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김정은 친인척들 어디서 뭐하나

한국뉴스


 

'사라진' 김정은 친인척들 어디서 뭐하나

일요시사 0 796 0 0
▲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일요시사 취재1팀] 신상미 기자 = 김정은이 권력을 잡으면서 고모 부부가 북한권력의 핵심에서 사라졌고, 한 때 후계자 물망 1순위였던 이복형 김정남도 행방이 묘연하다. 최근엔 미국으로 망명했던 이모 부부가 다시 수면으로 떠오르고 있다.

김 정남은 김정일의 첫사랑인 성혜림이 낳은 아들이다. 김정남은 중국식 사회주의 모델로 북한을 개혁하려는 비전을 가진 인물로 평가되면서 서방언론이 ‘북한 권력의 준비된 후계자’라고 추켜세웠으나 장성택의 처형 이후 지난 2년간 잠행 중이다.

숨어 지내는 백두혈통

2012년 <도쿄신문>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김정남은 12∼14세 때인 1983∼85년 3년간 모스크바 남쪽 바빌로바 거리에 살며 프랑스어 특수학교를 다녔고 학급에서는 김주하라는 가명을 썼다. 아래는 탈북자들의 발언과 그들이 쓴 문건을 종합해 정리한 것이다.

김정남은 1980년부터 1991년까지 11년간 해외유학을 다녀왔다. ‘고난의 행군시기’에 개혁개방을 주장하다가 김정일에게 버림받아 중국으로 나왔다. 일설엔 성혜림을 대신해 1978년부터 실질적 부인 역할을 했던 고영희의 은밀한 공작이 김정남을 중국으로 쫓아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2001년 김정남은 차명 여권으로 일본을 방문하려다 발각된 후 아버지의 신임을 잃고 후계구도에서 완전히 밀려났는데, 이 때 일본정부에 김정남의 입국을 사전에 은밀히 알린 것이 고영희라는 일각의 주장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김일성에게 인정받은 손자는 김정남이 유일하다. 김정일은 부인 역할을 한 여성들과의 사이에서 비밀리에 출산을 했기 때문에 자녀들이 출생했을 때 아버지 김일성에게 알리지 못했다. 있다면 김일성의 요구로 공식결혼한 김영숙의 딸 김설송이 유일하다.

김일성이 후에 김정남의 존재를 알게 됐는데 손자를 극진하게 사랑했다고 한다. 얼마나 손자를 사랑했는지 1970년대 후반에 손자를 달래준다면서 외국 수반과의 회담을 미룬 적도 있었다. 반면 고영희의 자식들인 김정철과 김정은, 김여정 삼남매는 북한 각지의 초대소를 옮겨다니며 숨어지내야 했다. 첩의 자식이었던 이들은 할아버지 김일성을 만나본 적조차 없다고 한다.

이런 김정은에 비하면 오히려 장성택이 백두산 혈통에 더 가깝다고 탈북자들은 주장한다. 장성택의 아버지는 일제강점기에 조국광복회에 참여한 인텔리 출신이었다. 장성택의 삼촌들은 1940년대 백두산 인근 만주에서 항일투쟁에 참여했던 경력이 있다. 이러한 경력 덕분에 1960년대 인민무력성(우리의 국방부)에서 일하기도 했다.

장성택 처형 직후인 2013년 말 이후 김정남은 싱가포르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에 주로 거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1월에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5월에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식당에서 목격됐다. 9월엔 프랑스 파리에서 목격됐다. 당시 국내외언론은 아들 김한솔(21)을 만나러 간 것으로 보도했다.

후계자 후보들 행방 묘연
장성택 처형 이후 잠행 중

2008년 김정일 와병설이 제기된 이후 북한의 실권을 장악한 장성택이 당초 후계자로 점찍었던 것도 김정은이 아닌 김정남이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생모인 성혜림이 모스크바로 떠난 후 장성택-김경희 부부가 김정남을 직접 키웠고 해외를 전전하는 김정남에게 생활자금을 지원하는 등 서로 긴밀하게 지냈기 때문이다.

황장엽 전 당비서는 김정은 후계구도가 확정되기 전 “중국정부가 김정남을 지속적으로 관리해왔고, 장성택의 후원을 받고 있기 때문에 김정남이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실제로 중국이 김정남을 유사시 써 먹을 수 있는 카드라고 보고 꾸준히 관리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장성택

최근엔 김정은의 이모 부부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모부인 리강(61)씨가 지난해 11월말 한국에 입국해 강용석 변호사에게 명예훼손 손배소송 의뢰한 것. 부부는 자신들이 김정일의 비자금 30만 달러를 훔쳐 망명했으며 고영숙의 아버지 고경택이 친일파라는 탈북자들의 주장 등을 문제 삼으며 6000만원 손배소송을 제기했다.

리강씨 부부는 지난 1998년 스위스에서 김정은의 뒷바라지를 하던 중 미국대사관으로 탈출, 망명했다. 외삼촌 고동훈씨 역시 그해 말 외국에서 일하다가 미국으로 망명했다. 김일성 가문의 비밀을 너무 많이 알고 있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 직후 고영희가 충격을 받아 쓰러져 건강이 더욱 악화됐다. 그 후 고영희는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유선암으로 2004년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사망했다. (성혜림의 언니 성혜랑과 딸 부부 역시 프랑스로, 아들 이한영은 1980년대 초반 한국으로 망명했다가 피살 당했다)

리강씨는 지난해 12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배다른 형인 김정남과 그의 아들 김한솔이 장기간 해외에 머물고 있는 이유에 대해 “장성택 부장이 이들을 책임져 자신들은 간섭하지 않았다”며 “김정남은 북한에선 없는 존재”라고 표현했다. 또 미국으로 망명한 이유에 대해선 “김정일 옆에서 거의 20년을 보내며 권력의 무서움, 비정함을 느꼈다. 고영희 하고 가까이 있는 게 좋진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고 답했다.

북한에선 없는 존재

이 밖에 김일성의 자녀 2명도 권력자의 곁가지로서 수십 년째 외국을 떠돌아다니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김성애 소생의 김평일은 1980년대 중반부터 외교관으로 헝가리, 불가리아, 핀란드, 폴란드 등 동유럽 각지를 떠돌고 있다. 김평일의 외모는 배다른 형인 김정일보다 김일성을 더 닮아있다. 현재 그는 체코대사로 재직 중이다. 김평일의 누나 김경진은 김광섭 오스트리아 주재 북한대사의 부인으로 10년 넘게 오스트리아에 머물고 있다. 

<저작권자 ©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0 Comments
광고 Space available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