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천재’ 유진박 충격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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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천재’ 유진박 충격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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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에 갇힌 천재, 다시 날 수 있을까

[일요시사=사회팀] 한때 소속사의 감금 및 착취로 어두운 과거를 보낸 전기바이올리니스트 유진박.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바이올린을 들고 전국을 누볐다. 지금도 여전히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그는 과연 행복할까.

유진박은 과거 소속사에 의해 깊은 내상을 입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좋은 소속사를 만나 다시 부활하는 듯 했으나, 그를 막는 ‘벽’ 때문에 여전히 작은 행사로 전전하고 있다. 건강상태도 좋지 않다고 전해진다. 팬들은 그가 날개를 펼칠 수 있는 무대로 복귀하길 원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구해야 한다”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유진박을 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널리 퍼지고 있다. 그 이유는 유진박이 과거 아픈 기억을 딛고 일어서는 듯 보였으나, 여전히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 그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의혹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사실 구체적이고 명료한 것은 별로 없다. 유진박이 입을 다물고 있고, 소속사는 본인이 원해서라고 한다. 키를 쥐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어머니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고 그저 지켜봐 달라는 입장이다.

반면 팬들은 유진박을 지켜만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과거에 비해 확연히 퇴보한 그의 모습을 원상태로 복귀시켜 천재 아티스트로 돌려놓아야 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유진박은 음악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그는 3살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해 8살에 줄리어드 예비학교 전액장학생으로 입학했다. 10살 때는 웨인심포니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했고 13살 때 링컨센터 무대에 데뷔했다. 이후 줄리어드 스쿨 콩쿨 우승, ISK컴피티션 대상, 아스팬 뮤직 컴피티션 우승 등 6개의 콩쿨에서 우승한 이력이 있다.

또한 미국에서 엄청난 관심이 집중되는 슈퍼볼 전야제(슈퍼스타급만 가능) 무대에 올라 공연을 할 만큼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촉망받는 바이올리니스트다. 줄리어드 재학 시절 ‘동양의 존 레논’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이다. 이처럼 유진박은 뛰어난 연주자다. 분명 음악계에서 독특한 입지를 가진 존재임이 분명하다. 그가 무대에서 열정적으로 연주에 몰입하는 모습은 사람들을 매혹시킨다.

그러나 그에게 찾아온 암흑기, 무려 10년간 기획사로부터 감금, 강제 약물 복용, 과도한 행사, 금전적 착취에 시달렸다. 그리고 그는 미국으로 떠났고, 얼마 후 어떤 영문인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그의 순수한 열정이 길거리에서 소멸되고 있다.

소속사를 잘못 만난 탓일까. 유진박은 허름한 고깃집, 양로원, 길거리, 지하철, 안경점 등 그의 실력과는 다소 격이 맞지 않는 장소에서 공연을 했다. 이 같은 모습이 세간에 알려지며 유진박을 둘러싼 진실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2009년 유진박의 감금, 강제약물복용, 폭행으로 논란이 됐을 때, 팬들은 유진박을 구하기 위해 없는 시간을 쪼개며 피켓을 들었다. 결국 기획사 대표는 구속됐고, 그해 8월 유진박은 회복을 위해 미국으로 향했다. 구명카페 회원들은 더 이상 지켜만 볼 수 없다는 판단에 그를 진정으로 돕고자 팔을 걷어붙였다. 그것이 바로 ‘뉴욕 프로젝트’다.

‘우여곡절’좋은 소속사 만나 부활하나 했더니… 
착취 파문 이후에도 여전히 시골 행사장 전전

팬들은 우선 그가 의사 소통이 자유로운 미국 뉴욕에서 정신적, 육체적 상처를 치유하고 ‘음악적 부활’을 위해 과거 지미핸드릭스와 밥딜런이 초창기 정기공연을 했을 정도로 음악과 유서가 깊은 Cafe Wha에서 친분이 있었던 카페 주인 Noam을 만나 그가 새로 운영하는 The Village Underground에서 유진박이 정기적 연주를 가능하도록 부탁했다. 그렇게 무대에 오른 유진박은 관객들에게 극찬을 받았다.

공연을 본 관객들은 하나같이 그를 천재라고 외쳤다. 유진박은 점점 육체적, 정신적으로 그리고 음악적 부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진박의 어머니는 뉴욕팀을 믿을 수 없다며 뉴욕프로젝트 전에 그를 괴롭히던 기획사의 실장이 만든 모 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맺었다. 결국 그는 회복하기도 전에 한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 사실을 전혀 몰랐던 대중들은 브라운관에 복귀한 유진박을 반겨줬고 그가 다시 부활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진박의 팬들은 알고 있었다. 한국에 입국한 게 공포의 신호탄이었다는 것. 입국 후 유진박은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다.

당시 문제가 됐던 경로당 연주에 대해 소속사 측은 “지방이나 마을회관에서 공연을 할 수 없다면 거기 계신 분들은 음악을 들을 권리가 없는 거냐”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유진박 구명카페 팬들은 그를 안전한 소속사와 계약시켜주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A엔터테인먼트 대표에게 간곡히 부탁해 3년 계약을 맺게 했다. 이후 A엔터는 전 소속사와 다르게 그의 건강한 이미지 관리에 힘을 기울였다. 결과적으로 유진박은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고, 격 있는 행사장에서 연주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계약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를 막는 ‘벽’ 때문에 3년 계약은 1년으로 바뀌게 됐다.

2012년 5월까지 A엔터와 함께하고 그해 6월부터 12월까지는 소속사 없이 작은 행사를 뛰었다. 그의 어머니는 매니저처럼 늘 유진박과 함께했다. 그리고 2013년, 유진박 어머니는 지금의 소속사와 계약을 맺었다. 이후 지금까지 유진박은 전국 곳곳을 다니며 전기바이올린을 울리고 있다. 그를 구하기 위한 팬들의 노력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유진박은 자폐증을 의심받기도 했다.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의존성향이 강하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그를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그는 생각보다 뛰어난 사회성으로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팬미팅 등 충분한 소통을 한다고 전해졌다.

유진박을 현 상황에서 ‘구출’하기만 하면 다시 예전의 그 유진박으로 돌아올까. 어떻게 보면 이 발상은 그간의 세월과 이런 모든 음악적 환경, 여건 등을 고려하지 않은 환상에 불과할지 모르겠다.

현재 유진박은 스스로 자기 상황을 타개해 나갈 능력이 없는 사람이고, 그를 계속 행사로 내몰고 또 곁에 붙잡아 둔다면 그것 자체로 감금이나 다를 바 없다. 결국, ‘인간’ 유진박을 구하는 것까지는 그리 어렵지 않게 가능할지 모르지만 ‘천재’ 유진박을 되찾아 오는 것은 수사나 구명운동 같은 식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런 관점에서, 유진박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일단 정서적 안정을 취할 수 있는 휴식과, 다소간의 정신과적 치료다.

다시 구명운동

이를 위해 시골 행사장을 찾아다니는 대신 소극장에서의 중장기 공연을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기획만 잘 한다면 음악적 가치도 높일 수 있고, 대중과도 호흡하며 아티스트 스스로 즐길 수도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우선 ‘인간 유진박’이  바로 서고, 작더라도 그에게 맞는 무대를 만들어주는 것, 그리고 그런 공연을 하게 되면 거기에 많이 가주는 것, 그런 게 유진박을 돕는 진정한 길이 아닐까.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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