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장병의 다리와 맞바꾼 확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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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두 장병의 다리와 맞바꾼 확성기

일요시사 0 1040 0 0

"북한의 의도적이고 불법적인 도발행위는 정전협정과 남북간 불가침 합의를 위반한 것으로,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

전날(12일), 한민구 국방부장관이 서부전선 DMZ 목함지뢰 도발사건과 관련한 여야 의원들의 질의 답변 과정에서 한 말이다. 구체적 대응방법을 묻는 질문에는 "적의 지뢰 도발에 대비해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실시한 것은 전략적으로 의미 있는 대응으로 행동으로 분명하게 보여드리겠다"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우선 조치로 2개소에서 했는데 (방송 장소를) 전면적으로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도 했다.

국어사전을 펴고 '혹독하다'의 뜻을 찾아보면 '성질이나 하는 짓이 몹시 모질고 악하다'라고 표기하고 있다. 한 장관이 '성질이나 하는 짓이 모질고 악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면서 대북 확성기 방송을 택한 것은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너무 직설적이긴 하지만, 군 수뇌부는 이번 지뢰폭발 사고로 소중한 두 장병의 다리와 확성기를 맞바꿨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우리 군에게 직접적인 인명피해를 입혔지만, 우리 군은 북한을 향해 확성기만 틀 수밖에 없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연출됐다. 

실제 대북 확성기 방송이 구체적으로 북한에 어느 정도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일부 군사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심리적 전술'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이보다는 원점을 타격하는 것이야말로 강력한 군사적 응징이라는 게 중론일 뿐이다.

한 장관은 경계 실패를 묻는 국방위원의 지적에 "전술적 수준에서 아쉬운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현재 상황은 책임을 운운하기보다는 전방 장병들이 적 도발에 대비하는 태세를 강화하고 임무수행을 잘 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게 우선 책무"라는 말까지 했다. 물론, 모두 틀린 말은 아니다.

도발에 철저히 대비해 억제토록 하는 것이야말로 싸우지 않고도 승리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문제는 군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지휘보고 체계의 실종과 발빠른 대응력의 부재였다.

사고 발생 직후 신속한 보고체계 속에 인근 북한 초소에 포격 등 보복공격할 수도 있었다. 군은 아쉽게도 사고현장을 수습하기에 바빴고, 이렇다할 어떤 대응도 하지 않았다. 전작권의 부재, 확전의 부담 등 정치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겠으나 이번 조치는 다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자국 병사가 적군이 설치해 놓은 지뢰에 하반신 일부가 훼손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나 군은 물론, 대통령도 사고와 관련해 일절 언급조차 없었다. 심지어 언론을 상대로 엠바로(보도 유예)를 요청하기도 했다.

한 장관은 다음날인 5일, 북한이 설치한 목함지뢰로 추정되는 장치로 인명피해가 있었음을 보고했다고 했으나 역시 NSC(국가안전보장회의)는 소집되지 않았고 나흘이나 지난 8일에서야 열렸다. 게다가 통일부는 9일과 10일, 북측에 고위급 회담을 제안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

다음날 북한을 방문했던 이희호 여사에게도 이 사건을 통보하지 않았다. 북한 정부의 초청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3박4일 일정 중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를 만나지 못한 것도 이 사고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박근혜정부에 '지나간 과거로부터 미래를 준비하는 깨달음을 얻는다'는 온고지신의 지혜를 요구하는 게 무리일까? 매번 잊을만 하면 터지는 반복적인 사고에도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고 있다.

우리 군 장병들 하반신 일부를 앗아간 북한의 목함지뢰 사건이 더 뼈아프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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