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전방 ‘대면병’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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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방 ‘대면병’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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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관련없음

휴전선서 마이크 들고 원맨쇼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북한의 잦은 미사일 실험으로 휴전선에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국군은 핵실험에 대한 대응조치로 북한이 민감해하는 대북 확성기 방송을 전역으로 확대했다. 북한이 학을 떼는 대북 확성기 방송은 이미 잇단 보도를 통해 국민들에게 낯설지 않다. 하지만 운용실태나 구체적인 임무는 베일에 가려진 부분이다. 특히 확성기 방송요원에 대해서는 기밀사항 가운데 하나. 그런 확성기 방송요원의 임무와 활약상에 대해 알아본다

지난 1월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지난해 8월 목함지뢰 도발 이후 4개월여 만의 일이었다. 국군은 북한 핵실험에 대한 대응조치의 일환으로 최전선 11곳에 설치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지난 1월8일부터 일제히 재개했다. 북한은 재개한 대북 확성기 방송에 잇달아 ‘거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철저히 베일에

아예 공개경고장을 통해 “무차별 타격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어지간한 경고나 조치에 꿈적도 않던 북한이 대북방송을 이토록 민감하게 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대북방송이 북한군의 ‘정신’을 파고들기 때문이다. 군사적 공격의 경우 더욱 강한 훈련과 동기부여, 그리고 ‘도발’이란 방법으로 대응할 수 있지만, ‘정신’을 공략하는 대북방송은 대응이 쉽지 않다. 말 그대로 ‘심리전’이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우리 군의 1차적인 대응 수단이다. 무력이 수반되지 않지만 북한군과 주민들을 상대로 한 심리전이라 할 수 있다. 보통 ‘총성 없는 전쟁’이라고 불린다.

확성기 방송요원의 역할은 군내의 기밀사항 가운데 하나다. 대북 확성기 방송 임무를 수행하는 요원은 ‘방송병’과 ‘대면병’으로 분류된다. 방송병은 DMZ 철책에 설치된 대북 확성기를 통해 ‘자유의 소리’를 방송하며 북한 김정은 체제와 4차 핵실험에 대한 비판, 북한의 실상을 알리거나 라디오 드라마, 일기예보, 최신가요 등을 송출한다.

대면병은 방송병과 달리 고지대에 설치돼 있는 ‘고가 초소’에서 북한군을 상대로 말 그대로 대면 방송을 한다. 이들은 쌍방향 대화를 유도함으로써 긴장감을 완화시켜 남한의 실생활을 알리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홍보한다.

벙커 안에 있는 방송병은 밖으로 노출되지 않지만, 대면병은 상대의 표정이나 동작까지도 육안으로 살펴가면서 육성으로 대화해야 한다. 상대의 심리를 잘 읽어내고 적절한 논리로 대응하는 것이 임무의 관건. 그렇기 때문에 대면병에게는 고도의 순발력과 어휘력이 요구된다.

대면병들이 방송하는 초소들은 북측 초소와 불과 1㎞ 안팎의 거리에 위치해 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상대 초소의 병사들의 움직임까지도 육안으로 관찰되는 가까운 거리다. 방송 확성기 소리는 보통 10㎞까지 전달되지만 바람이 부는 날에는 더 멀리 있는 북측 마을까지 방송이 전파된다.

북한 민감해하는 대북방송 임무 수행
때론 직접 약올리기 작전으로 맞대응

국방부는 이들 대북심리전단의 편제나 규모에 대해서 철저히 비밀에 부친다. 국방부 관계자는 “작전보안상 우리 군의 활동에 제한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공개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역 시절 대면병으로 복무한 제대 장병들에 따르면 대면병의 선발과 관련해서는 특별한 기준이 없다. 임무의 특성상 일반적으로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병사 가운데 차출되는 경우가 많다.

병력 충원은 주로 신병교육대에서 이뤄진다. 4주차 훈련병들을 대상으로 심리전단 소속 장교와 부사관이 훈련병 면접을 통해 뽑는다. 차출되더라도 부대 배치를 받기 전까지는 자신의 소속과 임무를 알지 못한다.

대면병들은 자대에 도착해 2주간 특별교육을 받게 된다. 이 교육과정에서 대북 심리전의 의의, 글쓰기, 대응논리 개발법 등을 습득한다.

대면병은 신분을 노출하지 않으려는 조치로 ‘만복이’, ‘동건이’처럼 친숙한 가명을 쓰기도 한다. 또 군복 대신 밝고 화려한 색깔의 트레이닝복을 입고 초소에 올라간다. 감색 바탕에 빨간색 줄무늬 등 멀리서도 눈에 잘 띄는 복장이다. 군복은 휴가와 외출 시에만 착용한다.

대면방송을 할 때에는 친근감을 주고자 친구를 대하듯 반말을 사용한다. 대면 방송은 얼굴을 맞대고 하기에 개인적인 질문도 유도하면서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때론 유치한 말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상대를 자극하는 방식 중 가장 흔한 것은 ‘약 올리기’다. 예를 들어 남한군이 “오늘 점심에 갈비가 나왔는데 너무 맛있었다”고 하면 북한군은 “우리는 질려서 안 먹는다. 세 끼 갈비만 먹다 보니 이가 아파 먹지 못한다”고 대꾸한다.

북한의 대남 심리전도 비슷하다. “우리 개성에 나는 유명한 인삼 맛 아나? 몸에 정말 좋다네. 먹고 싶으면 당장 월북하게. 배터지게 먹을 수 있다네. 부러우면 어서 오라우∼” 국경일 같은 큰 행사가 있는 때는 양측이 경연을 펼친다. 북한은 김일성 부자의 생일, 인민군 창건일, 노동당 창건일 등에 대남 확성기 출력을 높여 화려한 공연을 중계한다.

남한도 마찬가지다. 정기적인 ‘GP의 날’ 행사 때에는 푸짐한 삼겹살과 휴대용 가스레인지, 불판 등이 보급된다. 이 역시 ‘대북 심리전’의 일환이다. ‘삼겹살 파티’는 옥상에서 벌이게 돼 있었다. 북한 측에서도 우리 쪽을 관측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

때때로 ‘노래방 심리전’도 함께 진행된다. 노래방 기기 역시 방송장비 중 하나로 대형 스피커에 연결된다. 여군 하사가 한복을 입고 병사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기도 한다. “우리는 이만큼 잘 먹고 잘 놀고 잘 살고 있다”는 일종의 시위 같은 것이다.

대면병 초소에는 여군도 투입된다. 여성 대면병의 목소리가 울리면 맞은편 북한 초소에서 대면병들이 일제히 쏟아져 나온다. 기다렸다는 듯 남쪽 초소로 시선을 고정한다. 일부는 망원경으로 남측 초소를 관찰하는 등 재미난 풍경이 연출되곤 한다.

입심 심리전

원점타격을 향해 서로 총구를 겨누고 있는 상황이지만 항시 긴장만 흐르는 건 아니다. 20대 병사들 사이에는 그들만의 동질감과 민족적인 교감이 존재한다. 휴전선을 사이에 둔 남북의 대면병들 사이에도 우정이 싹튼다는 것.

대면병들의 수칙 중 하나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북한의 대응이나 역공에도 발끈하거나 흥분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대면병으로 근무했던 사람들은 GP에서 철수하는 날 북쪽 대면병의 “가서 잘 살고 나 잊지 말라우” 라는 말을 듣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던 기억을 회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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