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의 저주’ 내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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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징크스> ‘진도의 저주’ 내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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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병석 C&그룹 회장

품으면 사건사고 펑펑 ‘도미노 잔혹사’

[일요시사 경제팀] 김성수 기자 = 재계에 흉흉한 괴담이 돌고 있다. 이른바 ‘진도모피의 저주’. 이 소문은 호사가들 입에서 입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과연 어떤 내용일까. 그 실체를 파헤쳐봤다.

‘사채 괴담, 사정 괴담, 사옥 괴담, M&A 괴담….’

재계가 온갖 괴담으로 뒤숭숭하다. 안 그래도 경영난을 겪는 기업으로선 소소한 입방아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다. 정국이 혼란스럽고 검찰발 사정이 한창이라 더욱 그렇다. 한번 퍼지면 좀처럼 진화되지 않아 심각성을 더한다.

‘인수→위기’

진도모피의 저주. 재계 호사가들 사이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이 괴담은 모피로 유명한 ‘진도’를 인수하면 위기에 처하거나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한마디로 ‘망한다’는 표현이 정확할 수도 있다. 설립 이후 회사를 장악한 점령군이 줄줄이 추락하면서 저주로 회자되기 시작했다.

소문이나 괴담은 거의 대부분 출처와 실체가 불분명한 낭설로 끝나기 일쑤다. 진도모피의 저주는 소설 같은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정설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물론 그럴 만한 사례가 근거로 뒷받침되고 있다. 그 첫 번째 에피소드는 다음과 같다.

국내 대표 모피브랜드 진도는 고 김성식(1981년 작고) 창업주가 운수업을 하다 1965년 의류공장을 세운 게 모태다. 정식으로 설립된 건 1973년. 외국업체 주문생산만 하다 1980년대 들어 직접 모피를 만들기 시작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전엔 모피가 수입금지 품목이었다. 때문에 진도모피는 불티났다. 만드는 족족 팔려 나가 김 창업주 일가는 돈을 긁다시피 했다. 사업도 환경, 건설, 무역, 철강 등으로 늘었다. 진도그룹은 한때 재계서열 50위권에 들기도 했다.

김 창업주가 별세한 뒤 그의 아들(영원-영철-영진-영도-영기)들이 공동으로 경영했다. 이들은 각각 진도그룹 회장과 부회장, ㈜진도 대표, 진도물산 대표, 진도산업개발 대표를 맡았다. ‘진도’란 회사 이름은 김 창업주가 영진-영도 형제의 이름에서 딴 것이다.

‘재수 없는…’ 흉흉한 소문 돌아
인수한 회사·오너 줄줄이 곤욕  

잘나갔던 진도그룹은 1990년대 후반부터 어려워졌다. 무리한 투자가 발목을 잡았다. 결국 1998년 외환위기 때 경영이 악화돼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소유권이 채권단에 넘어간 것. 그룹은 공중분해 됐다. 오너일가는 부실경영의 책임을 지고 모두 퇴진했다.

당시 그룹을 이끌던 김영진 전 회장은 철창신세까지 졌다. 대검 중수부 산하 공적자금비리 특별조사단은 2001년 비리 경영인 33명을 적발했다. 이 중 한 명이 김 전 회장이었다. 그는 3500억원대 사기대출과 횡령 등 혐의로 이듬해 구속됐다. 김 전 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말년에 마가 낀 것 같다”는 얘기를 끝으로 야인으로 돌아갔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진도는 C&그룹(당시 쎄븐마운틴그룹)에 인수됐다. 새 주인은 임병석 회장. 진도모피의 저주, 바로 두 번째 에피소드 주인공이다.

목포 해양대를 졸업한 임 회장은 항해사로 일하다가 30세 때인 1990년 단돈 500만원으로 칠산해운을 세웠다. 사업 초기 선박과 화물 중개업으로 돈을 벌어 1995년 해운업에 본격 진출했다. 2002년부터 세양선박, 황해훼리, 필그림해운, 한리버랜드, KC라인, 우방 등을 잇달아 인수해 2조 중견그룹으로 성장했다. 한때 계열사가 40개가 넘기도 했다.

 



▲ 임오식 임오그룹 회장 <사진=임오그룹 홈페이지 캡처>

‘M&A의 귀재’로 불린 임 회장은 진도를 인수할 때가 최고 전성기였다. C&그룹은 2004년 6월 진도를 1744억원에 인수했다. 진도는 4개월 뒤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법원 승인이 떨어진 날 임 회장은 기자간담회를 갖고 “해외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할 계획”이라며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이날 임 회장은 유난히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는 게 간담회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이도 잠시. 3년이 채 되지 않아 암운이 드리웠다. C&그룹은 2007년 무리한 인수·합병(M&A) 후유증을 겪다 이듬해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그룹 전체가 자금난에 빠졌다. 직원들 월급까지 밀릴 정도로 급속도로 무너졌다. 버티다 못한 임 회장은 주요 계열사 매각에 나섰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결국 C&그룹은 사실상 파산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공교롭게도 검찰 수사까지 더해졌다. 임 회장은 2010년 10월 대출사기와 횡령, 배임 등 1조원대 경제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구속됐다. 수사 과정에서 진도의 모피코트를 명절선물 등으로 유력 인사들에게 로비했다는 증언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나중에 임 회장은 진도의 본사 부지를 매각하면서 횡령한 혐의도 드러나 망신을 당했다.

기업 몰락 검찰 수사
‘굿이라도 해야 하나∼’

임 회장은 1심에서 징역 10년, 2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대법원은 사건을 돌려보냈고, 서울고법이 다시 징역 5년을 선고한데 이어 2013년 6월 원심을 확정 받았다. 만기출소가 3개월가량 남은 셈이다.
세 번째 에피소드는 얼마 전 부상했다. 진원지는 임오그룹. 비자금 의혹이 나오면서다. 이는 진도모피의 저주가 불거진 계기가 됐다.

두 주인을 잃은 진도는 또 다른 주인을 맞았다. 임오그룹(임오파트너스)은 2009년 2월 진도를 인수했다. 당시 45억원에 매입해 ‘헐값’논란이 일었다. 추후 80억원을 더 투자했지만 ‘거저먹었다’는 뒷말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국내 주방업계 대표주자인 임오그룹은 남대문시장 0.7평 구멍가게로 시작한 임오식 회장이 일궜다. 

임 회장은 1970년 맨손으로 주방·가전제품 유통업체인 임오(옛 삼성상회)를 창업해 그룹으로 성장시켰다. 코렐, 테팔 등 글로벌 주방용품의 국내 판권을 딴 게 발판이 됐다. 수저업체 화인센스, 냉동업체 임오냉동 등을 인수해 몸집을 불렸다. 주방과는 거리가 먼 진도도 그중 하나. 진도는 임오그룹 품에서 재무구조가 크게 안정되면서 마침내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그로부터 5년 뒤.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다. 그야말로 초상집이 따로 없다. 임 회장이 교도소 담벼락을 걷고 있어서다.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는 최근 임 회장의 횡령 혐의를 포착, 그룹 본사와 임 회장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 임 회장은 2005년부터 회사 매출액을 부풀리고, 2008년부터 2012년까지 회사에서 근무한 적 없는 자신의 친인척들에게 급여를 지급한 것처럼 회계장부를 꾸며 회삿돈 100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명의 이전을 통해 그룹 소유 부동산을 빼돌리고 회계자료를 조작해 세금을 내지 않은 혐의도 받고 있다.

임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횡령 사실에 대해 일부 인정했지만 금액엔 차이가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임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검찰은 지난 10일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지난 15일 법원은 “피의자의 주거가 일정하고 현재까지 수집된 증거자료와 수사상황에 비춰 피의자가 방어권 행사 범위를 넘어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주할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검찰은 보강 수사를 통해 영장을 재청구할 예정이다.

세 가지 에피소드

진도는 파란만장한 세월을 겪었다. 여러 번 바뀐 주인들이 하나같이 위기에 처했거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저주란 단어가 그냥 붙은 게 아닌 것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kimss@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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