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나부끼는 새마을 깃발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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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나부끼는 새마을 깃발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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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 앞세워 은근슬쩍 박정희 우상화?"

[일요시사=정치팀]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각 부처와 지자체들이 앞 다퉈 새마을운동과 관련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1970년대 전국에 나부꼈던 새마을 깃발이 40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나부끼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이유일까? <일요시사>가 전국에 나부끼는 새마을 깃발을 추적해봤다.

일반 국민들에게는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로 기억되는 새마을운동은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지난 1970년 낙후된 농촌을 근대화 시킨다는 취지로 시작한 정부주도의 지역사회개발운동이다. 새마을운동은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기초가 되었다는 평가도 있지만 사실 민주화 이후 새마을운동은 찬밥 신세였다. 역대 정부가 새마을운동을 유신통치의 도구로 여겼기 때문이다.

새마을운동은 1969년 3선 개헌과 1971년 제7대 대통령선거·국가비상사태 선포 등 일련의 정치상황에서 진행됐는데, 당시 지식층에서는 새마을운동이 이 같은 정치상황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우려는 정치적 목적의 농촌동원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경제발전 기초
정치적 농촌동원

박 전 대통령 자신도 "10월 유신이라고 하는 것은 곧 새마을운동이고, 새마을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곧 10월 유신"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새마을운동의 너무 획일적인 성장방식도 문제였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당시엔 박 전 대통령이 마을을 둘러보다 "마을 안길이 조금 좁지 않아?"라고 말을 하면 집안 대대로 살아와 애지중지하던 집의 뜰이나 마당도 동네 안길을 넓히는데 반강제적으로 헌납해야 했다.

때문에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집권 이후 시청과 구청 안에 있던 새마을운동 사무실을 모두 철거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새마을운동이 농촌을 잘 살게 했다는 선전은 속임수"라고 비판하며 새마을운동 지우기에 열을 올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이명박정부 들어서서야 새마을운동은 겨우 조금씩 명예회복에 나설 수 있게 됐다.

너도나도 새마을운동 끼워 넣기
지역발전보다 새정부 코드 맞추기

그런데 40여 년이 지난 지금 전국에 새마을 깃발이 다시 나부끼고 있다. 시작은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박 대통령은 대선 승리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20일 기자회견에서 "다시 한 번 '잘 살아보세'의 신화를 만들어 국민 모두가 먹고사는 것을 걱정하지 않고 청년들이 즐겁게 출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후 정치권에서는 본격적으로 제2새마을운동이 회자되기 시작했다. 관가와 각급 지자체는 앞 다퉈 '새마을운동 띄우기'에 나섰다. 우선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미 진행하고 있던 사업을 확대해 제2새마을운동의 지위를 부여했다.

농림부는 대통령 인수위 업무보고에서 "2011년부터 추진해온 '함께하는 우리 농어촌운동'을 제2의 새마을운동으로 확대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윤종록 미래창조과학부 제2차관도 지난 3월 "박근혜정부의 핵심 국정비전인 '창조경제'를 21세기 새마을운동으로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창조경제
새마을운동

이 같은 사정은 지자체들도 마찬가지다. 경북 포항시는 '새마을 세계화' 사업의 영역을 아프리카 지역에 이어 아시아권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경북 성주군은 '클린 성주·친환경 농촌 만들기 사업'을 제2의 새마을운동 일환으로 추진한다. 사업의 내용보다 '새마을'이라는 상징의 부활에 치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또 올 들어 지난달까지 경북도를 비롯해 경기 군포시, 충남 보령시, 경남 통영시 등 17개 지자체가 새마을운동조직 지원 조례를 제정하기도 했다.  특히 서울 관악구의회는 지난달 본회의를 열어 '새마을운동조직 지원 조례안'과 '바르게살기운동조직 지원 및 육성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조례를 통해 관악구는 새마을운동 관악구지회와 바르게살기운동 관악구협의회 등의 사업비와 행사비, 연수비 등을 지원하고 유공자 표창, 공공기관 새마을기 게양 등을 실시하기로 했다. 하지만 새마을운동 관악구지회 등 조례에서 언급한 4개 단체는 이미 올해 관악구 전체 사회단체보조금의 30.7%(1억5580만원)를 지원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지원 조례를 또 다시 만든 것이다. 제2새마을운동이 박 대통령을 향한 '과잉충성'의 결과라는 논란이 커지고 있는 이유다.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새마을운동·바르게살기운동 단체 지원 조례 제정은 지난 정권에서 이미 시작됐던 일이지만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엔 과열양상까지 띄고 있다. 새마을운동조직 지원 조례는 이미 서울의 7개 자치구와 전국 160여 개 지자체가 제정해 운영 중이다.

또 박근혜정부는 최근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 위원장에 최외출 영남대 지역 및 복지행정학과 교수를 내정하고 제2새마을운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역위는 제2새마을운동을 범정부적으로 추진하는 구심체 역할을 맡게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발전위원장은 연간 1조5000억원 규모의 지역발전예산(광역·지역발전특별회계)을 총괄하게 된다.

제2새마을운동은 이명박정부의 핵심 지역발전 정책이었던 '5+2 광역경제권 선도 사업' 대신 시·도를 중심으로 국민 복지 저변을 확대하는 운동이다. 지역발전위원회는 이달 말 공식 출범 예정이다.

이처럼 새마을운동과 관련한 정부차원의 지원책이 마련되고 있는 가운데 각 지자체로서는 새마을운동과 관련한 역사적 논란은 뒤로 미루고 실리를 택해 너도나도 새마을운동 조례안 제정에 나선 경향도 있다.

유신 잔재도
돈만 된다면 

한편 지역발전위원장에 내정된 최 교수는 지난 대선에서 박 대통령의 기획조정특보를 맡아 활동했던 인물이다. 일각에선 그를 그림자 실세라고 부르기도 한다. 최 교수는 '새마을장학금' 1기생이다. 최 교수는 영남대 학생회장을 지내면서 '학도호국단'에 참여했고 당시 청와대에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고 있던 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된다.



최 교수는 대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때도 박 대통령이 당시 운영하던 장학재단을 통해 장학금을 지원받았다. 영남대 교수로 임용된 이후엔 2001년 새마을장학회를 만들었고, 2003년엔 새마을학회를 설립해 새마을운동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하는 작업에 착수하기도 했다. 영남대 박정희정책새마을대학원 초대 원장을 거쳤으며 현재는 영남대 박정희리더십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다.

이 같은 최 교수의 지역위원장 내정으로 새마을운동을 향한 의심의 눈초리는 더욱 점점 커져가고 있다. 새마을운동의 부활이 국가 발전보다는 박정희 우상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의혹이다. 실제로 정부와 각 지자체들이 추진하고 있는 새마을운동 관련 사업을 보면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방향 설정도 없이 1970년대에 시행하던 과거형 시민운동에 집착하고 있는 모습이다.

일부 정부기관과 지차체는 앞서 언급했듯이 기존에 시행하던 사업들을 이름만 제2새마을운동으로 바꿔 시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국가발전보다는 새마을운동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새마을운동에 대한 미화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미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경제전문가들은 새마을운동에 대해 "지역공동체를 활성화하는 것은 좋은 취지지만 아직 기반이 활성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의 무조건적인 투자는 자칫 재정낭비로 끝날 수 있다"며 "지역발전 정책의 핵심은 산업 활성화가 수반돼야 하는데 새마을운동이라는 컨셉에만 무게중심을 두다보니 그런 측면이 부족하다. 구호만 앞세우다 단순한 캠페인으로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21세기엔 맞지 않는 하향식 발전
묻지마 재정지원으로 끝날까 우려

그렇다면 왜 하필 새마을운동일까? 정치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박정희에 대한 재평가를 원하는 박 대통령으로서는 '박정희 우상화'를 위해 그나마 국민적 거부감이 적은 새마을운동 카드를 꺼내들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새마을운동은 경제부흥에 관한 것이라 진보진영에서 무작정 비판하기가 쉽지 않고 보수층에서는 그 당시에 대한 향수를 가진 사람들도 많아 박정희 우상화를 위해서는 최상의 카드라는 분석이다.

감히 제2의 5·16을 하겠다거나 제2의 유신을 하겠다고 말할 수 없는 박 대통령으로서는 박정희 우상화를 위한 유일한 카드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야권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이 제2새마을운동을 정권 유지 방안으로 활용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된 상태다.

민주당 양승조 최고위원은 지난 12일 "박근혜 대통령의 '제2새마을운동' 추진은 지역사회개발보다는 사회구성원의 '의식개조'를 위한 정치적 의도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양 최고위원은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종합적 지배전략'으로 사용된 새마을운동이, 이번에도 박근혜정부의 '종합적 지배전략'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고 강조했다.

새마을운동 고집
숨은 뜻 무엇?

무엇보다 이상한 점은 박 대통령 본인도 진보층이 새마을운동에 대해 갖고 있는 거부감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마을운동이라는 명칭을 고집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국가발전을 위한 정책이라면 굳이 제2새마을운동이라는 명칭을 고집해 논란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

그 이면에 숨은 뜻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야권의 한 인사는 "지역 산업 활성화가 정말 목적이라면 새마을운동 컨셉 자체에 무게중심을 두기보단 종합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국민계몽을 목표로 하고 국민동원으로 목적을 이뤄냈던 하향식 새마을 운동은 우리나라 실정과는 이미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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