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의류 '소문과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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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의류 '소문과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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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감에 피묻은 구제옷…혹시?


[일요시사=사회팀] 중고의류를 흔히 ‘구제’라고 부른다. 괜찮은 상품은 대부분 일본, 미국 등에서 수입한다. 발품만 잘 팔면 A급 상품을 구해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다. 모래 속 진주 찾기지만, 간혹 중고명품도 보인다. 그런데 구제 옷에 얽힌 섬뜩한 이야기가 있다. 죽은 사람의 옷이 아니냐는 의문이다. 그 소문과 진실은 무엇일까.

한국은 구제 옷 수출국이자 수입국이다. 우리의 헌 옷을 제3국으로 수출하면서, 동시에 일본, 미국, 이태리 등으로부터 구제 옷을 수입한다. 구제시장은 현재 유행하는 스타일과 차별화된 모습으로 마니아층을 확보한 상태다. 과거에는 패션디자인과 학생이나 연극인들이 주 고객이었지만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스타일창고’가 됐다. 단골 여부에 따라 A급 상품을 고를 수 있는 특권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구제 옷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한 사람들이 있어 궁금증을 자아낸다.

찝찝한 얘기들

보통 구제 옷은 세탁되지 않은 상태로 판매된다. 이렇게 판매되다 보니 간혹 옷 주머니에서 정체모를 영수증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영수증은 애교다. 구제이기 때문에 그냥 웃어넘길 수 있다. 하지만 옷의 안감 등에서 혈흔을 발견했다면 어떨까.

실제로 일부 구제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이런 일이 종종 발생한다고 전해진다. 일부에서는 구제 옷이 죽은 사람의 옷이라고 주장한다. 외국에서 사망한 노숙자의 옷이라는 것. 정확한 근거는 없다. 그러나 구제 옷이 무게를 달아 대량으로 수입되다 보니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와 관련된 괴담도 떠돌고 있다.

대학생 A씨는 온라인 구제숍을 통해 고가의 명품 가방을 저렴하게 구입했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가방을 멨다. 그런데 그날 밤, 꿈속에 낯선 여인이 나타났다. 그녀는 A씨의 가방을 들고 있었다. 이후 이러한 꿈은 계속 반복됐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안 좋은 일들이 이어졌다. 불안감을 느낀 A씨는 결국 무속인을 찾아갔다. 무속인은 A씨의 가방에 원한이 있기 때문이라며 가방을 당장 버리라고 했다.

B씨는 구제숍을 통해 고가의 청바지를 구입했다. 그러나 기장이 길어 수선하기 위해 세탁소로 찾아갔다. 세탁소 주인은 밑단을 접다가 노란 얼룩을 발견하고는 “이거 혈흔이었던 것 같다”며 “혹시 다리를 다친 적이 있냐”고 물어봤다. B씨는 당황하며 청바지를 들여다봤다. 그는 얼룩을 혈흔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찝찝한 기분은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이처럼 구제 옷과 관련된 괴담은 끊이지 않고 있다. 물론 구매자의 망상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구제 옷의 유통경로는 크게 두 가지다. 구제의류 수입업자가 일본 미국 이태리 등지에서 수집한 중고의류를 수입해 판매하는 것과 현지에서 깨끗한 상품으로 선별해 수입하고 판매하는 것이다. 국내에서의 도매는 원 수입회사에서 직접 도매를 관장하는 곳과 상품을 추출해 도매를 하는 구조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의류수거함 안에 있는 옷들 중 일부도 구제시장으로 유통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경기불황에 저렴한 구제시장 북적북적
구매자 사이에 황당한 ‘괴담’떠돌아

지난 17일 구제 옷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광장시장의 구제상가를 방문했다. 광장시장 내 2층에 위치한 구제상가는 생각보다 컸다. 그리고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쇼핑 중이었다. 그들과 함께 발걸음을 맞춰봤다.

일단 어떤 상품들이 있는지 궁금했다. 구제 옷이라 그런지 듣던 대로 독특한 상품들이 눈에 띄었다. 지금 유행하는 스타일의 옷은 없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일 것 같은, 유니크한 스타일의 옷들로만 꽉 차 있었다. 옷걸이가 촘촘히 걸려있을 정도로 물량은 충분했다.

구제 숍마다 특징이 있었다. 가방 파는 곳, 바지 파는 곳, 니트 파는 곳, 신발 파는 곳 등이었다. 그리고 구제숍을 지날 때마다 가격을 흥정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동생 이거 6만원에 줄게” “그냥 4만원에 주세요” “오케이 4만5000원, 더 이상은 안 돼”

흥정 소리에 집중하고 있던 기자의 팔을 한 판매자가 붙잡았다.

“삼촌 뭐 찾아요? 말만 해요 바로 찾아드릴게” “재킷 괜찮은 거 있어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판매자는 재킷 여러 장을 펼치며 “얼마 생각하는데?”라며 원하는 가격을 제시하라고 했다. 시장조사를 전혀 못한 탓에 얼마까지 해줄 수 있냐고 묻자, 판매자가 직접 가격을 제시했다. “이건 4만원, 이건 6만원….” 가격을 듣고 나가려고 하자 판매자는 파격 제안을 했다. “오케이! 기다려봐, 6만원짜리 4만원에 줄게” 끝내 거절하자 한 번 더 붙잡고는 “오늘 첫 손님이니까 진짜 그냥 준다. 3만5000원에 가져가” 이렇게 고무줄 같은 흥정은 태어나서 처음 느꼈다. 알아서 가격이 내려갔다. 아마 일반 의류였다면 이러한 흥정의 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구제니까 가능한 그림이었다.




재킷 등 몇몇 옷들의 가격을 물어보면서 구제 옷들의 시세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기본적인 시장조사가 된 상태에서 다시 다른 숍들을 찾았다. 보통 셔츠와 니트는 5000원에서 2만원 사이, 바지는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 재킷류도 가죽 등 소재에 따라 가격에 차이가 있었다. 쉽게 말해, 5만원을 들고 가면 적어도 최소 2∼3개의 옷을 집어올 수 있다. 물론 구제도 구제 나름. 브랜드와 상태에 따라 옷의 가치가 결정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구제 옷은 딱히 하자가 없었다. 우려했던 얼룩은 찾기 힘들었다. 이왕 방문한 김에 하나라도 건지자는 생각에, 한 숍에 들어갔다. 쭉 둘러본 결과 10만원이 넘는 브랜드 니트를 2만원에 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판매자에게 항간에 떠도는 괴담을 전했다.

“그런 이야기는 예전부터 돌고 돌았어요. 근데 여기 옷 상태를 보면 알겠지만 그런 상품은 아예 취급을 안 해요. 그리고 저희 숍은 1주일에 2∼3번 새로운 물건들이 대량으로 들어와요. 보통 미국, 일본, 이태리 등에서 무게 달아 따오는 거죠. 솔직히 가죽제품 같은 건 잘 찾아보면 여기서 사는 게 이득이에요. 상태 좋은 거 헐값에 가져갈 수 있어요. 가끔은 택 달린 옷도 볼 수 있죠. 구제도 고르는 방법이 있어서 단골들은 A급 상품을 알아서 잘 골라가요.”

잘 고르면 횡재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떠올랐다. 옷 좀 입는다는 구제마니아들에게 구제상가는 ‘보물창고’였다. 그리고 단골들은 대부분 패션디자인과, 시각디자인과 학생, 인근 대학로에 있는 연극인들이라고 전해진다. 저렴하고 독특한 탓에 많이 찾는다는 것. 그런데 요즘에는 일반 대학생들과 직장인들의 발걸음도 늘었다고 한다. 다시는 생산되지 않는 구제 옷의 희소성 때문이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의류수거함 헌옷 가져가면?

의류수거함에 있는 헌옷을 가져가면 절도죄가 성립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의류수거함에 담긴 헌옷은 수거함 설치자 개인의 소유라는 판단이다.

서울고법 형사3부(부장판사 임성근)는 지난 15일 의류수거함에 있는 의류를 꺼내간 혐의 등(강도상해 등)으로 기소된 장모(50)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의류수거함 설치자가 주기적으로 옷들을 수거한 점 등에 비춰 수거함에 담긴 재활용 옷들은 설치자 소유로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다만 가정형편이 어렵고 수거함 관리자와 원만하게 합의한 점 등을 고려했다”며 1심이 선고한 징역 3년6개월보다 형량을 낮췄다.

장씨는 지난 4월 수원의 주택가에 설치된 의류수거함에서 재활용 의류 40kg를 꺼내 갖고 이를 제지하는 의류수거함 관리자에게 부상을 입힌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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