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수의 달인?" 국회의원 '묻지마 법안발의'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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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수의 달인?" 국회의원 '묻지마 법안발의' 실태

일요시사 0 1333 0 0

법안이 보약인줄 아십니까? 재탕 삼탕 하시게!

[일요시사=정치팀] '놀고먹기 좋아하는'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 드디어 정신을 차린 걸까? 최근 국회의원들의 법안발의 건수가 크게 늘어나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하지만 그 속사정을 들여다보니 재탕은 기본이고 삼탕, 사탕까지 우려먹은 '실적 쌓기용'이 대부분이다. 정치인들에 대한 작은 기대마저 더 큰 실망으로 바꿔놓는 제19대 국회의원들의 '묻지마 법안발의' 실태를 살펴봤다.

최근 국회의원들의 법안발의 건수가 크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지난 16대 국회의 법안발의 건수는 1912건이었으나 지난 18대 국회에서는 1만2220건으로 무려 6배가량이나 늘어났다. 이번 19대 국회에서는 임기가 시작된 후 채 1년이 지나지 않았지만 지난 4월 초까지 발의된 법안만 4140건이나 된다.

19대 국회는 지난해 5월30일 임기가 시작됐다. 이 같은 속도라면 18대 국회의 법안발의 기록을 깨는 건 시간문제다. 국회의원들이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일을 하기 시작한 걸까?

법안 발의 폭증
하지만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이들 법안 중 일부는 본문 전체가 한 줄밖에 안 되는 법안도 있었고, 똑같은 법을 여러 의원이 돌려가며 내는 중복 발의와 구태의연한 민원성 법안도 있었다. 이미 폐기된 법안을 아무런 고민 없이 재탕하는 나쁜 관행은 더욱 심각해졌다.

시간을 되돌려 보면 이번 19대 국회는 시작부터 재탕 투성이였다. 19대 국회의원들은 임기 시작 한달 만에 무려 404건의 법안을 쏟아냈다. 이전 국회들과 비교할 때 압도적인 수치다. 하지만 당시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들을 살펴보니 3건 중 2건은 재탕 법안인 것으로 드러나 실망감을 안겼다.

전체 발의된 법안 중 242건(66%)은 이미 지난 18대국회에 제출됐던 법안이었다. 모 의원은 자신이 제출했다가 자동폐기된 법안 14건을 무더기로 재탕하기도 했다. 그러나 법안을 재탕한 의원들은 오히려 당당했다. 법안을 재탕하는 것이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법안임에도 지난 국회에서 아쉽게 폐기된 법안을 다시 살려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는 항변이었다.

물론 이러한 항변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이 같은 항변과는 달리 일부 의원들이 재탕 발의한 법안 중에는 이미 달라진 과거의 통계수치마저 그대로 베껴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법안 재탕과 함께 묻지마 중복발의도 문제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19대 국회 들어 북한인권법을 벌써 5건이나 발의했는데 똑같은 내용의 법안을 5명의 의원들이 각각 발의하는 황당한 행태를 보였다. 게다가 북한인권법은 이미 지난 17대와 18대 국회에서도 발의됐다가 임기만료로 폐기된 바 있는 법안이다.

운전 중 DMB 시청을 금지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안도 3건이나 발의됐고, 군복무 기간 중 학자금 대출 이자를 면제하는 법안도 3건 등장했다.

재탕은 기본, 달랑 한 문장 법안발의까지 
통과 안 될거 알면서도 실적 올리기 급급

의원들이 법안을 발의하면서 이미 발의된 법안인지 검토조차 하지 않았거나 알면서도 건수를 올리기 위해 강행한 입법이라는 지적이다. 이들 법안은 국회에서 처리된다 하더라도 하나의 법안으로 합쳐져 대안폐기된다.

자기 지역구만을 위한 이기적인 민원성 법안 발의 관행도 문제다. 최근 경기 용인 지역구 모 의원은 국제관광중심도시 조성 특별법안을 발의했는데, 이 법안은 지역구가 속한 경기 용인시를 국제관광중심도시로 개발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부 법안은 내용이 너무 부실해 지적을 받았다. 일례로 민주통합당의 한 의원은 지난 3월26일 '흙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했는데 이 법안은 '흙의 소중함을 알리기 위하여 11월9일을 흙의 날로 하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날에 적합한 기념행사 등을 할 수 있다'는 한 문장이 법안내용의 전부였다.

몇몇 의원들은 이 같은  묻지마 법안발의를 위해 친한 동료의원끼리 묻지마 서명을 해준 정황도 포착된다. 묻지마 서명은 법안발의 최소요건인 의원 10명의 서명을 채우려고 친한 동료의원들끼리 한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에 서로 공동발의자로 서명해주는 것을 말한다.

무조건 법안발의 숫자를 늘리기 위해 서로 상대 의원 법안의 타당성은 따져보지도 않고 서명부터 해주고 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A의원이 대표발의할 때 B, C, D 등 의원 9명이 서명해주면 B, C, D의원이 대표발의할 때 A의원이 서명해주는 식이다.

때문에 이번 19대 국회에서 처리된 법안은 겨우 625건으로 법안처리율이 14.2%에 불과하다. 이같이 낮은 법안처리율은 묻지마 법안발의 탓이 크다. 또 이러한 묻지마 법안이 수 천 건씩 쌓이면서 오히려 진짜 중요한 법안들의 신속한 처리를 어렵게 하고 있다는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그렇다면 의원들은 왜 묻지마 법안발의에 집착하고 있는 것일까?

정치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다음 선거를 겨냥한 자기 홍보와 치적 과시용'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최근 정치쇄신 바람과 더불어 크게 변화된 각 정당의 공천심사제도가 큰 영향을 미쳤다. 작년에 치러진 19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 정당은 시스템공천을 선언하며 현역의원을 대상으로 한 공천심사에 의정활동 항목을 대거 포함시켰다. 본회의와 상임위원회 출석률, 법안발의 건수 등이 주요 평가항목이었다. 법안발의 건수가 적었던 의원들은 공천심사 과정에서 낭패를 봤다.

입법 성공률은 꽝
19대 국회가 시작되자마자 의원들이 앞 다퉈 법안 발의에 나선 것은 이러한 경험 때문이라는 것이다. 모 의원의 보좌관은 "요즘에는 시민들의 권리의식이 높아지면서 자기 지역구 의원의 의정활동 사항을 꼼꼼히 챙겨보는 분들도 많아졌다"며 "법안발의 건수가 적으면 당장 지역구 시민단체들에서 이를 문제 삼고 비판하니 법안발의 건수를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 정치평론가는 "가치 있는 중요 법안을 되살려내는 것이라면 괜찮지만 의원들이 상황 변화도 반영하지 않은 채 폐기 법안을 재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무더기 법안발의와 임기만료 폐기라는 악순환 구조를 깨려면 의정활동 평가기준을 법안발의 건수가 아닌 입법 성공률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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