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흠의 아모르파티 13; 그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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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동흠의 아모르파티 13; 그 섬

일요시사 0 720 0 0

“불라!”


마중 나온 원주민의 환영 인사가 상큼하기 그지없다. 뉴질랜드 동북쪽에 위치해 남태평양의 십자로로 불리는 피지 땅이다. 


관문인 난디 공항, 출국장에 나오니 새처럼 맑은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아가씨들이 반갑게 외치며 목에 꽃 목걸이를 걸어준다. 


새하얀 통치마차림(술루)을 한 장정들이 통기타반주에 맞추어 흥겹게 노래하며 방문객들을 살갑게 맞이 한다. 이곳이 바로 말로만 듣던 피지인가! 


첫 인상이 옛 고향, 시골마을 같다. 언젠가부터 ‘그 섬에 가고 싶다’고 했는데 그날이 이렇게 왔다. 


삶의 현장을 떠나 며칠 머물다 가려고 아내와 함께 떠나온 여행 길, 남태평양의 외딴 섬 피지 땅이다. 


안내 버스를 타고 호텔 숙소로 향하는 길목에 가로수로 늘어선 코코넛 야자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열매들이 탐스럽다. 


배정 받은 아담한 방에 짐을 풀고 나니 벽에 걸린 액자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Restore the mind ! Re-Energize the Spirit !’


진정한 휴식 속에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는 게 여행 보너스이려니…… .


통나무 불이 지펴진 야외 야자수 나무 숲에 마련된 저녁 만찬 장에 피지 전통의 춤과 환영의식이 다채롭기 그지없다. 이름하여 메케 의식(Meke) 이란다. 


라리이라고 하는 목재북을 두드린다. 마디를 뺀 대나무로 리드미컬하게 지면을 치며 반주하는 토속적인 춤이 인상적이다. 남성에 의한 메케는 꽤 박력이 넘쳐난다. 


전투의 모습을 재현한 장면에서는 숨을 삼키고 봐야 할 만큼 용감하고 스릴있다. 진실된 열정은 폭풍감동을 선사한다. 


열정적이고 혼신을 다해 몰두하는 모습에 그만 온 마음이 푹 빠져들고 만다. 그네들의 얼굴과 온 가슴이 땀으로 흥건히 젖어있다. 


자기가 하는 일에 깊은 몰입과 신 들린 열정이 불을 지피니 보는 이들도 공감의 도가니 속에 함몰된다. 


남성, 여성이 함께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 남십자성이 반짝이는 밤하늘에 그 노랫소리가 퍼져나간다. 잘 익은 통돼지 바비큐 맛도 절정의 미각을 돋운다.


바닷물 소리 철썩이는 소리 들으며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모든 게 참 고맙다. 이번 여행 후 일상에 더 몰입할 것 같다. 


때때로 낯선 곳에서의 아침을 맞이하기가 쉽지 않지만 이렇게 나오니 어린애 소풍나들이 같다. 330여 개의 섬으로 이뤄진 섬나라 피지. 


85개 이상의 국제선이 통과해 남태평양의 십자로로 불릴 만큼 접근성이 좋은 섬나라 피지는 맹수나 독충, 풍토병이 없는 3무(無)의 땅이라고 한다. 


화산섬으로 이뤄진 피지는 우리나라 경상도만한 크기에 인구는 80만명 정도다. 난디 국제공항과 수도인 수바가 있는 비티레부가 본섬이다. 

에머럴드빛 바다, 피지 외딴 섬 에서의 자유로운 휴식을 통해 삶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곳이다. 


남들 눈 의식에 부담 없는 곳, 바닷물 속에 몸을 담그며 수영을 하니 너무도 맑은 물이라 바닥이 투명하게 보인다. 


스노클링도하고 파도 타기도 하고 카누도 젖고 바닷가 모래위에 누워 일광욕도 즐기고 저마다 자유롭다. 


야자 잎 줄기로 엮은 파라솔 지붕의 원두막 아래, 등받이 의자에 앉아 바다를 멀거니 바라다본다. 대 자연이 가슴속으로 훅 밀려온다. 


한편의 시(詩)가 술술 나와 산호처럼 수를 놓을 것 같다. 시시 때때로 색깔을 달리하는 에메랄드빛 바다, 투명하리만치 맑고 푸른 하늘에 자유로이 모였다 흩어지는 구름. 


한가롭게 서걱대는 늘씬한 코코넛 야자수림, 쪽빛 바닷물이 간질대는 상아색 산호 모래밭, 형형색색의 귀엽고 다양한 모습의 산호와 하늘을 잇는 수평선… . 


삶이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을 이번 기회에 더 깨닫게 된다.



여러 날의 일정 중 가슴에 남아진 일이 바로 외딴 무인도 섬에서의 휴식과 원주민 마을 방문에서 느낀 인간적인 감동이다. 


이 외딴 섬에는 아직도 추장제도가 남아있다. 14개 부락으로 구성된 대 추장회의를 1년에 한 차례씩 연다고 한다. 


부족 단위 생활을 하는 피지에서 세부세부와 카바의식의 경험이 또한 매우 이색적이다. 원주민 부락에 들어가는데 차량 통행길이 끊겨 잠깐 당황스럽다 했더니 웬걸. 


그 지점에서 제트보트가 우리를 태워 샛강 줄기를 거쳐 고대 문명마을로 이동시켜준다. 고국의 60년대 시골 고향마을 강줄기가 연상된다. 


샛 강가에서 빨래하는 아낙네 모습과 옆에서 물장구치고 노는 아이들이 정겹게 손을 흔든다. 


원주민 가이드 아줌마가 강가로 마중 나오는데, 알록 달록 원색 치마에 검정색 장화를 신은 모습에서 정감이 느껴진다. 


예의 가득 만면에 미소짓는 모습이 너무 소박하고 자연스럽다. 낯선 부락에 들어갈 때 허락을 청하는 의식을 안내 받고 따라 해본다. 


얀고나라는 뿌리를 부락의 추장에게 바치며 나쁜 기운을 없애주니 손님으로 허락이 된다. 그러면서 하나가 되는 세부세부의식과 부락에서 손님을 형제로 맞이할 때 치르는 카바의식이 특이하다.


얀고나 뿌리를 갈아서 만든 카바라는 술을 마셔본다. 잔을 받으면 박수를 한 번 치며 불라(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을 건네고 카바를 원샷으로 들이킨다. 


그 뒤 박수를 세 번 치며 비나카(감사합니다)라고 고맙다는 표현을 한다. 의식이 끝나니 어린 소녀들이 손수 만든 꽃 목걸이를 걸어준다. 


이어서 나쁜 기운을 쫓아 내기 위해 얼굴에 흰 분 같은 걸 발라준다. 서로 얼굴을 보며 웃다 보니 순백의 나라에 온 듯하다. 


토속 음식을 준비한 회당으로 안내 받는 순간도 설렌다. 갓난 아이부터 노인들까지 100여명이 모여 앉아 환영해 마지않는다. 


바닥에 앉아 음식을 먹는 동안, 계속 전통 악기를 치며 함께 노래를 불러 주는데 괜히 겸연쩍고 미안스럽다. 


다 먹고 나자 메케 의식 끝에 모두들 어울려 춤을 추게 한다. 원주민들의 애환이 어린 노래와 전통 춤으로 이루어진 메케(MEKE) 의식. 


주로 손님을 환영하거나 결혼을 축하 할 때 하는 의식이라고 한다. 동화나라에 손님 같다.


어린이 어른 할 것 없이 일어나 우리들 사이로 돌아다니면서 함께 춤을 추자고 손을 내민다. 거절하는 사람이 없다. 


쌍쌍이 춤을 추다가는 한 줄이 되어 넓게 원을 그리며 돌고 돈다. 전통악기가 쏟아내는 흥겹고도 낭만적인 피지 고유리듬에 맞추어 신나게 박수 치며 춤을 춘다. 


정말 몰두해 추다 보니 땀이 흥건히 밴다. 낯선 풍습에 이렇게 빠져드는 시간이 얼마 만인가. 


맨 처음에 전통악기를 타고 흘렀던 니 사 블라(NI SA BULA) 라는 곡이 이상하게 가슴을 흔들어 놓더니 이번에는 또 메케 춤의 흥겨움이 가슴을 마구 흔든다. 


이렇듯 원주민들은 망설이는 빗장을 열어주고, 함께하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하나되어 모두 마음을 녹여낸다.


낯선 땅에서 만나는 낯선 풍습을 그저 신기한 눈으로 바라만 보면 밋밋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원주민들은 그걸 알고 서로 하나되게 우리의 손을 끌어 어우러져 춤도 추며 한 마당 잔치를 치른 것 같다. 


이왕 보여주는 김에 얀고나 의식도 메케 춤에도 혼신을 다하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손님으로 온 낯선 이들의 마음이 열릴 수밖에 없다. 


이렇게 서로가 친밀감을 느끼니 그 자체가 새로운 세상이다. 우리가 떠나는 시간에 원주민들 전통 가요인 이사 레이(ISA LEI. 이별의 노래) 선율.


 우리 가슴에 다시 한번 뭉클한 추억을 심어 놓는다. 세상에서 가장 순박하고 맑은 사람들로 가슴에 남아진다. Isa Lei 에 푹 빠져들며 어쩐지 친숙하다 싶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번안 가요로 소개된 윤형주의 우리들의 이야기가 바로 이 피지전통가요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오! 잊지 마오, 내 곁을 멀리 떠나더라도 우리들의 소중한 추억의 시간들을 잊지 마오. Isa, Isa, 내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했었소.”


아직도 귀가에 어른거리는 노래 소리, 그리고 아름다운 추억…… . 진정한 휴식 속에 새로운 에너지가 샘솟는다. 만남과 나눔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찾는 여행이다. 


머물고 싶은 곳, 다시 찾고 싶은 곳! 한 번 왔던 사람은 꼭 다시 한번 오고 싶게 만든다는 섬, 피지! 그 섬에 정말 다시 가고 싶다.


‘비나카 ! 비나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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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백동흠 

수필 등단: 2015년 에세이문학. 수필집: 아내의 뜰(2021년). Heavens 지금여기(2022년).

수상: 2017년 제 19회 재외동포문학상 수필 대상 (깬니프!). 2022년 제 40회 현대수필문학상 (Heavens 지금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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