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뒷담화> ‘동네북’ 관세청 굴욕시대
▲ 김낙회 관세청장
여기서 깨지고 저기서 터지고
[일요시사 경제팀] 김성수 기자 = 관세청이 망신을 당했다. 큰소리 뻥뻥 치던 소송에서 패소해서다. 한두 번도 아니고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다. 당장 막무가내식 부과처분이 도마에 올랐다. 관세범 처벌 의지마저 의심받는 상황이다. 동네북이 돼버린 관세청 사정을 담아봤다.
관세청이 풀무원에 결국 무릎을 꿇었다. 관세청은 풀무원이 제기한 소송에서 패소해 430억원을 돌려주게 됐다. 최근 대법원 제2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풀무원이 서울세관장을 상대로 낸 관세부과처분 취소 소송에서 서울세관의 상고를 기각했다.
이런 망신이…
대법원은 풀무원이 낸 380억원의 관세를 모두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풀무원을 관세 납세 의무자인 이 사건의 화주(화물 주인)로 볼 수 없는 만큼 납세 의무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관세 부과 처분은 위법하다"고 원심을 확정했다.
서울세관은 2010년 풀무원이 중국산 유기농 콩을 수입하는 과정에서 원래 가격보다 수입가격을 낮게 신고하는 방법으로 관세를 포탈했다며 380억원의 관세를 부과했다. 현행 관세법은 물품을 수입한 화주를 납세 의무자로 규정하고 있다. 서울세관은 "실제 화주인 풀무원이 중국 농산물 수입 전문 무역업체인 J사를 내세워 관세를 낮게 신고하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풀무원은 발끈했다. 곧바로 "중국에서 농산물을 수입·판매하는 전문업체를 통해 유기농 콩을 구매했을 뿐 저가 신고를 한 적이 없다"며 관세부과 처분 취소소송을 냈다. 회사 관계자는 "J사로부터 수입 유기농 콩을 구매하면서 원료의 품질관리를 위해 유기농인증절차나 생산물이력추적시스템에 의해 확인을 했지만, 수입관세의 저가 신고행위를 지시하거나 공모한 적이 없다"며 "정당한 사업목적에서 수입업체들과 거래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양측의 공방은 법정으로 이어졌고, 풀무원의 완승으로 끝났다. 1심인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는 풀무원의 주장을 받아들여 서울세관에 관세부과를 전액 취소하라고 판결했고, 2심인 서울고등법원 제3행정부도 풀무원의 손을 들어줬다.
풀무원과 430억 관세소송 '패'
디아지오 5000억 소송도 불안
관세청으로선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큰소리 떵떵 치던 소송에서 패소했으니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다. 사실 풀무원에 굴욕을 당한 관세청에겐 더 큰 걱정이 있다. 바로 위스키 '윈저' 판매사인 디아지오코리아와의 소송이다.
관세청은 2009년 디아지오코리아에 5000억원 상당의 관세 및 부가가치세 등을 부과했다. 위스키 수입가격을 낮춰 신고했다는 게 관세청의 판단. 전체 제조비용이 아닌 제조원가만 신고했다는 것이다. "본사가 있는 영국에서 이미 제조비용에 대한 세금을 낸 상태라 국내에서 추가로 부과하면 2중 과세"라고 반발한 디아지오코리아는 이듬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치열한 공방이 오갔다. 재판부는 여러 차례 양측의 합의를 유도했으나 결국 무산됐다. 최근 과세금액의 40∼50% 감면 내용이 담긴 조정권고안까지 제시했지만, 디아지오코리아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소송에 자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관세청이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앞으로도 디아지오코리아가 합의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4년 넘게 이어진 재판은 조만간 결론이 날 전망이다. 양측의 변론은 이미 끝났다. 사실상 재판부의 최종 결정만 남은 상황이다. 관세청은 판결이 다가오면서 자존심을 구기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막무가내식 부과처분 도마
부과취소 환급금 매년 늘어
관세청은 지난 국감에서 관세 소송과 관련해 질타를 받은 적이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김관영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공개한 최근 5년간(2010년∼2014년 7월) 관세청의 검찰고발 및 항고(재고발) 통계에 따르면 검찰 무혐의 처분에 항고는 '0건'으로 조사됐다. 김 의원은 "관세법 위반자가 검찰로부터 무혐의 처벌을 받으면 사건을 그대로 종결시키고 있다"며 "관세청이 관세범 처벌 의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관세청의 막무가내식 부과처분도 도마에 올랐다. 관세청이 올 들어 지난 8월까지 납세자에게 돌려준 과오납 환급금은 4116억원(1만302건)으로, 2012년 1313억원(1만4853건)과 비교해 세 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형별로는 부과처분 취소에 따른 환급금이 968억원(481건)으로 가장 많고, 이어 신고납부 오류 3071억원(9377건), 직권경정 77억원(491건) 등이다.
관세청 잘못에 따른 부과처분 취소 환급금의 경우 2012년 대비 500% 이상 급증했다. 관세청의 부과처분 취소는 ▲2012년 189억원(180건) ▲2013년 336억원(801건) ▲2014년 8월 968억원(431건)으로 늘어났다. 김 의원은 "과오납 환급은 납세자의 신고납부 오류를 제외하면 사실상 관세청의 행정 착오로 인한 것이 대부분"이라며 "관세청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과오납 환급을 줄이기 위해 각별한 주의를 기울어야 할 것"고 말했다.
관세청은 세수유출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행정소송 패소율을 낮추는 등 원활한 법무 소송을 위해 쟁송전단팀을 운영 중이다. 본청의 소송전담 팀원을 늘려 기존 소송전담팀(1계·5명)에서 송무센터(2계·9명)로 개편했다. 전문변호사도 채용했으며, 소송대상도 50억원 이상에서 10억원 이상으로 확대했다.
행정착오 지적
관세청은 "우선 법에 따라 정당하게 과세하고, 정당한 처분에 대해선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겠다"고 밝혔다. 이어 "지하경제 양성화 조치에 반발하는 기업과 국내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들의 관세부과 불복 소송이 갈수록 늘고 있다"며 "나라 재정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쟁송 수행체계를 강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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