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흠의 일상톡톡; 막대기를 꽂아두고
Algies Bay의 홀리데이 하우스가 잠에서 깨어났다. 오클랜드에서 1시간 거리의 북쪽 바닷가 산장이 콘도처럼 편안하다. 10월 이맘때 쯤이면 매년 한번씩 들러 하룻밤씩 보내곤 한다.
“ Good morning!”
키위가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한다. 아침 바닷가 햇살이 맑고 상큼하다. 아침인사가 이슬방울처럼 또르르 리듬을 탄다. 맞은 편 홀리데이 하우스 키위가족이 경쾌한 기분으로 야외 바비큐를 준비하고 있다. 식빵과 소시지와 양파만으로도 바비큐판이 후각을 자극하며 지글댄다. 아빠와 엄마 그리고 아이들 넷, 온 가족이 총 출동이다. 저마다의 일손을 보태서 풍성하고 즐거운 아침식사를 나누고 있다. 스쿨홀리데이를 맞아 외딴 바닷가 집에 자리를 편 스페셜데이다.
이쪽 홀리데이 하우스에서는 남자들 여럿이서 소매를 걷어 붙이고 아침준비가 한창이다. 싱크대 옆에 프린트한 종이가 놓여있다. 요리 레시피다. 글자들이 바라보기에 남자들 요리가 서툴 것 같았나? 앞 다투어 상냥한 도우미를 자처하고 나온다.
‘콩나물을 씻어 냄비에 담으셔요. 홍합의 티를 벗겨내고 깨끗이 손질을 하고요. 냄비에 물과 다진 마늘을 넣고 끓이셔요. 준비한 홍합을 넣으시고요. 소금으로 간하고 파를 썰어 넣으셔요. 이제 한숨 돌리고 기다리셔요.’ 그러면 콩나물 홍합 해장국이 된단다. 넣을 음식재료와 요리순서를 어슷 맞추고 기다려 본다.
지난밤 남자들 여섯이서 날밤을 보냈다. 밤 바다의 파도소리가 거세듯 홀리데이하우스도 시끌벅쩍했다. 평소 매주 만나 기도와 활동을 나눠오다 바람 한번 쐬려 훌쩍 떠나왔다. 좋게 이름 붙이면 피정(避靜)이요, 그냥 부르면 친목 단합대회다.
키위들의 서양식 아침 식사재료는 서너 가지인 듯 한데, 이쪽 한식 음식 재료는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밤새 나눈 자유대화도 한식재료만큼이나 가지각색이었다. 톡 쏘는 이야기 맛에서 새콤달콤하다가 구수하고 얼큰한 맛으로 마무리되었다.
오래 숙성된 진한 포도주를 몇 잔씩 연거푸 들이켰더니 속이 다 녹아났다. 이민생활에 맺히고 얽힌 앙금들이 비워지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필요한 연례행사였다. 그러려니 여겨 자연스레 아침 술국으로 콩나물 홍합 해장국을 끓이게 된 것이다.
“우와! 해장국 맛, 딱 그만이네!” 여기저기 자화자찬이 쏟아진다. 얼추 간이 배이고 우러난 맛이다. 먹을 만하다. 아침 빈 속이 반겨 한다. 밖에 나와 지어먹는 따뜻한 밥엔 이미 시장이 반찬이다. 후한 점수가 나오기 마련이다. 남자들은 어린 소년이 되어 으쓱해 한다.
아침식사를 든든하게 마치고 카와카와 차 한잔을 음미하며 바다를 응시한다. 어제 오후 숲속 길을 산책하다 원주민 마오리들이 명약 재료로 썼다는 카와카와 잎을 발견했다. 하트 모양의 잎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벌레 먹어 그렇게 된 잎이 좋은 차 재료라 해서 한 움큼 따다가 어젯밤 끓여 찬 한잔씩을 했다. 혈액을 맑게 해주고 피부질환에도 좋다고 한다. 류머티즘이나 통증도 덜어준다니 명약이다. 건강에 좋다고 해서 아침에 그것을 재탕하여 우려낸 것이다.
평상시처럼 촘촘한 일이 기다리는 것도 아니니 아침 나절이 바쁠 것도 없다. 한자풀이대로 사람(人)이 나무(木)에 기대어 쉬는 시간이 휴(休)이고, 자신(自)의 마음(心)을 돌아보는 숨 고르기가 식(息)이니. 카와카와 차 한잔의 여유를 느끼는 휴식(休息)시간이 참 고즈넉하다. 낯선 곳에서 아침을 맞으며 여유로움에 젖어 지난 생활을 되돌아본다.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자기 성찰의 시간이 편안하다. 가던 길을 잠깐 멈춰서서 나를 돌아보는 지금여기.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인정하고 들여다보니 마음에 평화가 어우러져 올라온다. 자기 내면에 슬픔, 걱정, 분노가 밀려올 때면 무작정 걷는다는 에스키모의 이야기에 수긍이 간다. 한없이 걷다가 평안이 찾아오면 그 지점에 멈춰 서서 막대기를 꽂아두고 되돌아서는 발걸음. 그래서 휴식은 내 삶에 막대기를 꽂는 일이라고. 나 자신의 내면과 끝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평화가 찾아올 때까지 걷고 또 걷는다니. 그리고 그곳에 막대기를 꽂고 돌아오는 일. 에스키모의 이야기에 내 이야기를 덮어써 본다.
모처럼 낯선 곳에서 아침을 맞으며 큰 욕심 같은 건 내려놓고 어깨를 쭉 펴본다. 하늘 담은 바다가 빈 가슴에 서서히 밀려 들어온다. 싱싱한 녹색 나뭇잎들이 서걱거리다 미풍에 팔랑거린다. 이번 피정(避靜)이자 친목 단합대회 묵상 화두가 다시금 오버랩 되어온다.
“지금에 살고, 과거에 감사하고, 미래에 희망을 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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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백동흠
수필 등단: 2015년 에세이문학. 수필집: 아내의 뜰(2021년). Heavens 지금여기(2022년). 수상: 2017년 제 19회 재외동포문학상 수필 대상 (깬니프!). 2022년 제 40회 현대수필문학상 (Heavens 지금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