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66) 우리 가정의 행복은 관계에 달려있습니다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66) 우리 가정의 행복은 관계에 달려있습니다 <시편 128:1~6>

심리학 박사인 존 가트맨 교수는 대화의 종류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말합니다. 첫 번째는 원수되는 대화이고, 두 번째는 멀어지는 대화이며, 마지막 세 번째는 다가가는 대화라고 합니다. 우리 속담에도 “말 한 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고 하는데,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세상에서 주고 받는 대화를 통해서 우리는 서로 아름다운 관계를 맺어가기도 하고, 관계를 깨뜨려버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관계에 따라서 행복과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도 있고, 전혀 반대적인 상황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 주제인 가정에서도 보십시오. 부부간에 서로 사랑하며 섬기는 관계가 이루어지면 행복한 가정이 됩니다. 부모와 자녀간에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관계가 이루어지면 행복한 가정이 됩니다. 가정 뿐이 아니라, 교회도 그렇고, 직장생활도 그렇고, 세상의 어떤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행복은 다 관계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모든 관계의 첫 출발이 어디서부터 이루어지는가? 가정입니다.

  

가정의 달인 5월의 첫날, 바라기는 우리 뉴질랜드광림에 속한 모든 성도님들의 가정에 하나님 주시는 행복이 넘쳐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 모든 행복을 위해 우리는 어떤 관계를 아름답게 잘 맺어가야 할 것인가?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본문 1절에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복이 무엇인지가 나오는데, 2절에 “내가 수고한 것에 합당한 결과를 얻게 됩니다.” “복되고 형통하게 됩니다.” 3절에 “결실한 포도나무와 같은 아내, 어린 감람나무 같은 자식들, 즉 가정의 복을 받게 됩니다.” 이어서 4절에 다시 한 번 선언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그 복이 무엇인지 말씀하죠. 5절에 “시온에서 복을 받고 - 즉 영적인 복을 누립니다.” 6절에 “평강 가운데 대대손손이 잘 살게 됩니다.” 이 모든 복을 내 것으로 누리기 위한 첫 걸음이 무엇인가요?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먼저 바로 서야 한다는 거죠. 그래야 오늘 본문에 예비된 하나님의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워지는 아브라함. 그가 그렇게 불리워지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내 온 집에 충성된 자”라고 인정받는 모세, 그가 그렇게 인정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 주신 사명에 충성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칭찬받는 다윗, 그가 그렇게 칭찬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드렸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만 믿음의 조상 되는 게 아닙니다. 모세만 하나님께 충성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만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되는 게 아닙니다. 존 낙스만 기도하는 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닙니다. 지금 이 시간 함께 예배하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학교에서 예배하는 우리 자녀손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오늘 세례 받은 우리 아기들 한 사람이, 하나님과 바른 믿음의 관계를 세워갈 때에, 우리 가정에, 교회에, 사회에, 영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영적인 변화를 통한 행복을 이루어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입니다. 


여러분!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는 어떤 관계인가요? 누가 뭐래도 사랑의 관계, 존중의 관계입니다. 에베소서 5장 22절에는 아내를 향해 “남편들에게 복종하라.”고 말씀합니다. 이어지는 25절에는 남편을 향해 “아내를 사랑하라.”고 말씀합니다. 골로새서 3장에도 보면, 똑같이 권면합니다.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라.” 앞서 아내를 향한 권면에 보면,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남편을 향한 권면에서는, 아내를 사랑하되, “예수님께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으신 것”처럼 사랑하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해, 남편과 아내는 서로를 대할 때에, 예수님과 대면한 것처럼 대하라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를 사랑하되,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주신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는 그만큼 사랑으로 존중하고 신뢰하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4장 8절에 말씀합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사랑은 덮어주는 겁니다. 반대로 들춰내는 것은 미움이죠. 부부 관계가 얼마나 가까운 관계입니까? 얼마나 서로의 허물이 잘 보이는 사이입니까? 그럼에도 때로 덮어주는 것, 못 본 척 하는 것, 모르는 척 하는 것, 지적할 게 많아도 “생각나는 게 없는데?” 그게 사랑입니다.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는 무엇보다 사랑으로 하나된 관계입니다. 서로 복종하고, 서로 존경하고, 서로 덮어주는 관계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도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아 보여서 하와를 주셨습니다. 이 말은 부부는 함께하는 관계라는 것입니다. 서로 뜨거운 사랑으로 하나되어,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입니다. 


성경에서는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권고하나요? 에베소서 6장 1절입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이어서 4절입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또한 십계명에도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합니다. 아주 간단하죠. 자녀는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님은 자녀를 주의 교훈과 훈계로 잘 양육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간단한 것을 실천하는 것이 참 쉽지가 않습니다.

  

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자녀들은 부모님에게 아주 작은 서운함만 있어도 용서를 못하고 분을 품고 살아간다.”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는, 모든 관계가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어느 한 편에서 다 양보하고 받아준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지금 당장은 평안할지 몰라도, 일방적으로 포기한 부모님이나, 일방적으로 순종당한 자녀는 그 마음에 결국 더 큰 상처를 안게 되는 거죠. 

  

우리가 기억할 것은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도 하나의 사람 대 사람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부모”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순간, “자녀”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순간, 왜곡이 일어날 수 있거든요. “부모니까 다 참고 다 받아줘야지.” 아니잖아요. 부모님도 한계가 있습니다. “자녀니까 무조건 부모님께 다 순종해야지.” 겉으로는 순종의 모습이 보일지 몰라도, 상처는 점점 깊어집니다. 그래서 때로는 내 부모님을 바라볼 때에, 내 부모님을 대할 때에, 이웃집 어르신, 교회의 어르신처럼 생각해보고 대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습니다.  내 자녀를 대할 때에, 친구의 아들처럼, 교회에 아이들처럼 생각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습니다. 관계를 정말 그렇게 멀리하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가깝기에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공경하십시오. 이는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이 있는 첫 계명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 이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그런 약속이 없어도, 아무런 보상과 댓가가 없어도, 부모님 공경해야 한다는 것, 모르는 자녀들 없습니다. 

 

 “주의 훈계와 교훈으로 자녀를 잘 양육하십시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마십시오.” 이런 말씀 몰라도, 자녀를 노엽게 하고 싶어 하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신앙을 가진 부모로서 누구나 다 자녀를 주의 교훈과 훈계로 잘 양육하고자 하는 게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가 다 가지고 있는 마음입니다. 그게 뜻대로 잘 안되니까 문제인거죠. 

  

그 안타까운 마음을 주님 앞에 아뢰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만져주실 줄 믿습니다. 부모님의 삶을, 내 자녀의 삶을 주님 앞에 기도함으로 올려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 말 속에, 내 생각 속에, 내 표정 속에 사랑을 담아보는 거예요. 이러한 삶 속에, 하나님께서 우리 부모님을, 또한 우리 자녀손들을 선한 길로 이끌어 주실뿐만 아니라, 내 마음에도 평안을 내려 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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