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나무 호수와 테 헹아 워크웨이(Lake Wainamu & Te Henga Walkway)

교민뉴스


 

와이나무 호수와 테 헹아 워크웨이(Lake Wainamu & Te Henga Walkway)

일요시사 0 863 0 0


당신의 쉼표는 안녕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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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 헹아 산길 위에서 마우이 돌고래를 찾기 위해 잠시 쉬고 있는 도보 여행가들.


며칠 전 내 글벗 가운데 한 사람이 한국으로 돌아갔다. 10여 년의 이민 생활을 뒤로하고 몇 해 만이라도 부모님과 함께 살기 위해 고국행 비행기를 탔다. 쉰을 조금 넘긴 글벗의 고민은 귀국 이삿짐이었다. 그가 가지고 갈 수 있는 분량은 라면 상자 여섯 개 정도.

그는 몇 달 동안 물건을 팔고, 주고, 버렸다. 그러고도 또 팔고, 주고, 버렸다. 짐 더미 속에서 정말로 헤어 나오기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한 말.

죽을 땐 한 상자도 가지고 갈 수 없는데, 왜 이렇게 많이 지니고 있었는지 모르겠네요.”

 

쉼표 하나, 와이나무 호수-물장구 치며 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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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나무 호수에서 한가롭게 수영하고 있는 오리들.


토요일 오전 8, 베델스 비치(Bethells Beach)로 향했다. 오클랜드 시내에서 차로 50분 거리다. 핸더슨을 지나자마자 몇 분도 안 돼 숲속 길이 나왔다. 와이타케레 숲마을로 들어선 것이다. 나무의 날숨이 내 들숨이 되었다. 피톤치드 덕분일까. 도시의 때가 벗겨지면서 정신이 맑아졌다.

오늘의 첫 목적지는 와이나무 호수(Lake Wainamu). 아주 오래전 식구들과 함께 갔던 곳이다. 모랫길과 숲길을 따라 호수 주위를 한 바퀴 도는 코스다. 개울물을 벗어나 5분 정도 걷자 모래 언덕이 나타났다. 모래판에 한 걸음 두 걸음 내 발자국을 조용히 남겼다.

10여 분 뒤 아담한 호수가 보였다. 순간 월든(Walden) 호수가 떠올랐다. 미국의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1817~1862) 2년 동안 머문 곳. 그곳에서 소로는 최소한의 물건으로 최대한의 기쁨을 누리며 살았다. ‘풍부하게 소유하기보다, 풍요롭게 존재하는 삶.’

소로는 통나무로 지은 집 창문에 커튼을 달지 않았다. 해님과 달님만이 소로를 훔쳐볼 수 있었다. 소로는 훗날 톨스토이와 간디, 마틴 루터 킹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자연을 예찬하고 문명을 비판한 대표적인 미국의 사상가였다.

호숫가에는 유독 어린아이들이 많았다. 다들 수영을 하거나 물장구를 치며 놀았다. 나도 신발을 벗었다. 무언가로 만든 인공(人工)을 걷어내자 스스로 있었던 것’(자연, 自然)이 드러났다.

와이나무 호수는 길이가 1km, 넓이가 200m. 둘레를 다 더하면 2.5km 정도 된다. 면적은 약 42천 평.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지만 월든 호수와 비슷하다.(월든은 약 1.8마일, 3km가 조금 안 된다.)

월든 호수가, 와이나무 호수가 내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간소하게, 더 간소하게 살아라. 일을 두세 가지로 줄여라.”

돌아보면 인생을 너무 번다하게 보냈다. 앞으로는 해님과 달님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다.

 

쉼표 둘, 와이토히 폭포-땀방울을 닦으며 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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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토히 폭포에서 주먹밥을 먹으며 쉬었다.


호수를 뒤로 하고 산길로 들어섰다. 몇십 분을 걸었을까. 이마에, 등 뒤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잠깐 쉬다 가라는 뜻이었다. 바람 소리에 섞인 물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숲길 끝에 있는 작은 폭포가 물방울을 휘날렸다. 높이는 5m 안팎. 졸졸 흐르는 물길을 바라보며 앉았다.

봇짐 가방(배낭)에서 주먹밥을 꺼냈다. 마음이 가난한 도보 여행자(tramper)의 소박한 한 끼. 와이토히 폭포 옆에 이색적인 조각상이 보였다. 오래전 이 동네에 살았던 마오리 조상을 기리는 기념물이다.

10분쯤 내 날숨과 나무의 들숨을 교환했다. 그사이 땀이 다 식었다. 다시 일어나 걸었다. 호수 주위는 벌써 이른 가을이었다. 이름 모를 들풀들이 하늘을 향해 춤을 추고 있었다.

호수 끝에 다다랐다. 그 너머로 검은 모래 벽이 나를 포위했다. 로마 군단처럼 떡 버티고 서 있었다. 갑자기 무서움이 느껴졌다. 수심이 15m도 채 안 되는 호수는 날 편하게 해주었는데 저 수십 미터가 넘는 모래 언덕은 내가 오를 수 없는 철옹성처럼 다가왔다.

정면 돌파, 혹은 돌아가기.

돌아가기를 택했다. 물길을 따라 자분자분 걸었다. 물 깊이는 10~20cm가량. 나보다 앞서간 사람들은 이미 모래 언덕을 타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힘든, 그러면서도 정복 후 짜릿한 쾌감을 느낄 것 같은 그 등정을 부러움 반 부질없음 반으로 지켜보았다.

 참고로 와이나무 호수의 모래언덕은 썰매 타기로 이름이 난 곳이다. 어린아이를 두었거나, 스스로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은 모래 썰매를 등에 지고 한 번쯤 찾아봐도 좋을 것이다.

 물가를 벗어나자 아무리 애를 써도 피할 수 없는 모래 벌판이 나왔다. 터덜터덜 한 걸음 두 걸음 걸었다. 사하라 사막의 한 귀퉁이를 걷는다고 생각하자 발끝에 힘이 들어갔다. 모래 색깔은 검디검었다. 베델스 비치의 모래 색깔과 같다. 영어로는 아이언 샌드(iron sand), 우리 말로는 사철(沙鐵)이라고 하는데 암석 중에 포함되었던 자철석이 작은 알갱이가 되어 강이나 바다의 밑의 퇴적된 광상 또는 광물을 뜻한다.

 

쉼표 셋, 테 헹아 산길 위-마우이 돌고래를 기다리며 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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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 좋고 산 좋고.’

 베델스 비치 주위를 두고 하는 말일 게다. 한 시간 반 걸음길이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테 헹아 워크웨이(Te Henga Walkway)를 타기로 했다. 트램핑 클럽의 대장(우리는 그를 대장이라 부른다. 니코스 카잔치키스가 쓴 그리스 사람 조르바에 나오는 조르바 대장과 아주 조금 닮았다.)은 생각보다 힘든 산길이라고 겁을 주었다. 한낮의 타는 듯한 해님이 중천에 떠 있었다.

 이 코스는 완전히 산길이다. 헉헉 숨을 내쉬며 걸었다. 내 날숨을 나무들이 들숨으로 바꾸느라 애를 먹었다. 다행히 산길 중간중간 그림 같은 비경이 나온다. 눈 아래 보이는 태즈매이니아 바닷길이 황홀하기만 하다.

 ‘테 헹아는 베델스 비치(Bethells Beach)의 마오리 이름이다. 이 길은 뉴질랜드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산악인, 에드먼드 힐러리 경을 기리기 위해 만든 힐러리 트레일(Hillary Trail) 중 일부다. 힐러리 트레일은 3 4일간 총 75km로 짜여 있다. 오늘 산길 걷기는 시간 관계상 오닐 베이(O’Neill Bay)까지다. 2.1km, 40분 거리다.

 땀이 땀을 먹기 시작했을 때 눈앞에 멋진 쉼터(의자)가 나를 맞았다. 40분 트램핑 중 가장 멋진 풍경을 품고 있을 게 분명했다. 의자 등에는 ‘The seat of power is you’라고 쓰여 있었다. 그 위 모서리에는 ‘Watch Maui Dolphin’이라는 다소 색다른 문구가 보였다.

 순간 ! 그 마우이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마우이는 뉴질랜드 북섬 서쪽 바닷가에서만 볼 수 있는 아주 작은 돌고래다. 2016년 말 현재 전 세계에 60마리가 채 안 될 정도로 희귀한 동물이다. 마우이 돌고래는 뉴질랜드 정부가 깊은 관심을 두며 지켜보고 있다.

 누구든 마음속에 꿈 하나쯤은 품고 산다. 그것이 이룰 수 있든 없든 꿈 자체로 행복하기도 하다. 마우이 돌고래도 그럴 것이다. 비록 멸종 위기에 처해 있어도, 운이 좋으면 이곳 쉼터에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한 가닥의 기대.

사실 절대 오지 않을 고도’(Godot)를 기다리며 사는 게 우리네 인생이다. 산 위에서 들숨과 날숨을 수십 번 번갈아 쉬는 짧은 순간, 내 인생에 남은 마우이 돌고래 춤은 과연 무엇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이제부터 내리막길. 베델스 비치를 목표로 걸음을 내디뎠다. 해님을 벗삼아 잔치를 벌이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그 사이로 얼마 전 낚시를 하다가 목숨을 잃은 교민이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깊은 묵상에 젖었다. ‘더는 슬픈 소식이 전해지지 않기를….’

베델스 비치는 검고 고운 모래로 유명하다. 신발을 신고 걷는 게 죄(?)로 느껴질 정도다. 작은 도랑물이 흘렀다.

퐁당퐁당 돌을 던져라/ 누나 몰래 돌을 던져라.”

나도 모르게 동요가 입에서 나왔다. 신발을 벗었다, 누나도 없고 던질 돌도 없었지만, 물장구 하나만은 신나게 쳤다.

 

쉼표 부록-달달한 모카커피를 마시며 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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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이나무 호수와 테 헹아 워크웨이 트램핑을 마쳤다. 15km, 3시간 20, 2만 걸음. 염분을 많이 쏟아 그랬는지 달달한 게 먹고 싶었다. 마침 베델스 비치 주차장 앞에 이동식 간이 카페가 장사를 하고 있었다.

 “아이스 모카치노 플리즈.”

 파라솔 밑에서 커피를 마셨다. 땀도 쉬고, 다리도 쉬었다. 한나절 이 정도면 잘 쉬었다(살았다)고 생각한다.

 2019년 한 해가 시작되면서 정한 세 가지 삶의 원칙이 있다. 그건 올해 내 삶을 읽고, 쓰고, 걷고그렇게만 살겠다는 다짐이다. 옛날 아프리카 원주민은 하나 다음은 둘, 그다음은 많다라고 했다고 한다. 둘이나 셋이 넘으면 무조건 많은 것이다.

글과 사진_프리랜서 박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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