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사건으로 본] 대한민국 토막살인 총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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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사건으로 본] 대한민국 토막살인 총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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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질을 시작했어, 비명이 새어 나가지 않게…

김설아 기자  2012.04.17 11:14:26

오원춘(42). 경기도 수원시 20대 여성의 사체를 280여 조각으로 나눈 희대의 살인범이다. 수십 년간 범죄 현장을 지켜봐온 현장관계자들과 범죄 심리 전문가들도 이렇게 참혹한 광경은 처음 본다고 말할 정도로 그의 범행 수법은 처참했다.

때문에 그가 무엇 때문에 이처럼 잔인한 범죄를 저질렀는지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과거 대한민국에서 발생했던 엽기적인 토막 살인에 대해서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토막 살인은
언제부터 시작됐나

국내에서 처음 발생한 토막 살인으로 기록되고 있는 것은 부인이 남편을 두 토막으로 살해한 사건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인 1932년 3월 23일 용강군 지문면 문성리에서 부인 정성녀(35)씨가 동침 중이던 자신의 남편의 목을 찍어 죽이고 사체를 두 토막 낸 사건.

당시 정씨는 사체 옆에 앉아서 태연히 바느질을 하다가 자수하였으며, 징역 7년을 구형받았다. 형랑 구형시 정씨의 언행을 근거로 삼아 정신이상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후 다시 토막 살인이 이슈화된 시점은 1990년대 이후다. 1990년 4월 15일 인천에서 동거녀를 토막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정영규(32)씨는 동거 중이던 박문숙(36)씨와 심하게 다툰 뒤 잠자는 박씨를 목 졸라 살해하고 달아났다. 그로부터 3일 뒤 집으로 돌아온 정씨는 쇠톱 등으로 시신을 토막 내 비닐포대에 넣은 뒤 부엌 연탄 옆에 숨겨놓고 달아났다. 

1997년 9월 4일 대전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김정자(33·여)씨는 자신의 집에서 동거 중이던 우성철(38)씨와 심하게 다툰 뒤 우씨가 잠들자 목 졸라 살해했다. 김씨는 우씨의 시체를 토막 낸 뒤 아이스박스에 넣어 5일 동안 보관하는 엽기적인 행각을 하다 자수했다. 

자신의 회사 여경리를 토막 살해한 사건도 있었다. 1998년 11월 10일 동대문구 용두동에서 유령회사를 운영하던 박래용(43)씨는 여자 경리의 재정보증금을 노리고 목 졸라 살해했다. 박씨는 쇠톱 등으로 시신을 네 토막 낸 뒤 머리와 양손은 인근 야산에 묻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을 잡고 흔든
엽기 토막살인사건

2000년대 부터 토막 살인은 그 대상과 살해이후 사체절단 등에서 더 잔혹하게 진화했다. 2000년 5월 21일 경기도 과천에서는 ‘친부모 토막살해’라는 패륜범죄가 발생해 전국이 큰 충격에 빠졌던 적이 있다.

세칭 일류대에 다니던 이은석(24)씨는 가정에 무관심한 아버지, 신경질적이고 이유 없이 학대하는 어머니, 부모의 애정을 독차지하는 형에 대한 불만을 품고 범행을 계획했다.

21일 새벽 이씨는 만취한 상태에서 둔기로 어머니를 살해하고 이어 아버지를 살해했다. 이씨는 살해 후 아버지를 10토막, 어머니를 11 토막을 내고 내장이 너무 많아 부피를 줄이려고 가스레인지에 넣어 태우려고 했으나 잘 타지 않자 꺼내어 비닐봉투에 따로 담은 뒤 집 근처 중앙공원 쓰레기통 등 10여 곳에 내다버렸다.

2003년 인천에선 헤어진 애인의 남자친구를 닮았다는 이유로 20대 남자를 살해한 뒤 자신들이 성폭행한 여성이 보는 앞에서 시체를 토막 낸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구치소 동기인 민모(27)씨와 강모(25)씨는 2003년 1월 11일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고등동 구 버스터미널 앞에서 자가용 영업 운전기사 오모(26)씨를 만나 강릉으로 가던 중 오씨의 승용차를 뺏고 오씨를 트렁크에 감금했다.

1932년 국내 첫 토막 살인부터 ‘수원 토막살인’까지
‘두 토막’에서 ‘280여 조각’으로 잔혹하게 진화

오씨를 데리고 인천 집으로 돌아온 이들은 다음날 오전 오씨가 탈출을 시도한데다 강씨 전 애인의 남자친구와 목소리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주먹과 둔기로 마구 때려 살해했다.

이어 이들은 13일 오후 인천의 한 화상채팅방에서 채팅을 통해 알게 된 정모(32·여)씨를 월미도에서 만나 납치한 뒤 5차례에 걸쳐 성폭행하고 250만원을 빼앗았다.

특히 이들은 정씨가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도록 15일 오전 4시께 집에 보관 중이던 오씨 시체를 꺼내와 정씨가 보는 앞에서 20여 개로 토막 내고 사진을 찍은 뒤 "너도 토막살인 공범이니 신고 할 테면 해봐라"며 엽기 행각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 7월 29일 경남 마산에서는 모녀가 남편이자 아버지를 토막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부인 고모(55)씨와 정형외과 간호사이던 딸 손모(26)씨는 29일 오후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와 "죽인다"며 흉기로 위협하는 손모(53)씨의 흉기를 빼앗아 살해했다.

이후 완전 범죄를 노려 집안 욕실에서 사체를 10등분으로 토막 낸 뒤 팔 등 일부 사체토막은 집근처 공원에, 머리 부분 등은 범행 다음날 렌터카를 이용해 야산에 각각 유기했다. 특히 이들은 사체가 발견되더라도 신원을 알 수 없도록 사체의 손가락에서 지문을 도려내는 치밀함을 보였다.

2005년 6월 17일에는 아내를 살해한 뒤 시신을 토막 내 집 안에 묻어 숨겨두고 3년간 함께 지내다가, 내연녀까지 살해한 인면수심의 60대 남자가 경찰에 붙잡혔다.

목수 일을 하던 권모(66)씨는 2002년 10월 28일 집 뒤편 목공소에서 아내 손모(58)씨와 도박문제로 말다툼을 벌이다 손씨를 목 졸라 살해한 뒤 안방 바닥을 파고 시신을 묻었다.

이어 2003년 1월에는 집 보수공사를 하면서 아내의 시신을 토막 내 안방과 거실 현관 쪽에 각각 묻었고, 당시 아내를 살해한 뒤 가출신고를 하고 3년 동안 시신이 묻혀있는 집에서 혼자 생활해 온 것으로 드러나 주위를 경악케 했다.

범행을 은폐해오던 권씨는 빌린 돈 1억여 원을 갚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연관계이자 친구인 부인인 서모(63)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2006년에는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를 토막살인 한 사건이 두 건이나 발생했다. 2006년 10월 2일 경기도 고양시에선 바람난 아내와 이혼을 협의하다 홧김에 목 졸라 살해한 뒤 시신을 토막 내 바다와 강 등에 유기한 김모(47)씨가 붙잡혔고, 2006년 10월 11일에는 강화도의 한 포구 근처에선 훼손된 시신의 일부가 발견됐는데 이 역시 4번이나 바람피운 아내를 눈감아 주었지만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자 토막 살해한 사건이다.

이후에도 토막 살인은 계속해서 이어져 왔다. 공공시설인 지하철역에 연인이던 여성의 토막시신을 유기했던 안산 토막살인 사건, 일산 육군 중사가 자신의 여자 친구를 토막 살해한 사건, 현직 목사가 성관계를 거부한다는 아내를 목 졸라 살해한 뒤 토막 낸 사건, 미혼모가 자신의 아이를 질식사 시킨 뒤 토막 내 화장실 변기에 버린 사건 등 이다.

토막 살인을 자행한
기막힌 이유는?

그렇다면 왜 이렇게 끔찍한 토막 살인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걸까. 이에 앞서 살인자들의 살해 대상과 동기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살인범에 대한 감정사례를 분석한 정신의학자의 연구논문을 보면 살해대상자는 부모, 형제, 친척, 이웃 등으로 자신과 보다 가까운 대상이 선택되며 아주 낯선 대상이 선택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낯선 대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아주 낯선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망상과 유관한 대상이기 때문에 아주 무관한 대상만은 아니 라는 것. 예를 들면 가정 내 살인인 경우가 57%, 지인간이 32%, 무지인(면식이 없는)이 11%라고 한다.

2000년대 이후 발생했던 과천 친부모 토막 살인사건, 또는 마산 모녀 토막살인 사건 등이 적합한 예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안전을 방해하면 그 방해물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무의식이 잠재되어 있는데 그러한 충동, 격정, 억압된 감정이 어느 땐가는 표출된다.

지속적으로 위협하는 존재가 사라지지 않는 한 사람들은 질투와 반감 미움 그리고 분노와 함께 공포에 이르게 된다. 가정이 사랑의 보금자리가 아닌 ‘지긋지긋한 곳’이라던 친부모 토막살인 사건의 범인 이씨의 범행 동기가 그랬고, 수십 년간 가정폭력에 시달려온 마산 토막살인 사건의 두 모녀 역시 같았다.

그러나 최근엔 살해 대상자가 불특정 다수가 되거나 특별한 동기 없는 살인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것은 가해자ㆍ피해자가 발견되지 않거나 혹은 범죄 상황이 복잡한 요소들로 둘러싸여 그 원인을 결정지을 수 없는 완전히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살인이며, 이유 없는 살인이라고도 한다.

지난 1일 발생한 수원토막살인 사건의 범인 오원춘이 적합한 예이다. 이 같은 살인범들이 나타내는 특징 중 하나는 자신의 범행에 대하여 냉담하고 무감각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예로 오원춘이 피해자를 살해한 후 태연한 얼굴로 시신을 나눠 담을 까만 봉투를 구하러 다녔다는 것과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 보다는 ‘여성이 재수가 없었던 탓’으로 돌리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남편·애인·동거녀·여경리 등 주변서 불특정 다수로
왜 토막살인인가, “단순 운반 목적…쾌락 느끼기도”

결과적으로 이렇게 벌어진 살인이 잔혹한 토막 살인으로 이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살인사건이 발생한 뒤 시체를 처리해야하는 가장 큰 문제가 남기 때문이다.

토막 살인이 이뤄지면 토막 난 사체를 찾아내는 것도 힘들 뿐 아니라 피해자의 신원을 파악하는 것도 어렵게 된다. 그렇다보니 일부 살인자들은 사체절단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토막 살인이 미제 사건이 많은 것도 그 이유일 수 있다.

그러나 토막살인 이라는 그 범죄 행위 자체에 관심이 집중되어 무조건 피의자를 엽기적인 살인마라든지, 인간의 탈을 쓴 악마로 매도하는 것에는 오류가 있다는 지적이다.

토막살인 사건이 벌어지는 것은 범인이 포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시체를 주위 사람들 몰래 처리하기 위해 토막을 낸다는 것이 수사관들의 공통된 진술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싸이코패스이자 연쇄살인범 유영철처럼 시신을 자르면서 흥분을 느끼는 쾌락살인을 느끼는 자도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론 토막살인 이라는 범죄행위 그 자체에 초점을 둘 것이 아니라 토막 살인이 왜 발생하였는가, 토막 살인한 범죄자의 행동 하나하나에 '왜'라는 물음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며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범인, 아니 한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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