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의 손바닥 소설 (1편) 그때 그리고 지금도 유효한

교민뉴스


 

뉴질랜드의 손바닥 소설 (1편) 그때 그리고 지금도 유효한

일요시사 0 741 0 0

사선으로 퍼붓는 빗줄기에 뉴질랜드 겨울이 씻겨 내려간다. Pass Motors 정비샵 앞에도 빗물이 철철 넘쳐흐른다. Rita가 검사에 합격한 차, 앞 유리에 새로 갱신한 WOF(Warrant of Fitness) 스티커를 붙인다. 산뜻하다. 떼어낸 옛날 스티커를 손가락으로 돌돌 말아 휴지통에 톡 튕긴다. 지나간 옛 흔적이 사라지고 새 얼굴이 자리를 잡는 순간이다. Rita의 마음도 흐뭇하다. ‘6개월 뒤에 다시 오렴. 땅땅~’ 캠리 차 트렁크를 어린아이 엉덩이 치듯 톡톡 두드려준다. 남편에게 한마디 건넨다.

“앞 타이어 교체 말고는 별문제가 없나 보네.”

“응, 상태가 비교적 양호해서 PASS야.”

기다리던 차 손님, 마오리 여인 Jema가 Rita에게 고맙다고 인사한다. 캠리 차가 유유히 정비샵을 빠져나간다. 비를 맞으며 돌아나가는 차량 깜빡이 불의 반짝거림이 밤하늘을 날아가는 개똥벌레 같다. Rita가 그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면서 회상에 젖는다. 리셉션에 돌아와 둥굴레 차 한 잔을 마시며 가볍게 읊조린다.

‘Jema를 처음 만난 게 벌써 5년 전이네. 와이타케레 병원 응급실. 까마득하고 끔찍한 순간 ~’

Rita의 목울대를 넘어가는 따스한 둥굴레 차 맛이 고소하고 그윽하다. 컵을 움켜쥔 손에 전해지는 온기가 평정을 찾아준다. 항상 죽으란 법은 없는 세상이다. 뉴질랜드 이민 초창기의 기대와 절망. 뭐니 뭐니 해도 사람이 문제였다. 고맙게도 희망을 준 것, 역시 사람이었다. 

 

***

 

5년 전. Rita가 운전하다 가계 앞에 정차돼있던 봉고차를 심하게 치받았다. 자동차 부품을 사 오던 중이었다. 시간에 늦을세라 급가속에 코너링이 문제였다. 물건 사러 간 딸을 차에서 기다리던 노모가 크게 다쳤다. 차량 충격에 앞으로 거꾸러지며 이마를 심하게 부딪쳤다. 얼굴과 머리에 피가 범벅이었다. Rita 역시, 핸들을 잡고 혼미해졌다. 목 충격이 컸다. 앰블런스와 경찰차에 이어 소방차까지 긴급 출동했다. 인근 와이타케레 병원응급실로 수송되었다. 급한 응급조치를 마치고 치료병실로 옮겨졌다. 

 

옆에 누워있는 피해 환자를 보며 Rita는 죄책감에 몸 둘 바를 몰랐다. 떨리는 목소리로 사과를 했다. 입술을 깨물었다. 어쩌다 그런 사고로 죄 없는 할머니까지 다치게 했나. 무능해 보이는 남편이 밉기까지 했다. 속을 썩였던 동업자에게는 분노가 일었다. 한국에서 잘 살다가 늦은 나이에 무슨 바람으로 뉴질랜드에 이민까지 왔나. 기대와 달리 영주권도 제대로 빨리 못 받고, 차량 정비샵에서 남편 일 돕다가 자동차 사고까지. 머리가 바늘로 찌른 듯이 시큼했다. 

 

그때였다. Rita 병상 머리맡으로 중년의 마오리 여인이 찾아왔다. 피해 환자 딸이라고 했다. Rita는 깜짝 움츠러들었다. 한국에서 자동차 인사 사고로 골머리를 앓은 적이 떠올라서였다. ‘합의?’ ‘얼마나?’ ’언제 끝나나?’ 피를 말렸던 여러 상황이 번개처럼 머리에 번쩍였다. 순간, 그 여인이 Rita 손목을 꼭 잡았다. 자기 엄마 걱정하지 말고 어서 회복하라며 가볍게 포옹까지 해 주었다. 그녀는 Jema라 했다. 여러 이야기로 위안을 주었다. ACC(국가 사고 보상 공사)에서 환자들 모두에게 무료로 치료해주니 걱정하지 말라고. Rita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Rita 손을 잡은 그녀의 손등에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아~ 그때 그리고 지금도 유효한 느낌~ ‘뉴질랜드! 사람 살만한 곳이네. 뿌리내리고 살아야겠어.’ Rita 가슴이 먹먹했다. 새로 일어설 결심을 준 마오리 여인 Jema. 나중에 Jema는 단골이 되어 자주 정비샵에 들렀다.

 

자동차 사고를 낸 당시, Rita는 사실 며칠을 제대로 잠을 못 이룬 상태였다. 툭하면 어깃장 놓는 동업자의 횡포에 여러 날 속이 탔다. 지켜보면 항상 동업자는 감질이었고, 남편은 을로 전전긍긍했다. 영주권이 누구 손에 달렸냐는 듯이 깐죽대는 동업자가 눈엣가시였다. 얼마나 저런 못 볼 일을 참고 견뎌야 하나. 온통 그런 생각으로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는 남편이 무능해 보이며 미워졌다. 

 

파노라마 같은 일들. 고국에서 남편 명퇴 후, 뉴질랜드에 이민을 왔다. 장기사업 비자에 희망을 걸었다. 군대 시절 수송 반에서 차량 정비 일을 한 손재주를 바탕삼아 차량 정비 업을 선택했다. 폴리텍에서 자동차 정비 코스를 밟았다. 정비샵에서 실습하며 꿈을 키워갔다. 영주권을 받는데 여러 조건이 필요했다. 교회 아는 분의 소개로 자동차 정비샵에 지분을 투자해 동업하게 되었다. 사업장, 종업원, 매출, 세금 등이 영주권 신청하는데 무난해 보였다. 일단, 일을 저지르고 정비 일에 매달렸다. 막상 동업하고 보니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터져 나왔다. 산 넘어 더 큰 산이었다. 동업자는 자동차 정비 기술과 WOF 자동차 검사 자격증을 가진데 비해 남편은 의욕만 앞섰다. 동업자는 자주 남편의 약점을 툭툭 건드렸다.

 

일을 마치고 파김치가 된 몸을 누이고 나면 통나무처럼 떨어져 코를 골며 자던 남편. 몸이 노곤하면 충분한 수면이 보약이었다. 처음엔 그랬다. 동업자와 사사건건 의견이 부딪치면서부턴 날이 갈수록 얼굴이 구겨진 휴지처럼 부스스해졌다. 잠자리에서도 뒤척이며 한숨을 지어댔다. 잠을 자다가도 악몽을 꾸는지 날카로운 소리를 질렀다. 깜짝 놀라 남편 어깨를 흔들며 머리를 만져보면 땀이 흥건했다. Rita가 수건으로 남편 땀을 훔쳐주며 나직이 읊조렸다. 

“우리 한국에 돌아갈까~ 이러다가 사람 잡겠어. 신간이 편해야 살지, 뭐 요새 사는 게 사는 건가?”

“글쎄. 영주권이 뭔지. 이런 거 안 받고 고향 시골 가서 땅이나 팔까. 누구한테 이런 이야길 하기도 그렇고. 교회 목사님께 지난주 면담은 해봤는데~”

“뭐라셔.”

“한 3년 꾹 참고 견디래.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을 떠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바로 간 게 아니라면서. 심은 대로 거둔대. 힘들 땐 하늘의 무지개를 보래.”

“칫~ 교장 선생님 훈화 같네. 주례 선생님 주례사도 그랬잖아. 고난 끝에 낙이 오려니. 나도 그런 말은 하겠다.”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주말, 오전 일을 마치고 집에 오자 Rita가 남편을 채근했다. 남편이 의아해하는 얼굴로 황소처럼 눈을 끔뻑거렸다.

“기분도 그렇고 한데, 좋은 곳으로 모실 테니 준비나 하셔.”

Rita가 직접 차를 몰았다. 웨스트필드를 벗어나자 전원풍의 목장과 포도밭이 펼쳐졌다. 자동차 창유리를 내렸다. 남편의 얼굴에 옅은 여유가 피어났다. 야외 근사한 레스토랑이 기다리고 있었다. 서쪽, 헬렌스빌 가는 쪽 쿠미우에 있는 솔잔 레스토랑. 포도밭에 싸인 외아너리 쉼터. 얼마 전 아는 집사 아들 결혼 피로연을 베푼 곳이었다. 얼마 만인가? 일에 치여 자신들을 챙겨주지 못한 죄. 늦게라도 보속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치즈 소스로 맛을 우려낸 홍합 요리가 일품이었다. 와인 잔까지 마주치며 모처럼 저녁 만찬을 즐겼다. 남편이 1인분을 더 시켰다. 이마에 땀을 흘리면서 잘 먹는 남편을 바라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다. 여러 이야길 나눴다. 일에 쫓기며 생긴 긴장도 풀렸다. 사업변화 결단도 생겼다. 나중에 동업자 지분 반을 아예 사버리기로 굳혔다. 먼저 WOF 검사 자격증을 따놓고. 다행히 일 잘하는 사모안 종업원과 부부가 한 팀 되어 운영하면 될 것 같았다.

 

그로부터 이루어진 일들. 남편은 주경야독했다. 마치 고3 수험생 같았다. WOF 검사 자격증을 땄다. PASS가 됐다. 말로만 듣던 고시 패스 같았다. 동업자는 불행히도 뇌졸중으로 쓰러져 사업에서 손을 뗐다. 영주권 신청도 잘 받아들여 졌다. 영주권! PASS였다. 영주권을 받은 후, 온 가족이 솔잔 레스토랑에서 축하 저녁 식사를 했다. 물론 메뉴는 ‘치즈 소스로 맛을 우려낸 홍합 요리’ 였다. 이번에는 아들이 맛있다고 한 그릇을 더 주문했다. Rita가 아들에게 은근한 미소를 보냈다. 

 

***

 

Rita가 손에 든 찻잔을 내려놓는다. 힘든 순간, 그때는 세상이 온통 먹구름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나중에 그때를 회상할 수 있다는 건, 작은 복이다. 리셉션에서 전화를 받는 일, 정비샵 부족한 일손을 보태는 일. WOF 검사 마친 차에 PASS 스티커 붙이는 일. 어쩌면 인생은 이런 작은 일을 다음 단계로 보내주고 통과시켜주는 PASS가 아닐까. Rita의 가슴에 오래 살아 숨 쉬는 단어. PASS! 작은 역할에 고마움을 느낀다. 빈 찻잔에 뜨거운 물을 조심스레 더 붓는다. 어느새 비가 갰는지, 창 밖으로 쌍무지개가 뻗쳐 올라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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