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 스타' 류승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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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인물> '1000만 스타' 류승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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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의 귀재…연기의 제왕…마성의 매력

[일요시사=연예팀] '시작은 미약했지만 끝은 창대하리라'
유명한 구절처럼 류승룡은 단역으로 시작해 충무로 최고의 '흥행킹'으로 거듭났다. 영화배우가 전성기를 맞이한다는 40대. 영화 <7번방의 선물>로 당당히 '1000만 흥행배우'의 반열에 오른 류승룡의 전성기는 이제 막 시작됐다.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을 연출한 민규동 감독은 함께 작업한 배우 류승룡에 대해 "지문 사이 행간도 읽어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배우"라고 평했다. 캐릭터 분석에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류승룡은 영화 <7번방의 선물>을 통해 '관객석을 가득 채우는 흥행 배우'로 거듭났다.

<7번방의 선물>
천만관객 돌파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조용한 돌풍은 이내 태풍이 되어 극장가를 덮쳤다. 류승룡이 첫 단독 주연을 맡은 상업영화 <7번방의 선물>은 누적 관객수(2월 26일 기준) 1052만7224명을 기록했다. <7번방의 선물>에서 함께 호연한 배우 정진영의 주연작 <왕의 남자>가 기록한 1051만명을 근소하게 넘어선 수치다.

더욱 놀라운 건 <7번방의 선물>의 흥행몰이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제 류승룡은 자신이 조연으로 출연했던 전작 <광해, 왕이 된 남자>의 흥행스코어(1231만명)에 도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두 작품 연속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천만배우'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다.

영화계는 지금 배우 김윤석 이후 등장한 이 무서운 흥행카드에 주목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배우 하정우까지 더해 이들을 '충무로 트로이카'라 부르고 있다. 충무로의 확실한 대세로 떠오른 류승룡은 <최종병기 활>(2011), <내 아내의 모든 것>(2012), <광해, 왕이 된 남자>(2012)에 이어 <7번방의 선물>까지 4연타석 홈런을 치며 일약 '국민배우' 반열에 올라섰다. 네 작품의 누적 스코어를 합치면 모두 3천5백만에 이른다. 영화 <고지전>(2011)까지 더한다면 무려 4천만에 육박하는 경이로운 흥행 성적이다.

조연 <광해> 이어 주연 <7번방의 선물> 연속 홈런
빅 흥행카드 김윤석·하정우와 '충무로 트로이카'

류승룡은 최근 3년 사이 그야말로 거칠 것 없는 흥행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 흥행계보를 거슬러 가다보면 '무명 시절' 류승룡을 만날 수 있다. 장진 감독의 <거룩한 계보>(2006)는 그의 필모그래피를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극중 조직에게 배신당한 사형수(정순탄 역)로 분한 류승룡은 매력적인 중저음과 강인한 눈매로 영화팬들의 이목을 한 눈에 사로잡았다. 다소 거칠게 기른 수염은 '마초 냄새' 물씬 나는 그의 마스크와 맞물려 스크린에 묘한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거룩한 계보>에 함께 출연했던 배우 정준호는 당시 있었던 기자간담회에서 "이 영화는 류승룡이라는 보석 같은 배우를 발견한 영화"라고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비록 <거룩한 계보>가 흥행 면에서 썩 좋은 성적을 남기진 못했지만 '류승룡'이라는 이름 석 자는 그를 기억하는 관객들의 뇌리에 남았다. 그때부터 류승룡은 소위 말하는 '될놈'으로서의 가능성을 싹 틔웠다.

장진사단 출신
난타통해 성장

류승룡은 '톱스타의 산실'로 불리는 서울예대를 졸업했다. 연극과 90학번인 그는 방송인 신동엽, 배우 안재욱, 정재영, 황정민, 임원희 등을 동기로 두고 있다. 대다수 서울예대 출신들이 그렇듯 그는 맨 처음 대학로에서 전업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같은 학교 선배인 장진 감독과의 인연도 대학로에서 시작됐다. '장진 사단'의 일원인 그는 줄곧 장진 감독의 연극에 출연했다. 연극 <서툰 사람들>, <택시 드리벌> 등이 당시 출연했던 작품이다. 이때 맺었던 인연은 류승룡의 영화 데뷔로 이어졌다. 그러나 류승룡이 연극 무대에서 곧바로 영화판으로 뛰어든 건 아니다. 류승룡은 1998년 대학로를 떠나 넌버벌(Non-Verbal) 퍼포먼스 <난타>에 합류했다. 대사 없이 몸짓과 눈짓만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무언극이었다.

그는 브로드웨이를 목표로 <난타>에 합류했다. 송승환 대표가 <난타>를 처음 기획했을 당시 그는 극단을 그만두고 오디션을 선택했다. <난타>의 일원으로 전 세계 곳곳을 누비며 그는 배우로서 갖춰야 할 마음가짐과 내공을 닦았다고 전해진다. 그렇게 5년이 흐르고, 연극배우로서 전성기를 누릴 때 그는 미련 없이 <난타>를 그만뒀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을 믿었기 때문이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류승룡은 "예술인이 점점 안정적인 생활에 길들여져 기술인이 되가는 걸 느꼈다"며 <난타>를 그만둔 배경을 설명했다. 그렇게 그는 배우로서의 다른 길을 찾았고, 영화계 선배인 장진 감독을 만났다.

그때 당시를 회고하며 류승룡은 "나 연기하고 싶다. 말 좀 하자"며 장진 감독에게 불쑥 찾아갔던 일화를 소개했다. 그리고 장진 감독은 2004년 <아는 여자>를 통해 류승룡의 기념비적인 영화 데뷔를 성사시켰다. 그때 맡았던 역할은 이름 없는 강도였다.

이후 류승룡은 영화 <소나기는 그쳤나요>와 <고마운 사람>에서 장진 감독과 호흡을 맞추며, 영화판에 얼굴을 알렸다. 그리고 2005년. <박수칠 때 떠나라>를 통해 충무로 관계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어필했다.

류승룡은 영화 <박수칠 때 떠나라>에서 주연을 맡았던 배우 차승원의 라이벌 검사 역을 훌륭히 소화했다. 이 작품으로 류승룡은 무명 배우에서 '가능성 있는 조연'으로 급부상했다. 특히 임권택 감독 등 충무로 저명인사들은 '마초적인 매력'의 소유자인 '배우 류승룡'을 눈여겨보며 계약서를 내밀었다. 저마다 비중 있는 조연 역할이었다. 박수칠 때 연극 무대를 떠났던 류승룡은 이제 영화계에서 당당히 박수 받는 사람이 돼있었다.

장진 감독과의 인연도 이어졌다. 류승룡은 <거룩한 계보> 출연 후 가진 인터뷰에서 "현재 내가 매니저가 없는데 장진 감독이 사실상 내 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 류승룡이 출연한 영화에 대해 장진 감독이 계약서 부분을 담당해준 것. 이후 그는 영화 <퀴즈왕>을 통해 2010년 장진 감독과 조우했다.

그 전까지 류승룡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다. <거룩한 계보>를 통해 확실한 눈도장을 찍은 류승룡은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작품 <천년학>을 비롯해 배우 송혜교, 유지태가 출연한 <황진이>에서 사극배우로서의 가능성까지 보여주며 연기의 스펙트럼을 더욱 넓혀나갔다.

'연기의 달인'
소문난 다작배우

류승룡은 업계에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시점부터 그 평판이 남달랐다. 한 제작사 대표는 "류승룡이 그때부터 준비된 톱스타로서의 면모를 보여줬다"고 회상했다. 여기자들 사이에서도 류승룡은 인기가 좋았다. 늘 매너 있는 태도로 인터뷰에 응함은 물론 유머감각까지 갖추고 있어 얘기가 잘 통했다는 후문이다.

몇몇 관계자에 따르면 류승룡은 보기보다 상당히 세심한 성격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자기 관리가 뛰어난 탓이지 웬만해서는 실수를 하지 않으며, 특히 연기에 있어선 보는 사람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의 완벽함을 추구한다는 것. 이처럼 소탈해 보이는 류승룡의 이면에는 섬세하면서도 뜨거운 날것 그대로의 열정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듯 세밀한 캐릭터 분석은 류승룡이 가진 최대 장점이다. 그만큼 류승룡은 시나리오를 꼼꼼하게 읽는다. "대본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는다"고 한 연예계 관계자는 전했다. 완벽한 연기를 위해 틈틈이 캐릭터에 대한 메모를 빼놓지 않는 건 물론이다.

그렇게 공들여 만들어진 캐릭터가 <최종병기 활>의 만주군 수장 쥬신타다. 그는 쥬신타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몇 달 동안 변발을 하고, 만주어를 익히기 위해 만주의 역사까지 배우는 등 고증에 힘을 쏟았다. 이때 흘린 땀방울은 고대하던 흥행과도 연결됐다.

새로운 일에 늘 자신감을 밝혀왔던 그지만 다작을 하다 보니 고민도 많았다. 동시에 서너 작품을 하다 보니 자신이 가진 능력 이상의 것을 발휘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두려움에 휩싸였던 것. 그는 <구르믈 벗어난 달처럼>을 촬영할 당시 이준익 감독에게 이 같은 고민을 털어놨다고 전해졌다. 그러자 이준익 감독은 "스스로 자신에게 한계를 두지 말라"고 조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류승룡은 "이 말에 큰 용기를 얻었다"고 밝혔다. 슬럼프를 겪을 때쯤 몸에 좋은 약을 맞았던 것.

이처럼 캐릭터를 파고 또 파던 류승룡은 주조연작 <내 아내의 모든 것>을 통해 마침내 잭팟을 터뜨렸다. 충무로 역사상 전무후무한 캐릭터로 평가받는 마성의 카사노바 '장성기'를 히트시킨 것.

당시 관객과의 대화에서 류승룡은 "비 맞아서 불쌍하고 귀여운데 만지고 싶지 않은 강아지와 같은 느낌"이라고 '장성기'를 설명했다. 이어 류승룡은 "장성기가 실제 류승룡과 닮은 부분이 많다"고 언급했다. 그의 말을 해석하자면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었던 셈이다.

누가 뭐래도 '장성기'는 그해 충무로 최고의 문제적 캐릭터였다.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와 독특한 유머감각. 류승룡은 이 영화를 통해 대중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더티 섹시'라는 그의 유명한 별명도 이때쯤 다시 회자됐다. '장성기'를 통해 그는 분명 대중에게 재조명되고 있었다.

관객 홀린 정신지체 연기
'최저예산 천만영화' 기록

류승룡의 차기작 <광해, 왕이 된 남자>는 뚜껑을 열기 전 배우 이병헌의 원톱 영화로만 알려졌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의 반응은 달랐다. '광해'와 불꽃튀는 연기대결을 펼쳤던 '허균'이 없었다면 <광해, 왕이 된 남자>가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란 평가가 주를 이뤘다. 이렇듯 카사노바에서 킹메이커로 물 흐르듯 연기변신에 성공한 류승룡은 그의 운명과도 같은 작품 <7번방의 선물>을 마침내 만났다.

상업영화 첫 단독 주연. 그러나 정신지체장애인을 연기해야 했다. 캐릭터 분석에 몰두했던 류승룡은 경기 일산에 있는 한 공장에 찾아가 20대 후반의 정신지체 남성을 만났다. 영화 속 '용구'는 그렇게 탄생했다. 시사회에서 밝혔던 대로 류승룡은 촬영장에서 '용구'로 살았다. 밝고 긍정적이면서도 절대로 과하지 않은 한 아이의 아빠로다.

이런 용구를 뒷받침해준 명품 조연진들은 영화 <7번방의 선물>의 감동을 극대화했다. 배우 오달수, 박원상, 김정태, 김기천, 정만식 등 충무로의 내로라하는 조연들은 모두 7번방의 죄수가 됐다. 단독 주연의 부담을 안고 있던 '고기' 류승룡에게 이들의 존재는 마치 '물'과 같았다.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처럼 류승룡은 영화 안에서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뽐냈다.

잘빠진 시나리오에 녹아든 류승룡의 연기는 관객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여기저기 입소문은 퍼졌고, 마침내 '최저예산 천만관객 영화'라는 금자탑이 류승룡에 의해 세워졌다. 개인적으로는 영화배우 최초로 출연한 영화 두 편 연속 천만관객을 돌파한 희귀 케이스로 남게 됐다.

물오른 연기력
충무로 재발견

류승룡은 영화계 데뷔 때부터 술·담배를 일절하지 않았다. 소문난 기독교 신자인 그는 배우로서의 삶만큼이나 '가정적인 남편' '좋은 아빠'로서의 삶도 중요하다고 늘 강조한다. 촬영 이외의 시간은 대부분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것으로 유명한 류승룡. <7번방의 선물>에서 그가 보여준 부성애는 어쩌면 '인간 류승룡'의 진심에서 우러난 '몸에 꼭 맞는 옷'이 아니었을까.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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