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뒷담화] '천우신조회' 금융거물들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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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뒷담화] '천우신조회' 금융거물들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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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스로 살아 돌아와…어디서 뭐하나

[일요시사=경제1팀] '천우신조회' 얼핏 사이비종교를 연상케 하는 이 모임은 한때 잘 나갔던 금융 인사들이 특별한 의미로 만든 친목 단체다. 미국에서 벌어진 9·11 테러 당시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금융계 거물들이 주인공. 하늘의 도움으로 화를 모면한 '행운남'들은 지금 어디서 뭘 하며 지낼까. 그들의 동향을 알아봤다.

2001년 9월11일. 미국 뉴욕의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 쌍둥이빌딩이 힘없이 무너졌다. 전 세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테러로 인한 희생자는 3000여 명에 달했다. 당시 테러 현장엔 국내 금융계 거물들도 있었다.

'이헌재, 위성복, 신동혁, 홍석주, 하영구, 박창배, 김은상, 윤영석….'

다행히 참변은 당하지 않았다. 이들은 증권거래소의 상장 우수기업 뉴욕 기업설명회와 투자설명회에 참석하는 등 모두 테러가 발생한 월가에 머물렀다가 가까스로 화를 면했다. 뉴욕 월가에 있는 아스토리아 호텔에 함께 머물렀다. 사고 이후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공항으로 향한 이들은 운항을 재개한 서울행 비행기에 동승했다. 이 인연으로 만든 모임이 바로 천우신조회다.

'하늘이 도왔다'

하늘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화를 모면했다는 의미의 천우신조회 멤버들은 지금까지도 만남과 교류를 이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임을 주도한 위성복씨는 "특이한 인연으로 만나 서로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모임을 결성했다"며 "서로 만나면 당시 생생한 기억들이 화제가 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하늘이 살려줬다고 생각했던 천우신조회 멤버들은 그동안 어떻게 지냈을까.

9·11 테러 당시 중소기업협동조합 중소기업경영전략위원장이었던 이헌재씨는 잠시 서울대 경영대학 초빙교수로 있다가 2004∼2005년 재정경제부 장관 겸 부총리를 역임했다.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제기돼 관직에서 물러난 그는 대형로펌인 김앤장 비상임 고문으로 있다가 현재 컨설팅업체인 코레이와 회계·컨설팅업체인 언스트앤영 상임고문, 한국이사협회 명예회장 등을 맡고 있다.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후보의 경제멘토로 등장해 화제가 됐던 이씨는 아직까지도 이른바 '모피아(금융관료) 대부'로 불릴 정도로 금융기관에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평이다.

천우신조회를 만든 위성복씨는 사고 때 조흥은행장 자격으로 월가에 있었다. 위씨는 조흥은행 이사회 의장과 조흥은행 회장을 맡는 등 2003년까지 승승장구 하다 임기를 남겨두고 조흥은행과 신한은행이 합병되면서 은행을 떠났다. 이후 행담도 개발과 관련해 260억원 대출 개입 의혹을 받아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위씨는 2005년 단말기 제조업체인 이노츠의 대표이사 회장으로 취임했다가 불과 3개월 만에 물러나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테러 당시 한미은행 회장이었던 신동혁씨는 2002∼2005년 전국은행연합회 회장을 끝으로 40여년간의 은행원 생활을 마감했다. 신씨의 부인 배찬병 전 생명보험협회 회장도 비슷한 시기에 임기를 마감해 부부동반 은퇴로 시선을 모았다.

9·11 테러 당시 위기 모면 인연으로 모임 결성
서울대·호남 출신 주축…지금은 대부분 은퇴

천우신조회 회원 중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홍석주씨다. 위씨와 함께 뉴욕에 방문해 테러 광경을 목격했던 홍씨는 조흥은행 기획재무본부장(상무)이었다. 이듬해 49세 나이에 조흥은행장으로 발탁되면서 천우신조회 회원으로 가입한 그는 보수적인 은행권에 40대 행장시대를 연 인물로 주목받다가 은행 매각에 따른 직원들의 파업에 대한 책임을 지고 1년 만에 물러났다. 이후 금융발전심의회의 은행분과위원, 한국증권금융 사장, 한국투자공사 사장 등을 거쳐 지금은 로커스캐피탈파트너 대표, 제일모직 사외이사로 지내고 있다. 지난 3월엔 부인이 세상을 떠나는 슬픔을 겪었다.

세계무역센터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머물고 있었던 하영구씨는 한미은행장 신분으로 미국에 방문했었다. 1년 뒤 금융발전심의회의 은행분과위원을 지내고 2004년부터 한국씨티은행장과 한국씨티금융지주 회장을 맡아 내리 4연임했다. 전무후무한 '최장수 은행장'이란 타이틀을 갖고 있는 하씨는 내년 3월 임기가 끝나 5연임 여부에 금융권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성공할 경우 무려 15년간 장기집권하는 셈이다. 한국씨티은행 안팎에선 갖가지 추측과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증권거래소 이사장 시절 사고 현장 근처에 있었던 박창배씨는 2003년부터 교보증권 이사회 의장과 사외이사를 맡았다. 2007년 교보증권 대표이사 사장에 선임됐지만 1년 만에 전격 경질됐다. 이후 금융계에서 은퇴해 별다른 대외활동 없이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1년 모건스탠리 한국지점장에서 살로먼스미스바니증권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된 김은상씨는 새 업무를 시작한지 2개월 만에 큰일을 당할 뻔 했다. 2002년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 대표이사 사장을 거쳐 2005년 SC제일은행 투자금융사업부문 대표(부행장)를 지냈다. 2009년 삼정KPMG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지난해 우리금융지주 회장 공모에 지원, 서류 심사를 통과했지만 막바지에 도전 의사를 철회했다. 이어 한국예탁결제원 사장에도 도전했으나 최종 투표 결과 낙마했다. 삼정KPMG 부회장직도 내려놓은 상태다.

이상하게 안 풀려

천우신조회 멤버 중엔 유일하게 기업인도 있다. 바로 윤영석씨다. 윤씨는 사고 당시 두산중공업 대표이사 사장과 플랜트수출협의회 회장을 겸임하고 있었다. 9·11 테러 이후 두산중공업 부회장으로 승진한 그는 한국플랜트산업협회 회장, 한국기계산업진흥회 회장 등도 역임하다 2006년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현재 두산중공업 고문으로 있다.

금융계 관계자는 "천우신조회 멤버들은 대부분 광주, 장흥, 강진, 광양 등 호남 출신으로 평소에도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며 "또 이헌재, 위성복, 신동혁, 홍석주, 하영구, 김은상, 윤영석 등은 모두 서울대 동문으로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인연을 맺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김성수 기자<kimss@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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