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자 장진호 ‘4000억 돈전쟁’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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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자 장진호 ‘4000억 돈전쟁’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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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천 떨어졌나…“꼬불친 비자금 내놔!”

[일요시사=경제1팀] ‘계열사 24개, 연매출 1조6000억원, 재계순위 19위….’ 80년 진로 신화를 무너뜨린 장본인인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이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옛 부하 직원에게 4000억원대 재산을 맡겼다가 빼앗겼다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도대체 4000억원이란 거액은 어디로 흘러들어간 것일까. 한 편의 막장 드라마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 장 전 회장의 ‘돈 전쟁’을 짚어봤다.

‘재벌 2세의 문어발 경영과 외환위기. 부도와 재집권 시나리오. 자금관리를 담당했던 2인자의 배신. 해외 도피중인 구사주의 형사고소.’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의 드라마틱한 인생사다.

고소로 드러난
배신의 드라마

2003년까지 진로그룹을 이끌었던 장 전 회장이 4000억원대에 이르는 자금을 횡령했다며 자신과 함께 일하던 옛 진로그룹 임원을 검찰에 고소했다.

지난 1일 검찰에 따르면 장 전 회장은 2000년대 초 회사 경영권을 되찾기 위해 차명으로 사들인 진로의 부실채권 4000억원어치를 몰래 빼돌린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사기)로 전직 진로그룹 재무 담당 이사인 오모씨를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장 전 회장은 고소장에서 진로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던 2002년 오씨를 통해 진로의 부실채권을 사들였다고 밝혔다.

장 전 회장은 “고려양주 주식을 담보로 조달한 자금 150억원 등 총 897억원을 들여 진로 부실채권을 사들였다”며 “총 5800억원어치를 액면가의 10∼20%대 가격에 사들인 뒤 오씨에게 채권 관리를 맡겼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H사, C사, K사 등 차명회사 4∼5개가 동원됐고, 장 전 회장이 2003년 대검찰철 공적자금비리 합동단속반의 수사로 구속되자 오씨는 이 중 4000억원어치의 채권을 빼돌렸다는 게 장 전 회장의 주장이다.

장 전 회장은 당시 골드만삭스가 채권을 매입하며 경영권을 뺏으려는 시도를 해 기업회생 및 경영권 방어를 위한 조치였다고 밝혔다.

고소장을 접수한 서울중앙지검은 이를 조사부(부장검사 이헌상)에 배당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지난달 28일 장 전회장의 고소 대리인 H씨를 불러 고소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중국에 머물고 있는 장 전 회장은 이번 수사를 위해 조만간 귀국할 예정이다.

‘남 떡’탐내다
‘내 떡’도 잃어

진로그룹 고소사건의 시작은 장 전 회장이 취임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대회장 타계 후 88년 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장 전 회장은 ‘탈주류’를 선언, 본업인 ‘소주’에서 벗어나 건설 유통 등에 뛰어들었다.

장 전 회장의 사업 다각화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취임 첫해 진로유통센터를 개장한 것을 시작으로 89년 종합광고업 진출(새그린), 연합전선인수, 조선신약 인수, 건설업 진출(진로건설), 91년 통조림 제조업체 펭귄인수(진로종합식품), 92년 진로쿠어스맥주 설립, 94년 진로 베스토아 설립과 위스키 사업 진출 등 88년 15개였던 계열사는 97년 24개까지 증가했다. 이 과정에서 계열사들에게 출자금, 대여금 및 지급보증으로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다.

그러나 이들 계열사의 경영성과가 부진해지면서 2조원이 넘는 자금 중 대부분은 회수하지 못했고, 결국 97년 외환위기 등이 맞물리며 부도 위기에 몰렸다.

정부가 그해 부도유예협약을 적용시켜 ‘진로 살리기’에 나서면서 금융권으로부터 800여억원을 지급받았지만 같은 해 9월 진로그룹은 조흥은행 서초동지점에 돌아온 어음 213억원과 상업은행 서초동지점에 지급 제시된 당좌수표 83억원을 결제하지 못해 최종 부도처리 됐다. 이후 일부 계열사는 법정관리로, 일부는 채권단에 의해 화의 인가 결정을 받았다.

당시 주력계열사 진로의 화의조건은 채무원금 상환을 5년 동안 유예 받는 것이었다. 자본잠식 상태가 심각했던 진로종합유통 등 7개 계열사는 제3자 매각을, 진로건설 등 7곳은 파산선고 혹은 폐업됐다. 1999년 말 진로쿠어스맥주는 OB맥주에 넘어갔고, 진로 발렌타인은 해외기업에 인수됐다.

4000억대 자금 횡령 혐의로 옛 가신 고소
비리로 구속되자 차명채권 빼돌렸다 주장

고소장대로라면 당시 그룹 주력사인 진로를 뺏길 수 없다고 생각한 장 전 회장은 화의 중이던 진로의 부실채권들을 사모아 최대 채권자가 됐다. 법정관리 후 이를 출자전환형식으로 주식으로 바꾼 뒤 진로를 ‘재집권’하려는 시나리오였다. 

장 전 회장 계획은 5800억원 규모의 부실채권 매입에 성공하면서 일면 구체화되는 듯했지만 이는 이듬해 차질을 빚기 시작했다. 2003년 9월 장 전 회장이 대검찰청 공적자금비리 합동단속반의 수사로 구속된 것이다.

장 전 회장은 5496억원을 사기 대출받고 비자금 75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돼 5개월여 재판 끝에 1심에서 징역 5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5년형을 받고 풀려난 그는 4개월 뒤 가족을 데리고 캄보디아로 도피했다.

이중 국적취득 후
화려한 도피생활

당시 <시사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장 전 회장은 이미 2002년 ‘찬삼락’(Chan Samrach)이라는 현지 이름을 취득한 상태로, 진로그룹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기 이전부터 캄보디아행을 계획했다.

캄보디아 사람이 된 장 전 회장은 현지에서 ‘ABA은행’을 운영했다. ABA은행은 지난 96년 진로그룹에 의해 설립된 은행으로, 현지에서는 ‘진로은행’으로 통했다. 그러나 이 은행은 2003년 진로그룹이 법정관리에 들어갔을 때 채권단 관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장 전 회장은 은행 뿐 아니라 부동산 개발회사, 경견장, 스몰카지노, 단란주점까지 손을 댔다. 장 전 회장은 또 금융 브로커로 알려진 김재록씨와 함께 소주회사를 설립하는 ‘55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그는 캄보디아에서도 소주 사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장 전 회장의 아파트 건설과 소주 회사 설립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무작정 문어발 사업으로 그룹 공중분해
수배 받고도 해외서 술집·카지노 운영

장 전 회장은 현재 세금 미납액과 각종 금융 기관의 체납액, 벌금 등 수백억 원이 넘는 빚이 있다. 그럼에도 장 전 회장이 아무 제약 없이 현지에서 사업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은, 훈센 총리의 장녀 ‘훈마나’(Hun Mana)의 비호 덕분인 것으로 전해진다. 훈마나는 캄보디아에서 정치권력은 물론 언론까지 장악하고 있어 ‘로비 대상 1순위’로 통한다. 장 전 회장은 훈마나와 모종의 거래관계를 맺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장 전 회장은 ABA 은행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탈세를 하는 등 ‘먹튀’ 전략을 쓰는 바람에 캄보디아 관리들에게 신뢰를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장 전 회장은 캄보디아를 떠나 중국으로 건너갔고, 지난해 2월에는 중국 북경 왕진 소재에 체류 중인 것이 한 언론을 통해 공개되기도 했다.

장 전 회장은 이곳에 머물면서 중국인 사장을 앞세워 법인을 둔 게임 업체 ‘이다양광’에 투자, 운영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장 전 회장이 투자한 ‘이다양광’ 게임사에서 게임 개발에 착수했던 개발자들이 몇 개월 동안 임금이 지급되지 않아 국내로 복귀한 상태다.

장 전 회장은 현재까지도 중국 게임업체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업에 투자를 하고 있으며 현지인 법인을 통해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80년 역사의 진로그룹을 공중 분해시킨 장본인은 아무 걱정 없이 화려한 도피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진로 도산 이면에
비스토리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장 전회장이 제기한 이번 고소 사건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는 지적이다.  그동안 재산반환이나 법적 대응을 하지 않은 경위에 대해서도 사실규명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진로 회생자금?…파산배경 밝혀질지 주목

특히 장 전 회장은 이 돈이 기업회생을 위해 마련했던 자금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고소 내용이 사실이라면 오씨가 과연 4000억원대 거액 자금을 어디에 보관하고 있을지 ‘돈의 행방’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이번 수사 결과에 따라 1990년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진로그룹 파산 비망록이 서서히 드러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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