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총리의 ‘무한책임론’ 전말

한국뉴스


 

책임총리의 ‘무한책임론’ 전말

일요시사 0 869 0 0
▲ 국회 인사청문회 직전,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빠진 이완구 당시 후보자

이완구는 박근혜주식회사 바지사장?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갖은 논란 속에 새누리당 이완구 의원이 일인지하 만인지상 자리에 올라섰다. 정확히 지난달 16일 국회 본회의를 통해 임명동의안이 가결된 것에 이어 다음날인 17일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수여 받았다. 이에 이 총리가 그간 실체 없이 소문으로만 무성했던 책임총리가 될 수 있을지 여부에 국민적 관심이 집중됐다.

과연 대한민국에서 ‘책임총리제’가 가능한 것일까. 2012년 대선부터 언급되기 시작한 책임총리제는 그 필요성에 있어서 여야가 어느 정도 공감대를 함께하고 있다. 그동안 소위 ‘제왕적 대통령제’로 인해 폐단이 많았다는 목소리가 국회로 흘러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도 공약사항으로 내세운 바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다른 공약들처럼 허상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방패막이 총리

국민들은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책임총리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김영삼정부 시절의 이회창 총리, 노무현 정부의 이해찬 총리 등 몇몇 거론되는 인사들이 있지만 결국 책임총리라 말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그 중 가장 책임총리에 가까운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많은 정치평론가들은 김대중정부 시절의 김종필 총리를 꼽는다.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고자 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김 전 총리가 막아선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포스트 김종필’로 평가받는 이 총리가 최초의 책임총리가 돼야 한다는 요구가 여야를 불문하고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책임총리로 가는 길은 청문회 만큼이나 순탄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잘못하다가는 책임만 지는 총리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이 좋아 책임이지 기존 총리보다 더한 총알받이가 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들려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 총리는 후보시절부터 계속해서 대통령에게 쓴소리 할 수 있는 총리가 되겠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쓴소리를 하기보다 여야가 박 대통령을 향해 쏘아대는 쓴소리를 대신 받는 모습만 보이고 있다. 마치 왕의 옆을 지키는 재상이 아니라 나쁜 기운을 대신 받아내는 ‘액받이 무녀’가 된 느낌이다.

최근 이 총리를 향한 여야의 요구 발언을 들어보면 그러한 우려가 현실이 되어가는 모양새다.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의 문재인 대표는 지난달 16일 당시 이 총리에 대한 인준안이 통과되자 “새누리당은 다수 의석의 힘으로 밀어붙였지만 국민들을 이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국민들의 뜻을 거슬러서 국민들이 반대하는 총리후보자를 끝내 인준하고 임명한 박근혜 대통령 그리고 새누리당은 그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총리를 직접적으로 겨냥한 말은 아니지만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는 문 대표의 발언은 책임총리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뒤따랐다.

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도 지난달 17일 보도자료를 통해 “총리인준 강행은 국민의 정치적 냉소만 강화시킬 뿐”이라며 “준엄한 시선으로 이완구 총리 행보를 지켜볼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청문회를 통해 드러났듯이 이 총리의 도덕적 결함이 분명한데 대한 두 야당의 경고성 발언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문재인 “박근혜·새누리가 책임지게 될 것”
김무성 “개혁 성과 없으면 돌아오지 말라”

이 총리를 향한 공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25일에 있었던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야당 의원들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다. 새정치연합 이해찬 의원은 이 총리에게 “현 정부에서 의원 겸직 국무위원이 6명이다”라며 “총리까지도 내년 총선에 출마한다면 전체 내각의 기강이 안서고 흐트러질 것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총리만큼은 차후 총선에 불출마하겠다고 이 자리에서 입장을 표명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사실상 총선 출마를 포기하라는 말이었다. 이에 이 총리는 “걱정하는 말씀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것이 마지막 공직의 기회로 삼고 열심히 하도록 하겠다”고 답변했다.

당초 야권의 공세는 예상됐던 바였다. 그러나 여당을 통해서도 유사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이 총리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움이 적잖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23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최고위원들이 모인자리에서 “장관 자리를 경력관리용으로 봐서는 안 된다”며 “앞뒤 눈치 보지 말고 강력한 개혁을 추진하라”고 주문했다. 또한 그는 청와대를 향해 “대통령께서 당에서 (국무위원을) 6명이나 발탁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지만 이제 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지역구의원 중에서는 그만 데려가시기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다.


 



▲ 이완구 국무총리 인사청문회

김 대표는 취임 후 처음으로 국회를 찾아온 이 총리에게 이 같은 속내를 직접적으로 전했다. 그는 “농담이 아니라 개혁의 성과를 내지 않으면 (국무위원들을) 당에서 받지 않겠다”는 뜻을 이 총리에게 전했다. 이는 청와대는 물론 이 총리를 직접 겨냥한 것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어진 이 총리의 대응이었다. 김 대표의 말에 그는 “당에서 환영 받을 수 있도록 저를 포함해 모든 각료들이 최선을 다하겠다”며 저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오늘 첫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개혁과제에 동참하지 못하는 장·차관, 중앙행정기관장에게는 해임건의권한을 발동하겠다고 했다”며 “앞으로 절대 대충하지 않고 확실히 하겠다”고 대답했다. 김 대표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물론 구체적 방안까지 제시한 것이다.

최근 이 총리가 여야 지도부를 대하는 자세는 두 가지로 귀결된다. ‘저자세’와 ‘배수진’이 그것이다. 특히 여러 의혹을 통해 국정을 맡기기에 도덕적으로 심대한 결함을 가졌다는 야당의 평가가 나온 상황에서 국민들이 이에 동조하면서 쭉 겸손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취임 후에는 총리직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발언을 심심치 않게 하고 있다. 몇몇 언론은 이에 대해 이 총리가 배수의 진을 쳤다고 평가했다.

책임만 지다간…

일각에서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으로 밀어붙인 이번 인준이 결국 이 총리를 지금과 같은 상황으로 몰아붙인 것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결국 일련의 과정으로 이 총리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무너졌고, 그로 인해 이 총리는 지금과 같이 저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지금의 이 총리 입장에서는 여야 지도부에게 바른말을 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상황이 그러한데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한다는 것은 더욱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한다.

헌법 86조 2항을 보면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부를 통할한다고 명시돼 있다. 즉 국무총리는 대통령이 동의하지 않는 것을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법적 제약을 거론하며 책임총리의 비현실성을 지적한다. 업무적으로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내치 부분을 총리에게 믿고 맡겼을 때만이 비로소 책임총리가 탄생할 수 있는데, 박 대통령이 지금까지 보여준 통치스타일을 고려해보면 불가능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 총리가 지금과 같은 역할밖에 할 수 없는 가장 큰 요인은 결국 대통령과 주변 참모들의 총리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이라 지적한다. 즉 총리를 얼굴마담이나 방패용으로 한정하는 기존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또 하나의 공약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이 총리가 이러한 제약을 극복하고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chm@ilyosisa.co.kr>

<저작권자 ©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0 Comments
광고 Space available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