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사면로비 실체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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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성완종 사면로비 실체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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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갑윤 국회부의장(새누리당)

친박 실세가 움직였다

[일요시사 취재1·2팀] 강현석·최현목 기자 = 친박 실세로 알려진 정갑윤 국회 부의장이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부탁을 받고 이른바 '성완종 구명법'을 발의한 것으로 확인돼 파문이 예상된다. 지난해 9월 발의된 이 법안은 충청포럼 소속 새누리당 이인제 최고위원과 같은 당 박덕흠 의원 등 9명이 공동으로 서명했다. 또 같은 기간 성 전 회장은 청와대 핵심 관계자들과 접촉을 시도했으며, 주위에 사면을 부탁한 것으로 확인됐다. 성 전 회장이 현 정부 인사와 만나 사면을 추진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숨겨진 '거래'가 있었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지난 4월9일 오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날 새벽 6시 <경향신문>과 나눈 인터뷰가 그의 유언이 됐다. 성 전 회장은 전날 오후 2시 기자회견을 열고 "저는 MB맨이 결코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2007년) 박근혜 (당시) 후보님 당선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습니다"라고도 했다. 정치권에 보내는 마지막 호소에 귀를 기울인 이는 누구도 없었다.

성완종 구명법
정개특위 상정

같은 시각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이하 정개특위)에선 공직선거법 개정과 관련한 회의가 진행됐다. 안건으로 상정된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모두 229건이었다. 안건 가운데는 성 전 회장의 구명을 위한 법안이 숨어 있었다. 국회사무처가 작성한 정개특위 임시회의록을 보면 '의사일정 제195항'에는 성 전 회장의 구명을 도울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포함돼 있었다.

대표 발의자는 새누리당 정갑윤 의원으로 드러났다. 의안 번호는 11828, 발의날짜는 2014년 9월23일로 확인됐다. 정 의원은 울산에서 내리 4선을 한 중진의원이다. 지난해 5월에는 의전서열 9위인 국회 부의장에 선출됐다. 여당 내 손꼽히는 친박인사인 그는 지난 2007년 박근혜 당시 대선 후보 경선캠프에 몸담으면서 '원조 친박'이란 꼬리표를 달았다.

올 4월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불거졌을 당시 정 의원은 "성 전 회장을 만난 적이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 의원은 성 전 회장이 자원외교에 대한 감사원 조사와 관련 부탁을 해오자 이를 거절했으며, 이후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성 전 회장의 부정한 청탁을 거절했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정 의원이 발의한 법안(의안 번호 11828)에서 수상한 점이 발견됐다. 문장을 뜯어볼수록 '특정인'을 구명하기 위한 법안이란 의심이 커졌다. 편의상 이 법을 '성완종 구명법'이라고 정의했다. '성완종 구명법'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있다.

먼저 서문인 '제안이유 및 주요내용'에는 "현행 공직선거법은 기부행위에 대해 엄격히 제한함으로써 선거와 관련한 부정을 방지해 선거가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와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공정히 행하여지도록 하고 있음. 하지만 기부행위와 관련한 일부 조항이 지나치게 모호하고 포괄적이어서 법 해석상 혼란이 가중됨에 따라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음"이라고 돼 있다. 서문에서 언급한 '선의의 피해자'는 바로 성 전 회장이다.

대법원 판결 직후 사면용 법안 발의
도장찍은 의원 10명…대부분 충청권

구체적으로 법안은 현행 두 가지 조항을 문제 삼고 있다. 첫째는 공직선거법 '제112조 제2항 제2호 라목'이며, 둘째는 같은 법 '제114조 제1항'이다. 이 두 가지 조항은 지난해 6월26일 성 전 회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서 핵심 근거가 된 것들이다.

성 전 회장은 지난 19대 총선을 앞두고 재단을 이용해 기부행위(청소년선도사업 지원금)를 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벌금 500만원형을 선고받았다. 판결에 따라 성 전 회장은 의원직을 상실했다.

취재진이 입수한 성 전 회장 사건 판결문을 보면 당시 재판부는 '제112조 제2항 제2호 라목'을 근거로 "성 전 회장의 기부행위가 정기적으로 지급한 의례적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판시했다. 또 '제114조 제1항'에 따라 관련 기부행위가 '선거 후보자의 기부행위로 추정할 수 있는 방법에 의해 이뤄졌다'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정 의원이 낸 개정안을 적용했을 때 성 전 회장은 혐의를 벗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우선 개정안은 '제112조 제2항 제2호 라목'의 '정기적으로'를 '정관과 해당 회계연도 예산의 범위에서'(재단에 적용)로 바꿨다. 또 '제114조 제1항' 중 '기부행위를 하거나 후보자 또는 그 소속정당이 기부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방법으로'를 삭제토록 했다. 이는 재단이 자체 정관에 따라 '특정시기' 기부행위를 한 것은 위법행위가 아니며, 후보자가 제3자를 통해 기부한 것으로 '추정'되는 경우 죄를 물을 수 없다는 뜻이다.

공교롭게도 정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성 전 회장이 대법원 판결 직후 작성한 보도자료와 내용이 일치했다. 당시 성 전 회장은 "'공익을 목적으로 설립된 재단 또는 기금'이 선거일 전 4년 이전부터 그 설립목적에 따라 정기적으로 지급해 온 금품을 지급하는 행위는 기부행위가 아닌 의례적 행위로 보고 있고…(중략)"라고 지적했는데 정 의원의 법안은 성 전 회장의 논지를 글자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엉터리 입법
로비 가능성

취재진은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다수의 정치권·법조계 관계자와 만났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성완종 개인을 구제하기 위한 법안이 아니냐'라고 의심했다. 특히 복수 정치권 관계자는 "앞뒤 정황을 살펴봤을 때 일종의 입법로비로 볼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각각 '제안이유 및 주요내용'에 쓰인 단어가 상당히 주관적이라는 점(지나치게 ·가중됨 등), 부칙 2조에 '이 법은 이 법 시행 전 행위에 대하여도 적용한다'라는 소급적용을 명시한 점 등을 지적했다.

정개특위 전문위원도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냈다. 이창림 전문위원이 올 4월 작성한 '공직선거법 일부법률개정안 검토보고서'에는 ▲공정한 선거가 저해될 소지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 ▲다양한 양태의 기부행위를 실질적으로 규제하기 어려워 금품선거 등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기재돼 있다.

 



▲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국회 법제실 담당자 역시 "우리는 이런 법안을 본 적이 없다"라며 "소급적용은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회 보좌진은 "법제실 검토를 받지 않은데다 발의자가 (최소 정족수인) 10명인 걸 봤을 때 (법안을) 급하게 발의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가 된 법안의 대표 발의자는 정 의원이다. 공동 발의자로는 새누리당 이인제 최고위원과 같은 당 박덕흠 의원 등 9명이 이름을 올렸다. 9명의 의원 가운데 6명은 충청에 지역구를 둔 '충청포럼' 멤버로 드러났다. 새누리당 소속이 4명, 나머지는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이다.

취재진은 지난 29일 법안에 서명한 9명의 의원과 차례로 접촉을 시도했다. 각 의원실을 찾아가 '2014년 6∼9월 사이 성 전 회장에게서 법안 발의와 관련해 부탁을 받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공통적으로 던졌다. 이중 7개 의원실은 "잘 모르겠다" "드릴 말씀이 없다" 등의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들은 하나같이 "법안을 발의한 정 의원을 찾아가라"라며 말을 아꼈다.

충청포럼 다수
멤버들 공동날인

그런데 남은 두 곳의 의원실은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해명에 나섰다. 성 전 회장이 생전 작성한 다이어리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이른바 '성완종 다이어리'에는 2012∼2015년까지 정·관계 유력 인사들과 잡은 약속이 꼼꼼히 기록돼 있다. 취재진은 다이어리에서 법안 발의에 찬성한 5명의 이름을 발견했다. 이 가운데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은 2명이었다. 두 의원은 성 전 회장의 대법원 판결 이전에 약속이 잡혀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 남은 3명은 대법원 판결 이후에 약속이 생겼다. 세부적으로 박 의원은 모두 2차례에 걸쳐 성 전 회장과 만난 것으로 추정됐다. 첫 번째 약속은 2014년 7월18일 오전 10시40분 국회 예결위장(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있었다. 두 번째 약속은 2014년 8월14일 오후 12시 여의도 한 일식집으로 기재됐다. 이후 박 의원의 이름은 다이어리에 등장하지 않았다. 7∼8월께 둘 사이에 무언가 중요한 일이 있었다는 증거다.

박 의원은 2014년 7월21일 국회 예결위장에 출석해 "성완종 의원의 대법원 판결에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다"라고 발언했다. 성 전 회장과 약속을 잡은 지 3일만의 일이다. 박 의원은 이날 성 전 회장의 주장을 여과 없이 인용했다. 취재진과 만난 박 의원 측은 "성 전 회장의 부탁을 들어준 적 없다"라고 했다.

이 의원의 이름은 모두 8차례 적시됐다. 대법원 선고일을 기준으로 판결 전 6차례, 판결 후 2차례 약속이 잡혔다. 박 의원의 발언이 있던 7월21일 오후 3시40분 K호텔 양식당에서 만났고, 8월6일 오후 12시 같은 호텔 일식당에서 만났다. 앞선 약속에선 '부부동반' 등 용건을 기재했지만 7∼8월 만남은 용건이 기재되지 않았다. 이 의원 측은 박 의원 쪽과 마찬가지로 "부탁을 들어준 것이 아니다"라며 "자세한 건 정 의원 쪽에 가서 묻는 것이 빠르다"라고 말했다.

정 의원은 성 전 회장과 8차례 만난 것으로 명시됐다. 2014년 6월12일부터 2014년 9월1일까지 6차례 약속이 잡혔다. 익명을 요구한 새누리당 관계자는 "법안 발의를 앞두고 성 전 회장이 새누리당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사면을 받으려하니 좀 도와달라'라고 부탁한 사실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VIP(대통령)와 가까운 '그분'이 한다는 데 거절할 수 있겠느냐"라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성 전 회장이 직접 도움 요청
수차례씩 만나 특사 부탁

정 의원 측은 지난 30일 국회 부의장실에서 취재진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정 의원 측은 "성 전 회장의 부탁을 받고 법안을 발의한 것이 맞다"라고 확인했다. 하지만 "박 의원 등과 사전 공모는 없었고, 도의적인 차원에서 한 것이며, 금품을 비롯한 대가성은 없었다"라고 의혹을 부인했다. 아울러 정 의원 측은 "애초부터 사면을 염두에 둔 법안이 아니다"라며 "성 전 회장이 명예회복을 하고 싶다고 말해 도와준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해당 법안이 발의(혹은 통과)됐을 시 사면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보여주기식'이란 주장과 성 전 회장 본인이 제기한 위헌심판을 유리하게 끌고 나가기 위한 포석이었다는 등의 해석이 공존한다. 지난 31일 <일요시사> 취재에 응한 전직 판사는 "법 개정만으로 자동 복권(사면)되는 것은 아니고, 대통령의 의지와 사면법에 따른 일정한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부칙 조항(소급적용) 때문에 복권 가능성이 현저히 높아졌을 수는 있다"라고 의견을 전했다.

 



▲ 정갑윤 의원이 대표발의했던 '공직선거법 일부개정안' 문건

성 전 회장이 유독 2014년 6∼9월 사이 청와대에 '집착'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전·현직 청와대 정무수석, 정무비서관 등을 만나려했던 것은 사면을 겨냥한 시도로 풀이된다. 박준우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2014년 6∼9월 사이 모두 4차례 약속을 잡은 것으로 드러났다. 9월 이후에는 약속이 잡히지 않았다. 새누리당 한 관계자는 "성 전 회장이 일단 법안을 올려놓고 청와대와 협상하는 전략을 썼던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 14일 정 의원은 8·15 특별사면과 관련해 군불을 땠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한민국 경제극복을 위해 경제인의 사면이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적었다. 만약 성 전 회장이 살아있었다면 사면 대상에 포함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살아 있다면
사면 됐을까

정 의원 측은 "성 전 회장이 정 의원에게 직접 부탁한 법이고, 그쪽에서 초안을 작성해 우리에게 넘겼다"라며 "우리 쪽에서도 의원들이 사인을 받기 전 선관위의 자문까지 거쳤는데 별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들어 발의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선관위 해석과는 지난 29일 오전 10시30분께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소급적용이 포함된 법안은) 사례가 드물다. 법안이 정식 공포되기 전까진 정확한 의견을 낼 수 없다"라고 답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4월28일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한 파문이 확산되자 "성씨(성 전 회장)의 연이은 사면은 납득하기 어렵고 제대로 진실을 밝혀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참여정부 당시 있었던 사면과 관련해 특정인에 대한 계좌추적 등 강도 높은 수사를 벌였다. 지난 2일,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씨가 사면에 개입해 3000만원을 받았다는 내용의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현 정부와 연관된 '입법로비' 의혹 규명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angeli@ilyosisa.co.kr>
<chm@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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