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감싸는 '수상한 성북동' 이야기

한국뉴스

도둑 감싸는 '수상한 성북동' 이야기

일요시사 0 980 0 0

훨훨 나는 대도들…설설 기는 부자들

[일요시사=한종해 기자] 돈이 많다면 당장이라도 살고 싶은 동네. 고급 주택과 외국 대사관저가 많아 경찰과 보안업체가 수시로 순찰을 도는 동네. 하지만 역설적으로 도둑이 많은 동네. 서울 성북동이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 최측근인 한 인사의 집에도 도둑이 들었다. 피해액은 '억'소리가 날 정도지만 한 달이 지나서야 뒤늦게 알려졌다. '간 큰 도둑'들이 '만찬'을 즐기고 가는 데도 신고도 제대로 못하는 '부자'들, <일요시사>가 그들을 집중 조명했다.

북쪽에는 북한산이 서 있고, 서울 성곽이 부채꼴로 에워싼 성북동은 예로부터 풍수적으로 명당으로 꼽혔다. 여기에 1968년 북악산길과 삼청터널이 개통되면서 도심과의 접근성이 높아졌고 재벌가 사람들의 호화 저택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보안수준'도 최고
'도둑수준'도 최고

성북동은 삼성, 현대, LG 등 재벌가 사람들과 주한외국대사관저들도 몰리면서 서울의 대표적 부촌으로 명성을 쌓았다. 타워팰리스 등 대규모 호화 주거시설이 들어선 도곡동과 '한국의 비버리힐즈'로 떠오르고 있는 청담동도 있지만 지금도 서울에서 재벌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는 동네는 성북동이다.

성북동이 유명한 이유는 또 있다. 바로 '간 큰 도둑'이다. 성북동이 부촌으로 떠오르면서 자연스럽게 도둑들의 시선도 몰리기 시작했다. '대단한' 사람들이 몰려 사는 만큼 보안수준이나 경비상태도 삼엄하지만 그 만큼 외부와 단절돼 절도범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 절도 소식은 잊을만하면 '불쑥' 잘도 튀어나왔다. 지난달 이명박 대통령 최측근 인사의 집에 도둑이 들었던 사실도 최근 알려졌다. 범행 한 달만이다.

서울 성북경찰서는 지난달 22일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의 서울 성북동 주택에 도둑이 침입해 10돈짜리 금목걸이 1개와 다이아몬드 반지 2개 등 금품을 훔쳐갔다고 지난 21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피해자가 "다이아반지가 몇 캐럿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진술해 정확한 피해금액은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억대에 이르는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집이 비었던 당일 오전 10시에서 오후 2시 사이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천 회장 가족은 당일 외출했다 귀가해 보니 천 회장 부인이 핸드백에 넣어뒀던 귀중품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뒤 집사가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MB친구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다이아 도난 
이웃들 하나같이 묵묵부답 "냄새가 난다"

천 회장의 집 주변에는 다양한 각도를 비추는 CCTV가 설치돼 있지만 천 회장 가족은 도난 사실을 파악한 뒤 뒤늦게 자체적으로 보안 장비를 설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절도범이 사전에 상대적으로 보안이 취약한 천 회장의 집을 범행대상으로 선정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또 비슷한 시기 천 회장 자택 인근의 모 기업체 사장이 사는 다른 고급 주택에도 동일범으로 추정되는 도둑이 침입해 수억원 상당의 금품을 훔쳐간 것으로 알려졌다.

성북경찰서는 강력반 두 개 팀을 투입해 수사를 하고 있지만 아직 단서를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사건 발생 후 천 회장 주택 주변에 설치된 CCTV 화면 분석 등을 통해 용의자를 추적 중"이라고 말했다. 또 "인근 주택에도 도둑의 침입 흔적은 있으나 훔쳐 간 것으로 신고된 물품이 없다"며 "다른 집들에 대해서는 절도 미수에 그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천 회장은 이 대통령과 고려대 상대 61학번 동기로 '대통령의 후견인'으로까지 불리며 정권 초기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2009년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또 지난해에는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인 임천공업의 이수우 대표로부터 세무조사 무마 청탁과 함께 47억여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6월 징역 2년6월을 선고받았다.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된 천 회장은 지난해 9월 '심장 발작 우려가 있어 입원치료가 필요하다'는 구속집행정지 요청이 받아들여져 현재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입원 치료중이다.

MB 후견인 천 회장
정권 초 영향력 과시

지난해 9월 발생한 이봉서 단암산업 회장 집 절도 사건도 유명하다. 검거된 용의자가 15년 전 성북동과 한남동 일대 주요 재계 인사들의 집을 골라 절도행각을 벌여 일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대도' 정모씨였기 때문이다. 정씨는 1997년 7월 친형과 함께 성북동과 한남동 일대 재계 인사들의 집에서 수억원대 금품을 털다 경찰에 붙잡혔다. 정씨 형제는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발간한 '한국재계인사록'을 입수해 기업 회장의 자택 5곳을 골라 대낮에 침입 모두 5억8000만원어치의 금품을 강탈했다.

이 회장은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의 사돈이며 6공화국 시절인 1988∼1990년 동력자원부 장관과 1990∼1991년 상공부 장관을 지냈고 현재는 한국능률협회 회장으로도 재임하고 있다.

정씨는 당시 친형과 함께 최순영 전 신동아 그룹 회장 등 재계 인사들의 집만 골라 수억원의 금품을 훔쳤다. 당시 정씨 형제는 물방울 다이아몬드 등 희귀 귀금속 등을 훔쳤으나 오히려 피해자 상당수가 신분 노출을 꺼려 도난품을 찾아가지 않은 사건으로 더 유명했다.

털리고도 '쉬쉬' 알려질라 '벌벌'

이 회장 집에 대한 범행 수법도 대도다웠다. CCTV가 즐비한 성북동 부촌에서 그가 이 회장 집에 침입한 시각은 오후 2시30분께였다. 그 시각 이 회장의 집 대문은 열려있었다. 사건 발생 직전 택배가 배달되면서 현관문이 열린 채로 있었는데 범인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집 안으로 잠입했다.

빈 집은 아니었다. 가사도우미 한 사람이 집을 지키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범인은 집안에서 다이아몬드와 순금 거북이를 비롯해 5000만원 상당의 물품을 훔쳐 달아났다. 범인이 집을 떠난 후에도 가사도우미는 도둑이 들었다는 사실을 한동안 알지 못했다.

여기까지는 완벽한 대도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치밀하지는 못했다. 이 회장 집 주변 CCTV화면에서 정씨는 자주 등장했다. 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가 나온 뒤 경찰이 자신을 쫓고 있다는 걸 예상할 수 있었는데도 휴대폰을 끄지 않아 경찰에게 실시간으로 현재 위치를 제공했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은 "범행 수법도 정씨가 1997년 벌였던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1997년 성북동·한남동 고급 주택가에서 절도 행각을 하고 해외로 도피했다가 2006년 검거돼 징역형을 선고받은 뒤 지난해 7월 출소한 정씨는 결국 사건발생 14일 만에 충북 영동군 경부고속도로 황간휴게소에서 경찰에게 체포됐다.

보기보다 허술한
성북동 보안상태

경찰은 정씨를 체포한 뒤 정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은 증거부족을 이유로 기각했다. 이에 경찰은 정씨가 훔친 금품을 홍콩 마카오에서 처분한 행적을 확인하고 현지에 수사관을 급파해 전당포에 맡긴 일부 장물과 장물을 처분한 돈으로 추정되는 현금 1100만원등 증거물을 추가로 확보한 뒤 이를 바탕으로 구속영장을 재신청, 결국 정씨는 구속됐다.

정씨가 체포되던 날 또 다른 절도미수범인 전모씨도 경찰에 붙잡혔다. 정씨가 이 회장의 집을 털기 불과 15일 전 전씨는 한종우 국민대 이사장 자택에 창문을 통해 침입해 물건을 훔치려다 이사장에게 발각돼 격투를 벌이고 달아났다.

전씨는 비탈길이 많은 성북동 특성상 담장이 낮은 경우가 많은 것을 이용해 손쉽게 안으로 침입했다. 방범용 CCTV 또한 주로 골목 입구나 대문 앞에만 설치돼 있어 담장 쪽은 상대적으로 치안이 허술했다. 게다가 전씨가 열린 창문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가 경비업체의 경보시스템도 작동하지 않았다.

당시 경찰은 CCTV에서 맑은 날에도 우산을 쓰고 다닌 60대 남자를 추적, 절도 전과 6범의 전씨임을 확인하고 그를 검거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경찰 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전씨가 평소엔 교회 장로로 활동하는 등 '이중생활'을 해온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것. 전씨의 부인과 이웃들은 그를 '착하고 마음 여린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다.

부자들 웃고 있어도 눈물 나는 이유 왜?
상당수 신분 노출 꺼려…도둑들 ‘안심’

착하고 신앙심 깊은 남편이라 믿고 살아온 전씨 아내는 경찰조사에서 "남편이 일주일에 이틀은 새벽녘에 귀가하곤 했다"며 "얼마 전에는 갑자기 진주목걸이를 선물로 주기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전시는 경찰 조사 과정 내내 눈물을 흘린 것으로 알려졌다.

절도사건은 우리주변에서 너무도 흔하게 발생한다. 경찰범죄통계에 따르면 전국 절도 발생수는 2003년 18만7352건, 2005년 15만5311건, 2005년 18만8780건, 2006년 19만2670건, 2007년 21만2458건 순으로 꾸준히 증가해 왔다. 2007년 기준 빈집에 대한 침입절도는 3만6392건으로 17%에 해당한다. 주변에서 절도피해가 발생하면 대부분 피해자는 절도사실을 경찰에 알리고 피해 물품을 돌려받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지금껏 성북동에서 발생한 절도사건에서는 이런 적극적인 모습의 피해자들을 거의 발견할 수가 없다.

지난 2008년 10월17일 발생한 강성천 당시 한나라당 의원의 집 절도사건이 대표적이다.

사건은 당시 새벽 3시께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위치한 강 전 의원의 집에 도둑이 들면서 시작됐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즉시 현장으로 출동했고 조사 결과 "도둑은 강 의원의 가족이 잠든 사이 다용도실 창문을 통해 침입했으며, 현금 155만원과 500만원권 수표 1매, 100만원권 수표 3매, 10만원권 수표 80매, 여성용 명품 손목시계 1개, 1캐럿 짜리 다이아 반지 1개 등 약 1억원 상당의 금품을 훔쳐 달아났다"고 밝혔다.

여기까진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당시 SBS <8시 뉴스>에서 불거졌다. <8시 뉴스>는 2008년 11월8일 "모 의원이 도난당한 금품 가운데 귀금속 등은 국회의원 재산신고 내역에 없는 것들이다" "신고 몇 시간 뒤 피해 의원측은 도난당한 물건이 없다며 수사를 의뢰하지 않겠다고 밝혀 경찰에 절도 사건으로 접수되지 않았다" "해당 의원은 개 짖는 소리에 놀라 가족들이 신고한 것일 뿐 도둑이 든 적은 없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를 두고 누리꾼들이 문제를 제기했고 결국 강 전 의원은 다음 날인 9일 보도자료를 통해 해당 의원이 자신임을 밝히면서 "절도 사건을 경찰에 신고한 후 신고를 취소하거나 수사요구를 철회한 바 없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절도사실 사건발생
한달 만에 알려져

누구 말이 맞든 강 전 의원의 집에 침입했던 도둑은 어디선가 웃고 있었을 것이다.

천 회장 집 절도사건도 마찬가지다. 사건은 지난달 22일 발생했는데 알려진 것은 한 달 뒤인 지난 21일이다. 경찰은 피해자가 사실을 알리지 말아달라는 부탁이 있어 사실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사건이 알려졌음에도 이웃들과 동네 주민들은 아직까지도 '쉬쉬'하는 분위기다. 뭔가 '냄새'가 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0 Comments
광고 Space available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