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장춘몽’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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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인물> ‘일장춘몽’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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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가 잘 갔다 했더니…쪽박 차게 생겼다

[일요시사=사회팀] ‘법조인 출신 가운데 가장 성공한 기업인’으로 꼽히던 현재현 회장이 이끄는 동양그룹이 자금난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 무너졌다. 형제기업인 오리온그룹에 지원을 요청하는 등 백방으로 뛰어봤지만 허사였다. 이제 동양시멘트·동양네트웍스 등 주력 계열사들은 줄줄이 법정 관리 체제에 들어갈 전망이다. 현 회장은 지금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대표적인 엘리트 CEO로 꼽혔던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이 회사의 쇠락과 함께 무대 뒤로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동양그룹의 창업주 고 이양구 회장의 ‘사위’로 유명한 현 회장은 서울대 법대를 나와 사법시험을 패스해 검사로 일하다 기업인으로 변신했지만 현재 그의 표정은 어둡다. 특히 현 회장은 투자자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신이 데리고 있던 임직원들한테까지 공격을 받고 있는 상태다.

엘리트CEO
한순간에 훅

올해 4월 기준 재계 순위 38위인 동양그룹은 한때 국내 5대 그룹 안에 들던 6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그룹이다. 그렇다면 왜 이 같은 일이 벌어졌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현 회장을 포함한 경영진이 그룹의 핵심 역량에 집중하지 못하고 상황이 어려워졌음에도 ‘모호한 거래’를 통해 욕심을 부리며 ‘부활’할 수 있는 시기를 계속 놓쳤기 때문이다.

현 회장은 CP(기업어음) 돌려막기로 그룹을 겨우 지탱해왔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의 ‘계열사의 부실 채권 판매를 금지한다’는 규정이 동양그룹의 발목을 잡았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규정은 6개월간의 유예기간을 두고 본격적으로 시행한다. 유예기간 동안 금감원의 철저한 관리를 통해 부실 채권 판매를 적극적으로 제재했다면 동양그룹 사태는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 것이다.

동양그룹은 시한부 선고나 다름없는 이 규정이 시작되는 10월 전까지 CP를 발행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규정이 시행되면서 더 이상 부실 계열사의 채권을 팔지 못해 돌려막기식 자금조달의 비참한 최후를 맛보게 된 것이다. 부채가 늘어가던 동양그룹의 5개 계열사가 동시에 법정관리 신청에 들어갔다.

문제가 된 것은 이 계열사들이 위크아웃이 아닌 법정관리를 들어갔다는 사실이다. 또 각 계열사들의 개인투자자 비율이 99% 이상이었기 때문에 그 피해를 서민들이 감당해야 했던 것이다.

튼튼했던 동양그룹이 이렇게 무너지면서 현 회장은 그 어느 때보다 혹독한 가을을 보내고 있다. 만기를 앞둔 CP와 회사채를 상환하려고 동서인 담철곤(58) 오리온그룹 회장에게 지원을 부탁했지만 끝내 거절당하면서 우려했던 위기가 몰아닥쳤다. 유동성 위기를 막지 못하고 9월30일과 10월1일, ㈜동양과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 동양네트웍스, 동양시멘트 등 동양 계열사 다섯 곳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동양 CP 투자자들은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됐고, 그룹의 공중분해는 시간문제다.

법정관리 신청을 계기로 CP 불완전판매 의혹이 확산되면서 현 회장이 그룹 경영권을 유지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워졌다. 성난 투자자들은 현 회장 일가가 직접 책임지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에 현 회장은 지난 17일 “믿고 투자해준 투자자에게 큰 피해를 입혀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고개숙여 대국민 사과를 했다. 현 회장은 또 “전 재산은 회사 경영하는 데 사용해 통장잔고가 얼마 있는지 알지도 못한다며 얼마 전 개인금고에서 돈과 금괴를 빼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60년 동양그룹 순식간에 공중분해 위기
한때 재계 5위권 호령…이대로 무너지나

이날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위원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한 현 회장은 “이번 동양사태에 대해 총체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남은 생애 지상의 과제는 어떻게 하면 투자자들의 피해규모를 최소화시킬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정무위원회 안덕수(새누리당) 의원은 현 회장에게 “동양증권은 그룹과 계열사가 유동성 자금난으로 허덕이고 있을 때 가정주부나 노인들을 상대로 전화를 걸어 동양이 망하면 나라가 망하는 것과 다름없으니 수익률이 높은 회사채 CP에 투자하라고 권유하지 않았냐”며 “왜 법정관리 신청 직전까지도 직원들한테 ‘법정관리 들어갈 일 절대 없다’고 독려해 상품 판매를 부추겼냐”고 질문했다.

이에 현 회장은 “법정관리 직전, 회사채 CP 등을 발행한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임원들이 어떤 지시를 했는지, 창구에서 직원들이 어떻게 판매했는지까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안 의원은 또 “이번 동양사태로 4만 명에 이르는 피해자가 생겨났는데, 기존 경영 일선에 있던 임원들을 모두 내보낼 수 있겠느냐”고 질의했다. 이에 현 회장은 “법정관리 신청할 때 이미 모든 경영권을 포기했고, 기존 경영진들 문제는 내가 지시할 사항이 아니라 법원에서 판단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이어 현 회장은 최근 이혜경 부회장의 개인금고 인출 건으로 논란이 됐던 사건에 대해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돈이나 금괴를 뺀 것이 아니라 수십년 된 결혼예물만 챙겼을 뿐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던 아내가 법정관리 소식에 엄청난 충격을 받고 신변 정리 차원에서 개인 사물을 찾아와야 한다는 생각에 대여금고를 찾게 된 것”이라고 전했다.

새누리당 유일호 의원은 정진석 동양증권 사장에게 “왜 법정관리 직전 직원들에게 회사채 CP 등 사기성 판매를 독려했냐”고 추궁했다. 이에 정 사장은 “직원들을 모아놓고 했던 이야기는 현재 그룹 및 계열사가 처한 상황을 설명하는 것 뿐 절대 판매를 권유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동양 사태는
4만명 사기극

한편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동양과 금감원 간의 로비 의혹에 대해 “원장 취임 직후부터 금감원과 동양그룹 제재와 관련된 이야기를 꾸준히 해왔던 것은 사실이지만 로비나 부당행위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국감 증인으로는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이승국 전 동양증권 사장, 정진석 동양증권 사장, 김철 동양네트웍스 대표와 서진원 신한은행장, 김종준 하나은행장, 이건호 KB국민은행장 등이 참석했다.

이날 법원은 법정관리를 신청한 동양그룹 계열 5개사에 대해 회생절차를 개시한다고 밝혔다. 법원은 당초 동양측이 관리인으로 추천했던 김철·현승담 동양네트웍스 대표 대신, 동양네트웍스 등기이사인 김형겸 상무보를 관리인으로 선임했다.

장인회사 물려받아 승승장구
잘 나가다 자금난에 ‘와르르’
오리온 담철곤과 엇갈린 행보

시멘트, 섬유, 가전, 증권 등 30여 개 계열사를 거느린 동양그룹은 2000년대 후반부터 글로벌 금융위기와 건설경기 부진으로 사업 적자가 발생하면서 그룹 전체가 위기에 빠졌다. 그룹 모태이자 주력인 동양시멘트는 최근 3년간 1800억원이 넘는 적자를 냈다. ㈜동양도 2000억원 가량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렇게 자금난이 가중되자 2010년에는 알짜 계열사인 동양생명보험의 지분 46.5%를 보고펀드에 9000억원을 받고 매각했다.

구조조정과 자산매각이 더뎠던 점도 그룹 붕괴를 앞당겼다. 지난해 12월 당초 부실 사업부문을 정리하고 시멘트, 화력발전, 금융부문 등을 중심으로 재편할 계획이었다. 사정이 여의치 않자 그룹의 캐시카우 구실을 충실히 하던 동양매직과 미래 핵심 사업으로 선정한 에너지부문(동양파워) 지분도 포기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매각은 끝내 수포로 돌아갔다.



동양의 빈번한 매각 실패에 대해 한 재계 관계자는 “시장의 불신이 깊었던데다, 현 회장 등 경영진이 구체적 매각 대금이나 경영권 유지 여부를 따지다 결국 자산 매각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동양은 동양매직 매각 작업이 한창이던 7월 말 협상 대상을 교원그룹에서 사모펀드인 KTB PE로 변경했지만, 9월30일 KTB PE가 인수를 포기하면서 무산됐다. 동양 관계자는 “당시 KTB PE가 교원그룹보다 가격을 200억원 높이 부르면서 협상 대상을 바꿨는데 결과적으로 실패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믿었던 동서회사
오리온 지원 거부

동양은 이러한 자금난을 타개하고자 동양증권의 영업력을 이용해 CP와 회사채를 발행하면서 자금을 마련했다. CP와 회사채 만기가 돌아오면 다시 CP와 회사채를 발행하는 ‘폭탄 돌리기’가 법정관리 직전까지 계속됐다. 금융권 차입보다 회사채 발행이 많았기에 개미들의 피해가 크다. 이번 사태를 두고 ‘1999년 대우 회사채 파동’ 이후 최대 피해 규모라는 얘기도 흘러나올 정도다.

위기의 동양이 마지막으로 희망을 걸었던 것은 현 회장 동서인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이었다. 동양은 담 회장이 개인적으로 가진 주식을 담보로 5000억∼1조원의 자사담보부증권(ABS)을 발행해 CP와 회사채를 상환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두 그룹 오너 일가는 추석 성묘를 마치고 고 이양구 동양 창업주의 부인인 이관희 서남재단 이사장 자택에서 만나 지원 문제를 논의했다.

하지만 담 회장과 부인인 이화경 오리온그룹 부회장이 끝내 거절했다. 이 부회장은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최근 동양으로부터 자금 지원 요청을 받고 불면의 밤을 보내며 고민했으나 오리온은 존속과 번영을 지속해야 한다”며 거절 이유를 밝혔다. 담 회장 부부는 지분을 담보로 내놓았다가 자칫하면 경영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담 회장이 4월 대법원에서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대외활동을 자제하는 점도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있다. 재계에서는 ‘피보다 시장이 진했다’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4만 명 피해자 발생
“무조건 엎드려 사죄”

동양은 국내 재벌가에서는 드물게 사위가 경영권을 승계한 그룹이다. 맏딸 내외는 동양을, 둘째딸 내외는 2001년 그룹에서 계열 분리한 오리온그룹을 맡고 있다. 현 회장과 이혜경 동양 부회장은 1976년 집안끼리 잘 알고 지내던 고 김옥길 전 이화여대 총장의 소개로 결혼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 회장은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대학 3학년 때 사법시험(12회)에 합격했다. 고려대 초대총장인 고 현상윤 박사가 그의 조부이고 부친은 고 현인섭 이화여대 의대 교수다.

현 회장은 1975년 부산지검 검사로 재직하다 결혼 후 77년 동양시멘트 이사로 입사했다. 그는 장인인 이양구 회장과 함께 직접 경영 현장을 누비며 혹독한 경영 수업을 받았다. 이 회장이 83년 고혈압으로 건강을 잃자 현 회장은 34세 나이에 동양시멘트 사장에 선임돼 이때부터 사실상 그룹 경영권을 주도해왔다.

모두 가지려다
모두 잃었다

현 회장은 증권사를 인수하고 신규 회사를 설립하면서 회사 몸집을 키웠다. 84년 일국증권을 인수하는 것을 계기로 시멘트와 제과 일변도이던 동양을 금융업 중심으로 업종 다변화시켰다. 93년부터는 동양의 금융부문 매출이 비금융부문 매출을 앞지르며 경영능력을 인정받았지만 결국 동양을 지켜내는 데는 실패했다.

한편 법정관리 신청으로 현 회장의 그룹 경영권 유지는 어려워졌다. 현 회장이 지분 30%를 보유한 동양레저는 ㈜동양의 지분 36.25%를 갖고 있어 그룹 경영권의 연결고리 구실을 하는데, 이 두 회사는 파산 절차에 들어갈 개연성이 크다. 채무 변제 과정에서 현 회장의 지분 가치도 크게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동양, 동양인터내셔널, 동양레저 등 3사에 대한 법정관리는 예견된 수순이었으나 동양시멘트와 동양네트웍스의 법정관리는 논란을 남겼다. 동양시멘트는 동양의 주력 회사이고, 동양네트웍스는 현 회장 일가의 가족회사다. 특히 동양시멘트의 경우 부채비율도 190%대로 다른 계열사보다 현저히 낮고 문제가 된 CP도 거의 발행하지 않았다. 두 계열사는 채권단 공동관리(자율협약) 등 자체적인 재기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관측됐지만, 현 회장은 법정관리의 길을 선택했다.

동양시멘트와 동양네트웍스 법정관리 결정에는 그룹 구조조정을 담당하는 핵심 관계자들조차 배제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는 해체된 전략기획본부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재무구조가 비교적 건전한 편이고 부실 규모가 작았던 동양시멘트와 동양네트웍스가 법정관리를 받기로 결정됐다는 사실을 공시가 나기 직전에야 알았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법정관리는 자율협약보다 채권단의 간섭을 덜 받고 경영권을 유지할 가능성도 높다”면서 “강덕수 STX그룹 회장의 경우 자율협약 개시와 함께 경영권이 박탈됐는데 이 점을 고려한 선택 같다”고 분석했다. 법정관리의 경우 부실경영에 책임이 있는 경영진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는 ‘기존 관리인 유지(DIP)’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풍파에도 현 회장이 재기할 수 있을까. 금융당국 관계자는 “무엇보다 부실 CP 판매 책임이 크다”면서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려면 현 회장의 자택을 팔아서라도 피해를 변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 회장과 부인 이 부회장이 공동 소유한 서울 성북구 성북동 자택은 토지면적 1478㎡(약 447평)에 지하 2층, 지상 3층 건물로 땅값만 90억 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일 법원 등기부등본 확인 결과 해당 토지와 건물에는 어떠한 담보설정도 돼 있지 않았다.

어쨌거나 동양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는 4만 명에 달하는 동양그룹 회사채와 CP 투자자들이 될 것이다. 현 회장은 모든 것을 얻으려다 모든 것을 잃게 생겼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현재현 회장은?
▲서울 출생
▲경기고 졸업
▲서울대 법학 학사, 민법학 석사
▲스탠퍼드대학교경영대학원 국제금융 석사
▲동양시멘트 이사
▲동양시멘트 사장
▲동양증권 회장
▲동양그룹 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최고경영자회의 의장
▲한미재계회의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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