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바보’ 윤병소 마포경찰서 생활안전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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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바보’ 윤병소 마포경찰서 생활안전계장

일요시사 0 2908 0 0
매일 무심코 지나치는 지하철 스크린도어. 그저 이용객들의 안전을 위해, 필요성을 느껴서 만들어졌겠지 하고 막연하게만 생각했다. 스크린도어에 얽인 슬픈 사연을 알게 되기 전까지…. 서울지하철 전역에 생명을 지키는 안전한 문, 스크린도어가 탄생하게 되기까진 경찰관 아내의 억울한 죽음이 있었고, 또 억울하게 아내를 잃은 한 경찰관의 외로운 노력이 있었다. 사건발생 8년, 결코 헛되지 않았던 아내의 죽음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펜을 든 남자. 서울마포경찰서 생활안전계장 윤병소 경감이다. 윤 경감은 가슴 속에 담아온 아내 이야기를 수필로 엮었고, 이 작품으로 제12회 경찰문화대전에서 동상을 수상했다. 지난 1일 마포경찰서에서 기자와 만난 윤 경감은 “모든 것은 세월이 흐르면 잊히기 마련이지만 이 글이 아내에게 위로가 되고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지하철역서 아내 잃은 윤 경감, 소송·탄원서 내며 스크린도어 세우기 앞장 . 아내 이야기 담아 써내려간 수필, 2011년 제12회 경찰문화대전 동상 수상

2003년 6월 26일 오전 10시 7분, 윤병소 경감의 부인 안상란(당시42세)씨는 회현역 3-4 승강장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대문시장 의류상가에서 숙녀복 매장을 운영하던 안씨는 밤샘 장사를 마치고 동대문 평화시장으로 원단을 끊으러 가던 길이었다.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났다. 전동차가 역 구내로 들어와 안씨에게 다다른 순간, 노숙자 이모씨가 안씨의 등을 뒤에서 거칠게 밀었다.

무방비상태로 떠밀린 안씨는 전동차 앞부분과 부딪히며 선로 위로 떨어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전동차가 안씨를 덮쳤고, 33톤 무게의 전동차의 왼쪽바퀴가 안씨의 등 위로 지나갔다. 안씨는 가슴부위와 팔이 절단된 채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아내 희생이 만들어 낸 ‘결실’

당시 윤 경감은 종로3가역 지하철 경찰대의 형사반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야간 당직근무를 마치고 아내와 만나 집에 들어 갈 생각에 아내가 간다고 했던 동대문시장 원단가게로 먼저 향하던 길이었다. 도착해서 반복적으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아내가 받지 않자, ‘손님들과 이야기가 길어지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경기도 일산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전화로 “아내가 사고를 당했다”는 비보를 들었다. 불과 몇 분 전까지 통화를 나누던 아내였는데….

믿을 수 없었다. 시신이 안치된 병원을 찾아 아내와 마주했다. 온통 피로 범벅이 된 아내의 얼굴을 본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다. 아내의 입술에, 이마에 키스를 했다.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아내의 얼굴 위로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윤 경감과 안씨는 유난히 부부금슬이 좋았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안씨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것을 좋아하고, 먼 훗날 양로원과 고아원을 차리겠다는 꿈을 키워오던 정 많던 사람이었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한 때 영화배우를 꿈꿀 만큼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데다 애교까지 많아 윤 경감에게 있어 만점짜리 부인이었다. 

윤 경감은 아내의 장례를 치른 뒤 사고역을 관할하는 서울지하철공사에 승강장 안전시설인 ‘스크린도어’ 설치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내 아내의 희생이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 지하철 스크린도어 설치로 인명피해 막아야 한다’는 내용의 기고문을 각 언론사에 보냈다.

“당시 지하철 승강장은 승객들이 추락의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는 무서운 공간이었어요. 지하철 수사대에 근무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승강장에서 추락 또는 투신하여 토막이 난 채로 생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보고 괴로워했었는데, 내 아내의 희생을 계기로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 다시는 이런 참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제가 아내를 위해 할 수 있는 임무라고 생각했죠.”

안씨를 숨지게 한 노숙자 이씨는 살인죄로 징역 12년이 선고됐다. 2003년 8월 윤 경감은 서울메트로를 상대로 승강장에 안전시설을 설치하지 않은 책임을 물어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약 3백 페이지 분량의 증거자료를 생산해 재판부에 꾸준히 제출했다. 그 결과 2년 반 뒤인 2005년 12월 서울메트로가 2억30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이 판결은 시민의 생명과 신체 기본권을 보호하도록 공기업의 의무를 강조하는 ‘적극적인 판결’의 판례가 됨과 동시에 오늘날 서울지하철 승강장에 스크린도어를 설치하게 된 법적 근거가 되었다.

이후 지하철 2호선 사당역에 설치된 스크린도어 첫 가동을 시작으로 2009년 12월 31일 한국철도공사(코레일)구간을 제외한 서울지하철 265개 역 모든 승강장에 스크린도어 설치가 완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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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역에서서 ‘문이 열리고 닫혔다’하는 스크린도어를 보고 있으면 마치 아내를 보는 기분이에요. 진작 스크린도어가 설치돼 있었더라면 저도 지금 쯤 아이들과 아내와 행복했을 텐데 라는 아쉬움도 들고요. 하지만 이제라도 설치가 되어서 이용객들이 안전하게 승·하차 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지요. 아내가 떠난 그 자리에 서울 시민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스크린도어가 우뚝 서 있으니 다시는 그런 불행이 없을 테니까요.” 

모든 게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지만, 하늘나라로 떠난 아내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내의 흔적이 그리워 이사를 했고, 지하철만 봐도 마음이 아파 수년간 타지 못하다 근래부터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당신에게 위로가 되고 싶어요”

가슴에 큰 멍 하나를 안은 채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윤 경감의 마음속에 아내 안씨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그대로다. 윤 경감은 그런 아내에게 위로가 되고 싶어 아내의 이야기를 수필로 써내려갔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글로 위로하는 것이라고 해요. 그래서 글로라도 억울하게 하늘나라로 떠난 제 아내의 영혼을 위로해주고 싶었어요.” 

윤 경감이 완성한 <아내, 서울 지하철 스크린도어가 되다>라는 제목의 수필은 경찰청이 주관한 2011년도 제 12회 경찰문화대전에서 동상을 차지했다. 윤 경감의 작품을 심사한 한 심사위원은 “너무 슬퍼 눈물을 흘리면서 심사했다”는 심사평을 남기기도 했다.

동료직원들의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마포경찰서 내부 통신망에 수상한 글을 올리자 “글을 읽고 가슴이 미어져온다”, “별 생각 없이 이용하는 스크린도어에 저런 가슴 아픈 사연이 있는 줄 몰랐다. 스크린도어 설치에 앞장서신 계장님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고귀한 희생을 기리며 일상에서 열심히 살겠다” 등 수 백개의 댓글이 달렸다.

이런 응원에 힘입어 윤 경감은 4년 남은 정년까지 최선을 다해 마무리를 한 뒤 아내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출간할 예정이다.

끝으로 윤 경감은 “경기도 인구가 서울 인구보다 13.4% 더 많고 경기지역 전철역은 서울의 62.28% 수준이다”라며 “코레일 관할구역인 경기지역 전철 구간 승강장에도 인간의 생명을 지켜주는 안전한 문, 스크린도어 설치가 하루빨리 완료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삶의 한 부분은 어떤 이의 희생이 바탕이 된다. ‘희생’이야 말로 희망이라는 싹을 틔우는 거름이라는 사실을 그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금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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