을 파는 노점상이다. 평범한 30∼50대 상인이지만, 1∼10범으로 모두 마약 관련 전과가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났다. 마약을 산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한 피의자는 지난 2010년 형 집행이 끝난 뒤 3년 이내인 누범기간이 지났지만 또 다시 필로폰에 손을 댔다. 그는 조사에서 “힘든 일이 많아서 마약의 유혹을 떨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힘들어 유혹에…
부산진경찰서 마약수사전담팀은 시장 내에서 장사하는 노점상이 필로폰을 판매·투약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에 착수, 40여일 동안 피의자들을 차례로 검거했다. 지난 14일,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최모(54)씨 등 4명을 구속하고, 이들에게 필로폰을 구입해 수시로 투약해온 김모(38)씨 등 5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최씨 등은 지난해부터 필로폰 공급책에게 소량의 필로폰(1∼2g)을 사들여 동료 노점상에게 판매하거나 직접 투약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지인을 통해 마약을 구입한 후 주거지, 모텔 등에서 필로폰을 투약해오다가 시장 내에서 검거됐다.
마약수사전담팀은 현재 이들에게 필로폰을 판 ‘공급책’을 추적 중이지만 공급책의 소재가 파악되진 않았다. 보통 판매책이 체포됐다는 소식을 들으면 공급책이 유통을 중단하고 은신하기 때문이다. 유동인구가 많은 시장의 특성상 판매책이 검거됐다는 소식이 빠르게 퍼진 것도 원인이 됐다. 또 피라미드 점조직으로 형성된 마약범죄의 특성상 하부에서부터 서서히 검거해나가며 최종 밀반입자까지 체포해 처벌하기가 쉽지 않다.
과거 보도에 따르면, 통행량이 많은 남대문 시장에서 판매책이 노점상으로 위장해 필로폰을 팔았다거나 지역 사정에 밝은 노점상 등을 모집해 전국적인 판매망을 구성한 경우가 있었으나 이번 사건은 원래부터 노점상으로 시장에서 일하며 상습 투약했던 피의자들로 파악됐다. 이강일 부산진경찰서 마약수사전담팀 경사는 “위장 가능성은 없고 원래부터 시장에서 장사하던 상인들”이라며 “전에도 마약 사건으로 단속돼 처벌당했던 사람도 끼어있다”고 밝혔다.
이렇듯 마약사범이 갈수록 증가 추세를 보이면서 마약사범의 직업군도 다양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경찰청이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4개월간 마약류 사범을 특별단속한 결과, 1512명을 검거했다. 지난해 검거 인원인 1049명보다 44.1% 증가했다.
투약 적발자의 절반 이상인 51%(771명)가 무직자로 집계됐다. 이어 회사원 130명(8.6%), 노동자 100명(6.6%), 유흥업 53명(3.5%), 의료인 52명(3.4%), 운전사 38명(2.5%) 순으로 나타났다. 과거와 달리 사회 곳곳에 마약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부산 시장 3곳서 필로폰 상습 투약
다양한 직업 노출…노점상까지 침투
앞서 이강일 경사는 “과거보다 마약에 손대는 사람이 늘고 있다. 과거엔 주변에 아는 사람이 있지 않으면 구하기 어려웠지만 요즘엔 인터넷, 해외직구 등으로 계속 접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예전엔 필로폰, 대마 등을 주로 접했다면 요즘엔 엑스터시, GHB 등으로 다변화되고 인터넷을 통해 손쉽게 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금번 특별단속기간에 여고생, 주부 등도 해외직구를 통해 합성대마를 구입한 혐의로 입건됐다. 이 경사에 의하면, 오프라인에선 전통적인 마약류인 필로폰, 대마류가 많이 거래되고 온라인에선 신종마약류로 분류되는 합성대마, 엑스터시, GHB(일명 물뽕) 등의 거래가 활발하다고 한다.
과거 접선방법이 직접 만나거나 물품보관함, KTX 특송, 고속버스 화물 등이었던 것에 비해 근래엔 해외에 서버를 둔 사이트, 인터넷 메신저, 해외 직구 등을 통해서 거래되는 등 마약을 접할 수 있는 루트가 매우 다양해져 수사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마약을 복용하면 각성효과로 인해 식사도 거르고 수면도 취하지 않게 된다. 과도하게 몸에서 수분을 빼주는 효과도 있어 자연스럽게 체중이 줄어든다. 특히 도박, 성관계, 일 등에 과도하게 집중하게 된다고 알려졌다. 필로폰의 경우 1회 투약량이 약 0.03∼0.05g으로 5만∼10만원 사이에 가격이 형성돼 있다. 공급량에 따라 가격탄력성이 크다.
과거엔 북한, 중국, 홍콩 등에서 밀반입 됐으나 최근엔 캄보디아 등 동남아산 마약이 부쩍 늘었다. 국내에서 직접 제조해 유통시키는 경우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관련 제조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고, 제조과정에서 불쾌하고 유해한 냄새가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적이 드문 산간오지에서 ‘돼지농장’등으로 위장해 필로폰을 제조한다고 알려졌다.
공급책 추적중
타 국가와 달리 마약사범에 대해 처벌 수위가 낮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 마약사범은 상습투약자의 경우에도 평균 1∼1년6개월가량의 징역형이 선고된다. 상습투약자를 치료하는 프로그램이 있지만 ‘강제성’이 없어서 본인 스스로 입원해 치료 받겠다는 의사가 없으면 마약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구속을 시키면 자연스럽게 마약과의 격리 효과가 있긴 하지만 초범의 경우 치료를 조건으로 불기소 처분하거나 기소유예 하는 등의 보다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인구 10만명당 마약사범 20명 이하를 뜻하는 ‘마약 청정국’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shi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인터넷 마약거래 실태
인터넷에서 각종 마약을 지칭하는 은어로 검색을 해보면, 어렵지 않게 마약을 판매한다는 글을 접할 수 있다.
비교적 관리가 허술한 사이트나 해외 거주 한인 관련 사이트 등에서 이메일 주소나 메신저 아이디 등을 올려놓고 호객 행위를 하거나 버젓이 사이트를 열어놓고 쇼핑몰처럼 운영하는 곳도 발견됐다. 이들 사이트에선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 구할 수 있는 수면제, 마취제, 비아그라 등은 물론 심지어 프로포폴까지 판매하고 있었다.
사이트의 후미진 곳에 ‘특별한 것을 찾는 분은 클릭하라’는 문구를 발견하고 클릭하자, 곧바로 마약류 판매 페이지로 넘어갔다. 해당 페이지엔 필로폰 같은 고전마약부터 최초의 합성환각제인 LSD, 재배물질인 대마초까지 다양한 마약이 구비돼 있었다. 뿐만 아니라 카톡 아이디와 실시간 상담창까지 열어놓고 방문자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중 한 사이트에서 눈에 띈 이메일에 연락을 시도했다. 몇 시간 후 ‘카톡’으로 연락하자는 짧은 답신이 도착했다. 이 신원미상의 판매자는 한 곳만 거래하는 것이 안전하다며, 자신은 꾸준히 거래하는 고객이 많고 돈 욕심도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부산진경찰서 이강일 마약수사전담팀 경위는 “인터넷 거래는 대부분이 사기”라며 “돈만 받고 잠적한다. 백반이나 소금을 보내주거나 양을 속이는 경우도 있다. 90% 이상이 사기”라고 경고했다.
갈수록 지능화되는 인터넷 마약거래를 뿌리 뽑기 위해 현재 경찰청에선 일선경찰서 마약수사팀마다 1명씩 인터넷 전담 수사관을 두고 상시 모니터링 중이다. 검찰도 전국 6개 지검 강력부에 모니터링 전담 수사관을 배치했다.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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