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진당 자폭’에 이재오 가슴 철렁한 내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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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진당 자폭’에 이재오 가슴 철렁한 내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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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은 함박웃음 짓는데 웬 식은땀?

홍정순 기자  2012.05.21 11:25:57

[일요시사=홍정순 기자] 통합진보당 사태가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폭력사태에 분당 위기감이 최고조에 이르면서다. 진보진영의 자폭에 새누리당은 연신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는 양상이다. 하지만 유독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인사도 눈에 띈다. 바로 6인회의 주역 ‘왕의남자’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이다. 홀로 웃지 못하는 이 의원의 말 못할 사연은 과연 무엇일까.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이 부정선거 논란으로 격랑에 휩싸였다. 통진당은 지난 3월의 여론조작에 이어 비례대표 경선조작까지 부정선거 논란으로 국민적 신뢰도가 바닥을 치는 상태다. 이제 사태는 당권파와 비당권파 간의 폭력사태로까지 번지며 ‘분당’이라는 위기감이 고조됐다. 논란이 확산되자 대선정국에서 야권연대 여부도 불투명해진 상태다. 통진당의 자폭으로 새누리당은 웃음 틀어막으며 표정관리에 한창이다.

노심초사‧전전긍긍…왜?

하지만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은 유독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통진당의 불똥이 그에게 튈까봐 전전긍긍하는 것. 바로 자신의 과거전력 때문이다. 통진당의 부정선거 배후로는 당권파인 범경기동부연합이 지목되면서다. 경기동부연합은 주사파에 뿌리를 두고 있다. 주사파는 김일성의 소위 주체사상을 지도이념과 행동지침으로 내세운다.

특히 북한의 남한혁명노선이라고 하는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혁명론을 추종하며 민족해방(national liberation)을 강조하였기 때문에 NL파라고도 불린다. 이러한 주사파는 1962년의 인혁당, 1968년의 통혁당, 1979년의 남민전, 1989 민혁당으로 이어져왔다. 바로 이중 이 의원은 남민전에 몸담은 전력이 있다. 

남민전은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의 약칭으로 반유신과 민주화, 민족해방을 목표로 지난 1976년 2월 이재문‧신향식‧김병권 등이 결성한 비밀단체다. 이들은 한국민주투쟁위원회를 결성하여 유신체제를 비판하였고, 유인물과 기관지를 제작하여 배포하였다. 이른바 ‘삐라 살포’다.

이 의원은 1976년 10월 가입했으며 여기에서 암호명(CODE NAME) ‘한국주’를 부여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남민전 강령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박정희 독재정권의 타도로 반체제 인사들을 광범위하게 포섭하여 ‘민투’를 조직하고 민투조직을 관리하는 것이다. 이 의원은 이해경‧신향식 등과 함께 민투의 지도위원이 됐다.           

대검찰청이 작성한 ‘좌익사건 실록’에 따르면 이 의원은 당시 중앙대학 농촌사회개발과에 재학 중 한일회담 반대인 6‧3 데모로 제적당하자 정권에 대해 불만을 품었다. 이윽고 1971년 4월 민주투쟁을 위한 명분으로 민주수호 청년협의회를 결성하여 회장에 취임하여 반체제 활동을 해왔다. 그는 1972년 10월 유신 이후 반공법 위반, 긴급조치 위반 등으로 몇 차례 구속되자 반정부 의식을 더욱 굳게 하여 정권타도에 나섰다.

이재오 NL계열인 남민전서 공작활동…코드네임은 ‘한국주’  
창업공신 6인회 중 홀로 남았는데…과거 덫에 발목 잡히나? 

이 의원은 당시 수많은 사람들을 민투에 가입시키고, 불온삐라 살포 작전을 주도하고, 신문에 싼 폭탄 등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공안당국은 1979년 11월 지하 비밀조직인 남민전 관련자 80여 명을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등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 당시 이 의원은 비교적 무거운 15년의 구형을 받고, 5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 의원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인도로 한나라당에 들어와 본격적인 정치활동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보수진영에서는 남민전은 월남의 공산화에 고무되어, 반정부 무장투쟁을 목표로 결성된 간첩단체로 평가한다. 당 일각에서조차 이 의원의 전향을 일컬어 ‘트로이의 목마’라고 할 만큼 아직도 의구심을 다 걷어내지 못한 눈치다.

33년 전 전력은 아직까지도 집요하게 이 의원을 추궁하고 있는 것. 진보진영의 자폭으로 수면위로 떠오른 주사파에 이 의원의 등골이 오싹한 이유다.

무엇보다 이 의원은 무너지는 6인회 멤버들과 다르게 지난 4‧11 총선에서 금배지를 달며 겨우 체면치레를 한 상태다. MB정권 창출의 주역인 6인회(이명박‧최시중‧이상득‧박희태‧이재오‧김덕룡)는 창업공로를 인정받아 MB정권에서 권력의 ‘핵’으로 급부상했다.

청와대와 국회 및 한나라당 등의 요직을 차지한 것. 이들은 각료 인선에 주도적인 역할뿐만 아니라 이 대통령과 수시로 만나 정국현안을 논의하는 등 MB정권에서 무소불위의 ‘실세’로 자리매김했다.

통진당 사태에 NL 수면위로

하지만 임기 말 정권의 힘이 빠지며 치부가 드러나자 6인회 멤버 대부분이 줄줄이 철창신세를 예고한 상태다.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은 이미 구속됐다. 이상득 새누리당 의원과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검찰의 칼끝에 목숨이 위태로운 상태다. 이명박 대통령도 임기 중 형사고발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한때 친이계의 좌장으로 통했던 ‘왕의 남자’ 이 의원마저 친이계의 몰락과 와해로 당 내 입지가 현격하게 줄어든 상태다. 그는 요즘 안 그래도 초라해진 당 내 위상에 통진당 사태의 불똥까지 튈까 전전긍긍하며 가슴 졸이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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