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추적> 여권 거물 정치인 금품 로비 의혹
누가 뒷돈 받았는지 청와대는 알고 있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한 통의 이메일이 도착했다. 한전산업개발 현직 임원을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한전산업개발은 한국전력(이하 한전)의 자회사로 연매출 3000억원에 육박하는 알짜 회사다. 이메일 안에는 임원이 쓴 이력서나 자기소개서, 임원 개인의 범죄 경력에 대한 확인서가 담겨 있었다. 문제의 임원은 윤기영 감사다. 윤 감사는 석연찮은 경로로 한전산업개발에 들어온 '낙하산'으로 불렸다. <일요시사>는 취재 과정에서 놀라운 의혹을 접했다. 여권 거물 정치인이 연루된 금품 로비 의혹이다. "윤 감사가 돈을 줬다"는 주장인데 사실 확인을 위해 윤 감사 주변을 다각도로 접근했다.지난달 8일 오전 7시 서울 서초동 팔래스호텔로 거구의 사나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취재원 한모씨였다. 그는 과거 한 대기업 임원급 인사였다. 1990년대 후반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린 '대형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복마전' 한산
수상한 낙하산
앞서 기자는 익명의 제보자에게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한전산업개발 현직 임원을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한전산업개발은 한국전력(이하 한전)의 자회사로 연매출 3000억원에 육박하는 알짜 회사다. 이메일 안에는 임원이 쓴 이력서나 자기소개서, 임원 개인의 범죄 경력에 대한 확인서 등이 담겨 있었다. 문제의 임원은 윤기영 한전산업개발 감사였다.
이메일에서 제보자는 윤 감사가 상당한 고령(80세)인데 공기업 성격이 강한 한전산업개발에 어떻게 선임됐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또 그의 과거 전력을 문제 삼으며 범죄 전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윤 감사와 관련한 의혹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감사 선임 과정에서 이력서에 허위 공직 경력을 적은 것으로 의심됐다. 감사 선임 후에는 "회사 법인카드를 사적인 용도(가족을 동반한 해외관광여행 등)로 유용했다"는 구설에 휘말렸다. 이후 취재 과정에서 제보자가 제기한 의혹은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기자는 한전산업개발 내부 사정을 잔 안다는 한씨와 만났다. 한씨는 10여년 전부터 윤 감사와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한씨는 윤 감사와 관련해 몇 가지 흥미로운 주장을 했다. 윤 감사가 원래는 한전산업개발 사장을 희망했다는 것이다. 한씨는 이 과정에서 "여권을 상대로 한 금품로비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근거는 미약했지만 충분히 개연성 있는 얘기였다.
한전산업개발 잇단 고소-고발 복마전
임원 선임 과정에 정치권 개입 의혹
윤 감사가 한전산업개발에 입사한 날짜는 2014년 3월13일이다. 앞서 그는 한전산업개발 최대주주인 한국자유총연맹(이하 자유총연맹) 부총재로 선임됐다. 취임일은 2013년 11월16일로 확인된다. 공교롭게도 그가 쓴 이력서를 보면 '새누리당 A의원 선거대책본부 자문위원'을 2013년 10월에 한 것으로 돼 있다. 보궐선거에 나선 A의원은 2013년 10월30일 당선됐다.
윤 감사가 쓴 이력서가 사실이라면 그는 A의원의 당선 직후 한국자유총연맹 부총재로 선임됐다. 이어 4개월 만에 한전산업개발 감사로 특채됐다. 모종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한산 사장은
청와대의 몫
윤 감사가 한전산업개발 감사로 내정된 경위는 다소 복잡했다. 윤 감사는 A의원을 등에 업고 사장으로 가려다 '다른 압력'에 의해 감사직을 맡게 된 것으로 보인다. 기자는 한전산업개발 임원진, 노조, 대주주인 자유총연맹을 차례로 접촉했다. 자유총연맹 관계자는 당시 사실상의 인사권을 갖고 있던 김명환 자유총연맹 총재(현재 사퇴)가 "'윗선'으로부터 거부할 수 없는 부탁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 한전산업개발 사장은 이삼선 대표이사다. 그는 이한동 전 국무총리 비서관 출신이다. 이 대표는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선거캠프를 도운 '공신'으로 전해졌다. 이 대표는 2013년 12월20일 사장에 공식취임했다.
당시 이 대표의 선임을 놓고 '낙하산'이라는 논란이 일었다. 노조 측은 "이 대표가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과 가까운 사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귀띔했다.
자유총연맹 관계자는 "총재님이 사장 선임 전 전화(홍 의원이라고 특정되지는 않음)를 받았으며, 여러 고민 끝에 이 대표가 사장직을 책임 있게 수행할 것으로 생각해 선임한 것"이라고 밝혔다. 자유총연맹 측은 누가 전화를 한 것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단 "사장은 우리(자유총연맹) 몫이 아니라 BH(청와대) 몫"이라는 설명으로 갈음했다.
그런데 이 대표의 사장 선임시기를 보면 윤 감사가 자유총연맹 부총재로 선임된 날짜와 불과 1달여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윤 감사가 대주주인 자유총연맹을 거쳐 사장 자리를 노리지 않았겠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이후 드러난 과정은 관련한 의혹을 뒷받침한다. 윤 감사의 입사 과정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
전임 감사인 원모씨는 임기를 1년여 남기고 중도 사임했다. 원씨의 후임이 윤 감사다. 노조 측은 "원씨를 내보내는 과정에서 반발이 컸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회사가 원씨에게 2년간 고문료를 약속했다"고 말했다.
기자가 입수한 '한전산업 기타비상무이사 및 고문 현황'을 보면 고문인 원씨는 2014년 4월부터 2016년 3월까지 매달 470만원의 보수를 받게 될 것으로 예정됐다. 이에 대해 노조 관계자는 "회사가 원씨의 요구로 공증까지 해줬다"고 폭로했다. 유명무실한 고문료를 지급한 것도 모자라 공증까지 해가며 입막음했다는 주장이다. 일각에선 원씨의 사퇴를 A의원이 권유했다고 하지만 확인되지는 않고 있다.
이런 원씨가 나간 자리를 꿰찬 윤 감사는 작정한 듯 회사 경영진을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한전산업개발 이사회 회의록 등을 참고하면 그는 '한전산업개발 600억원 손실 사건'(본지 인터넷판 '한전산업개발 수상한 투서 내막' 참고)에 대해 회사 전·현직 임원의 책임을 따지며 형사 고발을 하겠다고 별렀다.
실제로 전임 사장인 김영한 전 대표이사를 비롯한 전·현직 간부 등 10명은 지난 8월5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배임) 및 상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됐다. 고발을 주도한 건 노조였지만 윤 감사가 각을 세운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이 무렵 대주주인 자유총연맹 내부에선 큰 소란이 일었다. 윤 감사의 도덕성 등과 관련한 투서가 자유총연맹에 접수됐기 때문이다. 접수된 투서의 내용과 기자가 받은 제보 내용은 동일했다. 자유총연맹은 김 총재 명의로 된 사실 확인서를 윤 감사에게 요청했다. 이날이 8월1일이다.
임원진 겨누고
대주주 날렸다
그런데 1주일 뒤 생각지도 못한 사건이 벌어졌다. 자유총연맹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8월8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는 자유총연맹 부총재단 긴급회의가 열렸다. 모두 10명이 참석했고, 이 가운데는 윤 감사도 있었다. 회의에서 이들은 김 총재를 탄핵하기로 결의했다. 결의의 배경에는 김 총재의 1억원 수수 의혹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윤 감사는 다른 부총재들을 앞에 두고 "내가 김 총재에게 2천, 3천, 5천을 줬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윤 감사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검사의 실명을 거론하며 '자유총연맹(김 총재)이 곧 검찰 수사를 받게 될 것'이라는 취지로 여론을 몰았다고 관계자는 전했다.
관련한 의혹에 대해 윤 감사와 자유총연맹 모두 부인했다. 윤 감사는 "'김 총재에게 한전산업개발 사장 취임을 명목으로 현금 1억원을 주었다'는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다만 윤 감사는 "김 총재 개인에게 변호사비를 일부 빌려준 적은 있다"고 말했다.
앞서 김 총재는 자유총연맹 총재 선거 과정에서 다른 입후보자와 법정 다툼을 벌였다. 이때 자유총연맹 고문 변호사 외에 윤 감사와 친분이 있는 변호사가 선임됐는데 해당 변호사비를 윤 감사가 대신 납부했다는 것이다.
문제의 변호사는 구모씨로 윤 감사가 지난 2008년 취재원 한씨를 공동공갈 혐의로 고소했을 때 변호를 맡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자유총연맹 측은 "조심스럽긴 하지만 (총재가 빌렸다는) 액수가 부풀려진 것 같다"며 말끝을 흐렸다.
1억원 수수 의혹을 받고 있는 김 총재와 자질 논란에 휩싸인 윤 감사는 지난 8월16일 서울 여의도에 있는 한 호텔에서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기자가 입수한 내부 문건에 따르면 윤 감사는 사실 확인서를 써주는 대가로 김 총재에게 한전산업개발 사장을 시켜준다는 합의각서를 요구했다. 김 총재는 이를 거절했다.
그러자 윤 감사는 "내가 현 사장(이 대표)을 날릴테니 나에 대해 청와대에서 사장을 내정할 때 반대하지 않겠다는 구두 약속이라도 해 달라"고 말했다. 사장 유고로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지면 자신을 밀어달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김 총재는 '딜'을 거부했고, 윤 감사는 "사실 확인서를 제출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이에 따라 자유총연맹 집행부는 대주주의 권한으로 윤 감사에게 감사직 사퇴를 압박하고 나섰다.
그런데 먼저 옷을 벗은 건 윤 감사가 아닌 김 총재였다. 자유총연맹 관계자는 "지난주(당시 기준 8월 넷째 주)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2명의 감찰관이 다녀갔으며 관련한 내용을 듣고 갔다"고 말했다. 김 총재에 대한 해임안은 8월 넷째 주인 21일 이사회에서 가결됐다. 표면적으로는 윤 감사가 대주주와의 '파워게임'에서 승리한 셈이었다.
취재원 한씨를 다시 만난 건 이즈음이다. 당시 한씨는 수사기관 등에 제출하기 위한 진술서를 꾸미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한씨는 윤 감사의 금품로비 의혹을 거듭 주장했다. 한씨의 주장에 따르면 윤 감사는 과거 '전기검침 용역' 등에 관여해 이권을 챙긴 것으로 의심됐다.
대주주 자유총연맹도 금품수수로 시끌
"검침으로 비자금" vs "수십억 손해"
기자가 입수한 법원 판결문 등에 따르면 윤 감사는 지난 2004년부터 2009년까지 대한상이군경회(이하 상이군경회) 한전검침사업본부장을 역임했다. 그간 상이군경회는 한전산업개발과 함께 전기검침 용역을 거의 독점으로 수주해왔다.
전기검침 용역은 공기업인 한국전력을 대신해 각 가정(사용량 75㎾미만)의 전기사용량을 검침하는 사업이다. 과거엔 현금 거래가 많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도 불렸다. 지난 2011년 국회 국정감사에선 한국전력이 상이군경회에게 전기검침 용역을 몰아줬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당시 상이군경회가 받은 수주액은 2280억원이다.
윤 감사는 지난 2003년 이 사업을 인수하기 위해 전임 본부장인 김모씨의 비리자료를 <한겨레> 기자를 통해 검찰에 전달했다. 김씨는 2004년 1월 자신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되자 버티지 못하고 사임했다. 이때 윤 감사와 공모했던 이가 바로 취재원 한씨다.
이후 윤 감사는 검침사업본부장 임기 중 검찰로부터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로 소환됐다. 하지만 검찰은 윤 감사의 정·관계 로비 의혹을 규명하지 못했다. 결국 윤씨는 횡령 및 비자금 조성 혐의(업무상 횡령, 상법위반, 사문서위조 등)로만 기소됐다.
한씨는 과거 윤 감사가 검침사업으로 상당한 '이득'을 봤다고 강조했다. 또 최근까지 검침사업에 개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기검침 업계에선 경쟁관계인 상이군경화와 한전산업개발의 '중간다리' 역할을 했다는 주장도 했다. 그러나 윤 감사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경쟁입찰 때문에 투찰액을 낮추다 오히려 수십억원의 손해를 봤고, 정치권 로비나 비자금 조성은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정치권 로비
물증이 없다
기자는 관련한 내막을 알고 있다는 한전산업개발 현직 임원과 접촉했다. 전날까지 약속이 잡혔으나 "사정이 있다"며 약속은 취소됐다. 어렵사리 연결된 통화에서 모 임원은 "윤 감사의 방으로 가보시라. 어마어마한 사람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 많다"고 에둘렀다.
지난 3월 윤 감사의 취임식에는 A의원이 보낸 것으로 보이는 화환이 도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윤 감사는 "단 한 번도 A의원과 만난 적이 없다. 또 만났으면 어떻게 할 거냐"고 말했다.
윤 감사의 이력은 화려하다. 이력서에 따르면 그는 새누리당 중앙위원회,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소, 성균관대 총동창회(윤 감사는 학사 과정을 밟지 않았다)의 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무엇보다 새누리당 두 국회의원의 후원회장을 맡고 있는 점이 눈에 띄었다.
특히 윤 감사는 자신이 후원한 B의원의 지역구에서 건설업체를 운영했다. B의원은 국회 해병대전우회를 맡고 있고, 얼마 전 사퇴한 김 총재 역시 해병대전우회 총재를 지냈다. B의원과 A의원은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한씨는 올 6월께 윤 감사와 독대한 자리에서 정치권 로비와 관련한 얘기를 들었다고 주장했다. A의원과 B의원의 이름도 등장했다고 했다. 하지만 '진술 외에 추가적인 증거가 있느냐'는 물음에는 답하지 못했다. 대신 검찰 조사가 필요하면 언제든 받겠다고 했다.
정치권 로비 의혹에 대해 한전산업개발 임직원에게 물었다. 그는 "들어서 알고 있다. 더 말할 게 없다. 이해해 달라"며 말을 아꼈다. 반면 윤 감사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내가 줬다고 하면 언제 어디서 얼마를 어떻게 줬는지 밝혀보시라. 검찰 수사가 들어와도 두렵지 않다. 계좌추적도 하고 다 할 것 아니냐. 떳떳하다. 괜히 죄 없는 사람 잡지 마시라"고 했다.
한편 김 총재와 관련한 1억원 수수 의혹 사건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거쳐 검찰로 사건이 이첩됐으며,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김후곤)는 자유총연맹과 관련한 비리를 포괄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소문만 무성만 정치권과의 연결고리가 드러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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