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륵’ 적십자 지로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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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륵’ 적십자 지로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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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낸다고 안 보낼 수도 없고…

[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점심 한끼 값에 불과한 만원이라도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되기에 충분한 금액이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 기부가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액수의 크고 작음은 둘째 문제다. 선의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기부의 의미는 퇴색되기 마련이다. 적십자회비를 두고 매년 반복되는 잡음 역시 따지고 보면 자발적 선의의 유무에서 출발한다.

스위스의 사업가 앙리 뒤낭은 1859년 이탈리아 북부로 향하던 도중 전쟁의 참사를 겪은 한 마을을 지나게 된다. 전쟁의 잔혹함에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은 그는 제네바로 돌아가 전쟁 부상자 치료를 위한 의료 활동 조약 창설과 구호단체 설치에 발 벗고 나선다. 적십자의 탄생 배경이다.

눈먼 돈 ‘1만원’

대한적십자사는 ‘공평·중립·독립·인도·자발적 봉사·단일·보편’이라는 7가지 원칙에 의거해 국제적십자회의에서 결의한 인도주의 운동을 수행하는 특수법인이다. 국민 성금과 국고보조금을 반영해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관계로 매년 국정감사를 받고 있다.

2015년 기준 대한적십자사 예산 계획 규모는 전년대비 7.4% 감소한 7100억원. 혈액원·병원 등에서 거둬들이는 수입이 과반 이상을 차지한다. 일반회비와 후원회비를 합친 회비수입은 전체 비중의 약 10%인 721억원이다. 334억원에 불과한 국고 보조금은 전체 예산의 5%에도 미치지 못한다. 사실상 자체 수익 창출과 후원금으로 필요자금을 충당해 왔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한적십자사는 최근 운영자금이 줄어들까 노심초사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적십자회비 납부율이 해마다 하강곡선을 그리는 까닭이다. 2012년 27.5%에서 2013년 26.4%로 감소한 적십자회비 납부율은 2014년 25.4%로 떨어졌다. 2015년 역시 극적인 변화를 기대하긴 힘들었다. 9월까지 대한적십자사가 선정한 납부대상 1832만명 가운데 회비를 낸 인원은 21.7%인 398만명에 그쳤다.

납부율이 낮아지는 만큼 우려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대한적십자사가 적십자회비 납부를 독려하는 데 분주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로통지서에 ‘나눔이 희망’이라는 구호를 내세울 뿐만 아니라 회비 납부 시 소득금액의 100% 범위 안에서 세액공제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대한적십자사의 낡은 기부 독려 방식은 어느 순간부터 납부대상자들에게 곱지 않게 비춰지고 있다. 특히 적십자회비 지로용지는 양날의 검이나 마찬가지다.

현행 적십자회비 모금은 납부대상자가 참여할 수 있는 국민성금 형식으로 이뤄진다. 이 때 사용되는 방식이 바로 지로용지이다. 매년 연말이 다가오면 대한적십자사는 25세부터 75세 미만 세대주 혹은 사업장을 가진 사람을 대상으로 지로용지를 발부한다. 지로용지에 기재된 적십자회비는 1만원, 자율적인 형태의 모금인 만큼 납부가 의무사항은 아니다.

다만 적십자회비 납부 원칙을 대다수 납부대상자들이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따른다. 적십자 지로용지를 세금고지서 쯤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기본 정보에 둔감한 노년층일수록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적십자회비를 내지 않으면 추가 징세가 이뤄진다고 미뤄 짐작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일부 사람들에게는 준조세처럼 비춰지는 셈이다.

갈수록 줄어드는 납부율 고민
세금 고지서로 착각 부지기수

서울시 종로구 다세대 주택에 거주하는 60대 여성인 유모씨는 올해 역시 적십자회비를 성실히 납부했다. 매년 날아오는 적십자회비 지로용지를 당연히 내야할 일종의 세금쯤으로 받아들인 탓이다. 얼마 전 강제적인 납부사항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이미 납부를 끝낸 뒤였다.

유씨는 “세금고지서랑 별반 다르지 않은 데다 금액이 기재돼 있어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며 “깨알 같은 고지서 세부내용을 읽지 않은 탓이지만 나이 든 사람 대다수는 나와 마찬가지로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기부를 독려해야 하는 대한적십자사의 입장은 충분히 납득 가능하다. 적십자회비가 '내지 않아도 되는 성금'이란 사실이 제대로 알려진다면 납부율 하락은 불 보듯 뻔한 일인지도 모른다.

소극적이나마 대한적십자사는 지로용지에서 불거진 잡음을 해소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2014년까지 3∼4차로 진행됐던 회비 모금은 2015부터 2차만 진행되는 등 한층 단순화됐다. 1차는 행정기관과 연계해 세대주를 위주로 한 모금활동이 이뤄지고 2차는 납부지로를 통한 모금활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로용지 배부가 현실에 뒤떨어졌다는 지적은 계속된다. 일단 지로용지 배부에 드는 비용적인 부담을 생각해봐야 할 뿐만 아니라 모금이 이루어지기까지 드는 관리비용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대한적십자사가 지로용지를 의도적으로 배부해 납부대상자들의 혼동을 유도한다고 의심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준조세 전락

오히려 대한적십자사의 대외적인 이미지 쇄신 작업에 힘을 쏟는 게 기부를 독려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일지도 모른다. 2014년 대한적십자사 총재로 선출된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은 취임 직후 지난 5년간 적십자 회비를 내지 않았던 사실이 드러나 곤혹을 치룬 바 있다. 당시 일반 사업자로 분류된 김 총재가 내지 않은 적십자 회비는 1년에 3만 원씩, 5년간 총 15만원이었다. 김 총재는 선출 당시 중앙위원회에서 단수로 추천하고 단 11분 만에 총재를 결정했다는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djy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혈액 수급 비상 왜?

겨울철 헌혈 참여가 줄어들면서 혈액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 12월30일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에 따르면 전날 기준 적혈구제제 보유량은 3.5일분으로 적정혈액보유량에 못미치는 ‘관심’ 단계다. 적정혈액보유량은 일평균 5일분 이상이다.

2014년과 비교해도 혈액부족 상황은 심각하다. 2014년 12월 적혈구제제 보유량은 일평균 5~6일분으로 적정혈액보유량 이상이었다. 혈액 부족은 겨울철 헌혈 참여가 줄어든 탓이다. 통상 동절기에는 헌혈 참여가 줄어든다. 추위로 유동인구가 감소하고 고등학교와 대학교가 방학을 맞이해 단체 헌혈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날까지 집계된 올해 전체 헌혈자 285만5616명 중 고등학생과 대학생은 각각 65만3880명(22.9%), 88만5331명(31.0%)으로 절반을 넘는다.

혈액관리본부는 겨울이 끝나고 새학기가 시작되는 오는 3월까지 혈액 수급 위기 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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