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360) ‘아멘’하기 위하여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360) ‘아멘’하기 위하여 <신명기 27:1~10>

우리가 교회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 중에 하나가 바로 ‘아멘’이라는 말입니다. ‘아멘’은 “진실로”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받을 때에, 또는 기도할 때에, “아멘”이라는 말과 함께 그 안에 “진실로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 모든 것에 내가 동의합니다.” 이런 의미를 담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회 속에서 ‘아멘’이라는 말은 좀 더 강력합니다. 뉴질랜드에서의 레퍼런스, 한국의 인감 도장과 같은 의미, 한마디로 보증입니다. 누군가와 구두로, 말로 계약을 맺습니다. 그리고 “아멘”하면 이건 확증입니다. 인감도장 찍은 겁니다. 공증 받은 겁니다. 보는 사람들이 없어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시거든요. 그러니까 어떤 일에 대해서 내가 “아멘!”하면 이건 확증입니다. 아멘에 담긴 본래 의미입니다. 


오늘 우리가 신명기 27장 1절에서 10절까지만 보았지만, 이어지는 11절부터 마지막 26절까지 보면 총 열 두 개의 저주가 나옵니다. 저주의 말씀이 선포될 때마다 백성들은 “아멘”으로 화답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백성들에게 이런 저주의 말을 전하면서 “아멘 할지니라.” 그렇게 명하시는 것일까요? 간단하죠. 절대 그 저주받을 일을 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모든 삶에 있어서 이렇게 담대하게 ‘아멘’하기 위하여 내가 가져야 할 신앙의 모습이 무엇인가?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내 신앙의 기념비를 세워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1절에 이런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장로들이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명령을 너희는 다 지킬지니라.” 

그러면서 전한 첫 번째 내용이 2절에서 4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내용을 보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큰 돌을 세우고, 그 위에 석회를 바르고, 모든 율법의 말씀을 기록하라. 그리고 율법을 기록한 돌은 에발산에 세우라.” “돌에 석회를 바르고 글씨를 쓰는 것” 이건 당시에 흔히 행해지는 모습입니다. 예전에 애굽에서부터 보았던 방법입니다. 평평한 큰 돌을 세워놓고, 그 위에다가 석회를 바릅니다. 그리고 그 위에 글을 씁니다. 그러면 석회가 마르면서 그 속에 새겨진 글씨는 지워지지 않고 딱 굳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변치 않게 새겨놓으라는 것입니다. 말씀의 기념비, 곧 신앙의 기념비입니다.


에발산은 세겜 근처에 있는 산입니다. 에발산하면 늘 함께 언급되는 산이 있습니다. 무슨 산일까요? 그리심산입니다. 오늘 본문을 지나서 12절에 보면,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반으로 나누어서 축복을 위하여 그리심산에 서고, 저주를 위하여서 에발산에 섭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율법의 말씀을 기록한 기념비를 어디에 세우라고요? 축복의 산 그리심산이 아니라, 저주의 산 에발산에 세우라고 합니다. 이왕이면 축복의 산 그리심산에 세우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에발산에 세우라고 하셨을까요? 우리 인간의 마음은 그리심산을 향합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의 본성적인 악함은 늘 에발산에 머무릅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여... 마음은 늘 그리심산에서 축복을 누리길 원하지만, 육신은 늘 에발산에서 저주 가운데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에발산에 거하던 우리들을 그리심산으로 옮기시는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십자가는 골고다, 해골의 곶이라는 저주의 언덕에 세워져야 했습니다. 저주의 자리에 구원의 십자가가 서야, 그 저주의 자리에 있던 이들이 생명의 자리, 축복의 자리로 옮겨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하신 신앙의 기념비, 저주의 산 에발산에 세워진 말씀의 기둥은 곧 오늘날 우리를 위해 저주의 언덕인 골고다에 세워진 십자가와 같습니다. 그 십자가가 우리 심령 가운데도 믿음으로 세워져있는 줄 믿습니다. 이게 곧 나의 신앙의 기념비입니다. 


나의 가장 확실하고 견고한 신앙의 기념비는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주의 십자가는 저주의 자리, 죽음의 자리, 죄악과 심판의 자리에 세워졌으나, 이를 통해 우리는 축복의 자리, 생명의 자리, 용서와 사랑의 자리로 옮겨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나의 신앙의 기념비를 세워가야 합니다. 예배의 기념비, 헌신의 기념비, 사명 감당의 기념비,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신 축복의 기념비, 감사의 기념비, 그 은혜와 축복과 감사를 또 나눠가는 섬김의 기념비, 베풂의 기념비, 십자가 구원과 영생의 기념비 위에 내 신앙의 기념비를 날마다 새롭게 세워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순전한 예배로 순전한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발산에 율법의 말씀을 기록한 기념비를 세우는 것과 동시에 제단을 쌓으라고 명하십니다. 본문 5절입니다. “또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 곧 돌단을 쌓되 그것에 쇠 연장을 대지 말지니라.” 돌로 단을 쌓는데, 쇠 연장은 대지 말 것을 명하십니다. 쇠 연장을 대지 말라는 게 어떤 의미인가요? 이어지는 6절입니다. “너는 다듬지 않은 돌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을 쌓고.” 다듬지 않는 돌로 제단을 쌓으라고 명하십니다. 그러니까 쇠 연장을 사용해서 깍고 모양내고 이런 거 하지 말고, 그냥 돌 모양 생긴 그대로 쌓아서 제단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왕이면 잘 조각도 하고, 모양도 내고 해서 이쁘게, 멋지게 쌓으면 좋을터인데, 왜 있는 돌 그대로 다듬지말고 제단을 쌓으라고 명하시는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예배의 순수성입니다. 순전함으로 예배하는 것에만 마음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갑니다. 이를 위해 대제사장은 일주일 전부터 성전에서 지내면서 준비합니다. 그리고 대속죄일이 되면 화려한 대제사장의 옷을 벗고, 하얀 세마포 옷만 입고 지성소에 들어갑니다. 나의 직함, 나의 능력, 나의 이름, 다 내려놓고 순전한 한 사람의 예배자로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또한 오늘 본문에 돌을 다듬지 말라 명하신 것은 또 하나의 의미가 더 있는데, 이는 하나님께 예배함에 있어서 인간의 공로는 하나도 필요치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나 정말 힘든 상황인데 이렇게 예배드리러 왔어.” 예배의 자리에서 자신의 공로, 행위적인 의로움을 내세우는 거예요. “나 새벽마다 예배하는 사람이야.” 귀하죠. “나 일주일에 몇 번을 예배하는 사람이야.” 정말 귀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게 나의 공로가 되는 순간, 나의 자랑이 되는 순간, 하나님의 제단 위에 나의 쇠 연장을 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은 나의 공로가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예배할 수 있음이 내 노력과 내 의지와 내 수고를 더한 것으로 하나님께 상 받아야 할 일이 아니라, 예배의 자리에 내가 설 수 있음 자체가 주의 은혜임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비로소 예배의 순전한 기쁨을 발견하게 됩니다. 지루하고 힘든 예배가 아니라, 의무감으로 드리는 한 주간의 숙제와 같은 예배가 아니라, 다음 주일을 사모하는 예배, 주일까지 기다리기 어려워서 수요일 저녁에도, 새벽에도 달려나오는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예배자의 기쁨을 누리는 거예요.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예배에 이런 기쁨이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예배의 자리에 설 때마다 감사가 넘쳐나고, 내 전심을 다하여 주님을 예배하고, 그 속에서 하나님 주시는 감당할 수 없는 영적인 기쁨이 흘러넘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예배의 기쁨이 내 삶으로도 이어져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신앙적인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주일마다 예배하고 봉사하고 사명 감당하고, 믿는 자로서 살아가는 모든 삶을 가르켜서 신앙생활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서 다 신앙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교회를 나오고, 열심히 교회에서 예배도 드리고, 봉사도 하고, 맡겨진 사명도 감당하지만, 그 자체로 신앙적인 삶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 신앙적인 삶이란 무엇일까요? 한마디 내 삶의 중심을 하나님께 두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곳에 교회이든지, 가정이든지, 사업장이든지, 내 중심이 하나님을 향하는 것입니다. 


지난 번 신명기 첫 번째 시간에 말씀드렸죠.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그러면서 언급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내 안에도 새기고, 뿐만 아니라 내 자녀에게도 가르치고, 주님 주신 약속의 땅에서 그 말씀대로 살아가라. 이것이 곧 신앙적인 삶입니다. 지난 주에는 여기에 이어서 축복의 삶에 대해 말씀드렸죠.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할 때에, 영적인 놀라운 복을 내려주실 뿐만 아니라, 내 자녀손들과 내 소산과 짐승과 그 모든 것들에 번성케 하시는 복을 주시고, 치유와 회복의 역사까지 주심을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이 모든 축복을 감사함으로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곧 신앙적인 삶입니다.


오늘 본문 8절에도 말씀합니다. “너는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돌들 위에 분명하고 정확하게 기록할지니라.” 앞서 말씀드렸죠. 에발산에 기념비를 세우고 거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는데, 어떻게 기록해야 하는가? 분명하고 정확하게 기록할 것을 명하십니다. 그래야 9절의 말씀과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백성이 되어”, 10절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여 오늘 명령하는 그 명령과 규례를 잘 행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비로소 약속의 땅의 축복을 누릴만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중심이 하나님을 향하는 것, 그게 바로 신앙적인 삶의 모습입니다. 언제나 우리 주님을 내 마음에 모시고, 신앙적인 삶의 걸음을 걷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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