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삐 풀린 무기수 ‘8일 도주’ 풀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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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삐 풀린 무기수 ‘8일 도주’ 풀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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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고 도망갔다 죽어서 돌아왔다

[일요시사 사회팀] 박호민 기자 = 귀휴를 나간 뒤 복귀하지 않았던 무기징역수 홍승만(47)이 잠적 8일만에 창녕군의 한 야산에서 싸늘한 주검이 돼 발견됐다. 8일간 그는 무엇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것일까. 그의 도주행적을 따라가 봤다.

강도살인죄로 전주교도소에 복역 중이었던 무기수 홍승만은 지난달 17일 모범수에게 휴가를 보내주는 제도로 수감생활 19년 만에 4박5일간의 귀휴를 나왔다. 그러나 그는 귀소일인 같은 달 21일 오후 4시까지 교도소에 복귀하지 않으면서 도피생활을 시작했다.

도피생활의 시작과 끝

홍승만은 도주 첫날인 21일 오전 7시 30분경 서울 송파구 소재의 친형 집에서 식사한 뒤 집을 나와 청량리역으로 이동, 강원도행 열차를 타면서 자취를 감췄다.

일각에서는 홍승만이 펜팔교제를 하고 있는 한 여인에게 청혼을 거절당한 것이 도피를 결심하게 된 이유가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모범수이자 19년을 복역한 그가 1년만 형을 살면 감형 대상자인데 굳이 도피를 선택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실제 그는 도주 전날 교도소에서 6년 넘게 편지를 주고받은 펜팔 교제여성을 만났다. 당시 홍승만은 친형과 함께 경기도 안양에 사는 여성 집을 찾아가 혼인신고를 제안했다 거절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원도에서 자취를 감춘 이후 그는 연고가 없는 부산에서 발견됐다. 23일 오후 9시 10분경 부산 금정구 종합버스터미널에 도착한 동해발 버스에 몸을 싣는 장면이 CCTV에 포착된 것. 홍승만은 같은 날 부산 금정구의 한 모텔에 투숙했고 다음날 오전 8시경 모텔에서 나와 약 1시간 40분간 남산동 일대를 배회했다. 그는 이날 오전 10시 12분경 도시철도 범어사역 근처에서 울산행 시외버스를 타고 울산시 울주군 언양시외버스터미널에 하차해 또다시 행적을 감췄다.

홍승만이 나흘간 서울→강원도→부산→울산으로 도피행각을 벌이는 동안 수사 당국은 2, 3일 전 행적 확인에 그치면서 ‘허둥지둥’한 모습을 나타냈다.

서울에서 울산까지 전국일주
펜팔녀 청혼실패가 도피 원인?

전주교도소는 사건 발생 초기 “모범수 홍승만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며 얼굴과 인적사항의 공개를 하지 않았다. 또 ‘72시간 자체 수사권’을 이유로 공개수배를 미루기도 했다. 결국 24일 오전에야 공개수배를 결정했지만 초동대응 미흡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는 없었다.

부산경찰청도 홍승만이 부산을 떠난 지 이틀 뒤인 26일부터 대대적인 검문검색과 탐문수사를 벌이면서 ‘늑장수사’ 지적을 받았다. 부산경찰청은 결국 홍승만이 머물렀던 모텔을 27일에야 확인할 수 있었다.

25일 홍승만은 마지막 도피처인 충남 창녕군 장마면의 한 사찰에 잠입했다. 홍승만은 이날 경남 양산시 통도사 입구에서 만난 사찰 주인 A씨에게 “사찰에서 보름만 함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A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홍승만이) 검은 모자에 마스크를 써서 눈밖에 볼 수 없었다. 젊은 사람이 같이 가자고 그러기에 좀 불안했지만 다른 일행이 ‘괜찮지 않겠느냐’고 해서 동행했다”라고 설명했다. 

A씨와 함께 사찰에 도착한 홍승만은 손님방에 머물면서 식사를 준비하거나 설거지를 해 친밀감을 높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던 지난 27일 사찰 주변을 둘러보던 그는 ‘등산 가도 되겠다’라는 말을 남긴 뒤 사찰에서 사라졌고, A씨는 홍승만이 29일이 돼서도 나타나지 않자 경찰에 실종 신고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지방청 광역수사대와 기동대, 보안수사대 등 150여명을 투입해 현장 주변을 수색해 사찰 뒷편 야산에서 목매 숨져있는 홍승만을 발견했다.

발견 당시 홍승만은 청색 계열 티셔츠와 속옷 하의만 입고 있었다. 사찰에서 준비해 온 나일론 줄로 자살을 시도했지만 실패하자, 입고 있던 바지를 이용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홍승만이 사찰을 떠나기 전 모자와 파란색 티셔츠, 메모지 3장, 현금 80만원이 든 가방을 남겨둔 것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 메모지에는 ‘어머니, 형님, 누님, 막내동생 모두에게 죄송합니다. (펜팔 여성애인과 이름이 같은) 00씨 먼저 갑니다. 그 누구도 원망하지 말자. 세상에 사랑에 아등바등 구걸하지 말자. 조용히 가자.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라는 자살을 암시하는 내용과 지인 4명의 이름 및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귀휴 막았다면…

한편, 홍승만의 귀휴 적절성 여부와 관련 전주교도소 내에서도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채널A>에 따르면 홍승만은 지난해 가석방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했다. 홍승만은 당시 “펜팔 여인과 혼인신고를 하고, 부양해야 하기 때문에 출소를 앞당겨야 한다”며 가석방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당시 감형과 가석방은 통과되지 않았다. 이후 홍승만은 매우 불안한 상태를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홍승만의 귀휴 여부를 두고 전주교도관들은 극단적 선택을 우려해 반대했지만, 심사위원회는 규정상 문제가 없다며 허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donky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28세 홍승만, 무기징역 받은 사연

1995년 당시 28살이었던 홍승만은 내연녀 김씨(당시 44세)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시신을 불태우는 강도살인죄로 무기징역형을 받았다.

그에게 무기징역형을 내린 판결문에 따르면 홍승만은 1995년 11월29일 낮 12시께 경기도 하남시 신장1동 김씨의 집에서 김씨를 흉기로 위협하고 스타킹으로 손발을 묶은 뒤 목졸라 살해했다.

김씨를 살해한 뒤 그는 김씨가 몸에 지니고 있던 금목걸이와 다이아반지 등 75만원 상당의 금품과 김씨의 핸드백 안에 들어있던 예?적금통장 3개를 훔친 뒤 증거인멸을 위해 사체에 불을 질렀다. 그 후 홍승만은 훔친 통장을 이용해 현금 총 267만원을 인출해 유흥비로 사용했다.

당시 서울고등법원은 홍승만이 일반인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범행을 저질렀다며 무기징역형을 선고했다.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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