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남북대화 깨졌어도 느긋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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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남북대화 깨졌어도 느긋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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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초가 북한 바라보며 여유만만 "지지율은 오르는데 뭐"

[일요시사=정치팀] 당초 지난 12일로 예정됐던 남북 당국회담이 양측 간 수석대표의 '격(格) 공방' 끝에 하루 전날 파행됐다. 극적으로 진전되는 듯 했던 남북관계는 오히려 이전보다 더 나빠졌다. 당국회담 파행 이후 남북 간에는 거친 언사들만 수시로 오가고 있다. 하지만 남북관계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도 박근혜정부는 무척 느긋한 모습이다. 도대체 어떤 이유가 숨겨져 있는 것일까?

북한은 지난 6일 특별담화문을 통해 남북 당국 간 회담을 제안했다. 북한은 특히 담화문에서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이라고 평가받는 7·4공동성명을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틀림없는 유화 제스처였다. 회담 장소와 일시에 대해서도 "남측이 편리한대로 하라"며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이로써 꽁꽁 얼어있던 남북관계는 극적으로 진전되는 듯했다. 그러나 지난 11일 남북이 수석대표의 '격' 공방을 벌인 끝에 당국회담은 파행되고 말았다.

1타 쌍피

회담 무산과 관련해 통일부는 "북측이 우리 수석대표의 급을 문제 삼으면서 북측 대표단의 파견을 보류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해 왔다"고 밝혔다. 우리 측은 북측에 회담 수석대표로 김양건 노동당 대남담당비서 겸 통일전선부장(통전부장)이 나올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북측이 끝내 우리 측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남측은 류길재 통일부 장관 대신 김남식 통일부 차관을 수석대표로 통보했다. 그러자 북측은 이에 반발했고 회담이 무산됐다.

박 대통령은 평소 "형식이 내용을 지배 한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회담이 무산된 후 우리 측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회담을 추가로 제의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고, 북측도 회담에 미련이 없다며 강경하게 대응했다.

남북관계는 오히려 이전보다 더 악화됐다. 이후 남북 사이에는 "우롱" "도발" "굴종" 등 거친 언사들만 오갔다. 남북관계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미궁 속으로 빠져버렸지만 박 대통령은 오히려 전보다 느긋한 모습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지지율이다.

취임 초반 40%대까지 떨어졌던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최근 60%대를 넘어서며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 같은 배경엔 북한에 대한 강경대응이 보수층의 지지세를 한데 모은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역대 정부가 남측의 통일부 장관보다 급이 낮은 내각 책임참사와의 회담을 수용해온 관행이 알려지면서 과거 정부들에 대한 비난 여론도 팽배해졌다. 북한을 훨씬 압도하는 국력을 가지고도 그동안 늘 끌려 다니기만 했던 남북관계에 대한 반발 심리가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보수층에서는 박 대통령의 강경대응에 지지를 보내며 이번 기회에 '남북관계의 원칙'을 바로세워야 한다는 여론이 팽배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 대통령으로서는 남북대화가 깨져도 다급해 할 이유가 없다는 분석이다. 박 대통령으로선 섣불리 먼저 대화의 손을 내밀었다가는 북한에 또 다시 끌려 다닌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다.

북한에 대한 강경대응은 최근 박 대통령을 압박해오고 있는 국정원 사건 등 골치 아픈 현안들에 대한 여론의 시선을 분산 시킬 수 있는 최상의 카드이기도 하다.

또 다른 이유는 현재 대화가 급한 것은 북한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남북회담이 결렬된 후 닷새만인 지난 16일 미국을 향해 '고위급 회담'을 제의하며 또 다시 대화국면으로 나서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대북 강경대응에 탄력받기 시작한 지지율
급한 건 북한, 대북압박 국면 잘 활용해야

북한은 이날 중대담화를 통해 '비핵화'를 직접 언급하며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우리 수령님(김일성)과 우리 장군님(김정일)의 유훈이며 우리 군대와 인민의 변함없는 의지이고 결심임을 다시금 내외에 천명 한다"고 밝혀 회담을 통해 비핵화에 대한 논의까지 할 의사가 있음을 밝혔다. 북한이 대화에 목말라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북한의 이 같은 대화제의는 현재 한반도 주변에 조성되고 있는 대북압박 국면을 벗어나기 위한 자구책으로 분석된다. 중국은 최근 대북 압박 수위를 점점 높여가고 있다. 자신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핵실험을 강행하는 등 한반도의 긴장을 조성하는 북한이 못마땅했던 탓이다.

심지어 최근 중국 공산당의 한 당국자는 "중국과 북한은 혈맹이 아닌 일반 국가관계"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현재 북한은 대외교역의 70%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이 북한에 등을 돌린다면 북한은 그야말로 고립무원의 처지가 된다. 게다가 우리정부로서는 한ㆍ미ㆍ중 간의 전략적 합의가 공고한 상태에서 남북대화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

과거 북한은 국제적인 대북압박이 강해질 경우 더욱 강력한 도발을 통해 긴장 수위를 높이는 방법으로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어 왔다. 하지만 중국이 이미 북한에 등을 돌린 상태에서 그런 방법을 사용하기에는 북한으로서도 큰 부담이다.

요즘 같이 중국 등 한반도 주변정세가 대북압박 국면으로 바뀐 것은 남북 분단이후 처음이다. 동서냉전 때는 소련과 중국이, 구(舊)소련 붕괴 후에도 중국은 초지일관 북한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줘왔다. 이런 호기에 실익 없는 대화로 북한의 숨통을 틔워주기보단 더욱 북한을 압박함으로써 비핵화 정책을 수용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효과적 방법이란 분석이다.

아울러 북한 대화제의의 진정성도 의심되는 상황이다. 북한은 지난 16일 비핵화까지 언급하며 미국을 향해 대화제의를 했다. 지난 6일 우리 정부에 회담을 제의하면서 비핵화 등 핵문제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던 것을 감안하면 지난 2월 북한의 제3차 핵실험부터 이어진 한반도 긴장국면에서 북한이 보여준 가장 진전된 대화 제의다.

그러나 북한이 언급한 비핵화는 북핵 폐기만을 의미하는 비핵화가 아니라 '미국의 핵 위협을 완전히 종식시킬 것을 목표로 내세운 가장 철저한 비핵화'라고 강조하고 있어 사실상 말장난에 불과한 제의라는 분석도 있다.

그동안 한·미·중 3국은 북한의 핵보유국 입장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대화를 위해서는 북한의 선(先) 비핵화 조치가 필요함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지난 5월 김정은 제1위원장의 특사로 방중한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시진핑 주석에게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해 달라고 요청했던 사실이 알려지며 미국에 대한 북한의 대화 제의가 미-중에 의한 압박을 덜기위한 행동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남북관계 재정립

박 대통령으로서는 어차피 북한이 대화에 진정성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대화를 위한 대화를 해봤자 얻을 수 있는 실익이 없음으로 남북대화가 깨져도 다급해 할 이유가 없다는 분석이다.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남북 관계를 성공적으로 재정립하는 계기가 될지, 남북 관계를 아예 파국으로 치닫게 할 자충수가 될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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