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노계 '호남판 자민련' 플랜 실체

한국뉴스

비노계 '호남판 자민련' 플랜 실체

일요시사 0 1030 0 0
▲ (사진 왼쪽부터)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문재인 대표, 무소속 천정배 의원

"친노 들러리 서느니 우리끼리 새집 짓자"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지금 야권에서 신당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4·29재보선에서 참패한 후 야권에서는 신당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신당 창당 움직임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지만 최근 진행되고 있는 이른바 '호남판 자민련 플랜'은 그 여느 때보다 구체적이다. 호남신당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물결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20대 총선을 채 1년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은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달 치러진 4·29재보선에서 단 한 석도 얻지 못한 채 전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든 것이다. 특히 ‘성완종 게이트’라는 호재를 등에 업고 대부분 야권 텃밭에서 치룬 선거라는 점을 감안하면 충격이 더 크다. 이런 선거에서도 이길 수 없다면 당장 내년 총선에서는 100석도 얻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호남의 불신임
흔들리는 친노

무엇보다 광주에서의 패배는 뼈아팠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광주 선거는 사실상 친노(친노무현)진영에 대한 심판이었다. 호남에서는 ‘친노가 호남에 해준 것이 뭐가 있느냐’는 불만이 팽배하다. 호남 주민들은 더 이상 친노가 이끄는 새정치연합에는 표를 줄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당내에서도 계파 갈등은 극에 달한 모양새다. 새정치연합 주승용 수석최고위원은 재보선 참패 이유에 대해 “친노 패권주의 때문에 졌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주 최고위원은 “당내에 친노 피로감이 만연돼 있다. 우리 당에 친노가 없다고 하는데 과연 친노가 없는가? 이번 재보선 공천도 경쟁력이 떨어지는 (친노)후보를 세워서 야권분열의 빌미를 준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광주 선거 끝까지 지원 안한 비노
문재인 사퇴 요구하며 명분 쌓기?

지난 2월 전당대회에서 ‘친노가 당권을 잡으면 당이 깨질 것’이라던 예언은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당시 문재인 대표 측은 호남신당론에 대해 “가장 유력한 당권주자인 자신을 견제하기 위한 비노진영의 실체 없는 협박일 뿐”이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호남의 민심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현재 새정치연합의 유력 대권주자가 모두 영남 출신인데 당권까지 친노가 가져가면 호남은 친노 거수기냐는 말이 나온다. 지난 2002년 참여정부 출범 이후 10년 이상 호남이 중앙정치권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호남소외론’은 호남신당론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 지난 4·29재보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천정배 의원

친노계에 대한 호남의 성난 민심은 지난 4일 문재인 대표의 광주 방문현장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됐다. 이날 문 대표는 재보선 참패 후 ‘회초리를 맞겠다’며 광주를 찾았지만 광주공항에 내리자마자 광주시민들의 격렬한 항의시위에 맞닥뜨려 뒷문으로 몰래 빠져나가는 수모를 당했다. 이날 20여명의 광주시민들은 ‘문재인은 더 이상 호남민심을 우롱하지 말라’ ‘호남이 봉이냐’ ‘새정련은 각성하라’ 등의 피켓을 들고 문 대표의 방문에 항의했다.

광주 방문
격렬 시위

호남에서 새정치연합이 깃발만 꽂으면 당선된다는 말은 이미 옛말이다. 지난해 치러진 6월 지방선거에서는 무소속 돌풍이 호남을 휩쓸었고, 그해 7월 재보선에서는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당선되는 이변까지 연출됐다.

호남이 돌아서자 새정치연합 의원들은 동요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지지기반인 호남이 새정치연합을 외면한다면 수도권도 위험하다. 항상 박빙의 승부가 펼쳐지는 수도권에서 호남 출신 유권자들은 새정치연합의 든든한 지지기반이었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우리 당이 호남의 신임을 얻지 못한다는 것은 정말 심각한 일이다. 지금 상황이라면 당장 내년 총선에서 새정치연합 마크 달고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당에 남아야 하는 것이 맞는지 지금 떠나야 하는 것이 맞는지 눈치싸움이 치열하다”며 “의원들 사이에서는 지금 신당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데 늦게 갈아타면 불이익을 당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도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최근 야권에서는 이른바 호남판 자민련 플랜이 주목받고 있다. 호남은 타 지역과는 달리 선거에서 새정치연합과 신당 간 1대1 구조를 성립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리하다. 만약 수도권에서 새정치연합과 신당이 격돌한다면 새누리당만 어부지리를 얻는 결과가 나올 수 있지만 호남을 기반으로 한 신당이 출범할 경우에는 그런 우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호남판 자민련 플랜의 중심에는 4·29 광주 서구을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무소속 천정배 의원이 있다. 천 의원은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가기에 앞서 취재진과 만나 “내년 총선에서는 광주호남에서 새정치연합과 경쟁하겠다”며 “(새정치연합) 의원 절반 정도를 빼와 다 뒤집어엎어야겠다”고 밝혔다.

천 의원은 이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내년 총선까지 광주를 중심으로 호남에서 DJ를 이을 만한 인재들을 널리 모아 새정치연합과 경쟁할 수 있는 구도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천 의원은 비록 “신당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이르다”고 말하긴 했으나 사실상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자민련(자유민주연합)은 과거 충청권을 기반으로 활동했던 정당이다. 1995년 3월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주도로 창당돼 2006년 4월까지 충청권을 대표했던 자민련은 창당 3개월 만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 4명을 당선시켰고, 1996년 치러진 총선에서는 국회의원 50명을 당선시켰다. 제3당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힌다.

물론 호남판 자민련을 만들려는 움직임에 대한 비판도 있다. 친노계로 분류되는 새정치연합 이해찬 의원은 지난 6일 기자간담회에서 “호남신당은 제일 한심한 소리”라며 “전국정당이 아니고는 국가 일을 할 수가 없다. 자민련이 국회의원이 되는 데는 도움이 되었을지 몰라도 지역발전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제2의 자민련
과연 성공할까?

그러나 동교동계를 비롯한 비노진영의 생각은 다르다. 과거 자민련처럼 사안에 따라 때로는 여당과 손잡고 때로는 야당과 함께하는 유연한 스탠스를 취하면 호남의 몸값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호남판 자민련은 선거 때마다 표를 몰아주고도 친노계로부터 철저히 소외받아왔던 호남의 니드(NEED)를 가장 잘 충족시켜줄 수 있는 대안이라는 것이다.

과거 DJP연합을 주도했던 한화갑 한반도평화재단 총재도 한 종편 프로그램에 출연해 “호남판 자민련은 호남 발전에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라고 못 박았다.

한화갑 총재는 “DJP연합 당시 JP의 요구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처음 보는 사람을 장관에 덜컥 임명할 정도로 당시 JP의 영향력이 상당했다”며 “호남판 자민련이 출범하면 호남이 정국의 캐스팅보트를 쥐고 정국을 주도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 'DJ(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오른팔'이자 '호남 맹주'로 불리는 박지원 의원

현재 호남에 걸려있는 의석수는 30석 정도인데 신당이 차기 총선에서 선전한다면 교섭단체 구성 요건인 20석을 충분히 넘길 수도 있다. 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넘기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원내3당 자리는 꿰찰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렇게 되면 중요 법안 처리를 놓고 극렬하게 대립할 때마다 여야가 신당에 찾아와 읍소하게 되는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천정배 승리로 신당 가능성 확인
이희호 여사 적극 설득작업 중?

호남판 자민련 플랜은 이미 시작된 모양새다. 호남신당의 성공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다. 호남권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김 전 대통령의 부인이 호남신당을 지지해준다면 당장 내년 총선에서 호남신당은 날개를 달게 된다. 때문에 이미 신당 창당을 모색하고 있는 이들이 이 여사에 대한 설득작업에 들어갔다는 풍문도 들린다. 이 여사는 지난 전당대회에서는 동교동계인 박지원 의원을 공개 지지하기도 했다.

이 여사는 신당설이 불거질 때마다 분열은 안 된다며 만류했지만 호남의 민심이반현상이 심각한 만큼 이번에는 결단을 내릴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천 의원은 이미 지난 6일 이 여사를 예방하기도 했다. 이 여사를 예방한 자리에서 천 의원은 자신이 김대중 정신을 잇는 ‘적자’임을 은연중 강조하면서 자신의 탈당과 무소속 출마가 야권분열을 일으키려는 의도가 아닌 야권 내 경쟁을 위한 결단이었음을 부각시키려고 애썼다.

동교동계로 분류되는 한 인사는 “신당 창당을 무조건 분열이라고 비판할 일인가? 신당 창당은 분열이 아니라 야권 내 경쟁을 유도하는 일이다. 특히 호남은 오랫동안 1당 독재로 침체되어 있었는데 호남에서 야권이 치열하게 경쟁할수록 호남은 더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비노계가 문 대표의 사퇴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에 대해 신당 창당을 위한 명분 쌓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문 대표 사퇴
신당명분 쌓기?

문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는 한 중진의원은 “그냥 진 것도 아니고 텃밭에서 전패했으면 말 그대로 뼈를 깎는 쇄신책이 나와야 하는데 현재 지도부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어물쩍 넘어가려고 한다. 국민들이 회초리를 들었는데 맞고도 변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니 더욱 화가 나는 것”이라며 “지금까지 이렇게 선거에 대패하고도 대표 자리를 유지한 전례가 없는데 친노는 뭉개려하니 뻔뻔함에 화가 난다. 무조건 ‘단결해야 한다’ ‘분열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만으로는 당내 불만을 잠재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재보선 과정에서 비노계 인사들이 의도적으로 광주 선거지원을 외면한 것도 사실상 문 대표에게 정치적 타격을 주기 위한 포석이 아니었냐는 분석도 나온다. 안철수, 김한길 전 대표는 선거기간 동안 단 한 번도 광주를 찾지 않았고, 호남맹주로 불리는 박지원 의원도 선거 초반 광주를 찾은 뒤 발길이 뜸했다. 광주 선거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수상한 행보일 수밖에 없다. 과연 호남판 자민련 플랜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 정치권이 호남민심의 향방에 주목하고 있다.

<mi737@ilyosisa.co.kr>

<저작권자 ©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0 Comments
광고 Space available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