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지물’ 국회 윤리특위 실태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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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지물’ 국회 윤리특위 실태 추적

일요시사 0 1302 0 0

팔은 안으로 굽는다더니 “가재는 게 편 맞네”

[일요시사=정치팀] ‘윤리’라는 이름이 무색했다. 국회의원의 ‘권위와 품격’을 유지하기 위해 설치된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이하 윤리특위)가 무용지물로 방치되고 있다. 윤리특위가 단 한 번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정쟁의 도구로 변질됐다는 지적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의원들 사이에서도 “그냥 창피 한번 주려는 거지, 정치적인 쇼”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다. 제 역할 못하는 윤리특위 역사를 짚어 봤다.

그동안 윤리특위에서 가결된 징계안은 단 한 건. 이마저도 본회의에서 반대 134표에 부딪쳐 무산됐다. ‘제 식구 감싸기’란 말이 무리는 아닌 듯싶다. 지난 18대 국회 때 남녀 대학생과의 식사자리에서 성희롱 발언을 해 물의를 일으켰던 강용석 전 의원에 대한 징계안 처리가 그것이다.

솜방망이 ‘출석정지’

사실 당시 강 전 의원의 막말 파장은 어마어마했다. 금방 여의도를 집어삼킬 듯했다. 강 전 의원은 “아나운서가 되려면 다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시쳇말로 ‘멘붕’ 상태에 빠진 아나운서들은 집단으로 강 전 의원을 ‘명예훼손죄’로 고소했다.

서울대 법대에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금배지까지 단 손꼽히는 ‘엄친아’의 명예는 일순간에 땅에 떨어졌다. 여론은 갈수록 악화됐다.

강 전 의원은 집단모욕죄에 대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을 경우 국회의원직을 상실할지도 모르는 위기상황에 놓였다. 들끓는 여론에 국회의원들도 여야 막론하고 덩달아 비난 일색이었다.

좀처럼 빠져나갈 구멍이 없을 것으로 보였던 강 전 의원은 결국 18대 국회 임기를 다 채우고 정치권에서 멀어졌다. 문제가 불거진 이후 ‘한나라당 소속’에서 ‘무소속’으로 바뀐 게 고작이었다. 

강 전 의원은 형사소송 1심에서 징역 6월과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마땅히 비난받아야 할 이상의 비난에 직면하게 된 사정 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강 전 의원은 이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하지만 막판 강 전 의원이 아나운서 비하 발언에 대해 공식 사과함에 따라 양측이 극적 합의를 이뤄, 일단 의원직 상실 위기는 넘겼다. 국회와 법원을 오가면서도 배짱을 부리던 강 전 의원은 간담을 쓸어내렸다.

이와 동시에 윤리특위와 국회에서 진행된 강 전 의원 제명안 처리 과정이 수많은 논란을 일으키며 국민의 공분을 샀다. 강 전 의원이 의원직 상실위기에서 이미 한고비를 넘긴 터라 기대에 찬 국민의 이목은 국회 본회의 제명안 처리에 쏠렸다. 한나라당 주성영 윤리위 부위원장은 긴급 브리핑에서 강 전 의원을 제명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일사천리로 처리될 것 같았던 제명안은 한 달이 다 되도록 표류하다 결국 ‘강용석 살려주기’로 막을 내렸다.

가까스로 윤리특위를 통과한 제명안은 본회의에서 재적의원 259명 중 찬성 111명, 반대 134명, 기권 6명, 무효 8명으로 부결됐다. 국회의원을 제명하기 위해서는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인 198명이 찬성표를 던져야 한다.

11대 국회 이후 의원 징계 결의안 176건 본회의 통과한 것 없어
‘국회의원 윤리규칙(안)’ 다룰 국회 정치쇄신위 아직 표류 중

여야는 대체 징계안으로 강 의원에 대한 30일간 ‘국회 출석 정지안’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강 전 의원은 9월 한달 간 국회에 나오지 못했다. 이 기간에 수당 및 입법활동비 특별활동비도 절반만 받았다.

일각에서는 제명안이 부결되자마자 한나라당이 출석정지안을 상정한 것을 두고 여야가 미리 짠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일련의 의결과정은 당시 박희태 국회의장의 지시로 취재진과 방청객이 모두 본회의장을 퇴장한 가운데 비공개로 진행됐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표결과정에서 성경문구를 인용한 뒤 “여러분은 강 의원에게 돌을 던질 수 있나요. 저는 그럴 수 없습니다. 이 정도 일로 제명한다면 우리 중에 남아있을 사람 누가 있을까요”라며 강 전 의원을 두둔한 사실이 한 야권인사의 SNS를 통해 빠르게 퍼졌다.

이를 전후해서 국회에는 국회법상 품위유지의무를 위반한 이유로 수많은 징계안이 발의됐다. 실제로 1981년 제11대 국회 이후 현재까지 발의된 의원 징계안 176건 가운데 본회의를 통과한 징계안은 단 1 건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윤리특위가 사실상 ‘무용지물’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이중 의원 임기만료로 인한 폐기가 98건(55.7%), 철회 32건(18.2%), 사임 등으로 인한 폐기 29건(16.5%), 계류 16건(9.1%), 그리고 윤리특위에서는 가결됐지만, 본회의에서 부결된 강 전 의원 징계안 1건 등이었다.
지난 1월 국회 정치쇄신위원회가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국회쇄신분야 의제를 가지고 의욕적으로 출범했지만 시작부터 삐걱거리고 있어 국민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당초 국회쇄신분야 의제는 ▲국회의원 겸직 및 영리업무 금지 강화 ▲인사청문회 관련 제도 개선 ▲국회폭력 예방 및 처벌 강화 ▲대한민국 헌정회 연로의원 지원제도 개선 ▲원구성 지연 방지 ▲윤리특위 운영 등 의원 징계 제도 개선 ▲의원 면책특권 및 불체포 특권 제한 ▲의원수당 지급 개선 ▲가칭 '국회의원 윤리규칙(안)' 제정 방안 등이다.

특위 구성은 지난 1월6일 여야 합의가 이뤄진 이후 3월22일에야 국회 본회의에서 마무리됐다. 첫 회의는 한 달 쯤 지난 4월25일에야 열렸다. ‘늦장 출범’이라는 비난이 이어졌지만, 아직도 뚜렷한 성과물을 내지 못하고 있다.

의원신분 ‘방탄’ 역할?

정치쇄신 특위마저도 제동이 걸려,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차원에서 다뤄질 것으로 보였던 ‘국회의원 윤리규칙(안)’ 제정 여부도 현재로선 미지수인 상태다.

의원 징계안 발의가 정쟁의 도구로 전락한 것은 윤리특위가 제 역할을 못한 탓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과연 윤리특위가 국회의원 신분의 방탄역할을 한다는 비판에 귀 기울이고 ‘제 뼈를 깎는’ 노력을 보여줄지는 조금 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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