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전경련 '극비 작전'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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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청와대-전경련 '극비 작전'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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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오면 사제단 막아 달라"


[일요시사=사회팀] 강현석 기자 = 8월로 예정된 교황 방한을 앞두고 "청와대가 전경련에 모종의 청탁을 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청탁의 내용은 "(정치적인 시위가 예상되니)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을 막아 달라"는 내용이었다. 대한민국 최고 권력기관 간의 은밀한 거래일까. 아니면 단순한 해프닝일까. 관련한 내막을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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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교황청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 일정을 확정 발표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는 8월14일부터 4박5일간 한국에서의 일정을 소화한다. 앞서 청와대는 지난 3월10일 교황이 박근혜 대통령 및 한국 천주교회의 초청으로 오는 8월 방한할 것임을 알렸다. 교황은 방한 기간 동안 대통령 면담 및 대전에서 열리는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에 참석할 예정이다.

종북 색출?

그런데 교황 방한과 관련해서 믿기 힘든 주장이 나왔다. 익명의 전경련 관계자는 사석에서 놀라운 얘기를 했다. 그는 "지난 3월께 BH(청와대)에서 전경련으로 전화를 걸어 '(교황 방한 즈음) 정구사를 막아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정구사'는 바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하 사제단)이다.

사제단은 지난 1974년 있었던 민청학련 사건을 계기로 결성됐다. 사제단은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탄압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벌였다. 특히 사제단은 1987년 당시 서울대학교 학생이던 박종철군의 고문치사 사건을 폭로하며 6월 항쟁의 도화선을 당겼다.

그러나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국민·참여정부를 거쳐 이명박정부에 이르자 사제단은 이른바 '색깔론'에 휘말렸다. 사제단은 4대강 사업 반대 등 정권에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했는데 뜻을 달리한 보수 성향 언론들은 사제단을 일컬어 '종북세력'으로 규정짓기도 했다.

2013년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지만 종북 논란은 잦아들지 않았다. 오히려 격화됐다. 사제단은 같은 해 11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과 관련한 시국미사를 열고 박 대통령의 퇴진을 주장했다. 이는 천주교계 안팎의 커다란 반향을 불러왔다.

시국미사 직후 청와대는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정현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은 "기도라는 것은 잘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은총을 기원하는 것인데 국민이 뽑은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하는 것은 잘되라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제단은 며칠 뒤 '저항은 믿음의 맥박이다'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통해 '대통령의 결단'을 거듭 촉구했다.

지난 일련의 과정들로 미뤄봤을 때 청와대가 사제단의 행보를 부담스러워하고 있음은 분명했다. 만약 교황 방한 때 사제단이 시위 등의 방법으로 '정권의 부당함'을 알린다면 곤혹스러워지는 건 청와대였다. 교황과 함께 당도한 전 세계 외신들의 눈과 귀가 사제단으로 쏠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결론적으로 청와대가 "막아 달라"고 할 근거는 충분해 보였다.

기자는 사실 확인을 위해 다수 국회 관계자와 접촉했다. 이 중 복수 여권 관계자는 "처음 듣는다"고 했다. 이들은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BH가 확인을 해주겠냐"고 회의적인 입장을 폈다.

하지만 미약한 실마리가 있었다. 한 국회 관계자는 "전경련 비선 반응이 수상하다"면서 말을 이었다. 전경련 비선라인으로 알려진 A씨는 '교황 방한과 관련해 청와대로부터 들은 게 있느냐'는 질문에 "그런 일 없다"고 잘라 말했다. '들은 것'이 무엇인지 묻지도 않은 상황에서 덮어놓고 부인부터 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 통화는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없었다. 진위를 둘러싼 궁금증은 더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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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두어 차례에 걸쳐 사제단 관계자와 통화했다. 그러나 사제단 측은 신중한 입장이었다. 사제단 관계자는 "얘기를 들어본 적은 있지만 구체적인 내막은 모른다"며 "우리도 (사실인지) 궁금하다"고 했다. 또 그는 교황 방한 시 사제단의 일정과 관련해서는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지난 17일 기자는 서울대교구 사무처가 있는 명동성당을 방문했다. 서울대교구는 이번 교황 방한을 준비하는 곳 중 하나다. 급작스런 방문에 관계자는 일정상 만나지 못했다. 대신 언론담당 팀장과 연락이 닿았다. 그는 "사제단 얘기는 처음 듣는다"고 말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익명의 관계자에 따르면 청와대는 다른 곳도 아닌 전경련에 사제단을 막아달라고 요청했다. 왜 하필 전경련이었을까.

이와 관련 팀장에게  '교황 방한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외부(기업)의 지원이 있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팀장은 "확인해 줄 수 없는 일"이라고 답했다. 다만 그는 "교황의 방한 일정이나 동선을 정부(청와대)와 사전 협의했고, 경호 등 행사 지원과 관련해서도 조율 중에 있다"고 답했다.

8월 교황 방한 관련 "모종의 입김" 주장
그런데 왜 하필 전경련?…미스터리 증폭

기자는 전경련에 공식적으로 문의했다. 그러나 전경련 측은 "금시초문"이라며 주장을 일축했다. 전경련 측은 "우리가 그런 부탁을 받을 이유가 없다"면서 "우리가 무슨 재주로 사제단을 막겠냐"고 말했다. 전경련과 친분이 있는 한 언론인도 "연결고리가 느슨하다"며 의문을 표했다.

그렇다면 혹시 최초 전경련 관계자가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당사자의 주장이다. 해당 관계자는 "생각보다 전경련이 개입하고 있는 일들이 많다"면서 "당시 통화내용을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고, '정구사'라는 말이 나온 것도 또렷이 기억난다"고 강조했다.

  
▲ 전경련 신사옥

의혹을 풀기 위해 기자는 지난 1984년과 1989년 교황 요한바오로 2세가 방한했던 시기의 기록물들을 살펴봤다. 하지만 재계가 개입할 여지는 많지 않아 보였다.

국내외기자가 머물 프레스센터를 제공하고, 외국으로부터 공수해 온 방탄차량의 운반비용을 한 기업에서 부담한 일이 전부였다. 더구나 오는 8월 방한할 교황은 방탄차량을 타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이번과 비슷한 의혹이 첫 교황 방한 때 있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1989년 12월 공개된 '국회 5공특위 전두환 증인 질의서 요지'에 따르면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교황 요한바오로 2세 방한에 앞서 안기부·치안본부·보안사 등을 동원해 종교계에 대한 사찰을 벌인 것으로 의심받았다.

질의서에는 각 기관이 '예산에 개의치 말고 종교계에 침투한 북괴 간첩을 로마교황 방한 전에 기필코 색출하라'는 특명을 내린 것으로 쓰여 있다. 만약 이번에도 청와대 차원에서 같은 일을 꾸몄다면 이는 민간인 사찰 의혹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

모두가 부인

지난 3월을 전후해 유력 일간지 등에 보도된 내용을 종합하면 박근혜정부는 정권출범 초부터 교황 방한 성사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고 전해진다. 교황청으로부터 교황 방한을 통보받았을 때도 언론에 엠바고를 요청한 것이 정부였다고 한다. 교황 방한에 지분이 있는 청와대다.

기자는 청와대 가톨릭교우회 쪽으로 관련 사실을 문의하려 했다. 하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또 전직 청와대 관계자를 우회해 의혹을 규명하려 했으나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는 답을 받았다. 아울러 교황 방한과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룹 계열사에도 접촉했지만 "제안을 받은 적이 없다"는 답을 들었다. 한 언론 관계자는 "개인적인 청탁이었을 수도 있다"며 의견을 덧붙였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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