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 빠진' 부산 고부살인사건 전모피 씻고 도망…완전범죄로 끝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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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빠진' 부산 고부살인사건 전모피 씻고 도망…완전범죄로 끝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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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모피 씻고 도망…완전범죄로 끝나나


[일요시사=사회팀] 부산진구 가야동에 있는 한 주택가. 두 달 전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건물 주변은 비교적 한산한 모습이었다. 자산가로 알려진 80대 할머니와 60대 며느리가 차례로 살해된 이 사건은 용의자 특정에 난항을 겪으며 장기화되고 있다. 과연 누가 고부를 살해한 것일까. 인근 주민들은 "범인이 잡혀야 피해자도, 경찰도, 쉴 수 있지 않겠느냐"며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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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팀으로 연결된 내선 전화는 신호만 갈 뿐 쉽사리 통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사건을 수사 중인 부산진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사건 초기에 비해) 요즘은 (수사본부가) 통 말이 없다"며 안팎의 분위기를 우회적으로 전했다. 수사관들은 사소한 단서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러나 답답하기는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답답한 경찰

지난 1월8일 가야동 한 건물 4층 가정집에서 김모(87·여)씨와 정모(66·여)씨는 둔기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의 사망 사실을 경찰에 신고한 건 김씨의 큰손자(35). 그는 경찰 조사에서 "날마다 집에 전화를 하는데 7일 저녁부터 전화가 되지 않아 다음날 집에 와보니 문이 잠겨 있었고, 들어와 보니 두 분이 머리에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장성한 손자가 오래전 이들과 분가한 뒤 따로 살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사건 현장은 비교적 다툼의 흔적이 적었다. 김씨의 시신은 평소 생활하던 작은방에서 발견됐다. 며느리 정씨도 거실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특히 정씨는 피살 직전 누군가와 다툰 듯 둔기로 수차례 구타당한 외상을 보였다. 자물쇠가 파손되는 등 강제력에 의한 외부침입 흔적은 없었다.

경찰은 지난해 말부터 김씨가 치매증상을 보인 것에 주목했다. 며느리 정씨는 만일의 상황을 대비, 주변 사람들에게 집 디지털도어록 비밀번호를 알려줬던 것으로 조사됐다. 즉 비밀번호를 알고 있던 누군가는 흔적을 남기지 않고 침입해 범행을 저지르고 도주했다는 추리가 가능했다.

지난달 23일 '부산 고부 살인사건' 용의자 검거를 위해 구성된 수사본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및 현장감식 결과를 발표했다. 수사본부에 따르면 김씨는 정씨보다 먼저 둔기에 맞아 살해됐다. 사인은 과다출혈. 그리고 약 2∼3시간 뒤 며느리 정씨는 같은 둔기에 맞아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제3의 인물'이 정씨 집에 침입한 뒤 작은방에 있던 김씨를 살해한 후 정씨를 기다렸다가 연이어 살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로써 외부 침입에 의한 범행 정황은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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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정씨가 사망하기 전날인 7일 오후 4시께 "며느리 정씨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봤다"는 이웃 진술을 토대로 인근 CCTV 분석에 나섰다. 또 수사본부는 경찰력 700여명을 투입해 사건 현장 일대에서 강도 높은 탐문수사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당일 오후 '40∼50대 중반 여성'과 '키 170㎝가량의 남성'이 정씨 집 주변에서 서성대는 것을 봤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중간발표 후 용의자를 특정할 만한 결정적인 단서는 포착되지 않았다.

주택가가 밀집한 사건 현장 근방에는 CCTV가 없었다. 경찰은 현장과 150m 떨어진 곳에서 정씨가 집으로 걸어가는 장면만 확인할 수 있었다. 인근 마트에 있던 것으로 보이는 거동수상자가 용의선상에 올랐지만 별다른 혐의점을 잡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정씨가 범인에게 저항하는 도중 벽에 던져 깨진 것으로 추정되는 와인병에 묻은 피와 거실 바닥에 떨어진 피를 채집했다. 당초 이 피는 경찰이 찾고 있던 '제3의 인물'이 누구인지 밝힐 결정적 증거로 기대를 모았으나 분석 결과 신원 파악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또 경찰은 현장 주변으로부터 반경 300m에 있는 100여개의 CCTV와 주차된 차량의 블랙박스 30대를 수거해 추가 분석을 벌였지만 의미 있는 증거 확보에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 답답한 건 김씨와 정씨가 살해당한 이유가 불분명하다는 것에 있다. 수사 초기 단계에서 경찰은 돈을 노린 범행을 의심했다. 실제로 정씨는 '수십억원대 자산가'로 통했다. 초동 수사에서 경찰은 정씨 소유의 순금 거북이 분실된 것을 확인했다. 그렇지만 사라진 순금 거북은 새마을금고에 보관돼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정씨 재산 대부분은 부동산이거나 예금 형태로 은행에 예치돼 있었다. 금품을 노린 범행이라기에는 동기가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다이아몬드 등 고가품도 현장에 그대로 있었다.

김씨와 정씨는 동네 토박이로 35년을 가야동에서 살았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정씨는 2004년부터 시어머니를 모셨다. 이들이 살던 건물 1층에는 상가가 있었고, 2∼3층은 비어있었다. 고부가 살던 4층은 접근이 어려웠다. 생전 조심성이 많은 성격 탓에 외부인의 왕래는 거의 없던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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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이번 사건의 주 피해자로 정씨를 지목하고 있다. 정씨는 둔기에 맞은 횟수가 시어머니 김씨보다 많았다. 원한 관계에 의한 면식범의 범행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고인의 친척과 지인들은 "정씨가 원만한 성격이었다"고 증언했다. 또 정씨 주변의 남자관계도 깔끔했던 것으로 경찰은 전했다. 정씨의 통화내용을 샅샅이 조회했으나 별다른 단서는 드러나지 않았다.

지역 언론에 따르면 수사본부는 사건이 발생한 1월7일 오후 4∼7시께 현장 주변에서 급히 택시를 타거나 피 묻은 옷을 입고 이동하는 사람을 찾고 있다. 아울러 경찰은 동네 주민을 상대로 협조를 요청한 뒤 반상회까지 열어 증거 확보에 안간힘을 기울였다. 하지만 수사가 장기화되면서 전담 수사 인원은 100여명에서 40여명으로 대폭 축소됐다.

급기야는 숨진 정씨의 방 옷걸이에서 발견된 '모자'가 수배됐다. 지난달 24일 수사본부는 이번 사건의 유력한 증거로 추정되는 모자를 공개했다. '박00'이라는 이름이 적혀있는 모자는 평소 정씨가 즐겨 쓰던 모자와 나란히 걸려 있었다. 그간 경찰은 모자와 범인의 관련성을 놓고 다각도로 수사를 진행해왔다. 앞서 유족들은 "박00이라는 사람을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현재 경찰은 이 모자의 구입처를 필사적으로 수소문하고 있다.

정씨 집 욕실에서 발견된 혈흔은 범인이 범행 직후 피를 씻은 것을 암시했다. 이밖에도 현장에서는 일부 혈흔과 지문이 추가 발견된 것으로 파악됐다. 수사본부는 최근 채집한 증거 분석결과에 희망을 걸고 있다.

치밀한 범행

최초 범행 수법의 잔인함과 치밀함 등으로 미뤄 용의자는 초범이 아닌 강력 범죄 전과자인 것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이렇다 할 용의자가 추려지지 않자 경찰은 원점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자료를 검토 중이다. 정씨가 갖고 있던 여성용 중지갑이 사라진 배경도 관심이다. 지갑 안에 범인을 특정할 만한 단서가 있을 수도 있는 까닭이다. 경찰은 지갑의 소재를 쫓는 한편 정씨 주변을 상대로도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부산=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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