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풍언 사건’ 풀리지 않은 의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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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풍언 사건’ 풀리지 않은 의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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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수레가 요란했다. 큰 화제와 세간의 이목을 끈 ‘조풍언 사건’이 싱겁게 끝났다. ‘희대의 로비스트’라 불렸지만 로비스트가 아니었다는 게 최종 판결이다. 허무하다는 반응 일색이다. 모든 의혹들이 미궁에 빠진 꼴이다. 검찰은 수사 초기 ‘대어’라도 되는 양호들갑을 떨었지만 정·관계 로비 실체는 건드리지도 못했다. 한때 거물들의 이름이 오르내려 정국의 ‘핵뇌관’으로 부상했으나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하다. 사실상 미제로 종지부를 찍은 이 사건의 풀리지 않은 의혹들을 정리해 봤다.

증권거래법 위반 유죄…대우 구명로비는 무죄
“증거 없다” 전방위 로비의혹 수수께끼로 남아


재미교포 무기거래상 조풍언씨가 받은 혐의는 크게 두 가지다. 증권거래법 위반과 대우그룹 구명로비 혐의다. 대법원은 지난 9일 주가를 조작한 조씨의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둘째 동생 고 구정회 창업고문의 손자인 구본호씨가 미디어솔루션(현 레드캡투어)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조씨가 구씨와 공모해 미디어솔루션 주식을 대량 매입한 뒤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가를 낮추려고 허위매도 주문을 내는 등 시세하락을 유도했다고 판단했다. 조씨는 앞서 1·2심 재판에서 주가조작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은 바 있다.

“김우중 오락가락 진술
… 혐의 입증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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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대우 구명로비 의혹은 무죄 판결이 났다. 조씨는 1999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부탁을 받고 대우 구명로비를 위해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해 고위공무원, 거물 정치인들을 상대로 돈을 건넨 혐의(알선수재)를 받았다. 

조씨는 DJ와 동향인 데다 김 전 회장과는 동창인 사이여서 IMF 직후 흔들리던 대우그룹 회생을 위해 DJ 정부 시절 구명로비를 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하지만 대법원은 대가성이 없었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한마디로 조씨가 로비스트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조씨가 대우그룹 회생에 필요한 자금지원을 알선하는 대가로 김 전 대우그룹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혐의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일관성이 결여된 김 전 회장의 진술만으로 혐의를 입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1·2심 재판부도 조씨의 알선수재 혐의에 대해 “김 전 회장이 항소심 심문 과정에서 공소사실에 비교적 들어맞는 증언을 했지만 검찰 조사와 1심 과정에서 진술을 거듭 번복한 점으로 볼 때 혐의를 입증하기는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었다. 이로써 대우 구명로비 사건은 사실상 종결됐다. 한때 정·재계 거물들의 이름이 오르내려 정국의 ‘핵뇌관’으로 부상했지만,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채 흐지부지된 것이다.

조씨와 김 전 회장은 경기고 동문으로 ‘호형호제’하는 절친한 사이다. 김 전 회장이 조씨의 2년 선배다. 대우그룹 해체 여부를 둘러싸고 채권단과 정부의 상황이 매우 긴박하게 돌아가던 1999년 6월 조씨를 처음 만난 김우일 전 대우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은 조씨에 대해 이렇게 기억한다.

“회장님의 호출로 힐튼호텔에 갔습니다. 회장님 옆에는 낯선 인물이 앉아 있었지요. 그 유명한 조풍언씨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회장님과 ‘호형호제’하는 관계로 소개했죠. 회장님도 조풍언씨를 미국에서 잘 나가는 교포 사업가로 소개했어요.”

조씨는 국민의 정부 시절 ‘얼굴 없는 실세’라 불릴 정도로 DJ정권의 숨은 가신으로도 통했다. 그만큼 조씨는 DJ 측과 관계가 남달랐다. 둘은 선대 때부터 인연을 맺어왔다. 조씨와 DJ는 같은 목포 출생. 이웃사촌이었다고 한다. 

조씨의 부친이 운영하는 선박회사에서 DJ가 청년시절 일했고, 조씨와 DJ는 모 청년단체에서 함께 활동하기도 했다. 조씨가 국내 사업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떠난 계기도 1980년대 신군부가 DJ 계열로 분류했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조씨와 DJ가 다시 만난 것은 1992년 DJ가 대선 패배 뒤 미국을 방문했을 때다. 이 자리에서 서로 고향 얘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레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조씨는 DJ를 물심양면으로 후원했다. 덩달아 조씨의 행동반경도 넓어졌다. 이 사건의 핵심은 김우중-조풍언-DJ ‘3각 커넥션’ 여부다. 조씨가 대우그룹 퇴출 저지를 위해 DJ 측에 로비를 벌이지 않았냐는 의혹이다.

검찰은 당초 “1999년 대우그룹 퇴출과정에서 김 전 회장이 조씨를 통해 구명로비를 시도했다”며 “김 전 회장으로부터 로비자금 4430만 달러(당시 526억원)를 건네받은 조씨가 당시 정치권 실세들과 금융부처 등 정부 고위공무원에게 접근했다”고 확신했다.

조씨의 로비대상자로 거론되는 인사들은 전 청와대 실세 L씨, 전 장관 K씨·P씨, 금융권 고위관계자 L씨와 또 다른 L씨 등이다. 자칫 ‘DJ 비자금’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조씨의 ‘폭탄선언’이라도 터지면 현직에 있는 ‘DJ 사람들’은 물론 야권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었다. DJ 측은 대우그룹 구명로비에 대해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그러나 실제 이들에게 돈이 전달됐는지는 드러나지 않았다. 검찰은 로비 실체를 파악하는 데 실패했다. DJ는커녕 그의 측근들을 상대로 한 구명로비 의혹엔 손도 못 댔다. 검찰은 조씨와 DJ의 아들들이 돈거래를 한 사실을 밝혀냈지만, 이 역시 로비와 관련된 사실은 캐내지 못했다. 광범위한 국내 금융 계좌 추적을 벌였지만 별 단서를 잡지 못했다. 특히 해외 계좌를 통해 금품이 오갔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조씨와 로비대상자들의 해외 금융계좌도 추적했지만 소용없었다.

조씨의 입국 배경도 석연치 않다. 조씨는 1999년 6월 잠시 한국에 들어와 김 전 회장을 만났다. 조씨가 김 전 회장에게 “대우그룹 구명이 어려울 것 같다”는 얘기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곧바로 김 전 회장은 해외로 도피했고, 조씨는 미국으로 각각 출국했다. 이후 조씨는 검찰의 호출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그는 미주 한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이제 절대 들어가지 않는다. 나는 죽어서도 이 곳 미국에 묻힐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조씨는 2008년 3월 갑자기 입국했다. 검찰은 즉각 조씨를 체포했다. 검찰에 잡힐 줄 알면서 조씨가 한국에 온 이유가 뭘까. 검찰 안팎에선 조씨가 로비 의혹과 관련된 혐의 공소시효가 끝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란 관측이 나왔다. 만약 조씨에게 알선수재, 뇌물공여 등의 혐의를 적용한다면 대부분 공소시효가 7년으로 이미 종료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김우중 경기고 후배
김대중 목포 이웃

일각에선 조씨의 입국을 두고 ‘모종의 밀약설’이 제기됐다. ‘자진귀국이냐, 기획입국이냐’하는 시비가 불거졌다. 한마디로 DJ 쪽을 겨냥한 배후세력의 음모가 아니냐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조씨는 2008년 4월 총선을 불과 보름 앞두고 입국했다.

야권에선 총선 정국에서 ‘조풍언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를 경우 적잖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내다봤다. 공교롭게도 당시엔 BBK 사건과 관련해 옛 여권 사주에 의한 김경준씨의 ‘기획입국설’이 나온 뒤였다.

이 와중에 조씨의 기획입국설이 나왔기 때문에 조씨의 입국은 신세가 뒤바뀐 여·야간 공방전으로 흘러갔다. 검찰은 조씨의 입국 배경에 대해 “실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명목상으로는 ‘국내에서 장학금을 지급하는 문제와 동창회 문제 등을 위해서’라고 조씨가 진술했다”고 전했다.

조씨와 김 전 회장의 거래도 여전히 의문이다. 검찰은 조씨가 김 전 회장의 은닉재산을 찾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조씨의 대답은 “모른다”였다. 그는 묵비권을 행사하는 등 철저하게 함구로 일관했다.

김 전 회장은 1999년 10월 해외로 도피했다가 5년7개월 만인 2005년 6월 귀국한 뒤 분식회계와 대출사기, 재산국외도피 등 혐의로 기소됐고, 2006년 11월 징역 8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주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 ‘대우왕국’은 공중분해됐다.

김 전 회장은 2007년 말 특별사면 때 풀려났지만, 18조원에 달하는 추징금은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다. 그동안 집행액은 3억여원에 불과하다. 김 전 회장은 2007년 4월 법원의‘재산명시’재판에 출석해 “현재 재산은 19억원”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후 검찰은 김 전 회장의 은닉재산 1110억원 가량을 찾아냈다. 검찰은 김 전 회장이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인 베스트리드 리미티드(구 대우개발) 명의로 소유하고 있던 주식 776만주(시가 1100억원)와 횡령 자금으로 구입한 미술품 134점(구입가격 기준 7억8000만원) 등을 압류 조치했다.

베스트리드 리미티드는 경주 힐튼호텔, 아도니스골프장, 양산 에이원골프장, 영화투자사 밴티지홀딩스 등의 지분을 갖고 있다. 이 회사는 김 전 회장의 부인 정희자씨가 회장을 맡았으며, 지금도 사업 운영에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환수할 수 있는 김 전 회장의 재산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산했다. 김 전 회장 가족 명의의 재산만 수천억원대에 이르기 때문이다. 검찰은 2005년 대우그룹 분식회계 의혹 수사 당시 김 전 회장이 대우그룹 해외금융법인을 통해 1억1554만 달러를 빼돌려, 이중 4430만 달러를 대우 구명로비 대가로 조씨가 운영하는 홍콩 KMC 계좌로 입금한 정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추적은 거기까지였다. 더 이상 드러난 사실이 없었다. 다만 검찰은 조씨가 2001년 9월 예금보험공사에서 가압류 신청한 KMC 명의 대우정보시스템 주권 163만주(액면가 81억5000만원)를 김모 전 감사에게 전달해 은닉한 혐의(강제집행면탈)를 찾아냈다.

조씨와 김 전 회장 가운데 구명로비를 누가 먼저 제안했는지도 미완의 숙제로 남았다. 검찰이 밝힌 구명로비 자금 전달 시점은 대우그룹 퇴출 직전인 1999년 6월. 검찰 관계자는 “유동성 위기에 있던 대우그룹 측이 다각도로 대책을 모색하다가 조씨와 접촉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전했다. 조씨도 “대우그룹 인사들이 먼저 찾아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DJ 측근 L, K, P씨
 로비대상자들 한숨

반면 김 전 회장 측은 조씨가 구명로비를 최초 제안했다고 주장했다. 김 전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조씨가 대우그룹을 구명하기 위한 로비활동을 먼저 제안했다. 이 자리에서 조씨가 DJ 측과 정부 최고위층, 금융관련 고위공무원 등에게 로비를 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고 진술했다.

김 전 회장의 한 측근도 대우그룹 구명로비는 김 전 회장의 지시가 아닌 조씨의 제안으로 시작됐다고 반박했다. 그는 “김 전 회장은 그룹이 해체 위기에 놓이자 고교 후배인 조씨를 주변으로부터 소개받아 한두 차례 만났다”며 “발이 넓은 조씨가 로비를 하겠다고 제안하자 외면하지 못하고 돈을 건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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