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의 손바닥 소설 [30편] 탱크 소리
코골이로 근 30년을 고생했잖아. 자다가 자주 깨고 소변보러 화장실 가고. 많이 자고 나도 몸이 개운하지 않고 찌뿌둥했지. 양압기 사용 후부턴 자고 일어나면 상쾌해. 무호흡증도 개선되고. 아무리 봐도 기적이지. 써니가 피터 얼굴에 묻은 흙을 손으로 닦아준다. 남편의 고질병, 30년 묵은 체증이 확 내려갔다니, 듣는 것만으로도 후련하다. 확실히 예전보다는 혈색이 돈다. 늘그막에 이런 것이 큰 복 아닌가.
“참 희한한 일이네. 왜 그걸 몰랐지? 그렇게 가능한걸. 무슨 기적 같아.”
뉴질랜드 제헌절인 와이탕이 데이. 2월 6일. 한여름 휴일이 오붓하고 고즈넉하다. 뒤뜰에 텃밭 만들기 딱 좋은 날이다. 부부 대화가 새소리처럼 맑다. 피터의 경쾌한 말투가 스프링 탄력처럼 탱탱하다. 거친 나무등걸, 뿌리를 캐내고선 피터가 허리를 편다. 옆에서 땅을 파던 써니도 환하게 웃는다. 부부로 수십 년을 살아오면서 고민거리가 하나 있었다. 그게 최근 해결되다니 피터로서는 정말 기적이었다. 덩달아 써니도 병을 떨쳐낸 느낌이다.
“뉴질랜드 의료서비스가 참 고맙구먼. 이런 것도 신경 써서 해결해 주니까.”
“당신이 좋다니까 내가 마음이 더 후련하네. 그동안 나도 옆에서 얼마나 힘들었는데. 괜한 오해까지 받고 속도 상했으니까.”
“오해는 무슨?”
“왜 자기는 그리도 무심해? 밤에 함께 자다 내가 도저히 잠을 못 이뤄 거실 소파로 나가 잤잖아.”
“그런데?”
“그럴 때면, 자기가 중간에 일어나 나를 찾았지. 자기가 싫어서 따로 자느냐고 역정을 부린 것. 참 많았지. 물론 부부 싸움하고 미워서 그런 적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놈의 당신 코골이 때문이었는데.”
“그럼 그때그때 이야길 하지. 당신 몸이 답답해서 밖에서 잔다고 하길래 그런 줄 알았지.”
“자기야 종일 고된 목수일 하고 들어와 나가떨어졌는데… .”
써니가 부엌에서 수박을 썰어 내온다. 하얀 서리 같은 게 빨간 수박에 설탕처럼 어려있다. 뒤 데크 테이블에 앉아 새참을 먹는 시간. 평화로운 한나절 풍경이 따로 없다. 새들은 노래하지. 강아지는 뭘 달라고 치대지. 한여름 바람은 시원하기 그지없지. 매미들은 옆 나무숲에서 합창하지.
“살다 보니, 몰랐던 일을 깨쳐가는 재미가 정말 가슴 뿌듯하구먼.”
“내 말이. 그러게 오래 살아볼 일이야.”
“그래서 그런 말도 하잖아. 지금은 어려운 문제지만, 얼마 후면 문명의 발달로 해결될 거라고.”
“어쨌든 당신 코골이 치료기, 양압기의 효능은 대단해 정말. 당신 건강도 좋아지고, 나도 잠 잘 자고.”
“코골이로 근 30년을 고생했잖아. 자다가 자주 깨고 소변보러 화장실 가고. 많이 자고 나도 몸이 개운하지 않고 찌뿌둥했지. 양압기 사용 후부턴 자고 일어나면 상쾌해. 무호흡증도 개선되고. 아무리 봐도 기적이지. 고맙지 않을 수가 없어.”
써니가 피터 얼굴에 묻은 흙을 손으로 닦아준다. 남편의 고질병, 30년 묵은 체증이 확 내려갔다니, 듣는 것만으로도 후련하다. 확실히 예전보다는 혈색이 돈다. 늘그막에 이런 것이 큰 복 아닌가. 아픈 게 나았다는 것. 감사하지 않으면 죄지 싶다.
“아무튼 고마운 분한테 보답을 해야지. 당신 다니는 회사 키위 목수 빌에게 한턱내야겠어. 내가 한국 음식, 보쌈 같은 것 만들어 대접해드릴까 봐.”
“좋고말고. 당신 생각이 기특하네. 말로만 빌한테 고맙다고 했는데. 그때 빌이 나한테 양압기 효능을 알려주지 않았으면 몰랐지. 직접 경험해서 좋은 것을 남한테 알려주는 것. 참 고마운 나눔이지.”
“그때 계기가 된 연결의 물꼬. 인연이라는 게 참 묘해.”
“맞아. 몇 달 전 마무리 지붕 작업을 하다 몸이 피곤해 더는 일을 못 하겠더라고. 집에 가 쉬다 올까도 생각했지만. 그 일은 그날 끝내야 할 상황이었고. 작업장은 멀리 외딴곳이라서 망설였지. 빌이 나더러 낮잠 한 시간 자라고 하더구먼. 그 말에 나무그늘 아래서 그냥 곯아떨어졌지. 자고 난 뒤 그날 일을 다행히 잘 마무리했지. 일 마치고 저녁 먹으며 빌이 조언해주더구먼. 내 코골이가 탱크 소리 같다는 거야. 빌도 전에 그랬대. 치료 루트를 알려주더구먼”
“그러게. 그날 피곤해 나가떨어진 게, 내 병을 남에게 알린 거네.”
“맞아. 필요해. 먼저 패밀리닥터, GP한테 간 일. 전문의, 스페셜리스트에 연결해줘서 검사받은 일. 수면 치료기관에서 하룻밤 자며 수면 상태 측정 후 무호흡증으로 판정. 양압기 사용 결과 정상 기능 회복. 그 결과 양압기를 무상으로 받아 집에서 매일 사용. 이런 일련의 일들은 빌이 소개해준 덕분이지. 뉴질랜드 의료 서비스에도 감사할 일이고.”
“그러게. 빌이 알려준 대로 한 게 당신 30년 앓던 체증이 확 뚫린 거지.”
“사람들은 잘 몰라. 나도 그랬으니까. 자기가 얼마나 잘못 알고 있는지. 그대로 지내며 그러려니 살아가지. 분명 어디엔가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따로 있는데.”
“신기한 건, 그 문제 해결이 함께하는 이들 경험에서 나오는 것 같아.”
“그래서 주변 사람과 인연을 중히 여기고 감사드려야지.”
테이블 아래에서 강아지가 피터 바지를 살살 긁는다. 자기도 수박이 먹고 싶다고. 피터가 강아지에게 수박을 잘게 잘라 먹여준다. 한 번, 두 번, 세 번.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맛있게 먹는 강아지 머리를 써니가 쓰다듬어준다. 새참을 다 먹고 자리에서 일어나 텃밭 일구기를 계속한다.
“이 뒤뜰만 해도 오랫동안 방치됐었지. 표면에 나무뿌리가 울퉁불퉁 솟아나서 텃밭으로 쓸 수가 없었잖아. 얼마 전부터 시간 나는 대로 조금씩 손을 대며 가꾸다 보니, 개간하는 느낌이야. 큰 나무를 베어내고, 표면의 거친 뿌리 등걸을 톱으로 자르고, 땅에 박힌 뿌리도 캐내고. 이젠 적당한 크기의 텃밭이 형태를 갖췄어.”
“몰랐던 것을 아는 것, 포기했던 것을 정리하는 것, 무질서에서 질서 쪽으로 가는 것. 그 맛이 큰 보람으로 느껴지네.”
“몇 달 뒤엔 이 텃밭에서 상추, 깻잎, 갓, 파가 무성해지겠지.”
“그때, 당신 잘하는 수육 만들어 쌈 싸 먹으면 딱 좋겠어.”
“맞아. 내 땀방울로 일군 텃밭 채소로 먹는다? 상상만 해도 좋네.”
몇 시간에 걸쳐 텃밭 진흙을 파내고 컴포스트와 거름을 섞어 고른다. 직장 일하다 짬 나는 대로 텃밭 가꾸는 일을 하니, 재미가 쏠쏠하다. 저녁밥 맛도 기대가 된다. 적당히 땀 흘리고, 새로운 환경을 만드는 데서 오는 기쁨이 좋다.
“세상에는 몸이 아프고 힘들어도 방법을 몰라 그대로 사는 경우가 많아. 물론 큰돈이 들어서 엄두를 못 내는 경우도 있지만, 찾아보면 다른 방법이 있게 마련이지.”
“그래서 사람 사는 게, 서로 나누며 살아가야 한다는 거겠지. 혼자서 다 못하는 세상이니까. 내가 잘하는 것 나눠주고, 남이 잘하는 것 받아들이고.”
“옛날에는 고치기 힘든 병 가지면 평생을 몸에 달고 살았지.”
“요즘이야 의술이 발달해 그런 병들이 기적처럼 치료되니 참 좋은 세상이야.”
“좀 힘들어도 달래가며 살면, 언젠가 치료기술이 개발될 거고.”
“아무튼 잠잘자고, 피로감 적고, 이런 텃밭 개간하는 일도 척척하고. 보는 내가 다 시원하네.”
피터가 하던 일을 마치고, 텃밭을 둘러본다. 흐뭇하다. 얼마나 오래 방치하다 마무리 한 일인가. 목수일 한다는 사람이 남의 일은 잘해도, 자기 집 일은 항상 맨 뒤 순서로 미뤄오지 않았던가? 드디어 오늘에야 손바닥만 한 예쁜 텃밭이 완성됐다. 애들이야 다 분가한 터라, 두 내외가 먹 살기에 충분한 크기의 텃밭이다.
샤워를 마치고 먹는 저녁이 꿀맛이다. 써니가 일하는 중간에 틈틈이 준비한 찜 닭. 삼계탕이 여름 보양식으로 딱 제격이다. 한 다리씩 입에 물고 뜯는다. 반주로 내온 동동주를 써니가 사발에 따라 피터에게 준다. 피터도 작은 종발에 따라서 써니에게 준다. 둘이서 탁주 잔을 탁 부딪친다. 탱크 소리는 사라지고 평화가 찾아온 세상. 저녁노을이 멀리서 붉은 기운을 보내온다. 와이탕이 데이가 그렇게 저물어간다. *
그동안 뉴질랜드의 손바닥 소설을 애독해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1부 30편을 마무리 하고 짧은 소설 한 권을 엮습니다.
2부는 잠시 숨 고른 뒤, 다시 이어질 예정입니다. 꾸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