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사람들(32) 왕가누이에 사는 따듯한 사람들
<사진: 김인식>
얼마 전에 왕가누이에 사는 친구를 보러 갔다. 왕가누이는 오클랜드에서 남서쪽으로 여섯 시간 정도 운전하면 갈 수 있는 인구 오만도 안 되는 조그마한 도시이다. 친구는 이년 전에 오클랜드에 사는 게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다며 가지고 있던 집을 팔아 이사했다. 1900년대에 지어진 빌라를 샀는데 앞으로 삼사 년은 집 고치느라고 오클랜드에 올라갈 시간이 없으니 언제 한번 놀러 오라고 당부하며 떠나버렸다. 오클랜드에서 아는 사람이 또 줄어들었다는 사실은 그의 가재도구를 실은 트럭이 출발하고 나서 한참 있다가 먹먹해진 가슴을 통해 다가왔다.
정원에 피어있는 철쭉을 비롯해 노랗고 빨간 꽃들이 운전에 지친 나를 환하게 맞아준다. 잘 정돈되어 있지는 않아도 자연스럽게 꽃과 나무들이 뒤섞어 있는 넓은 마당에 한두 마디를 던진다. 한쪽 구석에서 먹이를 찾고 있는 살찐 암탉들을 보면서 조금 더 여유 있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친구의 검게 탄 얼굴을 보자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를 그리워했던 마음과 그의 용기에 대해 부러움을 웃는 얼굴로 표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거실에 앉자 높은 천정이 눈에 들어온다. 사람들이 작아 보이며 185cm가 넘는 내 키가 부담스럽지 않다. 구월 말인데도 눈이 덮인 루아페후산(Mt. Ruapehu)을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는 맛이 있다. 너무 좋은 모습만 보고 있으니까 밤에는 따스한 공기가 천정에서 밑으로 내려오지 않아 춥다는 친구의 경고가 귀에 안 들어온다.
왕가누이에는 많은 예술가가 살고 있다며 그들이 잘 가는 카페로 브런치를 먹으러 가자고 친구가 손을 이끈다. 카페에 들어서 한 눈으로 분위기를 훑는다. 열 개 정도의 테이블이 있는데 그중의 하나는 아주 길다. 60대 초반에서 70대 중반으로 보이는 대여섯 명이 앉아 무엇이 재미있는지 낄낄거리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친구가 나를 그 테이블로 끌고 가 소개한다.
그 후에는 무슨 말을 할 줄 몰라 한동안 조용히 앉아 있는데 쪽지가 날아온다.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의 이름이다. 내 이름을 쪽지에 적고 나서 그들의 얼굴과 이름을 맞추어 본다. 나를 그들의 얘기 속에 끼워 주려 하는 따스한 마음이 전해진다. 서로를 알려고 관심과 호기심을 가져주는 왕가누이라는 작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낭만적으로 보인다. 더불어 잘 살고 싶으면서도, 정에 굶주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한 채 남의 것만 탐을 내며 그들에게 불평을 쏟은 적이 많다. 그런 나에게 왕가누이의 어른들의 모습이 더더욱 정겹게 다가온다.
오랜 시간 운전을 해야 할 것을 알면서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친구와 작별 인사를 했다. 낯선 곳에서 잘살고 있지만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친구를 보니 눈물이 핑 돈다. 감성적인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코를 풀면서 빠르게 눈가를 훔친다.
왕가누이에 내려오면서 구름에 가려 루아페후산의 정상을 보지 못했는데 오클랜드에 올라가면서 하얀 산봉우리를 보여달라고 기도했다. 기도에 응답이었는지 아니면 운이 좋았는지는 몰라도 내셔널 파크(National Parks)를 지날 때 눈 덮인 루아페후산 정상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나오는 감탄사를 들으면서 한참이나 산봉우리를 곁눈질로 쳐다보며 운전을 했다. 해밀턴(Hamilton)에 다가오자 조금씩 머리가 아파져 온다. “밤에는 추워”'라는 친구의 경고를 제대로 듣지 않고 춥게 자서 감기가 오나보다 했다.
따뜻한 국물이나 매운 음식을 먹으면 나아지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며 한국 음식점을 찾는다. 구글로 검색해보니까 ‘종가집’이 나온다. 순두부찌개를 시켜 맛있게 먹고 난 뒤에 가방을 뒤졌는데 매일 들고 다녔던 진통제인 파나돌(Panadol)이 안 보인다. 차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는데 갑자기 오한이 밀려온다. 멈추기가 힘들 정도로 몸이 떨린다. 차 안에서 옷을 찾아 더 껴입어도 춥다. 두 시간 정도 더 차를 몰아야 집에 갈 수 있는데, 안전하게 운전을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파나돌 두 알을 삼키고 침대 속으로 기다시피 들어갔다. 이불 세 채를 덮었는데도 춥다. 더웠다가 추웠다가를 반복하는 것은 참을 수가 있다. 머리가 빠개지듯이 아플 때는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다.
이틀이 지나 사흘째가 되어도 낫는 기색이 없다. 당기는 음식도 없고 머리는 아프니 짜증만 늘어간다. 누군가가 옆에 있어 간호라도 해준다면 좋겠지만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있으려니 힘들다. 잠이 오려고 하면 머리가 아파 오 분마다 깨고, 또는 코가 막혀 숨을 쉴 수 없어 죽을 거 같다는 두려움에 휩싸여 눈을 급하게 뜬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원망이 섞인 투로 “이렇게 고문을 할 바에야 그냥 데려가세요. 너무 힘들어요.”라고 하늘에 대고 투정도 부린다.
졸았다가 깨어나기를 반복하며 빨리 긴 밤이 지나기를 기다리는데 누군가 “Compassion (연민)”이라고 짧지만, 큰소리로 외친다. 눈을 떠 사방을 둘러봐도 아무도 없다. 연민이라는 단어의 뜻을 생각해 본다. 생각은 여러 방향으로 날개를 단 듯이 날아간다. 나에 대한 연민, 남에 대한 연민, 사람들이 살고 늙고 병들고 죽어가면서 받는 고통에 대한 연민.
알람 소리에 맞춰 눈을 뜨니 정신이 맑고 몸이 날아갈 듯이 가볍다. 아프고 나서 가장 오래 두 시간 정도 잤나 보다. 오늘은 회사에 나가야겠다고 준비를 하는데 연민이란 단어가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다른 사람의 처지를 불쌍히 여긴다’는 뜻을 가진 연민을 골똘히 생각하자 왕가누이 카페에서 봤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혼자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있던 나에게 그들은 연민을 가지고 다가왔을까. 그날 들었던 웃음소리와 따뜻했던 목소리가 그립다.
정신이 맑고 두통이 없어 회사를 가겠다고 나섰다. 멀지 않는 거리라 운전이 별로 어렵지 않을 거로 생각했는데 차가 막히자 졸음이 쏟아져 온다. 조금 무리했나 보다. 길을 나선 것을 후회한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실망하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본인을 잘 보호하고 연민을 길러야 한다고 수호천사가 소리를 쳤구나 하는 생각이 스친다.
글_정인화
'글 쓰는 사람들’은 오클랜드를 중심으로 한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한 달에 두 번 모여 좋은 글을 나누며 글쓰기도 하고 있습니다. 네 명이 번갈아 가며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