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검란' 검찰 수뇌부 파워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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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검란' 검찰 수뇌부 파워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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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역풍 맞을라…벌집 건드렸다

[일요시사=취재2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또다시 '검란(檢亂)'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검란의 근원지는 바로 서울중앙지검. 박근혜정부 들어 중수부의 기능을 이관 받았던 서울중앙지검은 쏟아지는 외풍에 휘청거리고 있다.


지난 18일 속보가 떴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 수사 지휘라인에 있던 윤석열 여주지청장(특별수사팀장)이 내규를 어겨 직무배제 됐다는 믿기 힘든 소식이었다. '채동욱 사건' 이후 뒤숭숭했던 검찰은 또다시 벌집이 됐다.

서울중앙지검
정치권력에 휘청

그간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수사는 현 정권의 정통성을 건드리는 민감한 수사로 여겨졌다. 수사 과정에서 청와대와 검찰의 엇박자는 여러 차례 감지됐고, 이 과정에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청와대 측 컨트롤타워가 교체됐다는 게 정설이다. 그리고 김 실장의 등장과 함께 '제2의 검란' 사태를 예고하는 징후가 포착되기 시작했다.

지난 8월 서울 강남의 한 유명 일식집. 곽상도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과 강효상 <조선일보> 편집국장이 비밀 회동을 가졌다는 소문이 퍼졌다. '채동욱 총장을 몰아내기 위해 청와대와 <조선일보>가 합작을 했다'는 의혹은 정가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지난 1일 민주당 신경민 의원은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 논란 및 사퇴와 관련, '김기춘 배후설'을 제기했다.
신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긴급현안질문에서 "8월5일 김 실장이 검찰 출신 정치인을 만나 '이 두 사람은 날려야 한다. 채동욱을 허수아비로 만들 방법이 뭐냐'고 물었다"며 관련 의혹을 폭로했다. 그리고 신 의원이 언급한 두 사람 중 한 명은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이었다.

조 지검장은 채 전 총장의 신임을 받고 있던 인물이었다. 특히 국정원 댓글 사건 등 검찰의 광폭 수사가 속도를 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조 지검장의 헌신이 있었다. 30개의 관할 부서 및 200여 명의 검사를 지휘했던 조 지검장은 정해진 휴가 한 번 써보지 못할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하다 조직 풍비박산
김기춘 등장부터…윤석열 폭로도 시나리오?

채 전 총장도 조 지검장에게 신뢰를 보냈다. 자신이 취임사에서 강조했던 '권한의 위임과 결과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20년 넘게 이어지던 관행을 폐기했다. 채 전 총장은 매주 화요일 서울중앙지검장이 독대형식으로 검찰총장에게 모든 수사 진행상황을 면담 보고하던 일정을 없앴다.

그러나 서울중앙지검 특수부가 사실상 중수부의 역할을 대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채 전 총장의 지시를 서울중앙지검이 이행하게 되는 일도 많았다. 결국 채 전 총장과 조 지검장은 긴밀히 소통할 수밖에 없었고 둘 사이의 이견은 부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채 전 총장이 물러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외풍을 막던 채 전 총장이 현 정권의 눈 밖에 나면서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 특별수사팀을 운영하고 있던 서울중앙지검은 위축됐다. 이 과정에서 "조 지검장이 고무신을 거꾸로 신었다"는 얘기가 들리는 등 검찰 안팎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윤 지청장은 이 같은 분위기를 포착하고 '항명'이란 승부수를 던지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조 지검장은 윤 지청장을 수사팀에서 제외하는 강수로 맞섰다.

윤석열 항명
조영곤 눈물

그런데 사건은 예상치 못한 국면으로 전개됐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국정감사 자리에 윤 지청장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 자리에서 윤 지청장은 "조 지검장이 수사를 방해했다"는 내용의 폭로를 했다.

윤 지청장의 발언에 따르면 윤 지청장은 지난 15일 밤 조 지검장의 자택을 방문했다. 평소 호형호제하던 둘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하지만 윤 지청장은 조 지검장과 맥주를 마시던 중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에 대한 체포·압수수색 영장 등 강제 수사 필요성을 역설했다. 또 향후 수사계획을 밝히며 조 지검장의 재가를 받아내려 했다.

그러나 조 지검장은 격노한 뒤 "야당 도와 줄 일 있나. 야당이 이걸(중간수사 결과) 가지고 정치적으로 얼마나 이용하겠냐"고 만류했다. 또 "내가 사표내면 해라. 우리 국정원 수사의 순수성이 얼마나 의심받겠냐"고 윤 지청장을 질책했다.




조 지검장의 반응을 본 윤 지청장은 조 지검장의 동의하에 사건을 수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특별수사팀의 운명이 위태하자 윤 지청장은 독자 행동을 개시했다.

조 지검장을 만난 다음날인 16일 윤 지청장은 박형철 부장(부팀장)의 전결로 체포·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다. 그리고 17일 윤 지청장은 조 지검장을 만나 영장집행을 사후 보고했다.

보고를 들은 조 지검장은 대노했다. 특별수사팀을 총괄·지휘하는 자신에게 정식 결재나 승인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조 지검장은 지휘체계를 무시한 윤 지청장에게 직무배재란 중징계를 내렸다.

하지만 윤 지청장은 이를 부당하게 생각했다. 그는 국정감사 자리에 나와 "검사가 중대범죄를 포착해 상관에 보고할 경우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수사를 하도록 하는 것이 맞다"며 "처음부터 (내가) 보고했을 때 수사하라고 했으면 이런 일이 있었겠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윤 지청장의 폭로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그는 "(국정원) 수사 초기부터 외압이 계속 되어 왔다"며 "사실상 수사팀을 힘들게 하고 수사하는 사람들이 느끼기에 정당하거나 합당하지 않고, 도가 지나쳤다면 그것을 외압이라고 느낀다"고 설명했다. 윤 지청장이 암시한 외압의 배후로는 황교안 법무부장관 등이 지목되고 있다.

윤 지청장의 연이은 폭로와 국회 법사위 위원들의 질타가 쏟아지자 조 지검장은 결국 눈물을 흘렸다. 그는 "수사팀을 신뢰하면서 많은 힘을 실어줬다"며 "보고나 협의 과정에서 충분히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조 지검장의 권위와 공정성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잇따른 폭로전에
초유의 셀프감찰

국정감사에서 돌아온 조 지검장은 22일 본인에 대한 감찰을 대검에 정식 요청했다. 현직 검사장이 자신에 대한 감찰을 자발적으로 요청한 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

대검 감찰본부는 조 지검장과 윤 지청장을 비롯해 박 부장, 이진한 서울중앙지검2차장 등 주요 지휘라인 뿐만 아니라 특별수사팀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일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휘라인 내에서도 각기 다른 입장을 갖고 있는 이들의 진술이 엇갈릴 경우 자칫 감찰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상 초유의 '셀프감찰'이 현실화되자 일선 검사들과 수사관들은 사석에서 이번 '검란 사태'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는 등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특히 이번 사태가 검찰의 향후 수사 방향 및 검찰 조직의 명운과 직결된 문제란 생각에 시름은 더욱 깊어지는 모양새다.

부장급 이하 검사들은 대체로 윤 지청장의 행동을 두고 '이유 있는 항명'이란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검사는 "이번 사건은 윤 지청장 말대로 해석에 대한 입장차이가 아니라 부당한 지시에 대한 소신 있는 결단으로 봐야 한다"며 "치열한 설득의 과정을 거쳐야 했지만 끝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나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검사도 윤 지청장의 항명에 힘을 실어줬다. 그는 "채 전 총장이 남았더라면 아마 수사팀의 방침대로 하라고 했을 것"이라며 "외풍을 막아줄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앞으로 법과 원칙에 따른 수사가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서울에서 근무 중인 한 검사는 윤 지청장의 행동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외압을 행사했다'는 황 장관이나 '고무신을 거꾸로 신었다'는 조 지검장이나 평소에는 인품이 훌륭하고 후배들의 지지를 받는 선배였다"며 "이분들이 외압의 실체로 지목되니 검찰 조직이 흔들리는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채동욱-조영곤 라인 외풍으로 무너져
공안통·특수통 우두머리 줄줄이 저격

한 부장급 검사 역시 "중요한 사안일수록 정식 절차를 밟아 논란의 여지를 남기지 않았어야 했다"며 "신중하지 못한 처사였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윤 지청장은 지난해 검란 사태의 지분이 있는 사람이다. 당시 한상대 검찰총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으로 불렸던 최재경 특별수사부장(현 대구지검장)에 대한 감찰을 지시했다. 이에 특수부 검사들은 일제히 반발했는데 이때 소매를 걷어붙인 검사 중 한 명이 바로 윤 지청장이다.

때문에 윤 지청장은 평소 검찰 내에서도 보수파로 이름이 높다. 한 검사의 증언은 이를 뒷받침한다. 그는 "보수주의자인 윤 지청장이 좌파검사로 매도되고 그간의 수사성과까지 의심받는 상황을 보면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며 "이런 분위기에서 그 누가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겠냐"라고 탄식했다. 아울러 그는 "검찰 구성원이 패배주의에 빠지고 또 다시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써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자책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번 '검란 사태'가 좀처럼 봉합될 여지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복수 언론에 따르면 조 지검장은 윤 지청장에게 국정감사 불출석을 종용했다.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국감에 나오지 마라'고 조 지검장이 지시했다는 것이다. 더불어 윤 지청장은 윤상현 새누리당 원내부대표가 수사팀만 아는 기밀을 언론에 발설한 사실을 언급하며 "수사가 (외부세력에 의해) 방해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갈등봉합
누가할까

사태가 점차 진실게임 양상으로 비화하자 한 검찰 관계자는 이번 '검란 사태'를 특수통과 공안통의 갈등으로 풀이하기도 했다. "공안통이었던 한상대를 쫓아낸 게 특수통이고, 특수통인 채동욱을 쫓아낸 게 공안통이라 이번 사건은 (조 지검장이 아닌) 권력을 쥐고 있는 공안통에 대한 특수통의 반란으로 봐야한다"는 설명.

지난 주말 청와대가 김진태 검찰총장 후보를 내정한 가운데 이번 검란 사태가 더욱 확대될 것이란 시각도 있다. 검찰 주변에선 "특수통 출신이지만 공안통과 더 가까운 김 후보가 주류 특수통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궁극적으로 '검찰의 독립성'을 바라보는 공안통과 특수통의 다른 시각이 있는 한 이번 항명 사태는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강현석 기자<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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