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관들만 날린 박근혜 노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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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관들만 날린 박근혜 노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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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화 나누는 한민구 국방부장관(사진 왼쪽)과 주철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한입으로 두말한 데는 이유가 있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박근혜정부가 소폭 개각을 단행했다. 지난 19일 청와대는 국토교통부·해양수산부장관을 포함한 7개 부처 개각을 발표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그 중 6개 부처의 차관을 교체한다는 소식이었다. 특히 교육부·국방부 등 최근 잡음이 있는 부처가 포함돼 있어 ‘문책성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중 ‘책임장관제’가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국민께 드린 약속을 반드시 실천하는 민생 대통령이 되겠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이 확정된 지난 2012년 12월19일 국민 앞에서 이렇게 약속했다. 약속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대선공약집을 보면 여러 세부공약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중 정치개혁 분야를 보면 ‘책임장관제’를 실시하겠다는 내용이 적시돼 있다.

책임장관제

‘부처의 장관들에게 더 많은 권한을 주는 대신 책임도 엄격히 묻겠다’는 것이 공약의 요지다. 그러나 유일호 국토교통부장관, 유기준 해양수산부장관이 임명된 지 8개월여 만에 자리에서 내려오는 등 ‘임시장관직’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사실상 해당 공약 이행은 물 건너갔다는 것이 정가의 중론이다.

책임장관제는 비단 장관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청와대 측이 지난 19일 춘추관에서 발표한 내용을 살펴보면, 개각 명단 중 차관들의 이름을 대거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교육부·국방부 등 최근에 민감한 이슈들이 다뤄지는 부처의 차관 이름이 포함돼 있어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책임을 져야한 장관 대신 차관을 내친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김재춘 전 교육부차관은 지난 20일 이임식을 갖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일각에서는 그가 물러난 이유를 두고 과거 영남대 교수였던 시절 발표한 논문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김 전 차관은 지난 2009년 ‘교과서 검정체제 개선방안 연구’라는 논문에서 국정교과서에 대해 “독재국가나 후진국가에서만 주로 사용되는 제도”라고 기술한 반면, 검·인정 교과서에 대해서는 “자율성과 창의성을 많이 지닌다”고 분석했다.

결국 현정권이 추진하는 방향과 부조화가 예상된 가운데 논란이 되기 전 꼬리를 자른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교육부에서 그간 국정화 준비나 추진이 지지부진했다는 점 또한 김 전 차관을 물러나게 만든 요인 중 하나로 보고 있다. 즉 ‘국정화 문책’을 차관에게 물었다는 것이 이번 경질을 바라보는 정가의 중론이다. <한국일보>는 지난 21일 ‘원래 경질 타깃은 황우여 교육부장관 겸 사회부총리였지만, 여러 여건 상 김 전 차관 경질로 경고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는 정부 고위 소식통의 말을 전했다.

주철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과 백승주 전 국방부차관 교체를 바라보는 시선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 모두 자진해서 사의를 표명했지만, 실상은 한국형전투기(KF-X) 개발을 위한 기술이전이 무산된 게 발단 아니냐는 시선이다.


 


▲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출석한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사진 왼쪽)

 박근혜정부는 7조4000억원을 투자해 미국으로부터 F-35기 40대를 사들이면서, 더불어 전투기 핵심 기술 이전을 기대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를 수차례 거절했고, 18조원을 투입해 한국형전투기를 개발하겠다는 KF-X사업은 결국 백지화 위기에 놓이게 됐다.

문제는 사업 추진과정에서 보고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 13~16일까지 있었던 박 대통령 방미에 한민구 국방부장관이 동행했다. 통상 대통령 및 고위급 인사들이 해외방문을 할 경우 대부분의 일정과 협상 내용이 사전 조율을 거친다는 측면에 비추어보면, 이번 기술이전 무산 사태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국정은 독재·후진국 제도” 김재춘 경질
주철기·백승주 교체, 문책인가 개인사인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지난 4월21일 핵심기술 4개를 제외한 21개 기술만 이전할 수 있다는 미국의 입장이 방위사업청(방사청)에 접수됐으나, 방사청은 이를 2개월여가 지난 6월8일에서야 청와대에 보고했다. 지난 8월10일에는 한 장관이 애쉬튼 카터 미 국방장관에게 핵심기술 이전을 재차 요청했으나, 답신을 받지 못했다. 한 장관은 지난 15일 박 대통령과 함께 미국을 방문해 다시 한 번 요청했지만, 어김없이 거부당했다. ‘굴욕외교’라는 야권의 주장은 물론 여권에서조차 이번 방미 성과가 퇴색될까 우려를 표하고 있다.

때문에 국방부와 방사청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됐다. 무엇보다 ‘늑장보고’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분위기가 정가에 형성됐다. 그런 와중에 청와대로부터 주 전 수석과 백 전 차관이 사의를 표명했다는 발표가 나오면서 이번 KF-X 사업 책임을 지고 나간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국정화 사태처럼 한 장관에 대한 경고의 의미가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청와대는 반박하고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지난 20일 정치권의 해석에 대해 “문책이라거나 무엇을 덮기 위해 인사를 했다는 시각은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이번 개각에 대해 “국정과제와 개혁의 효율적인 추진이라는 점에서 박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기 전부터 준비해온 인사”라며 정치적 해석을 경계했다. 관계자는 주 전 수석에 대해 “피로감이 쌓여서 여러 차례 쉬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대통령에게 전달한 바 있고 그런 점을 감안해 인사를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백 전 차관에 대해선 ‘내년 총선 출마를 위한 사의’라는 소문이 들려온다.

꼬리 자르기

야당은 개각에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새정치연합) 김영록 수석대변인은 개각 직후 서면브리핑을 내고 “주철기 수석의 경질은 사실상 KF-X 사업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은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누군가 책임을 져야한다면 당시 국방부장관으로 기종선정을 주도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어야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개각이 있은 지 하루가 지난 20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청와대는 책임론을 무마하기 위해 외교안보수석과 외교·국방차관을 교체했지만 꼬리 자르기 개각으로 영공에 생긴 큰 구멍을 메울 수 없다”며 비판했다. 국정운영의 탄력을 위한 개각이 오히려 잡음으로 물든 모습이다.

<chm@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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