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도 없는 삼양식품 ‘비밀곳간’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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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도 없는 삼양식품 ‘비밀곳간’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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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도 없는 삼양식품 ‘비밀곳간’ 추적

“18세 황태자 키워라!”…‘전인장 지령’ 받은 찜질방 주인

김성수 기자  2012.03.06 10:21:12

[일요시사=김성수 기자] 사무실이 없다. 직원도 없다. 그 흔한 홈페이지도 없다. 보통 이런 법인을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페이퍼컴퍼니’로 의심한다. 이른바 ‘유령회사’다. 50년 전통의 ‘라면 명가’ 삼양식품이 수상한 회사를 끼고 있다. 정확하게는 받들고 있다는 표현이 맞다. 사명만 노출됐을 뿐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는 삼양식품의 ‘비밀곳간’. 그 실체를 캐봤다.

전인장 삼양식품 회장
▲전인장 삼양식품 회장
삼양 지배구조 핵심 비글스 ‘유령법인’ 의혹
사무실·종업원 따로 없어…“회사 실체 모호”

서울 양천구 목동 목동파라곤 105동 지하 601호. 50년 전통의 ‘라면 명가’ 삼양식품 지배구조의 핵심으로 떠오른 ‘비글스’ 주소다. 그러나 지난달 28일 오전 11시 찾아간 이곳에서 비글스 사무실을 찾아볼 수 없었다.

지하 6층을 샅샅이 뒤져봐도 마찬가지였다. 간판조차 걸려있지 않았다. 엉뚱하게도 ‘스파’가 자리 잡고 있다. 지하 6층 전층을 사용하고 있었다. 정확한 명칭은 ‘파라곤스파’. 말이 좋아 스파지 여느 찜질방과 다를 바 없이 운영됐다.

“찜질방에 무슨
회사가 있겠냐”

스파 직원들도 비글스란 회사에 대해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한 관리인은 “찜질방에 무슨 회사가 있겠냐”며 “여기는 그런(비글스) 회사가 없으니 딴 데 가서 알아보라”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직원들의 날카로운 시선에 쫓겨나듯 스파를 나왔다. 그리고 이튿날 비글스 본사 전화번호인 2654-○○○○로 연락해봤다.

‘예 스파입니다.’

전날 방문했던 스파였다. 비글스의 전화번호도 스파와 같았던 것이다. 스파 안내데스크라며 전화를 받은 직원은 “스파 전화번호가 여러 개 있는데, 이 번호도 그중 하나”라고 했다.

삼양식품의 ‘비밀곳간’인 비글스를 두고 말들이 많다. 식품업계에 실체가 모호하다는 뒷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의 취재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무실이 없다. 직원도 없다. 그 흔한 홈페이지도 없다. 기업공개는커녕 외부감사와 공시도 하지 않고 있다. 이쯤 되면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페이퍼컴퍼니’로 의심해볼 만하다는 게 감독당국의 지적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페이퍼컴퍼니, 즉 유령회사 여부를 판단할 때 가장 먼저 사무실과 직원 존재를 파악한다”며 “특히 매출이 없거나 허위매출이 발생하고 있다면 거의 맞다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꽁꽁’ 베일에 싸인 비글스는 어떤 회사일까. 1961년 설립된 삼양식품은 1963년 한국 최초로 라면을 생산, 이를 기반으로 유지, 장류, 유가공, 사료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그러나 1989년 ‘우지파동’ 사건과 무리한 사업다각화로 1998년 IMF 당시 화의를 신청했고, 이후 뼈를 깎는 구조조정 끝에 2005년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최근엔 ‘나가사키짬뽕’ 히트로 옛 명성을 되찾는 등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다.

우여곡절 와중에 2세 체제가 안착됐다. 전중윤 창업주의 2남5녀 중 장남인 전인장 회장은 1992년 영업담당 이사를 시작으로 경영관리실, 기획조정실 사장 등을 거쳐 2005년 부회장에 오른데 이어 2010년 회장으로 취임했다. 전 창업주는 명예회장으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전 회장이 ‘경영 바통’을 물려받기 직전 소리 소문 없이 생긴 게 바로 비글스다. 2007년 1월 설립된 비글스는 농산물 도소매 업체다. 경영컨설팅 및 기업투자관리, 해외기술알선 등도 사업목적에 포함돼 있다. 당초 강남구 청담동 고급빌라 퍼즐하우스에 ‘둥지’를 틀었다가 2008년 10월 현 주소인 목동파라곤으로 이전했다.

비글스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09년 삼양식품 지배구조의 축으로 떠오르면서다. 프루웰(79.87%), 삼양베이커(50%), 원주운수(20%), 삼양축산(48.49%), 삼양유통(63.09%), 삼양티에이치에스(100%) 등 계열사들을 지배하고 있는 삼양식품의 최대주주는 삼양농수산(33.26%).

비글스는 이 삼양농수산(26.9%)을 장악하고 있다. 결국 비글스가 삼양농수산을 통해 삼양식품과 그 계열사들을 거느리는 위치에 있는 셈이다. 삼양식품 지분(1.66%)도 있는 비글스는 2008년까지만 해도 계열 출자구도의 정점에 있는 삼양농수산 지분이 없었지만, 이듬해 계열사들이 갖고 있던 지분을 넘겨받았다.

이후 비글스가 삼양식품 오너일가의 개인회사로 드러나면서 더욱더 세간의 시선이 쏠렸다. 전 회장의 장남 병우군이 비글스 지분 100%를 소유한 사실이 알려진 것. 이에 따라 비글스는 삼양식품 3세 체제를 위한 ‘전진기지’란 분석이 힘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비글스는 ‘눈치 없는’주식 매매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비글스는 지난해 12월 나가사키짬뽕의 인기로 삼양식품 주가가 폭등하자 주식 12만4690주를 팔아치워 40억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거뒀다. 뿐만 아니다. 앞서 비글스는 지난해 평창이 동계올림픽 수혜주로 거론되면서 대관령목장을 소유한 삼양식품 주가가 2배 가까이 뛰자 잽싸게 지분 14만3290주를 매각해 약 35억원을 챙겼다.

이를 두고 ‘얌체 매매’란 빈축과 함께 ‘먹튀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당시 삼양식품 측은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회사 관계자는 “비글스가 매각한 지분은 삼양식품 전체적으로 봤을 때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며 “회사가 주식을 사고파는 것은 당연한 기업행위”라고 일축했다.

비글스가 삼양식품의 ‘비밀곳간’으로 부상하면서 동시에 비글스를 둘러싼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이상한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그 실체가 모호하다.

대법원 법인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비글스 사무실은 서울시 양천구 목동 917번지 목동파라곤 105동 지하 601호다. 국세청과 금융감독원 등 당국에 신고된 주소지도 같다.

오너 최측근 가신
대표이사직 겸임

그런데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해당 주소지엔 식품사업과 전혀 연관이 없는 찜질방이 영업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찜질방을 운영하고 있는 업체는 ‘휴네트개발’. 비글스와 휴네트개발이 한 주소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두 회사는 전화번호도 같았다. 자본금 5000만원으로 1996년 4월 설립된 휴네트개발은 당초 학습교재를 제작하다 2003년 11월 부동산과 서비스 업체로 전환됐다.

비글스와 휴네트개발의 대표이사도 동일 인물로 드러났다. 비글스 대표이사인 심의전씨는 휴네트개발 대표이사도 맡고 있다. 심씨가 휴네트개발 경영(사내이사)에 참여한 것은 2003년 4월. 대표이사는 2007년 12월부터 역임했다.

이듬해 10월 심씨는 비글스 대표이사까지 맡았다. 비글스가 청담동 퍼즐하우스에서 목동파라곤으로 이전한 시점(2008년 10월17일)은 심씨의 취임일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는 사전에 논의 후 비글스가 휴네트개발로 주소지만 옮겼다는 추론이 가능한 대목이다.

심씨는 전 회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졌다. 회사 내부에선 ‘전인장 그림자’로 통한다고 한다. 인천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심씨는 비글스 외에도 전 회장, 김정수 사장(전 회장 부인)과 함께 삼양농수산 등기임원에 올라있다. 지난해 3월 임기 3년의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특히 심씨는 삼양식품과 삼양농수산에 라면, 스낵, 유제품 등의 포장지를 납품하고 있는 테라윈프린팅 대표이사도 역임 중이다. 1968년 삼양식품 인쇄사업부로 출범한 테라윈프린팅은 2008년 분사했지만, 여전히 삼양식품과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이 회사 경영에 참여한 심씨는 2006년 9월부터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비글스의 직원이 없다는 점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중소기업으로 분류된 비글스가 세무당국에 신고한 종업원은 단 1명이다.(2010년 말 기준) 통상적으로 종업원수에 대표이사도 포함되는 사실을 감안하면 심씨 혼자 회사를 꾸리고 있다는 얘기다. 국내 굴지의 식품기업인 삼양식품을 ‘수하’에 두고 있는 사실상 지주사가 직원 한명 없는 ‘1인 회사’란 점은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휴네트개발 한 직원은 “이곳(지하 6층 스파)에 비글스 사무실과 직원은 따로 없다”며 “딱 구분돼 있지 않지만 다 같이 쓰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은 비글스에 대해 묻자 “뭐 때문에 꼬치꼬치 캐묻냐. 여기서 뭘 하든지 무슨 상관이냐”며 “(비글스에 대해) 자세히 모르고 알아도 알려줄 수 없다”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별도의 사무실과 직원이 없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문이 생긴다. 도대체 무슨 사업으로 실적이 얼마나 되냐는 것이다. 이 역시 지금까지 언론 등에 단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다.

주소지 목동스파로 확인 직원은 ‘사장님’ 단 1명
회사측 ‘모르쇠’ 일관 “오히려 더 의문 키워”

<일요시사>가 입수한 비글스 재무현황 등에 따르면 과일과 채소 등 농산물 도소매가 주사업인 비글스는 2008년 5600만원의 매출을 거뒀다. 2009년과 2010년엔 각각 6억6400만원, 6억700만원을 기록했다. 비글스는 삼양농수산 등 계열사와의 거래로 적지 않은 매출을 올리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비글스의 영업이익은 2008∼2010년 각각 1000만원, 1억700만원, 1억원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인건비는 단 한 푼도 지출되지 않았다. 이는 직원이 없다는 점을 뒷받침한다.

순이익의 경우 2008년 1000만원, 2009년 3300만원에서 2010년 적자(-2700만원)로 돌아섰다. 같은 기간 총자산은 1억900만원에서 29억8300만원으로, 총자본은 5800만원에서 6400만원으로 늘었다. 부채도 5100만원에서 29억1900만원으로 불었다.

비글스 설립 자금의 출처도 불분명하다. 비글스의 자본금은 5000만원이다. 병우군이 지분 100% 소유한 것은 이 돈을 전액 출자했다는 뜻이다.

1994년생인 병우군의 올해 나이는 18세. 2007년 비글스 설립 당시엔 13세였다. 초등학생이었던 병우군이 어떻게 5000만원을 마련했는지 의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병우군은 5세 때인 1999년 삼양식품 지분(0.69%·1만주)을 처음 매입할 당시 취득 방법을 증여나 상속이 아닌 ‘매수’라고 공시해 의아해하는 시선이 많았다.
삼양식품과 휴네트개발 등은 이렇다 할 해명이나 반박을 하지 않아 오히려 더 의문을 키우고 있다. 이들 회사는 모두 <일요시사>의 취재를 사실상 거부했다. 하나같이 피하기에 급급했다.

삼양식품은 비글스와의 관계 등에 대한 질의서를 보냈지만 답변하지 않았다. 회사 홍보실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장남 병우군 소유
13세때 회사 차려

삼양식품 홍보실장은 “비글스에 대해 전혀 아는 사실이 없다. 어디서 뭘 하는 회사인지도 알지 못한다”고 잘라 말했다. 이 말대로라면 삼양식품도 비글스의 실체를 모른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는 이어 “다만 말할 수 있는 부분은 법적으로나 도의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에 유령회사란 표현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일요시사>는 ‘키맨’심씨에게도 정확한 사실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공식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어떠한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휴네트개발 관계자에게 수차례 메모를 남겨도 소용없었다. 이 관계자는 “메모를 전달했다”는 말만 반복했다.

현재 심씨 외 유일하게 비글스 등기명부에 감사로 등재돼 있는 김모씨(대학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비글스 감사를 맡고 있는 것은 맞다. 어찌 어찌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지금은 학교 일로 바쁘다. 나중에 통화하자”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이후 끝내 연락이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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