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구치소 범털 독방행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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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구치소 범털 독방행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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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범털 집합소’ 서울구치소서 올해 초 만찬회가 열렸다. 수천억원대의 사기 혐의로 수감 중인 ‘범털’이 주류와 담배 등을 들여와 수감자들과 파티를 열었다고 한다. 서울구치소 내부에서는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기록됐다. 이 범털은 베테랑 사기꾼 A씨다. 그는 지난해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정운호 법조게이트’의 한 축을 담당하기도 했다.
 


A씨는 투자자들을 상대로 수천억원대 사기를 벌인 혐의로 올해 초 중형이 선고됐다. 대법원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사기, 유사수신행위규제법,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같은 재판부는 A씨의 사기, 대부업법 위반 혐의도 징역 1년 2월을 선고했다.

커피-양주
물병 바꿔치기

1, 2심 재판부는 A씨 등이 합법적인 금융기관을 만들고 해외 선물투자한다는 명목으로 1380억원을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다수의 피해자를 상대로 반복적으로 범행이 이뤄지고 범죄 액수가 거대한 점에 비춰볼 때 죄질이 무겁고 비난 가능성이 크다”며 “피해자들이 재산상의 큰 손해를 입었고 상당 부분 회복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그런데 <일요시사> 취재 결과, 서울구치소서 수감 중인 A씨가 집사 변호사를 통해 양주와 담배를 불법 반입하다 적발된 것으로 파악됐다. 반입 시기는 A씨의 대법원형이 확정된 전후로 추정된다. 서울구치소는 A씨와 변호사 사이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사실은 인정했지만, 밀반입한 품목은 확인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당시 서울구치소서 복역한 수감자와 A씨 지인의 증언을 종합하면 그는 변호사를 통해 양주와 담배 등을 반입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A씨는 변호사와 접견할 때 구치소서 판매하는 물통에 인스턴트 블랙커피를 타왔으며, 변호사는 비슷한 물통에 양주를 담아왔다. 
 


A씨는 자신의 물통과 변호사의 물통을 바꿔치기하는 수법으로 양주를 반입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집사변호사 통해 양주·담배 반입
같은 방 수감자들과 마시고 피우고

물통에 담긴 블랙커피와 양주는 육안으로 봤을 때 색깔이 거의 흡사하다. 과거 구치소에 수감된 이력이 있는 한 인사는 “감옥서 사람들이 아메리카노를 마시지 못하니 ‘카누’ 같은 인스턴트 블랙커피를 마신다. 그게 양주 색깔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A씨는 반입한 양주와 담배를 같은 방에 수감했던 수감자들과 함께 마시고 피웠다고 한다. A씨는 구치소서 O하OO방서 7명의 수감자들과 생활했다. O하OO방은 O(동) 하(1층) OO(번)방이라는 의미다. 서울 구치소는 총 16개 동의 수감시설이 있는데, 층수를 상중하로 나누고 있다. 각 층마다 12∼13개의 방이 있다.

교도관에게 이런 사실이 적발되자 이 방은 곧바로 해체됐으며, A씨는 징벌방에 보내졌다. 당시 서울구치소 내부에선 A씨가 수감자들과 ‘만찬회를 벌였다’고 할 정도로 소문이 크게 났다. 

사건이 터졌을 때 서울구치소서 복역했던 한 수감자는 “같이 생활하는 수감자들과 양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다가 적발돼 방이 깨졌다”며 “그 방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으며, A씨는 조사방에 갔다 징벌방으로 옮겨졌다”고 말했다. 
 


징벌방이란 구치소서 규칙을 어긴 수감자를 징계하기 위해 마련한 독방으로 빛이 들어오지 않는다.

교도관 적발
바로 징벌방

서울구치소는 이 사건으로 발칵 뒤집어졌다. 곧바로 조사에 착수했으며, A씨에게 양주 등을 건넨 사람이 집사변호사였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이후 서울구치소는 변호사를 접견한 수감자들의 물품 검사를 강화했다. 특히 A씨 변호사들의 의뢰인(수감자)들은 접견이 끝나고 귀소할 때 온몸을 검사했다는 후문이다.

A씨는 법조계서도 집사변호사를 많이 쓰기로 유명하다. 집사변호사란 구치소를 드나들며 수감 중인 의뢰인의 잔심부름이나 말동무를 해주는 변호사를 일컫는다. 일부 수감자들은 변호인 접견이 면회 횟수나 시간에 제한이 없다는 점을 악용해 집사변호사를 기용, 수감시설보다 쾌적한 특별 접견실서 시간을 보내곤 한다. 

주로 유명인·기업인들이 시간당 20만∼30만원의 수임료를 지불하며 집사변호사를 기용한다.

A씨가 대법원 판결까지 났는데도 변호인 접견을 계속 한 까닭은 또 다른 투자사기 사건으로 재판이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A씨는 많은 변호사를 기용하고 있다고 한다. 

과거 A씨와 간접적으로 인연이 있는 한 변호사는 “A씨 대신 돈을 인출해주거나 시키는 일들을 몰래 처리해주는 집사변호사가 많다”고 말했다. 이번에 구치소 내에 반입 금지 물품을 건넨 변호사 역시 그의 집사 변호사 중 한 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뒤늦게 발칵 뒤집힌 구치소
인정하면서도 “확인 불가”
협조 변호사는 변협에 통보

서울구치소는 해당 변호사에 대한 비위 사실을 서울지방변호사협회(이하 서울변협)에 통보했다. 현재 서울변협서 이 사건을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제132조(주류 반입 등)에 따르면 주류·담배·현금·수표를 교정시설에 반입하거나 소지·사용·수수·교환 또는 은닉하는 행위를 한 사람은 6개월 이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수감자에게 이를 전달한 사람 역시 처벌 받는다. 이 때문에 해당 변호사는 형사처분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서울 변협의 징계도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조사 상황에 대해 서울변협은 “조사 중인 사건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답변했다.

부랴부랴∼
물품 검사 강화

서울구치소는 이런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서울구치소 관계자는 “A씨와 담당 변호사 사이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내부서 관규 위반이라고 해당되는 행위를 저질러 조치를 취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서울구치소 측은 어떤 물품을 반입했는지는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 관계자는 “양주 반입은 사실이 아니며, 어떤 물품을 반입했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집사변호사들의 세계

구치소 접견권을 이용해 수용자들의 잔심부름을 하거나 편의를 누리게 해 주는 이른바 ‘집사변호사’들이 무더기로 징계를 받았다. 대한변호사협회는 변호사징계위원회를 열고 변호사 10명에게 변호사법상 품위유지 의무 위반을 이유로 최대 정직 2개월의 징계를 결정했다고 지난 2월14일 밝혔다. 변호인 접견권을 남용했다는 이유로 변호사를 징계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인 것 으로 알려졌다.

소속 변호사 2명에게 접견을 지시한 혐의가 인정된 법무법인 대표변호사 1명은 가장 무거운 처분인 정직 2개월, 1명에게 접견을 지시한 대표변호사 2명은 정직 1개월을 받았다. 함께 징계개시가 청구된 개인 변호사 3명 중 1명은 접견권 남용 정도가 무겁다고 판단돼 정직 1개월을 받았다. 나머지 2명은 각각 과태료 200만원과 견책 처분이 결정됐다.

대표변호사 지시로 의뢰인을 접견한 4명 중 1명은 수용자에게 담배나 볼펜을 전달하는 등 교정 질서를 어지럽힌 것으로 조사돼 과태료 500만원을 받았고, 3명은 견책 처분을 받았다. 변호사들은 징계 사실을 통보받은 시점부터 30일 이내에 이의를 신청할 수 있다. 이 경우 법무부 징계위원회가 징계 여부나 수위가 적절한지 다시 따진다.

징계개시가 청구된 총 13명 중 나머지 3명은 소명자료를 내지 않아 결정이 연기됐다. 변협은 이들에게 소명자료를 받아 검토한 뒤 징계 수위를 결정할 방침이다. 

변협은 지난해 7월 수용자를 장기간 접견하거나 짧은 시간에 여러 명 접견한 변호사 10명의 명단을 서울구치소에서 받았다. 이들 중 일부가 대표변호사 지시에 따라 집사 변호사 노릇을 한 점을 고려해 대표 3명을 포함한 13명을 조사위에 넘겼다.

조사 결과 이들은 의뢰인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수감시설보다 편하고 쾌적한 접견실서 편의를 누리게 할 목적으로 접견권을 남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 변호사는 2015년 1월 서울구치소를 21차례 방문해 772건을 접견해 하루 평균 37건을 기록했다. 전체 접견 시간(94시간25분)을 고려하면 평균 접견시간은 7분에 그쳤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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