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흠의 일상톡톡; 대확행(大確幸)! 모처럼 나도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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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동흠의 일상톡톡; 대확행(大確幸)! 모처럼 나도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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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나이의 시계가 칠십을 가리킨다. 세월은 흘러가는 강물처럼 쉼 없이 달린다. 아침에 거울을 보면 머리카락이 조금씩 은빛으로 변하고, 어깨는 전보다 쉽게 뭉친다. 그래도 하루는 흘러가고, 이런저런 일로 분주하다 보면 문득 쉼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짬을 내어 아내와 함께 헬렌스빌 팜 스프링 온천으로 향한다. 결혼해서 43년을 함께한 아내와 온천까지 43분 정도 달리는 동안, 마음은 어느새 여행길에 올라 있다.


노쇼에서 출발해 1번 모터웨이를 달리니, 양옆으로 펼쳐진 들판과 소들, 나무들이 물빛처럼 늘어서 있다. 그림 같은 풍경에 잠시 숨을 고른다. 예전에 택시를 몰며 손님과 함께 다니던 길이어서 익숙하면서도 반갑다. 이번에는 손님이 아닌, 삶의 동반자인 아내가 옆에 있다. 뒤따라 엄청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차에 자리를 비켜주고 우리 속도로 가자고 아내가 말한다. 택시 운전할 때는 뒤차에 상관없이 내 속도로 달렸는데, 아내 말대로 비켜준다.


헬렌스빌에 도착하니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100년 넘은 성당이다. 2000년도 대희년, 성당 식구들과 함께 와서 기도했던 기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벌써 25년 전 일이라니, 그때 젊던 내 모습과 지금의 내 어깨, 눈가 주름이 겹친다. 성당 안에서 조용히 주님의 기도를 올리며 마음이 차분해진다. 삶의 속도와 세월의 무게를 동시에 느낀다.


목적지 팜 스프링 온천에 들어서니 새로 단장된 시설이 훨씬 깨끗하고 쾌적하다. 한쪽 휴게실에는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점심을 나누며 웃는다. 언뜻 보니 20년 전 교회와 성당 노인대학에서 강의하며 만났던 분들의 얼굴도 눈에 들어온다. 90세를 넘은 한 할머니가 다가와 손을 꼭 잡아주신다. 순간 가슴이 뭉클하다. 나는 이분 아들뻘인데, 어느새 나도 칠십을 바라보고 있다. 세월은 참, 발걸음도 묻지 않고 달려간다.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하늘을 바라보며 눈을 감는다. 따뜻한 물이 몸을 감싸고, 마음속 깊은 긴장이 서서히 풀린다. 그 순간, 하루 종일 뭉쳤던 어깨가 풀리는 느낌이 소소하게 다가온다. 이런 작은 즐거움, 일상의 작은 행복이 바로 소확행(小確幸)이려니. 살아있다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순간이다.


며칠 전에는 집에서 큰 나무를 베고 가지를 정리했다. 회사에서는 워터블러스터로 청소하느라 어깨가 뭉쳤다. 젊었을 땐 대수롭지 않았던 근육통이 이제는 몸이 먼저 알려준다. 뉴질랜드 통계청 자료를 보면, 65세 이상 인구 절반 가까이가 만성질환을 앓고 있고, 세 명 중 한 명은 외로움을 자주 경험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온천에서 만난 어르신 웃음과 인사, 손을 잡아주는 온기가 더 따뜻하게 다가온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된다. 사람은 결국 서로 연결되어 살아가는 존재라는 걸 실감한다.


온천물에 아내와 나란히 몸 담그고 있는 순간, 친구 같은 아내 얼굴과 추억이 떠오른다. 지난 세월이 스르르 지나가며,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마음 깊이 여운을 주는 시간이다. 바로 이것이 대확행(大確幸)이 아닐까. 가까이 있는 여러 사람과 나눈 웃음과 온기, 그리고 자연 속에서 느낀 평화와 여유가 삶의 가장 큰 행복, 대확행이라는 것을 온전히 느낀다. 소확행으로 하루를 채우고, 대확행으로 삶 전체를 돌아보는 하루다. 뉴질랜드 삶이 작은 굴곡도 있었지만, 느지막이 이런 날로 살아 있다는 게 고맙다.


온천물에 몸을 담근 채, 다시 한번 주님의 기도를 올린다. 살아 있음 자체가 대확행이다. 어깨 통증이 풀리는 소확행도 좋지만, 여럿이서 함께 웃고 살아 있음을 서로 나누는 순간, 그보다 더 큰 행복은 없다. 헬렌스빌에서 맞이한 하루가 지나온 세월과 지금 여기, 곁에 있는 인연에 감사하는 법을 다시 일깨워 준다.


온천을 나오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파란 하늘, 부드러운 흰 구름, 미소를 머금은 마음이 여유롭고 평화롭다. 모처럼 나도 자연이고, 자연 안에 살아 있음을 느낀다. 오늘 하루, 이런 소확행과 대확행이 섞인 순간들이 쌓여 삶 전체가 한층 더 따뜻하게 빛난다. 살아 있음, 그리고 서로의 존재가 얼마나 큰 은혜인지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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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백동흠 

수필 등단: 2015년 에세이문학. 수필집: 아내의 뜰(2021년). Heavens 지금여기(2022년). 수상: 2017년 제 19회 재외동포문학상 수필 대상 (깬니프!). 2022년 제 40회 현대수필문학상 (Heavens 지금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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