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가는 '태광 일가' 유산싸움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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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가는 '태광 일가' 유산싸움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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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불친 재산 내놔”…이씨 남매 ‘쩐의 전쟁’

[일요시사=경제1팀] 점입가경이다. ‘막장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태광그룹 남매 간 상속재산 다툼을 두고 하는 말이다. 구속된 동생과 어머니가 보석허가를 받아 투병 중인 상황에서 누나이자 딸이 상속재산을 둘러싸고 소송을 걸었다. 피는 물보다 진하나 돈보다는 묽다는 말을 실감케 하는 태광그룹의 ‘쩐의 전쟁’을 들여다봤다.

태광그룹 남매의 재산싸움은 지난 2010년 검찰의 비자금 수사에서 비롯됐다. 창업주의 차명재산이 검찰 수사 과정에 뒤늦게 드러나면서 2세들 간의 상속소송으로 번진 것이다. 경영권을 차지하지 못한 재벌 2세가 선대회장이 남긴 차명 재산을 두고 형제·자매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삼성-CJ 간의 소송을 빼닮았다.

비자금 규모는?
최대 1조원

지난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태광그룹 창업주 고 이임용 회장의 둘째 딸인 재훈씨는 남동생인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을 상대로 주식인도 청구소송을 최근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이씨는 이 전 회장에게 태광산업 보통주 주식 10주, 대한화섬 10주, 흥국생명 10주, 태광 관광개발 1주, 고려저축은행 1주, 서한물산 1주 등을 지급하라고 청구했다.

이씨는 또 이 전 회장에게 78억6000여만원도 함께 달라고 했다. 이 중 77억6000여만원은 이 전 회장이 비자금 조성과 횡령, 배임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던 지난해 1월 피해액을 변제하기 위해 이씨 명의로 대출받은 금액이다.

나머지 1억원은 일부 청구한 주식에 대한 배당금이다. 이씨는 우선 1∼10주에 불과한 주식을 청구한 뒤, 향후 차명재산의 구체적인 내역이 밝혀지는 대로 소송규모를 확대할 계획이다.

차녀, 동생 이호진 전 회장 상대로 상속재산 소송
수사서 드러난 ‘차명돈’불씨…규모 최대 1조원

이씨는 1996년 11월 아버지인 태광그룹 창업주 이임용 회장이 사망한 뒤 이 전 회장과 함께 부동산과 주식을 상속받았다.

선대회장은 부인과 자녀 5명을 뒀고 이씨와 이 전 회장의 상속분은 13분의 2로 똑같았다. 그러나 이씨는 이후 2010년 태광그룹이 검찰수사와 세무조사,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이 전 회장이 몰래 상속받은 재산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씨는 소장에서 “검찰의 태광그룹 비자금 수사 및 이후 재판 과정에서 차명주식 등 추가 상속재산이 드러났는데, 이 전 회장은 이 재산을 실명화·현금화하면서 내게 알려주지 않았다”며 “이 전 회장이 막대한 규모의 차명 주식과 비상장 주식을 2003년부터 최근까지 현금화하거나 실명화해 가져가는 바람에 상속권을 침해당했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또 “아버지가 남긴 토지 등 부동산도 추가로 (소송에) 특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씨 측이 추정하는 차명 재산 규모는 주식과 무기명 채권 등을 포함해 최대 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송은 삼성·CJ간의 상속 소송처럼 ‘차명 재산’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재계 안팎에서는 최근 불거진 삼성가 상속재산 분쟁이 이번 태광 남매 소송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흥국생명이 이 전 회장에 대한 고액 배당을 실시한 것도 이씨가 소송을 결심하는 도화선이 됐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 전 회장은 흥국생명 지분 59.21%(804만 3128주)을 보유한 대주주로, 흥국생명은 태광그룹의 주력 계열사다.

빚 떠안은 누나
막장 소송 결단

이 전 회장은 지난 2010년부터 횡령·배임 혐의로 사정당국의 압박을 받자 지난해 1월 구속을 피하기 위해 흥국생명에서 이씨가 부동산을 담보로 100억원을 대출받도록 했고, 이 돈을 빌려 횡령한 회삿돈 일부를 메웠다.

하지만 이 전 회장은 빌린 100억원 중 31억3000만원만 갚아 나머지 69억원에 대한 채무와 대출이자는 고스란히 이씨가 떠안게 됐다. 이씨는 이 전 회장을 대신해 무려 2년 가까이 대출이자를 냈고, 그간 지출한 이자만 7억 원대에 이른다.

이런 가운데 흥국생명은 지난 6월 20일 정기주주총회를 열고 주당 1750원의 배당을 확정했다. 총 배당금액은 237억7089만원으로 흥국생명 지분 59.21%를 보유하고 있는 이 전 회장은 총 141억원을, 그의 어린 조카 등은 약 60억원의 배당금을 받았다.

이를 두고 관련업계에서는 이 전 회장이 거액의 배당금을 횡령자금 납부 등에 쓸 것이란 예측을 내놨지만 이 전 회장은 이씨에게 빌린 돈 조차 갚지 않았다. 그러나 이호진 전 회장 측은 이번 소송에 대해 “법적인 문제가 될 게 없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태광그룹은 1950년 선대 회장이 설립한 태광산업을 모태로 석유화학, 섬유, 금융,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등의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매출은 약 12조원으로, 재계 순위 40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이 전 회장이 경영 전면에 부상하면서 그룹의 외형은 크게 확대됐으나 오너일가를 둘러싼 각종 의혹과 불신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그 씨앗은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누나의 쿠테타
소송 확대되나
이 전 회장의 외삼촌인 이기화 전 그룹 회장이 2004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후 조카인 이 전 회장과 경영권을 둘러싸고 의견이 엇갈린 것이다.

외삼촌인 이 전 그룹 회장은 창업 때부터 경영에 참여해 기획력과 업무 추진력을 인정받아 그룹 회장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조카에게 경영권을 넘긴 이후 사실상 모든 일에 손을 떼야 했다.

이 때문에 당시 태광그룹 내부에서는 이 전 그룹 회장의 친인척들이 내부 임원들을 동원해 ‘이호진 퇴진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투명성을 위해 ‘전문 경영인’을 포함 시킬 것을 주장했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이 일이 있은 직후 이 전 회장은 친인척들에 대한 신뢰를 접고 지분확대와 독자 경영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이 전 회장은 회사 안팎에 적대 세력을 키웠고 아들 현준군에게 회사 지분을 몰아줬다는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오너일가의 갈등은 더욱 증폭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로 18세인 현준군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태광그룹 계열사 티알엠, 티시스, 한국도서보급, 동림관광개발, 티브로드홀딩스 등 5개 계열사의 지분을 상당부분 보유하고 있다. 비상장 계열사 티알엠 등 3개 계열사의 지분은 48∼49%에 육박한다. 딸 현나양에게도 이미 상속이 진행되고 있다.

이 전 회장의 이 같은 행보는 다른 오너일가들에게 위기감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비상장 주력계열사의 지분을 이 전 회장의 자녀들이 하나하나 차지하기 시작하면서 이번에 소송을 제기한 이씨를 비롯해 외삼촌과 선대회장의 혼외 가족들이 하나둘 뭉치게 된 포석으로 작용했다는 것. 이에 따라 이번 상속소송의 전선은 더 넓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동생 회사 장악하자 누나 반대세력 결속
항소심 판결 앞두고…잇따른 그룹 악재

이 전 회장은 횡령 혐의에 휘말리면서 올 2월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현재 회사자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4년6월, 벌금 20억원을 선고받은 후 병 보석 허가를 받고 입원중이다. 어머니 이선애 전 상무 역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뒤 형 집행정지 중이다.

태광 그룹은 엎친 데 덮쳤다는 분위기다. 당장 내년 사업을 챙겨야 하는 시점에 여러 가지 악재들이 겹치면서 회사 내부의 역량이 분산되고, 직원들의 사기마저 떨어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 같은 중차대한 시점에 불거진 남매의 상속재산 관련 소송은 ‘돈 앞엔 부모, 형제도 없다’는 막장드라마를 연상케 하기에 충분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재벌사에서 형제간 또는 가족 간 재산이나 경영권 분쟁은 늘 일어나는 일상다반사의 일이고 창업주가 세상을 떠난 뒤 경영권을 둘러싼 극심한 분쟁으로 그룹자체가 동강나거나 쇄락의 길을 걷기도 하는 사례도 발생한다”면서도 “가족들의 악재와 건강악화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 이번 태광그룹의 소송은 소유와 경영을 독점하고 자손만대로 경영권을 승계하고자 하는 재벌가의 탐욕이 하나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출자회사를 통해 소수의 지분을 보유하면서 전체 그룹에 대한 경영권을 행사하는 문어발식 지배구조의 모순도 이러한 탐욕의 바탕이 된다”고 덧붙였다.

재벌가 재산싸움
씁쓸한 흥미거리

어떻게 하든지,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자식들에게 한 푼이라도 더 남겨주고, 경영권도 모두 넘겨줘서 재벌그룹에 속한 회사를 대대로 움켜쥐려고 하는 우리나라 재벌가의 경영권승계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스산한 태광그룹의 연말. 재벌가 남매간의 재산싸움을 보면서 국민들은 고상하고 귀한 줄만 알았던 재벌들도 “돈 앞에선 다 똑같네”하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한다. 돈 앞에 형제·부모의 관계가 틀어지는 ‘막장드라마’ 속 태광의 재산싸움이 어디까지 발전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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