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파문 뒤 도사린 '선심성 묻지마 예산'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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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세파문 뒤 도사린 '선심성 묻지마 예산'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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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선심 쓰다 곳간 바닥난 대한민국

[일요시사=정치팀] 정치권을 휘감고 있는 세제개편 논란이 뜨겁다. 박근혜정부는 지난 8일 중산층의 세 부담을 늘리는 세제개편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개편안이 여론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자 정부는 발표 닷새 만에 개편안을 전격 수정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을 연출했다. 한편 박근혜정부를 증세라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간 것은 이른바 '선심성 묻지마 예산'이라는 지적이다. <일요시사>가 대한민국의 재정건전성을 위협하는 선심성 묻지마 예산의 실체를 파헤쳤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후보 시절 "증세 없이 매년 27조, 5년간 135조원을 마련해 복지를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대신 비효율적 정부 예산 감축(60%)과 지하경제 양성화 등의 세수 확대(40%)로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박근혜정부는 지난 8일 연소득 3450만원 이상의 중산층에 대해 세 부담을 늘리는 세제개편안을 발표했다. 취임 후 불과 6개월 만에 증세 논란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다.

유리지갑의 반란
당황한 청와대

청와대는 세제 개편안에 대해 비과세 혜택을 줄인 것이기 때문에 증세는 아니라며 적극적으로 항변하고 있지만 결국 세금을 더 내는 것은 확실한 만큼 실질적으로는 증세라는 비판이다. 특히 손쉬운 먹잇감인 봉급생활자들의 '유리지갑'만을 노린 것이라는 반발이 심했다.

당장 민주당은 '세금폭탄'이라는 단어까지 사용해가며 국정원 대선개입의혹 사건과 세제개편안을 연계시켜 청와대와 정부를 압박했다.

당초 청와대와 정부는 세제개편안 발표 직후 민주당 등 야권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세제개편안에 따라 세부담이 늘어나는 연소득 3450만~7000만원 근로자의 연간 세부담 증가액이 16만원, 월 1만3000원 정도라며 이 정도는 우리 사회에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국정원 사건보다 일반 국민들의 삶과 밀접한 세제개편안 이슈는 적잖은 심리적 저항을 불러왔다. 세제개편안을 두고 '중산층 쥐어짜기'라는 부정적 여론이 일파만파 확산되자 박 대통령은 정부의 세제개편안 발표 4일 만인 지난 12일 전격적으로 세제개편안에 대한 원점 재검토 지시를 내렸다.

세수부족 악재까지, 대선공약 '빨간불'
무차별 복지 부메랑, 증세 딜레마 빠져

정부는 박 대통령의 원점 재검토 지시가 내려진 후 불과 27시간만인 지난 13일 소득세법 중 세금 부담이 늘어나는 기준점을 연소득 3450만원에서 5500만원으로 올린 세제개편안 수정안을 발표했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대한민국의 한 해 주요 세제 정책이 단 하루 만에 뒤집힌 것이다. '조변석개(朝變夕改)'도 이쯤이면 병적이다.

당초 내년도 세제개편안은 담당부처인 기획재정부가 무려 7개월간이나 공을 들여 만들었던 것이었다. 정부가 지난 8일 세제개편안을 발표하면서 발표한 세수효과는 2조4900억원이다. 하지만 중산층 세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개편안이 수정되면서 4400억원 가량의 세수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한편 박근혜정부가 증세 논란까지 일으켜가며 세수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배경에는 이른바 '묻지마 선심성 예산'이 도사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묻지마 선심성 예산의 중심에는 박 대통령의 대선공약이 있다.

정부가 지난 5월 발표한 공약가계부에 따르면 대선공약을 이행하는 데 들어가는 예산은 무려 134조8000억원이다. 정부는 이 중 84조원은 세출절감으로, 51조원은 세입확충을 통해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세입확충은 비과세ㆍ감면 정비 18조원, 지하경제 양성화 27조2000억원, 금융소득 과세강화 2조9000억원, 과징금 등 세외수입 2조7000억원 등이다.

대선공약?
민폐공약?

특히 정치권에서는 박 대통령의 대선공약들 중 '모든' 계층에 혜택을 주는 '무차별 복지'는 문제라는 인식이 강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기초노령연금을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지급하겠다는 공약이다.

이 공약은 당초 모든 노인에게 지급되는 것에서 현재 소득하위 70~80% 노인에게만 범위를 좁혀 지급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지만, 이 경우에도 박 대통령의 집권기간인 2014~2017년까지 4년간 36조1000억원이 소요되고 고령화로 인해 노인 인구가 앞으로 크게 늘어날 것을 감안하면 2020년 14조900억원, 2040년 68조4000억원, 2060년 92조7000억원 등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이 공약은 범위를 소득하위 70%까지 조정한다고 해도 여전히 부유층 퇴직자도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큰 선심성 공약이란 지적이다.

4대 중증 질환 진료비 전액에 대해 건강보험 지원을 해주는 공약도 높은 비용에 비해 효과가 아직 입증되지 않은 수술 또는 치료 방법에 대해서까지 모두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문제로 지적되고 있으며,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모든 가구에 하루 12시간 보육료를 지원하는 복지제도도 실제로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맡기는 시간이 하루 평균 6~7시간에 불과한 현실과 맞지 않아 선심성 복지 예산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발표한 공약가계부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공약을 수행하는 데 소요되는 예산 134조8000억원 가운데 복지공약에 해당하는 '국민행복' 부문의 소요재원은 무려 79조3000억원에 달한다. 전체 공약 예산 중 58.8%다.

이들 예산을 모두 선심성 예산이라 평가절하 할 수는 없지만 여권 내부에서 조차 대선기간 선거용으로 만들어진 예산인 만큼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한편 박 대통령의 대선공약이 선심성이라며 비판을 하고 있는 여야 정치인들도 정작 선심성으로 의심받는 법안들을 남발하며 재정건전성을 위협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국회예산정책처가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6월부터 올해 6월 말까지 발의된 법안 가운데 정부예산이 소요되는 법안은 1700여 건에 달한다. 이 법안들이 모두 시행될 경우 연평균 약 175조원의 예산이 투입될 것으로 추산된다. 우리나라 한 해 예산의 절반에 달하는 금액이다.

특히 증세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던 민주당 의원들이 상당수 선심성 예산으로 의심받는 법안 발의에 나서 눈길을 끈다.

민주당 오제세 의원이 대표 발의한 '영·유아 보육법 개정안'의 경우는 영·유아 보육료의 국고 보조율을 ▶서울은 20%→50%로 ▶지방은 50%→80%로 올리는 내용이다. 이 개정안이 시행되기 위해서는 1조4996억원의 국비가 소요된다.

민주당 김진표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각급 법원의 설치와 관할구역법 개정안'은 지역마다 법원을 설립하겠다는 내용인데 주민편의를 위한 것이지만 청사를 신·증축해야 하는 만큼 연간 2556억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민주당 이낙연 의원은 65세 이상 노인 무임승차 등의 비용을 현재는 해당 사업기관이 떠맡고 있지만 앞으론 국가나 지자체가 부담케 하는 도시철도법 개정안을 냈다. 개정안에 따를 경우 향후 5년간 최소 1조818억원에서 최대 2조1636억원의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국가산업단지 기반시설을 유지·보수·개량하는 '산업입지 및 개발법 개정안', 도시철도 스크린도어를 국비로 지원하는 '도시철도법 개정안' 등이 선심성 입법으로 지목받고 있다. 매년 지역구 예산 챙기기가 있어 왔지만 19대 국회에서는 대선을 거치면서 여야 할 것 없이 중앙정부에 지방재정을 떠넘기는 의원입법까지 남발됐다는 것이다.

너도나도 선심성
멍드는 국가재정

각 지자체들의 선심성 묻지마 예산도 심각한 문제다. 경기도 시흥시가 추진 중인 배곧신도시 조성 사업의 경우는 사업초 분양률이 저조할 것이니 대책을 마련하라는 정부의 심사 결과가 있었지만, 시흥시는 지방채 3000억원을 발행하며 사업을 강행했다. 결국 이 사업은 현재 토지분양률은 10%도 안 되고 시흥시는 한 해 평균 200억원을 이자로 내고 있다.

전남 나주시의 미래일반산업단지 조성 부지는 2년 전 시작한 2600억원짜리 대형사업임에도 불구하고 법에 따른 타당성 조사와 지방의회 의결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사업비 조달이 힘들어지자 나주시는 규정을 어기면서 민간업체를 내세워 2000억원을 마련하고 2년내 상환책임 협약을 맺었다. 나주시 한 해 예산의 절반이 넘는 돈을 끌어다 쓰면서 나주시는 대출수수료와 이자 등으로 200억원을 지출했고, 상환 만기일에는 또 돈을 대출받아 막기도 했다.

지자체의 묻지마 국제대회 유치는 더욱 심각한 실정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스포츠 이벤트의 저주라고 부를 정도다. 전라남도는 '포뮬러원(F1) 국제자동차경주대회'를 유치하면서 지금까지 경주장 건설비 768억원과 대회운영비 100억원 등 모두 1001억원의 국비를 지원받았다.

선심성 예산에 피멍드는 국가재정건전성
19대 발의 법안 모두 통과되면 175조 필요

하지만 문제는 F1대회 자체의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현재 전체 7번의 대회 중 3회가 끝났지만 누적적자는 1731억원에 이른다. 2016년까지 대회를 치르고 나면 적자는 3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광주유니버시아드는 예산이 매년 불어나 정부와 지자체에 부담이 되고 있다. 광주시가 정부에 유치승인을 요청할 때 1982억원이던 예산은 기획재정부에 실제 예산을 신청할 때는 2811억원으로 늘었고, 최근에는 8171억원까지 불어났다.

8171억원 가운데 국가 지원금은 31.9%인 2609억원에 달한다. 이처럼 예산이 늘어난 것은 주로 경기장으로 사용할 기존 시설의 개보수에 들어가는 비용이 급증한 데 따른 것이다. 유치승인 신청 때 소요 예산을 축소했다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최근 유치과정에서 정부보증서 위조 파문이 불거진 2019 세계수영선수권대회도 638억원이던 예산계획이 유치 후 1000억원대로 불어났다.

증세 딜레마
선심성 공약 재검토?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사실 '비과세 감면 정비'는 이미 대선기간 박 대통령이 '증세 없는 복지'를 시행하는 선제조건으로 내세웠던 것이다. 그런데 이마저 여론의 반발에 부딪쳤고 설상가상으로 세수 부족이라는 악재까지 겹쳤다. 2017년까지 세수가 1조8000억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대로라면 증세 없는 복지는커녕 증세 없는 국가운영조차 힘들 지경"이라며 "대선공약이라고 할지라도 무차별적인 선심성 공약은 재검토하고 선거 때만 되면 앞다퉈 시행되는 지역 선심성 사업 등도 면밀히 검토해야만 재정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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